68장 5일전쟁 첫날
한제국 국경수비대 소속 제003화포대 소속인 화금혁은 깜깜한 어둠속에서 화포에 작약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자신을 지휘하는 장군을 바라보았다.
하얀 백마위에 서서 붉게 빛이 나는 도를 들고 가만히 바람의 흐름을 느끼고 있는 녹안(綠眼)의 마왕(魔王)을.
지난 한달 반 동안 국경수비대에 배속된 화포병 모두가 훈련에 참가했다. 갑작스러운 동원령이었고 훈련이었기에 정말 지금까지 해온 훈련 중에서 가장 힘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함께 왔던 화포병의 오분의 사가 떨어져 나갔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악독한 훈련이었다.
‘으으으. 다시 생각해도 끔찍해. 하지만 그렇지만 이 사실은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정말 우리를 이끌고 있는 장군은 화포병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장군이라고 부를 밖에 없어!’
그는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는 다시금 자신의 능력을 발휘 할 것이다.
가만히 바람을 느끼던 그 녹안의 마왕의 입에서 높낮이 없는 음정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지금 이곳은 1000명의 병사와 300의 기마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입을 열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곳은 저 장군이 지배하는 땅.
그 어떤 자도 저 녹안의 마왕을 벗어 날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자신이 있는 화포대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자신과 그와의 거리가 꽤 멀었지만 말이다.
“거리는 700미르 각도는 46도 내각 3도”
화금혁은 작약을 집어넣고 동료들이 각도를 잡는 것을 지켜보았다.
자신은 작약을 집어넣고 터져 나오는 화탄의 찌꺼기들만 제거 하면 된다. 한 달 반 동안 잠도 못자고 배운 것이 그것이다. 어둠속에서는 오로지 도깨비 불과 같은 그의 녹색의 눈과 검붉은 도만이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가 떨어졌다.
퍼퍼펑!
100문의 화포는 동시에 화탄을 뿜어냈고 저 멀리 성벽이 무너지는 소리가 보이지도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 왔다.
녹안의 마왕은 잠깐 이쪽을 바라보았다.
‘왜? 내가 뭘 잘못했나?’
화금혁은 황급히 화탄찌꺼기를 꺼내고 작약을 장전했다. 그의 행동은 정말 민첩하다 못해 경의적인 수준이었다. 녹색의 빛은 다시금 전장을 향했고 그제야 화금혁은 벌렁대는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을 수 있었다.
‘다행이다. 왠지 모르지만...’
“거리는 그대로 각도 46도 내각 8도”
자신의 조에 속한 병사가 열심히 각도를 조정했다. 그리고 다시 붉은 빛이 유성처럼 떨어지고 화포는 불을 내뿜었다.
퍼퍼펑.
이제는 병사들의 비명소리와 외침소리마저 들려오는 듯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가?
분명 자신들이 난공성을 향해 포화를 하고 있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지금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도 완연히 뜨지 않은 시간이다.
‘대체 저 마왕은 무엇을 보고 이리도 정확하단 말인가’
정확한지 않은지도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정확할 것이다.
화금혁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자신이 할 일을 했다.
붉은 빛이 마치 유성처럼 어두운 하늘을 가르며 떨어진다. 그리고 소리 없는 화포는 타오르는 불꽃을 뿜어낸다.
한 번
두 번
세 번
붉은 빛은 땅으로 떨어지고 화포는 계속 불을 뿜어낸다.
하지만 조용하다. 소름끼칠 만큼 조용하다.
모순적이다.
분명 화포는 엄청난 굉음을 내뿜으며 터져 나가고 있지만 전장은 침묵에 빠져있다. 평소 때, 아니 훈련을 받기 전이였더라면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 했을 것이다. 비록 죽은 적군이게 미안하긴 하지만 전쟁터에 나온다는 것은 죽을 각오를 한 것이니 그렇게 가슴 아프게 미안하지는 않고 조금 미안하다.
어쨌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반응이 비정상적 이라는 것이다. 나 화금혁 벌써 불밥인생 10년이 넘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러 기분을 느껴 본적은 없다.
이건 마치...
이길 것을 뻔히 알고 싸우는 놀이 같다.
