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장
빌어먹을 해적들은 모조리 여기에 숨어 있었던 것처럼 화포 공격이 끝나고 낭인대와 백인대들이 들어서자마자 덤벼들기 시작했다. 화포전은 아예 가망성이 없으니 포기 하고 모조리 숨겨 놓았다가 풀어준 모습이었다. 미친놈들이 마약이라도 했는지 모두 눈은 벌게져서 팔이 잘라져도 고통도 모른 체 덤벼들었다.
‘이 놈들 마약밀매에 까지 손을 뻗었나.’
용악은 자신의 칼에 맞고 배가 갈라져 내장이 흘러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피를 튀기며 덤비는 해적들의 목을 갈라버리고는 주위를 살폈다.
완전 지옥이 따로 없었다.
궁수대와 석궁대 및 쇠뇌대가 성벽 위로 올라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내성의 입구를 향해 십자포화를 하였지만 워낙에 해적들의 수가 많은지라 도저히 감당이 안 될 지경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난 낭인대와 백인대장의 명령에 따라 진을 펼쳐가며 해적들을 천천히 몰아붙이고 있는 백인대는 마약으로 이성을 잃은 해적들을 상대로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워 전장의 흐름을 서서히 백인대 쪽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용악! 이쪽으로 가까이 붙어! 너무 튀어 나가지마!”
황령은 또 다시 앞으로 진을 무시하고 튀어 나가려는 용악에게 소리를 치며 자신에게 달려들던 해적을 타 넘으며 검으로 목뒤를 갈라버리고는 다른 백인대장에게 달려갔다.
“303! 전위! 길을 뚫자! 흐름은 이제 이쪽으로 돌아 섰다. 지금 몰아 붙여서 낭인대장이 있는 곳까지 가자!”
303백인대장인 전위는 황령의 말을 들었는지 거대한 전투도끼를 휘두르며 십인장들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는 황령이 있는 302백인대옆으로 바짝 붙었다. 해적인줄 알고 칼을 휘두르려던 백인대원들은 서로 쌍욕을 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이. 저 꼬마 끝내주는데?”
“시끄러!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일단 304 까지 부른 다음에 단숨에 돌파 하자! 진형은 교기진!(鮫鰭陣)!”
상어지느러미가 해수면을 가르듯이 선두에 황령과 전위가 서고 그 옆으로 십인장들이 뒤쪽으로 늘어서면서 해적들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봐봐! 저 꼬마 녀석 앞에서 한칼을 버티는 해적이 없잖아! 오히려 저 녀석이 선두 같은데?”
전위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해적의 칼을 살짝 비켜내고는 계속 달려 나가며 황령에게 소리쳤다.
진의 전위(前位)는 굳이 해적들을 상대 할 필요는 없었다. 교기진 선두의 임무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적의 진형을 가르는 것! 적은 굳이 죽일 필요는 없었다. 그가 흘려 놓기만 하면 뒤따라오는 병사들이 알아서 상대하고 있었다.
“미친! 그렇게 조심하라고 했는데도 또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진형은 유지하고 있잖아. 비록 앞을 막는 것은 다 때려 부수고 있지만 말이야!”
“몰라! 젠장 왜 이렇게 많은 거냐!”
황령은 전위에게 짜증을 내며 대답을 하고는 계속 나아갔다.
말 그대로 상어지느러미가 해수면을 가르듯이 검은색 인(人)의 바다를 헤치고 나간 두 백인대가 304백인대가 해적들과 싸우는 곳까지 돌파를 하자 304백인대장은 서황도 바로 계획을 알아차리고는 303옆으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서황은 전위의 옆에 서서 자신의 앞을 막고 있는 해적의 옆구리를 발로 차서 밀어내고는 말을 걸었다.
손까지 흔들면서.
“어이! 잘 지냈나? 오늘은 좀 바쁜가 보군?”
“미친놈! 이 상황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냐!”
황령이 전위 대신 짜증 섞인 거친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었다.
‘힘들어 죽겠는데 정말 더 힘 빠지게 만드는 놈들이라니까’
“야야! 저 꼬마 봐라 대단하지? 응?”
