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9화 (49/107)

49장 - 이공

검게 타오르는 대지!

그 대지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검붉은 화마!

장마철 빗줄기처럼 사방에서 떨어지는 돌덩이들!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덮쳐오던 성벽. 아니 성벽 이였던 돌덩이들!

그리고 지금!

‘아.. 나는 살아난 것인가. 또 다시 한사람의 생명을 거두어 가며 나는 살아난 것인가....’

용악은 조그마한 창문을 넘어 들어오는 자신의 얼굴을 따갑게 만든 햇살에 눈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큭. 결국 또 죽고 말았군. 죽고 말았어. 황령 형. 당신은 대체 왜 그런 것입니까. 대체 왜. 정녕 궁금합니다.’

용악은 자신이 누워있던 참상에 걸터앉은 채로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고는 소리 없이 오열하며 조소했다.

“깨어나셨습니까?”

‘누구. 처음 듣는 목소리인데.’

용악은 고개를 들어 문은 열어 놓고 들어오지 않은 채 밖에서 서있는 검은 인영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장군님께서 찾으시고 계십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장군이라고? 양교춘장군을 말하는 건가. 그 사람이 왜 열병식 할 때 빼고는 한 번도 본적도 없는데. 그것도 멀리서 봤을 뿐. 그 사람이 왜 나를...’

용악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풀고는 병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서서 주위를 둘러보니 용악이 있던 곳은 의약당이었다. 밖은 어수선했다. 사방에서 군의들이 병사들을 치료하고 있었고 피 묻은 옷가지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아마도 그것들을 치우지 못할 정도로 바빴던 것일 테다.

‘그렇다면 그만큼 부상자가 많다는 의미이고. 누가 나를 이곳 계동기지로 다시 옮겼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다른 부상당한 병사들과 함께 옮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나는 혼자서 병실에 누워있던 것이지. 장수도 아닌데?’

용악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병사를 따라서 양교춘장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마도 저곳 상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양교춘 장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옆은 낭인대장이고 저 사람은 이공이라고 했던가. 이련의 아버지. 그리고 그 반대쪽에 있는 사람은 보아하니 황도의 대장군부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군.’

용악은 장군실로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주위를 살펴 누가 누가 있는지를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302백인대. 용악. 도착했습니다.”

“아. 자네가 용악이군. 거기 앞에 앉게.”

양교춘 옆에 있던 황도에서 내려온 대장군부 장군은 양교춘이 말하기도 전에 말을 했다.

양교춘을 무시하는 처사여서 양교춘의 부관은 눈을 부라렸지만 오히려 양교춘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그렇게 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용악. 그러니깐 반역자 용천대장군의 아들이라는 말이지?”

‘반역자라고!’

용악은 눈에서 푸른 귀화를 태우며 방금 그 말을 한 장군을 노려보았다. 낮이어서 잘 몰랐겠지만 밤이었다면 용악의 눈에서 타오르는 푸른 귀화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용악은 이미 인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 버렸으니 말이다. 그 눈빛을 받은 장군은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마도 자신을 도울 사람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었다.

‘반역자라고! 아버지가! 너희 같은 쓰레기들에게 감히 그런 말을 들을 분이 아니야!’

용악은 부르르 떨고 있는 너무 세게 쉬어서 흰색으로 변해버린 손을 탁자 밑으로 숨기며 호흡을 골랐다.

‘흥분해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아. 언젠가 너희들 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너희들 모두 쓸어버리리라.’

“흐음... 자네를 데리고 오라는 조비대장군님의 명이 있었다. 물론 천인장으로 승진시켜서 말이야.”

‘조비라고... 그 빌어먹을 조창의 아버지! 아버지를 반역자로 만든 자! 그 사람이 나를 데리고 오라고 했다고 왜?’

용악이 그런 의문과 분노가 담긴 눈으로 그 장군을 다시 바라보자 그는 서둘러 말을 꺼냈다.

“그 분께서 너의 능력을 높이 사 자신의 휘하에 두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이번 전투에서 너의 공이 컸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 천인장으로 승진시키더라도 불만을 없을 테고 말이다. 내일 황도로 떠날 것이니 준비를 하도록.”

그는 말을 마치고는 그의 부관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용악을 데리고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그리고 용악이 부관을 따라 밖으로 나가자 장군실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었다.

소름끼치는 눈빛이다.

적지 않은 시간을 전쟁터에서 보낸 대장군부의 장군이 위압을 느낄 정도로.

황도에서 내려온 대장군부 장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의 앞에 있는 낭인들과 양교춘 장군과 함께 회의를 다시금 시작했다.

장군실에서 나온 용악은 자신이 그 동안 생활했던 그 바위 근처의 집으로 가 자신의 소지품을 정리 하고는 항상 일출을 볼 때까지 수련을 하던 바위 위로 올라갔다.

파도는 여전했다.

여전히 바위에 부딪치고는 물방울을 뿜어내며 사그라졌다.

흥.

용악는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치고는 칼을 뽑아 태양을 겨누었다.

‘황령형. 형도 역시 그냥 그렇게 갔군요. 제가 뭘 어쩌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네? 형도 역시 형이 저를 구해주면 제가 형에게 감사 할 것 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까? 남을 죽여 가며 자신이 살아남는 기분이 어떠한지 아십니까? 그 비참한 기분을. 그 무력한 기분을. 그 미쳐버릴 것 같은 분노를 말입니다.’

