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어둠이 세상을 감싸는 지금.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은 침묵을 하고 살아 있지 않은 모든 존재들 역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침묵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검은색의 헝클어진 긴 머리를 한 사내는 거침없이 거리를 걸어 나간다.
항상 사람들로 붐비던 이곳
무계의 가장 큰 시내 이자 중심부인 이곳에 지금은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집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는지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황량한 대로를 사내는 거침없이 걸어 나간다.
그를 막는 자도 그를 따르는 자도 없다.
그는 거침없이 걸어 성주가 있는 무계 내성으로 들어가 이윽고 현상. 과거 한제국군 정보부 소속, 서한국 국경수비대의 현 천인장. 지금은 현 무계성주라 불리는 그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성 내에는 시중을 들던 시녀들도 성을 지키는 내성의 병사들도 아무도 없다. 무계성이 마치 한순간에 유령의 성으로 변한 듯 했다. 녹색의 눈을 가진 그 사내는 일반 병사들이 쓰는 창 한 자루를 들고 침묵에 잠겨 있는 성 안을 걸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 뒤로 희뿌연 무언가가 그의 등에 달라붙어 흐느적거렸다. 그는 걸음을 잠시 멈추고는 기교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찡그리며 피식 웃었다.
“하아.....”
크게 숨을 내쉬자 그의 입에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튀어 나오는 듯 했다.
‘대체 나는 이곳에 왜 온 것일까. 대체 왜 무엇이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일까.’
용악은 가만히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자신의 머리위에 떠 있는 커다란 보름달을 바라보았다. 그 푸르고 둥그런 달 주위로 무언가 아지랑이처럼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대체 난 이곳으로 왜 온 것일까. 그저 복수를 하기 위해서? 아니면 나의 도를 찾기 위해서? 아니면... 아. 그렇군 그때 그 호표기 녀석이 있었군... 그래. 그래. 큭큭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 건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용악은 달을 향해 손을 뻗어 무언가를 움켜쥐었다.
‘대체 나는 이곳에 왜 온 것 일까. 현상을 죽이기 위해선 그냥 혼자 와서 죽이면 됐다. 도를 찾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 호표기? 있으면 그만이고 없으면 그만이다. 대체 나는 이곳에 왜 온 것일까. 정말로 나는 피를 탐하는 마인이 되가는 건가? 그런 건가?’
용악은 자신의 눈을 파고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에 눈을 찡그렸다.
-키키키. 아직도 너는 네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설마. 키키키 네 모습을 봐.
-꺄야야 하하 이 피에 굶주린 마인아 넌 이제 곧 지옥의 왕들과 만나게 될 거야 크크크
‘피에 굶주리지는 않았다. 이 빌어먹을 놈들아.’
용악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집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소리 없이 웃었다.
‘하하하. 피에 굶주리던 미쳐가든 상관없어. 난 살아 있으니까. 이곳에 온 이유? 그래 현상 그 개자식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라고 하지. 하하 정말 웃기는 군!’
용악은 소리죽여 웃다가 단번에 얼음이 뚝뚝 떨어지는 삭막한 표정을 지으며 걸음을 옮겼다. 연무장으로 지나고 시녀들이 머무는 곳을 지나고 접객실을 지나고 도착한 이곳은 현상이 평소 집무를 처리하던 집무실.
저기 살이 잔뜩 찐 몸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태사의에 앉아 있는 현상이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벽에 매달린 잘 모셔둔 두 자루의 도가 용악을 향해 요기를 뿜어댄다
‘너희도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이냐 하하. 고맙군. 현상. 만약 도망갔더라면 정말 귀찮을 뻔 했어. 그래도 죽을 때는 쓸모 있는 일을 하는군.’
“장... 효.. 아니 장효라는 이름도 거짓이군. 귀혈쌍도. 그래 귀혈쌍도 가 낫겠군. 나는.. 나...”
그 작은 태사의 위에 앉아 있었던 것이 힘들었는지 그는 한차례 땀을 손으로 털어 내고는 힘겹게 일어나 무릎을 꿇고 용악에게 기어오며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용악은 그 모습을 보고 그만하라는 듯이 손을 한번 털고는 조용하고 높낮이 없는 탁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됐어. 어떠한 변명도. 어떠한 행동도. 어떠한 표정도 짓지 마라. 너는 죽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아. 이제 죽어라”
용악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창을 들어 현상에게 던졌다. 현상은 용악이 자신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에게 이럴 줄을 몰랐는지 피하지도 못하고 창에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한꺼번에 꿰뚫려 방바닥에 박혔다. 단단한 청석으로 만든 바닥이지만 창날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아! 악!!!! 아!!! 귀혈쌍도! 네가!”
현상은 잠시 분노하는 목소리로 용악을 바라보다. 다시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용악에게 소리쳤다.