전위가 황령에게서 약 6미르정도 떨어진 곳에서 2자루의 칼을 휘두르고 있던 병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오! 저게 그 유명한 귀신장수? 난 한 번도 못 봤거든! 끝내주는 쌍도술이군! 그나저나 저 칼 멋지군!”
“큭큭 저 칼 노렸다가는 큰일 난다. 저번에 어떤 병사가 한번 손댔다가 혼자서 칼에 목을 대고 있었다고!”
“오! 더욱더 갖고 싶어지는 걸!”
“야! 이! 미친놈들아 조용히 좀 해! 용악! 어디 가는 거냐! 빨리 안와!”
3명의 백인대장들은 그렇게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면서도 진형을 무너뜨리지 않은 체 낭인대장이 있는 곳까지 뚫고 지나갔다.
용악은 지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너무나 많은 소리가 들려서 어떤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 많은 전투를 해왔지만 이번만큼 대규모 전투를 해본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지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방에서 십인대장들이 명령을 내리는 소리
미친 해적들이 내지르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
망령들이 자신에게 속삭이는 소리
전투를 시작할 때쯤에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기에 망령들이 제대로 달라붙기 시작했다.
자신의 칼이 자신에게 소리치는 도명(刀鳴)!
이제 막 죽어버린 해적들과 병사들의 원혼까지 달라붙어 몸을 탐하며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죽이는 거다! 피의 굴레는 너의 숙명!
-앞을 막는 자는 모조리 죽여!
망령들은 용악에게 달라붙어 속삭이고
-피를 원 한다. 나는 피를 원 한다
두 무사의 도는 울어대며 용악에게 말을 걸었다.
-안돼! 죽기 싫어!
-죽어라! 이 빌어먹을 해적 놈들!
-너희들 때문에 죽은 자들이 한둘이냐! 죽어라!
-인생은 짧고 굵게 사는 법이다 큭하하 덤벼라!
이제 막 식어가기 시작한 해적과 병사들의 시체에 있던 혼의 잔재들도 아무것도 모른 체 망령에 이끌려 용악에게 달라붙어 그 외침의 대상을 정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 댔다.
‘아아아아아! 조용히 해! 조용히! 시끄럽게 하는 것들은 모조리 베어 버리겠다!’
아악!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사방에서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빨려들어 오는 느낌이다.
시체에 남아 있던 혼의 잔재들은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허공을 부유하면서 병사들에게 달라붙고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느껴진다.
그리고 용악 자신에게 가장 많이 달라붙어 소리치는 것이 느껴진다.
아주 오래전 오래전에 불귀도에서의 그 기억이 스멀스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아팠지. 하지만 지금은 참을 수 있어! 절대 이런 형체도 없는 것들에게 굴하지 않아!’
용악의 코에서는 혈관이 터져 피가 흘러나오고 귀에서도 조금씩 피가 흘러 나왔다.
눈은 마치 해적들처럼 마약을 한 것처럼 충혈 되었으나 그와 비교하지 못할 정도로 붉어졌고 그 붉은 눈 안쪽에서는 시뻘건 귀화(鬼火)가 타오르고 있었다.
고통을 참기 위해 굳게 닫은 입은 부들부들 떨면서 선혈이 조금씩 흘러 나왔다. 마치 주화입마의 상태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지만 용악은 끊임없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해적을 베어 나갔다.
아니 해적인지 아군인지 모르겠다.
용악의 눈앞에 이제는 망령들의 모습이 서서히 실체화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게 용악의 상상속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형체를 가지고 나타나는 건지 알순 없었다.
'모조리 베어버리면 그만!'
시커멓게 뚫린 눈구덩이에는 무언가가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고 삭아 형체도 알 수 없는 이빨이 달린 입이라 불렸던 구멍에서는 허옇고 검은 연기가 구더기가 움직이듯이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몸뚱이는 어디에 두고 왔는지 보이는 것은 눈과 입에서 그리고 입에서 흘러나온 연기가 마치 도깨비불 마냥 긴 잔상을 남기며 허공을 떠돌고 있었다.
‘그래도 지옥까지 오지는 않았구나!’
용악은 예전에 경험했던 지옥의 모습을 떠올리며 비릿하게 웃었다.
‘모조리 죽여 버리겠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빌어먹을 너희들을 말이다!’
