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장 무계
제국력 1345년. 중경. 무계
채쟁.
날카롭고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며 검 집에 고이 모셔두었던 검이 그 모습들 천천히 드러낸다.
새벽에 시작된 전투는 지금 저 강 한쪽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태양의 모습이 보일 때 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턱수염 덥수룩한 수적들과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서로에게 증오를 뿜어내며 서로를 노렸다.
그리고 지금!
기습이 시작된 지 벌써 6시간이 지난 지금!
자신의 주위에 있는 병사라곤 단 둘.
그리고 나와 병사들 주위에는 수적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장강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드디어 저 앞에 이번 작전의 목표물이 보인다.
요룡채주 강채!
장강수로연맹의 총채주인 곽한의 최측근 중 한명.
바로 이번 작전의 목표!
이미 이번작전이 그리고 내가 미끼 인 것은 알고 있다. 토사구팽의 신세가 될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너희들이 아무리 사지로 집어넣어도 나는 반드시 살아남는다!
“강! 채애애!!!”
자신에게 달려드는 수적들을 막아서며 길을 뚫고 있는 병사.
‘분명 호표기 아니면 감찰부 대원일 테지.’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도 없을 테니. 나는 병사들이 뚫어 놓은 길을 달려 나간다. 이미 관선들은 모두 파괴 되었다. 더 이상 아군은 없다. 원군도 없다.
공격을 받은 요룡채를 도우기 위해 달려온 다른 장강수로채의 수적들의 배가 포구를 가득 메우며 쏟아져 내리고 있지만 저들이 이곳 까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러니 강채! 너는 지금 네 손에 죽는다!
“강채애애!!!”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
수십만 번! 펼쳐온 검로가 펼쳐진다.
강한 진각과 함께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을 향해 쏘아지듯 칼집에서 수많은 수적들을 베어낸 검붉은 칼은 시뻘건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강채의 사슬낫을 향해 날아든다!
챙!
시간이 없다!
이만 죽어라!
강채는 이리저리 사슬과 낫을 돌려가며 강한 힘이 깃든 붉게 타오르는 칼을 막아 낸다. 여기저기 마음대로 뻗어난 수염 사이로 굳게 닫은 그의 입에서 서서히 시뻘건 피가 흘러나오는 것이 보인다.
이제 그만 죽어!
시간이 없단 말이다!
무시무시한 귀곡성을 뿜어내며 강채를 향해 날아가던 검붉은 두 자루의 칼은 기묘한 회전을 절대로 칼 은 물론 이와 검으로도 할 수 없는 회전을 이루며 강채의 두 눈을 향해 파고든다.
푸학!
처절한 비명소리가 그 단단해 보이던 강채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느껴진다. 칼이 강채의 피를 빨아 먹는 느낌이.’
강채를 죽이기 위해 도(刀)로는 되지도 않는 흑산포를 펼친 덕택에 자신의 오른쪽 팔뚝은 박살이 났다.
하지만!
절대로!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용악은 강채의 뇌를 뚫고 나간 칼을 뽑으며 길을 뚫어준 병사를 찾았다.
한명은 쓰러져 있었지만 다른 한명은 아직 쓰러지지 않고 있었다.
‘너도 대단하군. 그럼 이제 탈출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강채를 죽인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며 해적들의 이곳으로 오는 경로를 파악하고는 계획했던 탈출로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순간!
쉬아아앙.
자신의 뒤로 무언가 가 떨어지며 무시무시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젠장!!!
남은 한명의 병사는 수적들을 해치우고는 붉은 칼을 들고 있는 자에게 다가왔다.
“대장. 빨리 빠져나가쇼. 이미 포격은 시작 되었소. 이곳에 있다가는 개죽음 이오”
안다. 알아!
나도 안다고! 이 빌어먹을 놈들! 우리 군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도 포격을 감행한다는 말이냐! 아직 약속된 시간도 다 되지 않았는데!!
사방에서는 비가 내리듯 온 대지를 뒤덮으며 포탄이 떨어지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수적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대지는 신음을 흘리며 곳곳에서 연기를 뿜어내며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몸부림을 친다.
수적들도 포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배의 방향을 돌리고는 닻을 내리고는 포탄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포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모두 포화지역의 한복판에 떨어져 있는 장수와 병사와 수적들을 아무도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가시오. 대장. 쫓아오는 수적들은 내가 맡겠소.”
그는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얼굴에 쓰며 씁쓸하게 웃으며 말을 했다.
“한제국에 영광을 황제폐하께 천하를.”
‘이제 지긋 지긋 하다! 그 황제타령! 그 제국타령! 이제 정말 짜증이 난다고!’
붉은 칼을 지닌 사내는 뒤돌아서 수적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병사를 잡아채고는 그 병사의 얼굴을 도파로 내려 쳤다. 도파에 실린 힘은 장난이 아니어서 얼굴을 맞은 병사는 한방에 뒤로 나가 떨어졌다.
붉은 칼을 쥔 자는 그 나뒹구는 병사의 목덜미를 우악스러운 손길로 잡고 목을 조르듯 목을 붙잡고서 일으켜 세웠다.
