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장. 내성-비사
“오셨는가.......”
해적의 수괴로 보이는 이는 거대한 호피가 깔린 태사의에 앉아 혼자서 술잔에 술을 따르며 대청 안으로 들어온 장수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오랜 뱃사람처럼 보이는 그 해적의 수괴는 권태로운 표정을 지으며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흐흐흐. 그래도 많이들 와주었군. 애 썼소 부하들을 정리하느냐 큭큭큭큭.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소? 이 술만 다 먹을 때까지 말이오 큭큭큭”
해적두목은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한마디 할 때마다 술을 마시며 괴소를 흘렸지만 그의 얼굴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입에 비해서 너무 슬퍼 보였다.
“아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할까? 내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벌써 15년이 넘었지.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 군선들의 눈치 살펴야지 대상들의 눈치 살펴야지 빌어먹을 장강 놈들 눈치 살펴야지. 하지만 나는 버티고 버텨서 해적단을 이루어 냈지. 아 잠깐. 기다려 내말을 들어 주라고.”
천인장 중 한명이 칼을 뽑고 달려들려 하자 해적두목은 말을 끊으며 잠시 기다리라고 말을 하였고 그 순간 해적 두목이 있던 바닥과 천장에서 해적들이 뛰쳐나오며 두목을 호위했다.
“아. 내 호위들이니 걱정하지 마시게. 공격하지는 않을 거야. 아까 하던 말을 계속하겠네. 하지만 그렇게 잘 자라던 나의 해적단. 아니 우리해적단은 변질되기 시작했어. 젠국의 호족이 우리에게 몸을 의탁해 왔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화포는 매우 탐이 났었기에 우리로써는 거부 할 수 없었지.
그리고는 얼마 후 곤제국에 있던 화포병들 몇 명을 포로로 잡을 수 있었지. 그래서 우리들이 더욱 강해 질수 있었던 것이고.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동한국에서 벽력당의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벽령당의 인물이 우리에게 투신을 했고 서한국의 독당에서도 마찬가지로 세력다툼에서 밀려난 인물이 우리에게 투신을 했지. 그게 벌써 8년 전 일이야.
처음에는 물론 좋았네.
우리 해적들의 지배는 확고했고 그들의 신무기들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으니 말일세. 하지만 그것들 모두 거짓된 것이고 계획된 것이었어”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목이 탄지 술을 병 채로 들고 마셨다. 덤벼들려고 하던 천인장과 낭인들도 그의 이야기가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는지 아무 말 하지 않고 해적 두목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저 빌어먹을 젠국에서 도망쳐 온 호족은 사실 도망쳐 온 것이 아니라 영주의 명을 받고 이곳을 접수하려다가 그것이 힘들자 이용하기 위해서 이곳에 머물렀던 것이고 서한국에서 온 독당의 인물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독을 실험하기 위해서 또 이곳을 집어 삼키기 위해서 파견된 요원들이었지. 벽력당도 마찬가지 동한국에서 파견된 인물 들이였지.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이룩한 이곳이 너희들의 나라의 장난감이 될 수 있다는 말이야!”
그는 그렇게 소리치고는 엄청난 소리가 나게 태사의의 손잡이를 손바닥으로 내려 쳤고 손잡이는 물론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박살이 나 버렸다.
그와 동시에 호위병들에게서도 짙은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분노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을 노리개 삼은 나라를 향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아직 가장 건재한 한제국과 곤제국이 손을 뻗치지 않았기에 그들을 정화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고 하나씩 하나씩 그들을 사지로 내 몰았지.
하지만 그 와중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한제국 역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들은 다른 나라의 실험이 끝나면 그 실험작들을 모조리 가져갈 심산으로 우리들을 가만히 놔둔 것 이였어. 그대들은 어째서 지난 4년 동안 황도에서 우리를 치라는 명령이 내려오지 않은 것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나? 다 그런 이유였지”
그는 다시금 술을 털어 마시고는 다 마셔버린 술병을 옆으로 던져버리고는 땅에 있던 새로운 술병을 열고는 술을 털어 마셨다.
용악은 아까 전 해적호위병들이 바닥을 뚫고 나올 때 무슨 일인가 해서 들어와 보았다가 해적두목이 하는 말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정말 미칠 것 같았다. 우리는 마치 거미줄에 걸린 나비와도 같은 상황 이였지. 어디로도 빠져 나갈 구멍이 없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말이야.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곤제국을 이용하기로. 첫 번째는 성공하는 듯 했지만 실패 했지. 그 빌어먹을 하얀 악마들은 그저 이곳의 해도를 만들고는 떠나 버렸거든. 그들을 이용해서 다른 세력들을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말이야. 어쨌든 그래서 다시금 곤제국의 상선을 납치 했고 이번에는 제대로 됐어.