마치 답안을 다 알고서 시험을 보는 기분이랄까. 나를 비롯해서 이 어두운 전장에 있는 모든 이 들은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모두 저 녹안의 마왕 때문이다.
근거 없는 신념이며, 이유 없는 믿음이다.
저 사내에 대한 믿음.
그저 저 사내와 함께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이 싸움은 이긴다는 믿음. 그랬기에 기쁜 기분이나.
통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다.
이미 이긴 전투이다.
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한다.
마치 이것은 절대 진리이니 바뀔 수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화금혁은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며 다시 저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제는 정말로 이곳까지 생생하게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왠지 모르게 다시 한 번 소름끼친다.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이건 날벼락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3대 우(右)로 20도 회전. 1대 우로 10도 회전”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은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며 포를 옴겼다.
“2대 좌(左)로 20도 회전. 4대 좌로 10도 회전. 각도는....”
그는 말을 마치고 붉게 빛나는 도를 높게 들었다.
‘아마도 바람을 느끼는 것이겠지.’
대체 저렇게 한다고 해서 어떻게 화탄이 타고 갈바람을 느낄 수 있는 것인지를 모르겠지만. 그래도 바람을 느끼고 있는 것일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으니까.
“각도는 70도 내각3도, 포탄은 작열탄, 삼각포화로 연속 3회 발사”
70도라고!!
‘대체 무얼 하려고 설마 저 성안에 있는 내성에 까지 포격을 가할 생각인가!’
작열탄이라고...
화금혁은 그의 행동에 궁금증을 가졌지만 그의 생각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그의 행동으로 이미 그는 자신이 측정할 수 있는 인간의 범위를 뛰어 넘었으니 말이다.
고개를 높게 쳐든 화포에서 불을 뿜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발사를 하고난 후 화금혁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장면을 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고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성이... 성이 터진다...”
*****
여민의 말이 끝나자 제갈소문과 유공 모두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성이 터졌다.
‘왜? 아니, 그건 그렇다 치자. 그러니깐 다른 병사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화포대에 성이 무너졌다? 난공성이?’
난공성이 괜히 난공성이라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니다. 그 동안 한제국군의 공격을 제일선에서 막아오던 그런 성이다. 그런 난공성을 그저 화포 100 문, 물론 화포 100문이면 많은 것이다. 어쨌든 다른 병과의 도움 없이 그냥 화포대로 이겼다?
“그냥 그게 끝이야?”
“예. 저랑 다른 병사들은 뭐 할 것도 없었고 할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운이 좋았죠. 나중에 알아보니 난공성에 새로 화포가 배치되었는데. 그걸 아직 성벽에 배정하지는 않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재수 없게 터진 것 이구요”
여민은 유공의 대답에 대답을 하고는 안주를 집어 먹었다.
‘꽤 오랜 동안 이야기를 하느냐 배가 은근히 고팠나 보다. 그나저나. 화포대만으로 성을 함락 시켰다는 건가?’
물론 화포대의 화력은 엄청나다.
냉병기가 낼 수 있는 화력과 화기가 낼 수 있는 화력은 분명이 격차가 있으니까. 하지만 전투는 화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제갈소문이 이끄는 후속대가 분명 뒷정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저 성만 무너뜨린다고 해서 전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났댄다.
결국 적은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농락당했다는 것이다.
다시 전투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전의를 상실 했다는 말이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내가 도착 했을 때 그런 반응들을 보인건가.’
마치 괴물 보듯 자신들과 병사들을 바라보던 난공성의 병사들과 백성들을 제갈소문은 떠올렸다.
“다음날 저녁 같은 시간, 용악은 두 번째 성인 용령성을 공격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쉬웠습니다. 난공성에 비하면 용령성은 작은 성이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병사수도 적고 그래서 첫 번째 전투와 같았습니다. 어둠을 타고 날아온 포탄에 성은 무너졌고 적은 쓰러졌으며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예, 그게 끝입니다.
성하나가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용악과 용악이 이끄는 병사 1000명은 화문성을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민은 황당해 하는 유공의 표정에 나도 그랬지요. 라는 표정을 지으며 세 번째 전투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
# 69 - 흑영기병대 - 2556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