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장
사내는 갑옷을 입은 체 병사들과 함께 성문 위에서서 성문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저물고 있어서 검붉은 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성문을 닫을 시간 이였기에 성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과 성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로 성문은 매우 북적였다. 하지만 병사들이 잘 지시하고 있기에 그렇게 혼잡스럽지는 않았다.
이곳에 온지도 벌써 1년. 몇 번의 자잘자잘한 수적들과 한제국과의 전투를 통해 백부장이 된 신입 장수, 장효라 불리는 장수는 어젯밤 꿈속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른 이들이 보지 않게 피식하고 웃었다.
‘자신의 지금 모습, 그리고 자신의 기억을 가져간 그 들, 그리고 나의 인생, 모두 같은 처지다. 거짓되고 누군가에 의해 써진 인생. 후후후. 하지만. 훗날. 조금만 기다려라. 내 너희들에게 분노와 증오의 철퇴를 내려 주리라.’
“장 백인장님?”
“응? 뭐라 했지 방금?”
“현 천인장님이 식사나 같이 하자고 연락을 보내셨습니다.”
“아. 그래, 간다고 전해. 항상 가는 곳이겠지?”
“예.”
“그래. 가봐.”
병사는 백부장의 상념을 자신이 깨운 것이 미안 한 듯 약간 기죽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말을 건 냈고 용악 아니 장효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흔들며 대답을 했다.
‘벌써 보고하는 날인가. 그 재수 없는 상판 때기를 꼭 봐야하나. 어쩔 수 없겠지. 일단은 그가 책임자니.’
장효가 성벽 위에서 내려오자 성문에서 성 밖으로, 성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조사하던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를 했고 장효는 별 다른 내색 없이 그냥 손 만 한번 흔들어 주고는 항상 가던 주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효는 점점 성문에서 멀어져 갔지만 몇몇 병사들은 그의 모습이 사람들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지 부동자세로 경례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성안으로 들어오던 사람들은 궁금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궁금증을 참지 못한 한 상인이 성 밖으로 나가는 다른 상인을 붙잡고 물었다.
“이보게. 누군데 이 병사들이 모두 다 저렇게 인사를 하는 건가?”
“아. 이 사람아 자네는 멀리 나갔다 와서 모르는가 보구만 그려. 내가 다 말해 줌세”
팔을 붙들린 상인은 귀찮아하는 표정도 짓지 않고 바로 입을 여는 것으로 보아 꽤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고 자랑으로 삼는 듯 했다. 그의 얼굴에는 저 장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데 대한 자부심과 즐거움이 떠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은근히 성안으로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도 궁금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는 상인의 입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분이 이곳에 온지는 고작 1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 근처에서 횡횡하던 수적들 있지 않은가. 그 뭐더라. 이름도 모르겠군. 하여간 장강수로연맹에 들지도 못한 수적들을 모조리 박살 내버려서 우리 같은 힘없는 중소상인들이 얼마나 편해 졌는지 아는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 정말 좋아 졌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것이 물론 좋은 것이긴 하지만 병사들이 저렇게 충성스러운 모습을 이끌어 낼만 한 일인가? 질문을 한 상인이 그렇게 생각을 하였고 그의 생각을 읽은 듯 다시금 입을 열었다.
“물론, 그 정도로 병사들이 좋아 할리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저 분이 이곳을 은근히 주름잡고 패악질을 일삼던 흑도방파 사야방을 단신으로 무너뜨렸고 그래 맞네. 후한이 두려워 아무도 건들지 않던 그 사야방을 말일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번에 한제국이 쳐들어 왔을 때 저분이 일기당천으로 성문을 지키며 병사들을 지휘해서 이 성을 지킬 수 있었지. 그래서 일반 병사에서 단번에 백인장까지 올라선 것 아닌가.”
“그리고 이 병사들은 그때 목숨을 구원 받은 병사들이고 말이지?”
“그렇다네. 자네도 눈치가 조금 있군.”
상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가던 길을 마저 떠났지만 자리를 지킨 체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서 병사들이 저랬구만.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 역시 그 상인의 말이 맞는지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병사들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대상이 된 장효는 투구를 벗어서 주루의 총관에게 맡기고는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꽤 고급스러운 주루였고 고관대작들이 자주 찾는 주루였기에 그 주루는 이름값을 할 정도로 깨끗하고 단아하게 내부를 꾸며놓고 있었다.
“오셨는가. 앉게”
장효가 들어간 2층에 위치한 주안실에는 미리 와 있던 현 천인장이 술잔을 따르는 기녀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지금 몇 시인데 벌써부터 술상이라는 말이냐. 아직 근무 시간일 텐데 말이야.’
장효는 경멸의 눈초리를 전혀 숨기지 않았고 기녀를 향해 나가라는 손짓을 하고 그 앞에 앉았다.
현상.
현 천인장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지만 별다른 말없이 기녀를 보내 주었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자네가 본국에서 어떤 지위였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내 부하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항상 하는 말이지만 그대 역시 자네가 본국에서 어떤 지위였는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군.”
장효는 그의 말을 그대로 맞받아치며 자신의 앞에 놓인 물 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저 새끼는 언제 봐도 재수가 없다. 생긴 것은 멀쩡하게 생겨 놓고서 하는 짓은 어찌나 짜증나는지 쥐새끼처럼 이리저리 어디 뜯어 먹을게 없나 찾아다니면서 사람들 은근히 등쳐먹고 자신을 이리저리 부려먹으려고만 하고 어떻게 저런 놈이 천인장까지 올라섰는지... 그리고 저런 놈을 이곳으로 보낸 한제국정보부도 이상하고....’