새로 생긴 제4함대라고는 하지만 곤제국의 왕자들 모두 평범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나도 들었으니깐 말이야. 그래서 그들을 믿었고 그들은 충분히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다. 섬 서쪽으로 간 해적들 모두 죽는 것을 확인 했으니 말이야.”
해적두목은 다시금 술을 들어 마셨다. 마셨다기보다는 입에 들이 부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입안에 안 들어간 술이 더 많으니 말이다.
술을 마시고 다시금 이야기를 하려던 찰라 낭인들 중 한명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했다.
젊어 보였지만 그 사람이 내뿜는 기도로 보아 실제 나이는 그보다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실력도 뛰어날 것이고 말이다.
“잘 들었다. 신세타령은 이제 그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강소성 여동근처에 큰 나무가 있는 마을을 습격한 적이 있나? 대략 7년 정도 됐을 것이다. 잘 생각해라. 네 목숨이 달린 일이다.”
그는 마치 자신이 해적두목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것처럼 단호하게 말하고는 해적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갈라버리겠다. 라는 뜻을 품고 있었다.
“글쎄? 큰 나무가 있는 마을이 어디 하나인가? 그리고 그이야기를 갑자기 왜 하는 것이지? 여동 근처는 한번 씩 다 습격을 받았을 텐데? 부하들이 한 일까지 내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는 고개를 좌우로 이리저리 흔들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는 그 낭인을 보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말을 했다.
“한 아이가 있었다. 검이 싫다고 그림이 좋다고 붓을 들은 아이였지. 그리고는 바다를 그려보고 싶다고 바닷가로 떠났다. 그게 벌써 7년 전 일이다.
그 아이는 두 번의 유산 끝에 나은 아이였다. 그 아이 어미의 사랑은 대단했지 그리고 그 어미는 아이가 실종 됐다는 사실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 낭인은 가만히 말을 마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흥분한 나머지 호흡이 너무 거칠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어째서? 그렇게 죽는 이들이 어디 한 둘이 다는 말이냐! 세상에 그런 사연쯤 하나 가지고 있는 자 들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해적들 중 그런 사연쯤 하나 없는 자들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그런데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는 것이냐!”
해적두목은 오히려 자신이 더 흥분한 채로 태사의를 손으로 내려치며 일어서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래. 너의 말이 맞다. 그런 사연쯤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느냐. 하지만 그들이 가만히 있는 이유는 힘이 없어서지만 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먼저 간 해적들이 억울할 테니 너도 이제 죽어야겠다.”
그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해적두목을 향해 달려갔다. 뭐가 어떻게 되었는지 천인장들 까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낭인이 달려들었고 호위병들은 두목을 지키기 위해 달려들었고 그리고는 호위병들이 모조리 두 동강 난 체로 갈라졌고 해적 두목 역시 심장에 검이 꽂혀 있는 체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뚫은 검을 바라보았다가 다시금 그 낭인을 바라보았다.
“네....네..녀석 누구냐.. 누군데 이런 실력을.....나를 이렇게 한 순간에. 어떻게 이룩한 이 자리인데! 우리 해적들을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 나인데!”
그는 자신을 꿰뚫은 검을 진정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천천히 신음을 흘리듯 말을 이었다. 그 낭인은 천천히 그 해적두목의 몸에 박힌 검을 뽑으며 말을 했다.
“그 아이 이름은 이련. 나는 그 아이의 몹쓸 아비. 귀야도 이공이다.”
검은 완전히 빠져 나왔고 해적두목은 힘이 빠져버렸는지 태사의에 다시 주저앉았다. 심장을 꿰뚫었지만 해적두목도 꽤나 강했는지 쉽게 숨을 놓지는 않았다. 해적두목은 이승에서의 마지막 힘을 내어 귀야도라 불린 낭인의 옷을 붙잡고 말을 하다가 결국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큭큭큭 그래도 영광이군. 낭인 4천왕 중에 한명에게 죽어서 말이야. 하지만 너희들 모두 죽는다. 이제 시간이 다 되었거든 큭큭큭”
해적두목을 해치운 귀야도 이공은 가만히 서서 자신의 검만 바라보고 서 있었고 다른 천인장과 낭인들 역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지 어안이 벙벙하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겉으로 먹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강서린는 다른 장수들에게 소리치고는 이공에게 달려갔다.
‘분명 시간이 다 됐다고 했다.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역시 화약으로 이 동해도성 아니면 동해도를 날려버린다는 의미 렸다!’
“모두 빨리 성을 빠져나간다! 빨리 움직여!”
강서린은 이공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를 낚아채려 했다.
하지만 이공이 누군가.
낭인 4천왕 중에 한명이다.
그는 간단하게 강서린의 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짝 피했지만 강서린의 손은 집요하게 그의 팔에 따라 붙어 그의 팔목을 붙잡았다. 이공은 약간 놀란 표정을 강서린에게 지었고 강서린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빙긋 웃은 체 그의 손을 잡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용악은 그런 행동을 하는 동안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고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노리개였다니!'