용악은 햇살의 눈부심을 느끼지도 못한 체 가만히 태양을 향해 화살을 쏘듯이 칼을 들고 서서 황령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황령과 함께 했던 시간들을 회상하던 용악은 다시금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짐을 챙기고는 낭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 그때 정신이 없었기는 했지만 귀야도 이공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아이 이름이 이련이라고 했고. 그럼 자신이 아는 이련이 이공의 아들 이련이 맞을 것이다.’

용악은 낭인대로 걸음을 옮겨 이공을 찾았다. 바로 떠나지는 않을 테니 아까 장군실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나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낭인대로 가서 이공이 머무는 거처를 물어 알아내고는 그곳으로 향했다. 낭인들이 말해 준 곳에는 이공 대신 몇몇의 낭인들이 서로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공의 제자들로 보였다.

예전에 이련의 했던 말에 따르면 제자가 꽤 있다고 했으니.

용악이 온 것을 느낀 낭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고 용악은 가만히 서서 마찬가지로 그 낭인들을 바라보았다. 낭인들 중 꽤 젊어 보이는 낭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고는 용악에게 다가오며 말을 했다.

“처음 보는군. 누구지? 이곳에 올만한 사람은 얼마 없는데?”

강하군.

이자 강하다.

‘너도 한번 붙어보고 싶은 거냐?’

용악은 자신의 손에서 울음을 내는 검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말을 했다.

“낭인 사천왕 중 한명 귀야도 이공 대협을 뵈러 왔습니다. 안에 계신지요.”

“아버지는 안 계시는데 무슨 일이지?”

‘아버지라고... 그럼 이자가 이련이 말한 이련의 형인가? 그럼 이 사람에게 말해도 되겠지. 굳이 이공에게 말할 필요까지는 없으니... 뭐? 이공하고도 한번 붙어봐야 하지 않냐고?’

칼은 웅웅 울어대며 용악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저 낭인들과 붙어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데 그들의 스승과 붙어보자고 말을 하는 것이냐?’

웅웅웅웅......

그래도 붙어 보아야 한다고 칼을 말하는 듯 했지만 용악은 무시하고는 그 자에게 자리를 청했고 자신이 이련과 함께 생활 했던 일들과 이련의 납골이 있는 곳. 그리고 이련이 그렸던 그림이 있던 곳을 말해 주었다.

무슨 일 인가했던 낭인들-서로의 나이차가 있기는 했지만 이공의 제자들인 듯, 그들 역시 용악의 말을 듣고는 이련의 형만큼이나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흘렸다.

“그 아이가.. 그 아이가. 그냥 그렇게...”

“내 동생이 그런 쓰레기 같은 것들에게...”

“도련님...”

다른 낭인들 역시 탄식을 하며 이련의 지난날의 모습을 되새겼고 이련의 형은 분노가 실체화 되서 입에서 흘러나오는 듯이 이를 갈며 몸을 떨었다. 그런 그의 어깨에 조용히 손을 올리며 한 낭인이 말을 했고 이련의 형은 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마치 답을 구하는 어린제자가 스승을 바라보듯이.

그 낭인은 이련의 형의 그 눈빛을 담담히 받아내었고 결국 이련의 형의 눈에서는 투명한 물이 흘러 내렸다.

용악은 자신이 끼어들 자리가 아닌 것 같아 그들이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대충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이 진정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얼마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칼과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었을까. 감정이 조금은 정리된 이련의 형이 용악에게 다가왔다.

“고맙군... 기왕이면 아버지가 오실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겠나? 아무래도 아버지가 직접 들으셔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붉어진 눈시울 안의 눈빛은 용악이 꼭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었고 용악은 어차피 할일도 없었기에 그렇겠다고 말을 하고는 그들이 내준 방으로 가 잠을 청했다. 누군가의 손길을 느끼며 일어난 용악은 씻고 난 후 이공에게 이련의 형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반복했고 이련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야기는 이미 다 끝났지만 방안에 있던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방 한 가운데의 기름등만 가만히 제 몸을 태우고 있었다.

“고맙군. 미안하지만 나가주겠나?”

이공은 끈적끈적한 침묵을 천천히 걷어내며 조용히 그에게 말을 했고 부탁과 명령이 뒤섞인 말투여서 용악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삐걱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이련의 형이 밖으로 나와 용악에게 다가 왔다.

“고맙군. 뭐라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이름은 이영.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부탁해도 좋아. 아버지도 허락 하셨고. 우리 집은 황서에 있으니...”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마도 이련과 함께 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랬던 것이리라.

“이렇게 그냥 보내서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너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지금 힘들거든.”

‘그런 것 인가? 그렇게 이련을 그리워 하고 아꼈던 것인가?’

용악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앉아 있던 돌덩이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내 역할은 여기서 끝이다. 나머지는 저들이 알아서 하겠지. 이련.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 그래도 너의 유언은 지킬 수 있겠구나.’

용악은 가만히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바라보고는 이영에게 말을 하고 그들이 머물던 곳에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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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 - 흑영기병대 - 25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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