“내 지위라... 이보게 장효. 훗. 이것도 가짜 이름이겠지만 어쨌든. 내가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된지 알고 있나? 벌써 10년이 지났네. 나 역시 처음 이곳에 올 때는 자네처럼 패기 넘치고 애국심에 불타있었지. 큭큭”
그는 자기가 말하고도 자신의 말이 웃겼는지. 주안상에 놓여 있던 과일을 집어 먹으며 큭큭 거리며 웃었다.
‘10년이라... 오랜 동안 있기는 했군. 그럼 그렇게 오랜 동안 있었으니 변해야 한다는 거냐? 아님 변할 수도 있다는 거냐? 그것이 아니면 변해도 괜찮다는 것이냐?
나 역시 애국심 따위는 가지고 잊지 않아. 애국심? 저주를 퍼부어도 모자랄 판국에 무슨 놈의 애국심이냐 큭큭. 하지만 나를 방해하지는 마라.’
장효는 타오르는 귀화를 숨기지도 않은 채 끊어 읽듯이 현상. 현 천인장에게 말을 했다.
“흥. 네 녀석이 이곳에서 무엇을 하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 너의 애국심에 대해서도 나는 상관하지 않아. 중요한 건 내가 임무를 마치고 떠날 때 까지 가만히 있어 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지.”
장효는 그렇게 말하고는 의자에 깊숙이 누우며 현 천인장은 바라보지도 않으면서 천천히 말을이었다.
‘아무도 없군.’
혹시나 해서 주위의 기운을 느꼈던 장효는 이제야 조금 느긋하게 마음을 가지고 의자에 푹 가라앉듯 누웠다.
“그나저나 왜 보자고 했지? 보고는 다 했는데.”
“아. 드디어 독당의 비밀무기가 완성 되었다고 하더군. 독당의 위치는 알고 있겠지? 그곳에서 다른 대원들과 함께 목적물을 탈취한 후에 이곳에서 탈출 하도록 해. 이건 자세한 보고서. 지금 읽고 외우도록 해”
현 천인장은 자신이 들고 왔던 서류철 중에 하나를 꺼내 장효에게 던지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요리를 천천히 젓가락으로 집어 먹었다. 장효는 그가 던져준 서류를 빠르게 훑어 내려갔다.
‘흐음... 그런데 아직 대부분 생체실험은 거치지 않았군. 생체 실험에 대한 보고서 없이 바로 탈취하라는 건가?’
“아직 실험이 안 끝난 것으로 보이는데?”
“아. 독당의 이곳 연구소는 폐쇄 한다고 들었다. 생체실험은 다른 곳으로 넘긴다고 하더군. 그래서 부득이 하게 지금 밖에 기회가 없어.”
현 천인장은 장효가 그것을 물어 볼 줄 알았다는 듯이 장효가 말을 꺼내자마자 음식을 주워 먹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뭐 이곳에서 빨리 떠나면 떠날수록 좋기는 하지만.’
장효는 그의 말을 듣고 다시 서류철로 시선을 돌려 읽어 내려갔다. 그동안 있으면서 군사지도로 이곳의 지리를 읽혔기에 외우기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음. 정보부 대원 말고도 특수공작군이 이번 임무를 함께 한다고?’
용악은 다시금 현 천인장을 바라보았고 현 천인장은 이번에도 역시 물어 볼 줄 알았다는 듯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지 마자 대답했다.
“특수공작군은 나도 모르겠군. 해체된 부대인줄 알고 있었는데 그것이 아닌가 보더라군. 본국에서 직접 보내 온 것이어서 나도 잘 모르네.”
“이중 첩지는 아니겠지?”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째서?”
“공작군이 먼저 이곳에 도착해서 나에게 직접 건네준 것이니까. 황제의 인장과 함께.”
‘흐음... 뭐 인원이 많으면 편하기는 하겠지. 그리고 특수공작군이라면 그 실력은 믿어도 될 만 할 것이고... 음. 시행 일이 이제 5일 남았군. 슬슬 정리를 시작해야겠어. 뭐 그 동안 벌인 일도 별로 없었으니. 아. 사야방이 조금 걸리기는 하지만 뭐 다 죽여 놨으니 큰 탈은 없을 것이고. 그녀는...’
용악은 그렇게 하나하나 집어 나가다가 자신과 함께 있는 여자에게서 생각이 멈췄다.
‘자신과 사귀는 훗. 사귄다니 조금 우습군. 임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같이 생활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그녀는 흠.. 나중에 발목을 잡는 다면 그때 가서 그때 가서 생각하자.’
장효는 생각을 정리하고 보고서를 벽 한쪽에서 가만히 타고 있는 등잔에 보고서를 태웠다. 보고서가 다 타서 재로 변한 것을 확인하고서야 장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보지. 자네도 그 작전에 참가하는 것인가?”
“아니. 나는 이곳 고정첩자니 계속 있을 걸세.”
“그럼 나중에. 살아남기를”
“그대 역시.”
현 천인장은 장효가 보고서를 태우고 난 후 자신에게 말을 하고서 나가는 것을 술잔을 들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그의 눈빛은 보이지 않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쫒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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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6 - 흑영기병대 - 253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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