'내가 그저 장기판의 졸과 같은 존재였다니!'
‘불쌍한 이련! 곽철 형이! 그 무사들은! 강백호 아저씨는! 모두 그냥 재수 없게 장기판에 끼어들어 말이 되어버린 존재란 말인가! 어째서!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한 자들에 의해서 그들의 운명과 나의 운명과 그들의 생명과 나의 생명과 이 수많은 해적들과 병사들의 생명이 사그라져 버린 것 인가! 어째서! 너희들이 그렇게 대단하다는 것이냐!’
-킥킥킥 그게 너의 운명이지
-피의 고통은 너의 운명
-사그라져 가는 영혼의 아픔은 너의 운명
용악은 대상 없는 분노와 망령들에 속삭임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정신은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령은 다른 장수들이 대청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다른 병사들에게 저들을 따라가라 이른 뒤 용악이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나오지 않자 대청 안으로 들어갔다.
용악은 아까와 같이 또 다시 심마에 빠졌는지 코와 눈과 귀와 입에서 피를 흘리며 힘겹게 서 있었다.
‘이 녀석아. 너 또 왜 이러는 것이냐! 응!?’
황령은 하는 수 없이 용악을 등에 업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용악을 업고 달리는 것은 용악에게 충격을 줄 수 도 있지만 그래도 서두러 빠져나가야 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그는 강서린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오래전 그들을 이끌던 대장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의 능력도 알고 있다.
그가 위험하다고 판단했으면 위험한 것이다.
황령은 좀 더 빨리 성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내성에 있던 병사들도 다 같이 밖으로 달려 나가고 있었다. 외성은 이미 성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여서 병사들은 다들 그냥 성벽을 타 넘으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외성에 있던 병사들의 반절쯤 밖으로 나갔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내성이 폭발했고 내성의 돌무더기들이 하늘에서 마치 우박처럼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섬에 가해진 충격으로 인해 대충 남아 있던 외성마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병사들의 울부짖는 소리
장수들의 고함소리
여기저기서 화탄이 터지는 소리가 용악의 귓가를 강렬하게 때렸다.
‘아! 젠장. 또 정신을 잃었군. 여기는 어디지! 아까 그 대청은 아니다! 그럼 성 밖인가?’
주위를 살피며 고개를 돌리다 용악은 누군가 자신 위에서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황령형? 형이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온 것인가요? 이곳은 대체? 왜 이런 지옥도가?’
용악은 자신에게 쓰러져 있는 황령의 얼굴을 만지며 황령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으으.....”
“형! 형!”
용악은 황령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일으키다가 황령의 신음소리를 듣고 일으키는 것을 그만두고 형의 빰을 세차게 때렸다.
불길했다.
뭔가 불길했다.
불길한 기분이었다.
곽철을 보내던 그때처럼
“형! 정신을 잃으면 안 돼! 형! 일어나!”
“케엑... 살았구나. 쿨럭.. 쿨럭. 괜찮아. 너만 살아 있으면 된다. 너만...”
‘오!! 젠장. 형! 정신 차려 제발 형!’
황령은 용악의 앞가슴에 피를 토하며 갑옷 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려고 했다.
‘왜? 뭐 하는 거야 형? 응? 갑옷 속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용악은 황령 대신에 손을 집어넣어 꺼내 주려 했지만 황령은 가만히 용악의 손을 밀쳐내고 힘겹게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 젠장... 젠장! 형!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아직 죽지 않았어!’
용악은 황령이 검은 가면을 꺼내어 얼굴에 쓰는 것을 보며 핏기가 가신 채로 소리 없이 소리쳤다.
‘젠장. 빌어먹을 표범가면! 빌어먹을 호표기!’
“형! 형! 빌어먹을 호표기! 호표기! 꼭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응! 살 수 있다고! 죽어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용악의 눈에서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 나왔다.
‘이제 그만. 더 이상 누군가 죽는 것은 싫다고. 제발 이제 그만! 죽지 말아줘!’
황령은 힘겹게 가면을 쓰고 천천히 음미하듯이 용악의 얼굴과 오른쪽 뺨에 난 상처를 쓰다듬었다. 가면안의 형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웃는 모습인 듯 했다.
‘제발.. 이렇게 죽지마. 응? 나도 뭔가 형에게 보답을 할 수 있게 해죠. 제발....’
하지만 황령은 용악의 바람과는 달리 용악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엎드린 채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며 손을 뻗으며 힘겹게 말을 하고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한제국에 영광을... 황제폐하께 천하를...”
“아!!!!!!!!!
아아아!!!!!!!!!!!!!!!!!!!!”
이미 하반신이 날아가 버려 상반신 밖에 남아 있지 않은 황령의 시체를 부여안고 오열하는 용악의 뒤로 끝내 폭발에 견디지 못하던 외성의 한 귀퉁이의 성벽이 굉음을 내며 용악을 덮치며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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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 - 흑영기병대 - 2507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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