용악은 칼을 고쳐 쥐고는 망령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죽여 버리겠다!
그동안 나를 괴롭혀 왔던 너희들을 모두!
-죽여! 죽여라! 죽이라고!
-킥킥 꺄아아아아아!!
-아악! 빌어먹을 녀석! 너는 왜 저 녀석 편을 드는 것이냐!
‘킥킥킥 네 녀석도 대단하군! 실체가 없는 망령을 까지도 벨 수 있는 것이냐?’
용악은 칼을 휘두르면서도 허공에 그어지는 붉은 칼날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붉은 선을 바라보며 칼에게 물었다.
칼이 부웅웅 하고 울어댄다.
손에서 그 진동이 느껴질 정도이다.
‘큭큭큭... 맞다는 거냐! 자 오늘은 너의 날이다. 마음껏 빨아 먹어라. 저 빌어먹을 망령들까지 모조리 다!’
한참을 칼을 휘두르던 용악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는 경계했다. 이미 두 눈은 눈으로써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상실했다. 보이는 것은 그저 뿌연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것도 빠른 속도로!
용악은 서둘러 두 자루의 칼을 겹쳐 자신을 내려치려는 검을 막았다.
뿌득
소리하면서 자신의 팔목이 부러지는 소리는 들으며 용악은 땅에 두 무릎을 꿇었고 아니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용악은 두 무릎을 박고 나서야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녀석! 그 정도도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린 것이냐!”
‘아.... 낭인대장?’
용악은 서서히 자신의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느끼며 강서린이 소리친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눈을 뜨곤 강서린을 비롯해서 다른 병사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병사들의 얼굴에 떠오른 약간의 공포도.
‘공포.....?’
용악은 칼을 땅에다 꽂고서 부러진 왼쪽 팔을 끼워 맞추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더 컸기에 용악은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무시할 수 있었다.
용악의 주위를 병사들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저렇게 멀리서 둘러쌓고 있는 거지?’
용악은 그런 의문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많이도 죽였군.’
용악은 부러진 왼쪽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조소했다.
‘젠장 또 정신을 놓아버린 것인가.’
용악의 주위에 제대로 된 시체는 하나도 없었다.
다행히도 용악은 진형을 이루고 있던 병사들에게서 벗어나 혼자서 해적들이 모여 있는 한복판으로 뛰어 들었기에 병사들의 시신들은 없었다. 용악은 시체에 꽂인 칼을 뽑아 자리에서 일어나며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땅에다 꽂은 줄 알았는데 시체였나. 그런 내가 밟고 있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군.
용악은 그야말로 시체의 얕은 구릉을 천천히 내려오며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엉망이군. 씻으려면 오래 걸리겠어.’
“이거이거. 엉망이군. 그러게 내가 조심하라고 했지.”
황령은 주위의 해적 시체에서 벗겨낸 옷을 용악에게 던지며 말을 했다. 이것으로 좀 닦으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도 네가 도와준 덕분에 쉽게 끝날 수 있었다. 그게 도와준 건지 어쩐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용악은 자신의 어깨를 치며 말을 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전위였다. 303백인대장.
‘그래도 도움이 됐다니 다행이군. 그나저나 이제 전투는 끝이 난건가?’
“끝났나요? 해적들 수괴는?”
“아니 아직.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내가 튀어 나간 지 30분도 되지 않았어. 가자! 마지막 해적의 수괴를 잡으러”
황령과 다른 백인장들은 먼저 몸을 날려 내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낭인대를 따라 용악에게 그렇게 말을 하고는 부상당한 병사는 내버려 두고 남은 병사들을 이끌고 내성 안으로 들어갔다.
내성 안에는 해적들이 얼마 없었기에 파죽지세로 몰아붙이고는 해적의 수괴가 있는 곳으로 곧바로 향할 수 있었다. 병사들은 동해도 성내의 지도 역시 가지고 있었기에 손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괴가 있는 대청 안으로 낭인대주와 천인장들이 먼저 몸을 날려 안으로 들어갔고 몇몇의 백인장들과 병사들이 뒤따라 들어갔고 남은 병사들은 주위를 살피며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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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8 - 흑영기병대 - 25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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