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5화 (45/107)
  • 45장 - 동해군도

    1340년 강소성 계동해군기지

    아이.

    아니 이제는 아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자란 어린 청년이 창을 빗겨 들고는 거대한 파도를 가르는 회색의 바위위에 서서 가만히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쳐 산산이 부서지는 물방울을 피하지도 않은 채 새벽을 밀어내며 서서히 고개를 들어 대지를 밝히는 태양을 아이는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어이 귀신장수! 또 여기 있는 거냐?”

    용악에게 저주의 말을 뿜어내던 망령들은 서서히 태양빛을 피해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용악은 자신에게 멀어져 가는 망령들의 소름끼치게 차가운 기운을 느끼며 뒤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곳에 온지도 벌써 4년이 지났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특별한 일... 남들이 보면 어떨지 모르지만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지내온 용악이 느끼기에는 특별한 일도 없는 그냥 그런 일상이었다. 그때와 지금 그가 달라진 것이라면 부쩍 커버린 그의 몸과 그리고 저기 자신이 서있는 바위를 올라오며 자신에게 소리친 저 사내의 존재다.

    그는 용악을 처음 본 그 날부터 백룡대와 함께 이곳에 머물기 시작한 그날부터 용악과 함께 지내온 사람이다.

    ‘이유? 저 형이 나와 함께한 이유?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궁금하지는 않다. 저 사람도 여민이나 곽철처럼 누군가의 명령을 받았을 테니.’

    사실 용악 입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고 누군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느낌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형은 연기실력이 조금 부족하지. 거짓말도 잘 못하고 유도질문을 몇 개만 던져도 덥석 물고 다 털어내니 말이야.’

    용악은 뒤를 돌아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황령을 바라보았다. 호리호리한 몸매에 걸맞지 않는 무지막지한 실력을 가진 백부장. 그런 실력을 가지고 왜 아직까지 백부장인지 모를 장수.

    그런 황령 뒤를 따라 은백발을 가진 한 노인.

    ‘쩝. 저런 몸을 가진 사람을 노인이라고 부르면 다른 늙은 분들에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됐건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 노인이 용악에게 다가왔다.

    “이 시간에 낭인대장이 왜?”

    용악은 뒤에 있는 사람은 왜 왔냐고 턱으로 가리키며 황령에게 무언의 물음을 던졌고 그는 알아들었는지 웃으며 말을 했다.

    “아. 낭인대장님도 한번 오고 싶어 하더라고. 그리고 드디어 출전 명령이 떨어 졌으니깐. 이번을 마지막으로 해적들을 완전히 쓸어버리기로 결정 했어”

    ‘아... 결국 그렇게 결정이 난 것인가?’

    지난 4년 동안 아니 정확히 말하면 3년.

    용악은 백룡대에 의해 구출된 이후에 그는 잘 모르지만 어찌 된 일이지 황령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후로는 일사천리로 이곳 계동기지 사령관인 양교춘 장군에게 명령을 받고 같은 백인대에서 훈련을 시작했다.

    용악이 뭘 어쩌고 할 틈도 없이 용악이 도착한 다음날 바로 명령서가 내려왔기에 뭐라 말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지내왔다.

    지금까지.

    사실 어디에 있든지 별 상관이 없었기에 뭐라 말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백인대에 배속된 후에는 완전히 엉망이 된 몸을 추스르는데 거의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용악 나름대로 먹고 살만큼 먹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다른 이들이 용악을 처음 봤을 때는 무슨 해골에 가죽을 뒤집어 씌워놓은 줄 알았다.

    불귀도에서의 그 불행했던 세월을 보상받듯 용악의 키는 엄청나게 자라서 지금은 거의 180센미르를 바라 볼 정도였다. 그렇게 몸을 추스르고 난 후에는 바로 전장으로 투입되었다. 물론 옆에서 항상 황령과 같이 다니는 전위가 돌봐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가끔씩 해적들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용비 입장에서는 해적들과 찔끔찔끔 싸워 온 것이 벌써 3년째.

    그리고 오늘 드디어 해적들을 뿌리 뽑으라는 명령서가 황도에서 내려왔다. 사실 늦은 감이 업지 않아 있지만 아니 확실히 있지만 그는 자신이 어찌 할 수는 없는 일이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3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별로 달갑지 않은 별호가 붙었는데 그것이 바로 귀신장수다. 가끔씩 전투의 광기와 비릿한 피 냄새에 흥분해서 용악은 자신에게 달라붙은 망령들 중 하나에게 몸을 빼앗긴 적이 있었고 그 때는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황령이 말리지 않았다면 분명 죽었을 것이다.