“귀혈쌍도... 귀혈쌍도. 제발. 제발... 살려줘. 살려줘. 내가 아는 것을 모조리 알려 주겠네. 내 재산도 모두 모조리 주겠네. 그러니 제발. 제발....”
용악은 창에 박혀 꿈틀거리는 그를 한차례 바라보고는 벽에 곱게 모셔져 있는 자신의 도를 집었다. 용악은 감회가 새롭다는 눈으로 도를 바라보면서 부드럽게 도집을 한차례 쓰다듬고는 도파를 잡아 두 자루 모두 한 번에 뽑았다.
끼아아아아악!!
검붉은 도신이 세상에 다시 나오면서 귀곡성을 질러 대며 부르르 떨었다.
‘그렇게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이냐’
끼야야야야!
도는 용악의 손이 떨릴 정도로 거침없이 부르르 떨며 귀곡성을 뿜어내며 요기와 살기가 버무려진 무언가를 온 몸에서 뿜어냈다.
“힉..힉.. 힉.. 안돼. 안돼! 안돼! 아악! 귀혈쌍도! 그 도는 미쳤다. 도는 살아있다. 그리고 미쳤다. 하아아악! 어흑.. 그 도는 미쳤어. 마도(魔刀)다. 마도라고...”
현상은 자신이 다리가 땅에 박혀 있다는 사실도 잊은 채 두려움에 젖은 눈을 하고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모르는 아이처럼 계속 흔들며 용악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벗어나기는커녕 그의 다리에 박혀 있는 창은 그에게 더욱 큰 고통을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그가 꿈틀거릴 때마다.
자신을 반기는 도(刀)의 마음을 느끼던 용악은 도의 울음이 그칠 때 쯤 뒤돌아서서 피로 흥건해진 바닥에서 마치 채집된 곤충처럼 달아나려고 꿈틀거리는 현상을 바라보았다.
"히익! 제발. 제발....“
현상은 용악의 녹색의 눈에서 피어난 푸른 불꽃을 보며 온 몸으로 공포를 발산하며 부르르 떨었다. 용악의 두 눈에서 피어 나오는 귀화가 아까보다 더 진해 졌다. 용악 역시 그 도의 영향을 받는 듯 했다. 비록 현상처럼 마쳐 날뛰지는 않지만 말이다.
‘좋군... 좋아... 역시 너희들이 있어야 편하구나.’
용악은 허전했던 자신의 마음이 채워지는 것을 느끼며 현상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마치 젓가락으로 두부를 찍듯 아무런 망설임도 아무런 자책도 현상의 가슴에 두 자루의 도를 꽂았다.
“컥... 아아악!! 아악”
끼야야악!!
두 자루의 도는 다시 귀곡성을 뿜어내며 현상을 빨아 먹었다.
두 자루의 도는 서로 경쟁 하듯이 현상의 가슴에 박혀 피를 빨아 먹었다. 대체 그것이 많은 피가 어디로 가는지 모를 정도로 현상의 그 거대한 몸집에 있던 피들이 모조리 두 자루의 도에게 빨려 들어갔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마치 배부르게 먹고 트림을 하는 듯 소리를 내고는 두 자루의 붉은 도는 더 이상 피를 빨아 먹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용악은 그 모습을 보고 무엇이 웃겼는지 피식 하고 소리 죽여 웃고는 도집에 도를 집어넣고 미라처럼 변해버린 현상이 있던 곳에서 벗어났다.
두 자루가 뿜어낸 귀곡성은 무계에 있는 모든 백성들과 병사들을 두려움에 몸부림치게 만들었다. 그 소리는 마치 망부의 악령들이 내뿜는 소리와도 같았고 저 용의 산맥에 살고 있는 지룡들이 질러 대는 그 용음과도 비슷했다. 하지만 그들의 울음이 적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라면 이 두 자루가 뿜어낸 소리는 그야 말로 순수한 살기와 요기.
어떤 것으로도 포장되지 않은 순수하고도 순수한 살기와 요기
그랬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내재 되어 있던 그 원초적 공포에 몸을 떨었던 것이었다.
용악은 자신의 뒤를 따라오는 병사들이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무계성 감옥으로 걸음을 옮겼다. 병사들. 자신의 밑에서 명령을 받던 병사들 역시 그를 두려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감옥을 지키던 무계성의 병사들은 손까지 덜덜 떨며 자신에게 열쇠를 내밀었다.
그 호표기를 찾으라고 시켰는데 벌써 찾았나보다.
‘아니. 아직까지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하군. 용악은 자신의 뒤를 따르던 두 명의 호표기, 아니 이제는 호표기도 아니니 그렇게 부르기도 뭐하군.’