“대체 뭐가 한제국이라는 것이고! 뭐가 황제폐하라는 것이냐!”
그는 푸르게 불타오르는 그의 눈으로 어리둥절해 하며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병사의 두 눈 두려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는 두 눈이 아닌 선택의 순간에 망설이는 두 눈을 뚫어지듯 쳐다보며 살기 가득한 목소리로 전장의 포성을 집어 삼키며 소리쳤다.
“너희 호표기들은 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무엇이 너희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냐! 황제가 너희들의 주인이란 말이냐! 그가 해준 것이 무엇인데 이러냔 말이다! 그 빌어먹을 황제는 너를 버렸다! 네가 그렇게 너의 모든 것처럼 말하는 한제국은 너를 버! 렸! 단! 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나! 너는 버려졌다고!”
사방에서 포탄이 떨어져 내리고 땅은 뒤집히며 폭포처럼 흙을 쏟아내며 뿌연 포탄 연기 가득한 전장 한 복판에서 그 둘은 가만히 이글이글 타오르는 서로의 눈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 것 이외에 지금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은 중요하지도 않다는 듯이...
“더 이상 황제는 너의 주인이 아니다! 너의 그 뿌리 깊은 노예근성도 이제 버려라! 잘 들어라! 너는 호표기도! 감찰부 대원도! 황제의 노예도 아니다! 이제부터는 너는 나의 것이다! 나의 허락 없이는! 죽지도! 살지도 못 할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장시간 호흡곤란의 상태에 있던 병사의 목을 풀어 주며 그 병사의 뒷덜미를 잡고서 탈출로를 향해 뛰어 갔고 그런 그들의 뒤로 누가 쏜 포탄인지 모를 포탄이 떨어지며 그 둘을 집어 삼켰다.
******
허헉.
사내는 침상에서 상체만 일으킨 체 손을 등 뒤로 돌려 자신의 어깨에 난 상처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내가 무언데 그들의 주인이 된단 말이냐. 내가 그럴 자격이 있던가? 내가 그들을 사지로 몰아갈 자격이 있던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렇게 그들에 대해서 흥분을 했던 것일까...’
사내는 들썩이는 그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가라앉히고는 침상 위에 있던 다리를 땅에 대고 침상에 걸터앉아 두 손으로 땀에 젖은 그의 얼굴을 감쌌다. 굳은살과 상처가 가득 배긴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얼굴에 난 상처가 만져졌다.
‘아마도... 그 인형 같던 모습이 싫어서 그랬겠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다른 이의 의지로 움직이는 그 실 달린 인형 같던 모습이... 나와 닮은꼴이던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말도 못할 고통이었으니까. 그 들이 한명씩 사라져 갈 때 마다 나의 무언가도 하나씩 사라져 가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크크크...”
“괜찮아요?”
등 뒤에서 가는 여인의 목소리와 함께 작고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이 그를 쓰다듬는다.
따스하다. 사내는 조금 안정이 됐는지 자신을 어루만지던 손을 한번 잡았다가 이불 속에 다시 집어넣어 주었다.
“괜찮아. 나가 볼게. 좀 더 자.”
사내는 자신을 바라보던 여인의 부드럽고 고운 뺨을 한 차례 쓰다듬으며 방안에 있던 수건을 목에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는 서서히 푸르른 빛을 뿜어내며 다가오는 새벽의 공기를 마시며 우물이 있는 곳으로 다가 갔다.
이곳 중경시내는 수로시설이 잘 되어 있어 대부분 사람들은 수로시설을 이용하지만 그가 지내고 있는 이곳은 오래전에 지어진 주택가여서 수로시설 대신 집집마다 조그만 그야말로 조그마한 우물이 있었다.
사내는 우물의 입구 보다 약간 작은 커다란 물통으로 물을 길어서 자신의 몸에 뿌렸다.
옷은 어느새 다 벗었는지. 아니 입고 있지도 않았던가. 어쨌든 사내는 차가운 물방울이 자신의 몸을 때리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침체되어 있던 정신을 깨웠다.
몇 번이나 그렇게 물을 더 뒤집어썼을까? 사내는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으며 대충 하의만 입고서 좁게 나있는 수로를 따라 흘러가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적당하게 길게 자란 검은 머리
오른쪽 뺨을 가로지르는 십자 모양의 흉터
몸 여기저기, 가슴과 옆구리, 팔, 어깨, 탄탄한 근육들로 이루어진 그의 몸을 마치 문신처럼 기묘한 모양을 이루어 내는 수많은 상처들.
사내는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물에 비친 자신 눈에서 푸르른 귀화가 안구 깊숙한 곳에서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알 수 없는 증오의 불꽃도.
새벽의 푸르른 빛을 맞으며 우물가 옆에 가만히 서 있는 그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비현실적이었다.
수건을 목에 걸은 체 가만히 서있는 그의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었지만 그의 모습은 필요한 무언가가 빠져 있고 대신에 필요 없는 무언가가 더해져 있는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 모습을 문가에 서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한 여인도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새벽의 차가운 침묵을 깨우지 않고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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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 - 흑영기병대 - 25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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