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6화 (46/107)

46장 동해도-공성전

배들은 천천히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나아갔다. 이미 동해군도의 해도와 해류의 흐름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해적들과 싸워 온지도 햇수로는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3대의 용급 전함은 하나씩 떨어져 나와 3갈래의 방향을 잡고 점점 군도를 포위해 갔다.

작은 섬은 그냥 지나치면서 오급 전함 3척이나 4척에 타고 있던 백인대들이 상륙을 하여 정리를 하였고 조금 큰 섬이나 성체가 있는 섬은 교급 전함과 경급 전함의 함포 사격 후에 오급 전함에 타고 있던 병사들이 상륙을 시작했다.

전투는 용악의 예상대로 무난하게 흘러갔다. 그 동안 계속해서 공격을 당해온 해적들은 병사들을 상대로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항복을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지만 이번 전투는 섬멸전.

포로 따위는 없었다.

황령이 이끄는 백인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순식간에 상륙을 하여 산을 뒤져가며 해적들을 사살하고 나서는 다시금 배에 올라타 다른 섬으로 향하기를 몇 번이나 반복 했을까.

이제 남은 것은 저곳 바로 해적들의 본기지인 동해도만이 남아 있었다.

곤제국의 제4함대는 보이지 않았다.

사실 뭐 별 상관도 없었다. 한제국 입장에서는 동해도를 자기들이 탈환하는 것이 더 좋았다. 용급 전함과 교급 전함에서 포탄을 쏘아내기 시작했고 해적들 역시 이에 대응해서 화포를 쏘아대기는 했지만 크게 역부족이라는 것이 용악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그야말로 성과 성벽을 다 무너뜨린 다음에서야 백인대들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용악! 정신 똑바로 해! 계속가면 계곡 밑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어두워진다! 정신 똑바로 차려!”

황령은 백인대를 이끌며 해적들을 섬 중앙으로 몰아붙이며 저쪽에서 2자루의 붉은 도를 휘두르며 해적들을 그야말로 사냥하고 있는 용악을 보며 소리쳤다.

용악은 이제 황령과 비교해도 그리 약하지 않을 정도로 자랐다.

처음 봤을 때의 그 삐쩍 마른 아이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황령이 받은 황도에서 내려온 명령서에 따르면 저 아이의 나이 이제 겨우 16살.

그 어린 나이에 이런 피비린내 물씬 풍기는 곳에서 지낸다는 것이 불쌍하기도 했지만 잘 견디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항상 무표정하고 다가기만 해도 베일 듯이 날카롭고 냉철하고 다른 이들과 대화도 하지 않아서 혹시 무슨 정신적인 병이라도 가진 것이 아닌 것인가 했지만 가끔 하는 대화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다.

‘뭐 저 아이만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저 아이가 무엇이든 어떻게 되든 간에 자신은 저 아이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황령은 용악을 다시금 바라보고는 검을 들고 앞으로 향했다.

-킥킥킥

-힉힉힉 큭큭 피를 다오

-피를! 너의 피를!

-다시 한 번 너의 몸을!!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햇빛이 나뭇가지들에 막혀 직접적으로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섬 안쪽으로 들어오자 다시금 망령들이 용악에게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다.

‘이 빌어먹을 놈들.’

4년이 지났지만 똑같다.

아니 더 심해 졌다.

망령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지 한순간의 틈만 내보여도 용악의 몸을 빼앗아 가고는 했다.

‘절대로 너희들에게 굴복하지 않아. 그 순간 나는 죽는 것이니깐. 벌써 10번 이상 죽었다. 더 이상은 아니야! 너희 개 같은 자식들에게 결코 굴하지 않는다!’

용악은 한차례 도를 들어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잘라버리고는 앞으로 나아갔다. 더 이상 포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섬 외부에 있던 해적들의 성체는 모조리 점령한 듯 싶었다. 섬 안쪽 까지는 사거리가 닿지 않을 것이니 포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섬 안쪽에 위치한 성에서의 공선전이 진정한 동해도 전투가 될 거겠지.’

성 바로 앞까지 단숨에 치고 들어온 황려과 302백인대 그리고 다른 백인대들 모두 야영 준비를 시작하며 방책을 쌓고 포를 발사할 땅을 고르며 참호를 만들었다.

성은 의외로 컸다.

높이는 적어도 15미르는 넘어 보이고 그 성벽의 두께도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꽤 되어 보였다. 적군도 화포를 가지고 있을 테니 화포전이 시작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오히려 301~409에 속하는 백인대들은 쉬게 될 것이다. 이들은 백병전을 담당하는 백인대이기 때문이었다.

먼저 도착한 302백인대 뿐만 아니라 다른 백인대들도 빠르게 나뭇가지를 해쳐가며 길을 만들어 화포 병들이 화포와 공성무기를 가지고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었다. 전투가 시작한지 겨우 4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동해군도의 섬의 해적들은 모조리 몰살했고 이제 남은 것은 이곳 동해도 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이곳 역시 화포가 도착하면 체 2시간도 되지 않아 무릎을 꿇을 것이다.

용악과 다른 병사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화포와 공성무기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화포수들은 다른 백인대 들에게 부탁하며 화포를 설치하는 걸 도와달라고 했다.

