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61화 (61/107)

61장 감옥 - 비사 2

용악이 그렇게 분노를 씹어 먹고 있을 때 주홍은 무계-독당 연구소를 총괄하는 연구소장에게 조용히 그동안의 실험에 대해 보고를 하고 있었다. 살짝 열어 놓은 틈으로 어스름한 달빛이 스며들어 오고 있었고 거대한 탁자 위에는 커다란 초들이 방을 밝히고 있었다.

주홍은 그 동안의 성과를 담은 보고서를 조용히 넘겨가며 보고 있는 연구소장을 슬그머니 바라보았다.

연구소장은 서대륙에서 넘어온 드워프 노인이었다. 어린아이처럼 키가 작았지만 몸집은 성인남자보다도 더 컸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은 얇고 긴 손가락의 손톱은 독을 익힌 사람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새카맣게 변해 있었다.

보고서 옆에는 그가 한시도 빼놓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요사스러운 검은 빛을 흘리는 수정이 달린 지팡이가 있었는데 주홍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낼 정도로 주홍은 어리석진 않았다.

이윽고 보고서를 다 본 그 드워프 노인은 주홍에게 나가보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보고를 마치고 주홍이 방문을 나설 때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주홍은 그 사람이 연구소장과 함께 서대륙에서 온 엘프인 것을 확인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방문을 나갔다.

방 안으로 들어온 엘프는 품속에서 조그만 자명종처럼 생긴 기계를 꺼내 마법주문을 외워 방 안의 소리가 흘러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했다.

엘프 역시 드워프 노인처럼 얼굴에 주름이 가득했다. 곱게 쓸어 넘긴 흰머리와 흰 수염과 어울리지 않게 그의 손톱 역시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번 실험체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은 것 같군.”

“그래서 실험에 진척이 더 많기도 하고.”

드워프 노인의 말을 받은 엘프 노인은 탁자에 있던 찻주전자에서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

“서축용가라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해서 조사 해봤는데... 서대륙의 드래고니안 연맹의 왕가의(The dragonia)피가 동대륙에서 이어지다니 어떻게 된 거지?”

“혹시 모르지 먼 방계일지 하지만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지.”

“그렇긴 하지만...”

드워프 노인은 찻잔에서 입을 떼면서 말을 흐렸다.

용악이라 불리는 그 포로의 피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마치 양파처럼 계속해서 비밀을 던져 줬다. 마치 마법사 마냥 기이한 마력이 피에 담겨 있었고 드래고니안 가문이라 불리던 가문에서 익히던 심법으로 몸을 보호 하고 있었다.

거기에 가장 놀라운 점은 바로 그가 들고 있던 두 자루의 도였다. 엘프 노인은 등에 들고 왔던 두 자루의 도를 뽑아 탁자 위에 올려놨다. 아니라 다를까 마치 피처럼 붉은 검신이 부르르 떨며 검명을 뿜어냈다. 그와 동시에 마법적 결계를 망령들이 마구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워프 노인은 지팡이를 들어 소리 나지 않게 입술을 떼며 주문을 외자 검은 빛 수정이 검은 무언가를 빠르게 뿜어냈다. 마치 안개처럼 뿜어져 나온 그 기체들은 도 주변으로 달려들려고 하는 망령들을 소리 없이 집어삼켰다.

“처음에 봤을 때는 저절로 영혼이 도에 스며든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강제로 망령들이 도에 봉인된 거였어.”

“드디어 그 도가 무엇인지 알아냈나?”

엘프 노인은 들고 왔던 두꺼운 인피로 된 인덱스(index) -경전(經典)을 모아둔 책- 의 한 부분을 펼쳤다.

“과거 몇 년 전에 동쪽에서 거대한 봉인결계가 펼쳐지는 걸 느끼지 않았나? 검에 걸린 봉인이라는 생각에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더군. 그래서 한 번 그것에 관련된 내용을 찾아보았네.”