그런 생각을 한 용악은 그 두 명의 병사에게 밖을 지키라고 하고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쾌쾌한 냄새가 그의 후각을 파고든다.
용악은 어둠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감옥 안에는 그 말고도 여러 죄수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용악의 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안광이 그들의 입을 마비시켰고 아까 들렸던 그 귀곡성은 그들의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곳
가장 깊숙한 곳에 그가 있었다.
감옥 안에 있었지만 그렇게 고생을 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글쎄 뭐랄까 그냥 할일이 없으니깐 이곳에 있어준다 라는 여유가 느껴졌다고나 할까.
용악은 그의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는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오랜만이군요. 진짜로 올 줄을 몰랐는데 말입니다. 특히 그렇게 거창하게는 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과 발을 묶고 있던 쇠사슬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다는 모습으로 용아을 보며 여유롭게 말을 했다.
‘다르다. 그래.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지만 다르다. 이 녀석은. 그동안 내가 살려 냈던 녀석들과 다른 호표기 들과 다르다. 대체 뭐지? 왜?’
“후훗... 왜 그렇게 이상하게 보는 겁니까. 큭큭. 당신, 아니 대장인가? 뭐 어쨌든 정말 대단하군요. 그 꼴을 하고 아직도 살아 있다니 큭”
그는 고개를 떨어뜨리며 용악의 왼 손을 가리키며 웃었다.
‘그래. 나는 이런 꼴이 되고서도 살아남았다. 그리고 네 녀석도 살아남았고 말이다.’
그는 한차례 기침을 하고 웃음을 그치며 용악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정광이 어린 깨끗한 눈으로 용악의 그 마안(魔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눈을 뚫고 그의 생각까지 읽어 내려는 듯.
“당신의 부탁대로 살아남았습니다. 그 빌어먹을 놈들이 고문을 하고, 고문을 하고, 고문을 하였음에도 살아남았습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알고 있는 모든 것. 알지 못하는 모든 것을 말해서 살아남았습니다. 호표기로서 무인으로서의 자존심도 명예도 다 버린 채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말을 하고는 손을 들어 벽에 박혀 있던 쇠사슬을 뽑아내고 발을 묶고 있던 쇠사슬마저 뽑아냈다.
‘탈출은 진작에 할 수 있었다는 것이냐? 그런데 왜? 아니면 오늘 같은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냐?’
용악은 의문이 들었지만 가만히 그가 하는 행동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나로 만들던 것을 모두 버리며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당신 차례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무엇을 줄 것입니까? 이 텅 비어버린 나에게 무엇을 주실 겁니까?”
‘이거였던가!!’
용악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무언가 솟아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이거였나. 그 동안의 녀석들과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인가!!’
용악은 자신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이 감정에 스스로 놀라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 감동이다.’
용악은 자신의 가슴을 가득 채우는 이 감격스러운 감정에 온몸을 떨며 전율했다.
그는 한명의 인간이 태어나는 것을 지금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녀석들 모두 그랬다.
황제와 자신과 사이에서 방황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황제 아니면 자신의 인형일 뿐 한명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하는 생각 없이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하나의 ‘인형’에 불과 했을 뿐이다.
‘하지만 너는 나를 따르겠다는 것이냐 나를! 그래서 나에게 너에게 무엇을 주겠냐고 묻고 있는 것이냐! 더 이상 인형으로 살아가지 않겠다는 것이냐!’
용악은 감격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꿈꾸던 모습이다.
내가 너희들에게 바라던 모습이다.
인간이 되는 것. 인형이 아닌 인간이 되는 것!
“너에게 잊힌 너의 이름을 돌려주겠다! 너에게 빼앗겼던 너의 이름을 돌려주겠다! 너에게 잃어버렸던 너의 미래를 주겠다! 너에게 나의 목숨을 주겠다!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겠다!”
용악은 감격에 벅찬 목소리로 그에게 소리쳤다.
그의 말(言)은 말(言)이었지만 말(言)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과 또 다른 자신과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그에게 하는 맹세다. 약속이다.
그 옛날 선지자들의 행하던 그들의 언어에 실린 힘, 하늘의 맹세가 시간을 거슬러 지금 용악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듯 했다.
그는 말을 하고 굳게 닫힌 용악의 입을 가만히 바라보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용악에게 고개를 숙인 채로 말을 이었다.
“믿겠습니다. 당신의 말을 믿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잠시 숨을 고르고 용비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감옥이 울리도록 큰소리로 소리쳤다.
“호표기 제2 대장 유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당신을 믿겠습니다. 당신의 앞을 막는 자가 있다면 나는 당신의 검이 될 것이고. 당신의 위협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당신의 방패가 될 것이고. 당신이 가려는 곳이 멀다면 나는 당신의 말(馬)이 될 것이고. 당신이 힘들다면 나는 당신의 집(家)이 될 것입니다. 호표기 제2대장 유천, 유일한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그렇지 않아도 조용하던 감옥은 이제 완전히 무 의 상태와 같이 변해 버렸다.