실질적으로 보면 화포대가 다른 백인대들 보다 약간 높은 대우를 받기는 하지만 화포대들도 백인대였기에 다른 백인대에 함부로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다. 용악도 화포수가 지정하는 곳으로 가서 돌을 파내고 흙을 다져가며 포를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본격적인 공성전 전문 병사들이 용급 전함에서 도착하여 사령관막사가 지어지고 화포장들과 천인장급 장수들이 모여 회의를 시작했다.

말단 병사인 용악은 다른 백인대의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사령관막사를 바라보며 자신의 옆에 있는 화포의 포신을 만지작거리며 어떤 명령이 내려질지 생각하고 있었다.

아마도 배식은 없는 듯 했다.

최대한 빨리 섬멸하고 돌아가는 뜻이었다.

출항하기 전부터 그렇게 말을 해왔기 용악은 대충 짐작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간 이상한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리 해적들이 그 동안 공격을 받아왔고 곤제국의 제4함대를 막기 위해 병력의 반절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의 해적들의 공격은 너무 허술하고 약했다.

분명 해적들이 약한 것은 아니다. 용악이 지금까지 격어 온 경험이 그렇게 말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장수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터 그들이 알아서 대처 할 것이다. 자신은 그저 명령을 따르면 그만이고 말이다.’

용악의 주위의 공기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은 공기가 아니라 망령일 것이다. 그나마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눈에 보인다면 정말 미쳐버릴 지도 몰랐다. 용악은 자신의 귀를 괴롭히는 망령들을 쫒아내기 위해 칼집에 집어 넣어놨던 칼을 뽑았다.

챙!

칼이 뽑히자 용악처럼 땅에 누워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용악을 바라보았다가 그가 그런 것임을 알고는 관심을 접고 다시금 몸을 풀며 쉬었다.

검은 더욱 붉어져 있었다.

아니 붉어졌다 기 보다 더 진해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예전에는 그래도 철은 철지만 붉은 철이라고 말할 정도는 되었지만 지금은 이게 철인지 아님 다른 붉은 무엇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칼이 스스로 뿜어내는 귀기와 예기는 더욱 강해 졌다.

함께 생활한 302백인대의 말을 들어보면 그 칼 근처에 가면 몸이 오싹해지고 이상한 울음소리가 들린다고도 했다. 그랬기에 용악을 좀 더 꺼려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이 칼 속에 있는 그 무사의 혼이 울부짖은 것 일겠지.’

칼이 이렇게 변한 후 다른 망령들이 달라붙지 않고 또 칼날을 갈 필요도 없이 스스로 날을 세우는 것이 편하기는 했지만 피를 먹지 못하면 주인의 목까지 노리는 마도(魔刀)로 변한 것 같았다. 가끔씩 정신을 놓으면 어느새 칼이 용악의 목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웃기게도 그랬기에 용악은 더욱 수련을 열심히 했다.

용악이 칼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화포장들과 장수들은 회의를 마쳤는지 다른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용악을 비롯한 다른 백병전 전문 백인대들은 모두들 아까 그대로 몸을 풀며 휴식을 취했다.

이들은 포화가 끝나면 성으로 돌격을 해야 하니까.

황룡과 백인장들은 천인장에게 받은 명령을 검토하며 공터에 앉아 모여서 무언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별다른 내용 있겠어. 화포의 사격 후 일제히 돌격. 성의 일부나 성문을 깨고 난 후 일제히 난입. 주된 내용은 그것일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지금까지의 상황을 검토해 백인장끼리 알아서 할당 지역을 나눌 테고 말이야.’

낭인대들은 화포가 불을 뿜기 시작 할 때 쯤 나타났다. 갑옷의 상태로 보아 해적들과 제대로 한번 붙은 모양이었다.

낭인들은 대부분 무림인이긴 했지만 갑옷을 입지 않으면 전장에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눈먼 화살이나 눈먼 화탄조각에 맞아 죽는 병사의 수가 제대로 맞아 죽는 병사의 수와 엇비슷하니 말이다. 그래서 인지 대부분 흉갑과 투구는 쓴 모습이다. 저 정도만 해도 억울하게 죽을 일은 적어진다.

낭인대를 이끌고 온 강서린은 사령관막사로 곧바로 들어갔고 낭인대원들은 다른 백인대처럼 여기저기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부상자들은 없는 것으로 보아 바로바로 해안가에 있는 배로 이송된 듯싶었다. 용악이 속한 302백인대는 제대로 된 싸움은 하지도 않아서 다친 병사들이 없었기에 자세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매캐한 화포연기가 성 주위를 가득 메웠다.

아까 전 참호를 만들 때 가끔씩 이상한 곳으로 떨어지던 포탄은 이제는 아예 날아오지도 않고 오로지 한제국군의 화포들만 불을 뿜어 냈다.

단단해 보이는 성.

‘훗 생각해 보니 내가 저 성을 만든 것이나 다름없군.’

용악은 불귀도에서 채석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용악이 만드는데 일조한 성은 이제 거지들이 입는 넝마처럼 이곳저곳에 구멍이 뚫린 체 신음을 하며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쇠뇌와 화살비의 엄호를 받은 체 낭인대와 301~409 백인대들은 빠른 속도로 성안으로 난입했다.

아군이 난입을 한 것을 보고 화포병들을 빠르게 화포를 정리하며 뒤로 물러나며 해안가에 있는 배로 돌아갔다. 가지고 온 화포는 배에서 사용하던 화포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 때문이었다.

남은 장수들과 다른 몇몇 백인대들은 상황을 지켜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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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7 - 흑영기병대 - 25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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