    혼자서 적선으로 쳐들어가서 해적들도 죽이고 자신도 죽으려고 했으니...

    그렇게 망령들에게 흥분해서 몸을 빼앗긴 것이 몇 차례 계속되자 병사들은 그를 귀신장수라 부르며 자신을 피했다.

    사실 용악 입장에서 기분이 좋진 않지만 병사들이 이해되기는 했다.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적군이 아닌 미쳐버린 아군이니까. 게다가 밤마다 잠도 안자고 칼을 휘두르는 것도 그런 별호에 힘을 실어주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 그리고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헌데 어쩐 일로?”

    용악이 다시 몸을 돌려 바다를 바라보며 말을이었다. 언뜻 보면 무례한 행동일 수도 있으나 지금까지 누구에게나 이래왔던 것을 본 낭인대장과 황령은 아무 말 하지 않고 용악의 옆에 서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냥. 뭐랄까. 이곳에서 보는 마지막 일출을 보고 싶어서랄까. 그것도 제자와 함께라면 금상첨화지.”

    “저는 당신 제자가 아닙니다만.”

    “나한테 배웠으니 제자지 뭐가 아니란 말이냐. 꼭 구배지례를 올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노인.

    낭인대장. 강서린.

    은백발의 노인은 손에 들고 있던 검으로 용악의 머리를 살짝 치며 말을 이었다.

    ‘겨우 그거 가르쳐 주고 제자로 삼으면 당신 밑에는 대체 제자가 몇 명이나 있다는 겁니까?’

    “대체 저는 몇 번째 제자 입니까?”

    “음 한 342번째 쯤 되려나?”

    ‘그걸 다 기억하고 계시는 겁니까. 쓸데없는데 정신을 너무 많이 쓰시는 것이 아닌지.’

    용악이 그런 생각을 하며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강서린은 다시금 용악에게 사부의 사랑스러운 철퇴를 내려 주었다. 황령은 그런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해가 완전히 떠오른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이제 가시죠. 시간 다 됐습니다. 지금쯤이면 출발 준비도 마쳤을 것 이구요. 용악 너도 이번에 함께 간다.”

    “네.”

    용악은 저번 전투 때 또다시 정신을 잃고 발광을 했었기에 그 후의 전투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야말로 총공격이다. 오늘을 위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고취시키고 최고의 훈련 상태로 만들기 위해 근 한 달 동안 소리도 없고 적도 없는 전쟁을 해왔다.

    바로 오늘을 위해서

    오늘이라면 그가 발광을 하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겠다는 상부의 의지일 것이다.

    용악과 강서린은 티격태격 하며 황령의 뒤를 따라 바위를 내려갔다.

    백룡대는 이미 오래전에 이곳에서 떠났다. 그 동안 몇 개의 동해군도의 섬을 파괴하고서 용악을 이곳에 데려다 준지 한 1년쯤 지난 후 쯤 떠났다. 용악이 풍문로 듣기로는 백룡대가 파괴한 섬들은 대부분 청해상단의 화물이 있는 곳이라고 들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렇게 해적들을 괴롭히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용악은 자신이 속한 백인대의 배에 올라타 천천히 동해군도로 향하는 군선들을 바라보았다. 그가 타고 있는 배에는 화포가 없었다. 모두다 해적선에 올라타서 백병전을 펼치는 병사들로만 배가 가득 찼다.

    크기는 약 30미르 정도 무개는 약 1800키로가르정도 승선인원은 보통은 100명.

    노선과 범선의 중간형태의 배였기에 지금은 노를 젓지 않고 바람을 타고 가고 있으니100명 모두 병사일 것이고 용악은 그렇게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살펴보고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가운데에는 비록 하얀 용 보다는 크지 않았지만 거대한 전함, 대충 보아하니 용급 전함은 될 것 같았다.

    그런 전함이 3척이 가운데에서 전 함대를 지휘 하고 있었고 그 옆으로 양쪽에 5척씩 총 10척의 경(鯨,고래)급 전함이 나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경급 전함이면 수룡포가 탑재 되어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크기의 수룡포가.

    ‘아마도 중형 화포가 주(主)가 되겠지.’

    그리고 그 경급 전함을 호위하듯이 1척의 경급 전함에 4척의 교(鮫,상어)급 함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작은 전함들은 용비가 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오(鼇,바다거북)급 작은 전함 들이였다.