두 사람은 마법과 비의를 탐구하기 위해 서대륙에서 동대륙까지 온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독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독으로 가장 유명한 사천당가에 머물면서 독당의 연구를 도와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동쪽 바다에서 거대한 결계가 펼쳐지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누가 했는지는 모르지만 동해에서 수천키로미르 떨어진 사천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봉인결계의 힘이었다.

바로 그들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생명의 신-아이넬라의 신상을 이용해 봉인을 펼쳤기에 그들은 확연히 그 결계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생명의 신의 신상을 이용해 봉인을 펼쳤다면 그와 적대되는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찾은 게 바로 이걸세.”

엘프 노인은 드워프 노인에게 섭화가 그려져 있는 인덱스의 한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바로 용악이 불귀도에서 보았던 그 4개의 기묘한 조각상들이 그려진 섭화였다.

“망자지옥의 왕들이라...”

“그럼 이 도는 망자지옥의 왕이나 혹은 망자지옥의 존재들이 무언가 꾸미기 위해 이곳으로 던져 놓은 씨앗인가?”

“아마도 그렇겠지.”

엘프 노인의 말에 드워프 노인은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보고서에 적혀 있던 그의 몸속의 기이한 기운이라는 게 바로 망자지옥의 향(香)이었군.”

그 동안의 생체실험을 통해 알아본 바로 그는 서축용가의 내공심법에 따른 기운과 과거 그들이 실험했던 독연의 기운, 그리고 알 수 없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바로 지옥의 향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이 녀석을 우리 손으로 죽이는 계획은 수정해야할 거 같은데? 실험을 제대로 진행해서 오히려 확실하게 해야 할 거 같아.”

“그래야 할 것 같군. 그래야 망자지옥의 존재들이 꾸미는 음모가 계속 진행될 거 아닌가? 망자지옥의 존재들이 난리를 쳐야 동대륙의 주술사들과 서대륙에서 넘어온 마법사들도 모습을 드러내겠지. 그럼 우리도 더 많은 비의를 알 수 있지 않겠나?”

“좋은 생각일세. 기왕이면 그 도는 이곳 성주에게 줘버리지. 재밌는 일이 있을 거 같군.”

두 노인은 그렇게 말을 하며 속을 알 수 없는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용악이 모르는 사이 그를 둘러싸고 거대한 음모가 또 다시 몰아치고 있었다.

*****

“이거에요. 당신이 부탁한 독”

그녀는 진한 녹색을 띄는 하지만 투명한 액체 같기도 하고 고체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독을 용악의 눈앞에서 흔들며 말을 했다.

“아마. 음. 한 2주나 3주정도 눈에 바르면 될 거 에요. 먹는 독은 아니니까 먹으면 안돼요. 얼마나 발라야 하는지는 저도 정확히 몰라요. 하지만 알 수 있는 건 처음 바르고 난 후 2주까지는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고 하루에 3번 이상 바르면 안 된다는 것이에요. 어차피 비늘을 다 붙이려면 한 달은 걸릴 테니. 당신이 좀 더 참을 수 있다면 더 빨라 질 수 도 있어요.”

그렇게 말을 한 후 그녀는 손수 그의 눈에 그 것을 발라 주었다. 마치 이것을 이렇게 발라야 한다는 듯이 가르쳐 주는 듯이.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후후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죠?”

“물론. 그나저나 아직도 더 붙여야 하나? 힘들군.”

용악은 녹색으로 변한 두 눈을 살짝 감으면서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했고 그녀는 이제 다 붙였다는 말과 함께 병사들을 시켜 용악을 감옥 안으로 집어넣었다.

“아. 참 현 성주 있잖아요?”

‘현 성주? 아 그 빌어먹을 배신자 자식을 말하는 건가? 그 자식이 왜? 돼지로 변했다고 하던데. 그 자식은 원래 돼지가 더 어울리는 녀석이었지. 킥킥’

“그 사람 또 시녀를 죽였다고 하더군요. 당신 칼을 가지게 되서 좋아 하던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 괜찮던 몸매를 다 버리고 돼지가 되더니 이제는 사람까지 죽이는 군요. 당신이나 그 칼이나 전부 짜증나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병사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현상. 네가 그 도를 감히 소유하겠다고? 하하하. 그 칼이 어떤 칼인데 너의 손을 타겠느냐. 하하하. 이미 요도이자 마도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런 칼을 네가 소유하겠다고 하하하하. 그나저나 어지간히 피를 원했나 보군. 그의 정신까지 파고들어 피를 얻어 냈다는 건가. 뒷일이 기대되는군. 그나저나 빨리 이 팔이 만들어 지면 좋겠군.’