그 어떤 누구도 이와 같이 엄숙한 맹세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누구도 지금과 같이 엄숙한 맹세 앞에서 입을 열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곳이 감옥이라는 사실은 그의 맹세 앞에 봄날의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그는 단지 몇 마디 말로써 이곳을 천상의 왕궁으로 변화시킨 듯 했다.
그리고 용악과 다른 죄수들 병사들 역시 뭐라 말도 못하고 그의 엄숙한 모습을 바라볼 뿐 이다.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무에 가깝던 그 정적은 밖에 서 있던 호표기가 떨어뜨린 검, 검과 땅이 부딪치는 작은 소리에 깨어났다.
*****
용악은 천천히 자신의 집을 향해 걸어갔다.
‘유천이라는 자. 대단했다. 아니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그런 자가 자신에게 그런 맹세를 했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렇게 엄숙하고 경건하고 명예로운 맹세는 기필코 없었다.’
용악은 아직 까지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쿵쾅쿵쾅 뛰고 있는 자신의 심장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댔다. 항상 자신을 괴롭히던 망령들도 지금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놈들도 그 맹세를 들어서 그런 것인가? 그것도 정말 대단하다. 이것이 바로 말(言)의 힘인가...’
용악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냥 가고 싶었다.
어떻게 변했는지. 그가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가지고 있던 그곳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자신이 예전에 살던 집으로 가고 있었다.
약간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좁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나갔다. 항상 그가 지나다녔던 길이다.
‘불과 1년 전...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다르지. 그때는 이렇게 이 귀퉁이를 돌면 주홍이...’
“주홍...?”
용악은 항상. 아니 예전에 항상 느꼈던 그 느낌을 느끼며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려 자신의 집을 바라보았다.
없다.
아무것도.
하지만.
방금 그건 분명 주홍의 느낌이었다.
항상 그곳에서서 그를 기다리던 그 여인의 느낌이었다.
‘틀리지 않다. 아니 틀릴 수도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으니까. 그런데. 대체?’
용악은 오랜 동안 사용하지 않아서 낡아 버린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낡은 문을 여는 것이 마치 천상의 문을 여는 것처럼 힘들었고 삐걱거리는 소리는 천둥이 치는 듯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그리고 그곳에 주홍이 있었다.
주홍이...
용악은 허탈해 하며 탁자의 의자를 손으로 집고 몸을 버티고 서서 의자에 털썩 소리 나게 주저앉았다.
“큭큭 하하하! 아하하하하”
웃음이 절로 터져 나온다.
‘하하 네 녀석이었던 것이냐? 네 녀석이었어?’
용악은 자신과 주홍이 쓰던 침대 위에서 누워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검은색 털에 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젖혀 가며 웃었다.
‘너한테 내가... 내가 하하하 웃기구나. 정말. 하지만 이건 정말 주홍의 느낌이다. 1년 동안 살을 맞대고 지내왔다. 그 정도도 모르지는 않다.’
“냥냥아 이쪽으로 와”
용악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손짓을 하며 말을 했다.
고양이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실룩한 표정을 짓고는 자신에게 사푼사푼 걸어 왔다.
‘정말 주홍이 하는 짓을 그대로 하고 있군. 막 죽은 자의 곁에 고양이가 있다면 그 죽은 자의 영혼이 고양이에게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 큭큭... 사실이든 아니든. 정말 재미있구나.’
용악은 탁자 위에 올라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웠다.
얼마나 그렇게 쓰다듬었을까. 용악은 웃는 것을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도집 채로 허공을 한번 그어 내렸다.
마치 자신과 이 집을 이어주고 있던 보이지 않는 끈을 잘라버리는 것처럼.
그리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검은 고양이는 가만히 용악의 뒤를 따라 나갔다. 골목에 들어가기 전 한 발짝을 남겨두고 용악은 뒤를 돌아 자신을 바라보는 고양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고양이는 신경질 난다는 듯이 발을 들어 발톱으로 땅을 팠다. 땅의 색이 약간 변하는 것으로 보아 정말 독묘(毒貓)는 독묘였다. 그렇게 신경질을 부린 고양이는 결국 검녹색의 빛이 나는 비늘위로 올라 왔다.
한 사람과 한 고양이는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갑자기 골목에서 불어온 바람이 용악이 살던 집을 한차례 휘돌고는 하늘로 날아 흩어졌다. 그 바람결에 실린 누군가의 목소리도 함께 말이다.
“다음 생이라더니... 이제 행복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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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 - 흑영기병대 - 254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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