    용악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기억을 뒤져 함대의 구성과 운영방법 그리고 이 번 해전에 쓸 만한 전술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계동함대는 지금 이 진형으로 해전을 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해전을 할 생각이라면 오급 전함을 이렇게 바다에 뿌리듯이 흩어져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 역시 함포사격 후 섬으로 돌격하는 작전인가?’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그 동안 해적들은 계속해서 힘을 잃었고 계동함대는 그대로였으니 정면으로 부딪친다면 승산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섬에 숨는다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원군이 오지 않는 이상 말이다.

    ‘원군이라. 적어도 다른 나라에서 대놓고 도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놓고 도울 수 없는 수의 병력이라면 무시해도 될 것이고 흠 그럼 이번 작전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용악의 옆에는 황령이 가만히 서서 도를 쓰다듬고 있었다.

    황령은 이 배의 선장.

    그리고 이 배의 선원들은 모두 302백인대의 백인병사들이다.

    그리고 이런 한 개의 백인대가 하나의 배를 타고 있을 것이니 그것만 세어 봐도 대략 오천이 넘어가는 병사들의 수이고 중형 전함과 대형 전함에 있는 병사들 까지 합친다면 거의 만 명에 가까운 병사들이 이번에 출전하는 것 이었다.

    역시 무난히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대체 왜 황도에서는 그동안 공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이정도 병력이 있는데 말이다.’

    그런 의문을 품은 용비의 뒤에서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음? 곤제국 제 4함대가 이번 작전을 도운다고?’

    용악은 혹시나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싶어 전위를 바라보았다.

    “형. 곤제국 제4함대가 도운다고요?”

    “아. 너는 모르고 있었겠구나. 계속 그 바위 근처에서 생활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몰랐나.’

    용악은 저번 전투에서 또다시 발광을 했기에 그 벌로 병사들이 머무는 곳이 아닌 그 바위근처에서 지내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른 병사들과는 만나지 못하고 말이다.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은 황령과 낭인대장 정도.

    “들은 이야기로는 해적들이 또다시 곤제국 상단을 건들었고 그런데 그 상단 주인이 꽤 연줄이 있었나 보더라고 사실 곤제국 입장에서도 해적들은 짜증나는 존재이니 잘 됐구나 싶어서 이번 기회에 싹 쓸어버리기로 계획을 세운 것이겠지. 사실 우리는 뒤처리 하는 거나 마찬가지 일 수 도 있어. 제3함대. 이신의 서해함대는 저번에 남쪽해적을 소탕했으니 이번에는 쉬고 북 서해를 담당하는 제 4함대가 이렇게 멀리까지 내려오게 된  거지.”

    ‘아... 음. 제4함대라 한 번도 못 들어본 함댄데? 새로 생긴 함대인가? 함대라는게 그냥 생겨라 하면 뚝딱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십년 이상은 걸릴 텐데.’

    “처음 들어 보는데요 제 4함대는?”

    “사실 다른 병사들도 잘 모를 거야 그냥 위에서 제 4함대, 제 4함대 그러니 그런게 있구나 하는 것이겠지. 사실 나도 잘 모르지만 이번에 할 일 없는 왕자 중에 한 명이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곤제국 왕자와 공주들 중에 평범한 인물이 있겠냐. 그 역시 탁월한 재주로 오로지 자신의 힘만으로 새로운 함대를 겨우 10년 만에 만들어 냈어. 그래서 이번에는 그 함대를 시험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라고 황도와 대장군부 정보부에서는 판단하고 있지만."

    "..."

    "글쎄...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정도의 인물이 시험도 거치지 않은 함대를 해적과 싸울까 하는 약간 회의적인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야.”

    황령은 꽤 말을 많이 했는지 이제는 갑판난간에 위험하게 걸터앉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 다리로 밧줄을 감고 있었구나. 어쩐지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한다 했다니.’

    “뭐. 우리야 알바 아니지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동해군도 서쪽이고 우리는 동쪽이니깐 말이야. 그리고 조심해. 비록 낮이어서 그럴 위험은 적겠지만 또 미쳐버리면 곤란하다”

    그는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용악의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부관들을 불러 부관들을 모두 데리고 선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도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는 모양이었다.

    전체적인 계획은 천인장 이상의 장수들이 줄기를 세우듯이 계획을 세우고 백인장들은 이제 가지를 세우듯이 세부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백인장은 다시 부관들과 모여 계획을 세운다.

    이윽고 동해군도의 섬은 바다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훗날 계동기지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라고 평가된 동해군도 해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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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 - 흑영기병대 - 2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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