하루하루 죽을 고통을 이겨내며 지내온 지 이제 딱 한 달. 용악은 눈에 바르던 그 독은 더 이상 바르지 않았다. 밤에도 낮처럼 잘 보이니까. 다만...

“당신 눈 좀 감아 줄래요?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군요.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들어 그의 눈을 감기고 마지막 한 조각을 그의 손에 붙였다.

치이이.....

살타는 소리와 함께 신경이 눌러 붙는 소리가 들려온다. 살이 타는 소리는 들을 때마다 용악을 미쳐 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그의 팔은 이미 괴수(怪手)가 되었다.

진한 흑녹색의 빛깔을 가진 비늘이 그의 손에 달려 있다. 그녀가 하고 있는 것은 맨 처음에 관절에 붙였던 그 이상한 비늘에 다시 한 번 다른 비늘을 붙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실력이 대단한 건지. 아니면 그저 우연인지 그 지룡의 비늘이 인간하고 성질이 잘 맞는지는 몰라도 지금 용악의 손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사실 지룡의 비늘은 이렇게 쉽게 인간의 살과 융합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용악을 살리기 위해 드워프 노인과 엘프노인이 비의와 마법을 써서 비늘의 성질을 바꾼 것을 용악은 물론이거니와 주홍도 모르고 있었다.

어쨌든 이미 철사장과 비슷한 종류의 외문기공을 강제로 약물로 익힌 후에 비늘을 붙여 놓았기에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겉 부분만 그럴 뿐. 속 안은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점이다.

‘하지만 그 건은 일단 이곳을 빠져 나간 다음에 생각할 문제이지.’

그녀는 마지막 조각까지 다 붙인 후에 용악을 다시 감옥 안에 쳐 박고 밖으로 나갔다. 용악은 벽에 가만히 누워 자신의 옆에 누워 하품을 하고 있는 고양이를 남아 있는 한손. 아직 인간의 손이라 볼 수 있는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철렁.

츠르릉.

비늘이 달린 왼손으로 쇠사슬을 한번 끌어 당겨 보았다. 살짝 쇠가 벌어지는 느낌이 든다.

‘큭큭. 그 동안의 행동이 쓸데없는 짓은 아니었군.’

용악은 이미 이곳에 잡힐 때부터 탈출할 준비를 했다. 다만 쇠사슬을 단번에 끊어 버릴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달린 것이 해결의 실마리를 줬다.

‘정말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지. 이건 나의 손이냐? 아니면. 지룡의 손이냐? 아니 지룡의 손은 아니군. 여러 부분의 비늘을 다 모아 논 것이니깐 지룡 그 자체군. 어찌됐든 좋아. 이곳을 벗어 날수만 있다면 그런 사치스러운 고민은 이곳에서 벗어 난 다음에 해도 좋아.’

용악은 녹색으로 변해 버린 자신의 눈에서 녹색의 안광을 눈구덩이 밖으로 줄줄 흘리며 다시금 자신의 각오를 담금질했다.

내일 모레.

그 날이면 이 팔이 모두 아문다고 했다.

그리고 팔이 다 아무는 날.

그날.

그는 이곳을 벗어 날 것이다.

‘냥냥아 이제 너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구나.’

냥냥이는 그런 자신의 생각을 알아 차렸는지 그의 몸 위에 올라타 자신의 상처 난 뺨을 핥았다.

‘기대 되는군. 네 년도, 이곳 무계도, 형상 그 돼지새끼도 모두. 죽여주마.’

“하하. 하하하하”

용악의 광소는 어두컴컴한 감옥 안을 맴돌며 밖으로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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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 - 흑영기병대 - 25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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