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 군선
용악은 저 멀리 보이는 배에서 갑자기 밝은 빛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았다.
“뭐지 저건?”
서축에 있을 때 사제와 술사, 도사들을 만나보긴 했지만 그들이 도술이나 마법을 쓰는 것을 본적이 없는 용악은 그 빛이 마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 빛이 터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배는 서서히 용악이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미묘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마치 불귀도로 가는 것처럼.
아니나 다를까 불귀도와 용악이 있는 섬의 중간부분에 멈춘 배는 곧이어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포탄을 불귀도에 쏟아 붇기 시작했다.
“뭐야?”
-끼아아악!!!
포탄이 불귀도에 적중하자 갑자기 용악의 주변을 맴돌던 망령이 소리를 지르며 발광했다. 어찌나 심하게 발광을 하는지 용악에게 차마 다가오지도 못하고 그저 사념만 보내던 망령들이 물리력을 행사해 나무를 뒤흔들고 땅을 파해 쳤다.
포격은 끊임없이 계속됐고 그 소리에 용악은 귀가 멍멍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한 동안의 포격이 끝나자 커다란 배에서 작은 배 한 척이 내려와 불귀도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귀도에서 거대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원을 그리는 것처럼 한 곳에서 시작한 붉은 빛은 빠르게 움직이며 불귀도를 둘러싸듯 원을 이뤘고 그 후에 하늘로 올라갔다.
마치 번개가 치듯 순식간에 붉은 빛은 원을 이루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아아아아!!
-이런 결계라니!
-하지만 이미 의식은 치뤄졌다!!
-흐흐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라. 이제 시작이다. 넌 우리의 것이 될 거다. 흐흐흐
알 수 없는 의미를 지닌 말들을 지껄인 망령들은 붉은 빛이 사라지자 용악에게 마지막 저주를 남기고는 서서히 어둠속으로 사라져갔다. 마치 검은 연기처럼 망령들은 마지막으로 실체화를 이루어 타오르는 붉은 눈동자로 용악에게 저주를 걸고는 투명해 지며 사라졌다.
용악은 더 이상 망령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닫고 불귀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을 확신했다. 용악이 땅에 박아두었던 두 자루의 도를 집어 들자 찌릿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주변에 날아다니던 망령들이 다 사라졌음에도 도에 스며든 혼들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포격을 마친 배는 서서히 용악이 있는 섬을 향해 움직였다. 대충 보아도 엄청나게 커 보이는 배였다. 멀리 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제 슬슬 윤곽이 잡힐 정도로 가까워지자 그 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형식의 배인데? 흐음. 서대륙에서 만들어진 배인가? 아님 서대륙형식의 배?’
그 거대한 배는 섬 근처로 들어오지 못하고 닻을 내린 체 멈춰 섰고 배 옆에 붙어 있던 작은 배들 중 하나가 섬 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다.
곤제국 형식의 내해용 배.
주로 정탐용으로 많이 사용되며 기습작전에 많이 사용된다.
길이는 약 30미르.
무개는 약 100관.
승선인원은 약 60명
전투인원은 약 30명.
머릿속에서 섬으로 다가오고 있는 배에 대한 내용이 저절로 떠올랐다. 마치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오래된 창고 안에 있는 물건을 하나씩 꺼내면서 아. 이런 것이 있었군. 하는 마치 그런 기분이었다.
‘저번에도 한번 그러더니 이번에도 이러는 군. 이건 또 누구의 기억인거지.’
용악은 답 없는 의문을 던지며 망루에서 해안가의 모래 터로 달려갔다.
‘적이 아니기를 바랄뿐.’
용악은 그동안 사용하던 집에 들려 자신의 물건들을 보자기에 넣고 -사실은 묶어 놓고 한번도 꺼내지 않은- 쌍도를 들고 해안가로 향했다.
배는 천천히 모래 터까지 올라 왔다. 아마도 평저선이리라. 이렇게 까지 가까이 올 수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에서 하얀색 갑옷을 입은 자들이 뛰어 내렸다.
고수다.
저들 모두가 전부다.
안정된 발걸음.
안정된 손과 어깨의 모습.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 한 눈.
절제된 기도.
‘하지만 내가 더 강하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자들 중 몇몇은 모래 터로 내려왔고 몇몇은 선수로 나와 아무렇게나 주저앉은 채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꼬마 네가 우릴 부른 거냐?”
맨 처음에 뛰어내린 자는 자신과 섬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자신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아마도 다른 자 들이 있는 가 살펴 본 것이었다.
“대장. 곤제국어로 물어보면 어떻게요. 못 알아들을 텐..”
“내가 너를 불렀다. 그리고 이곳에는 아무도 없다.”
용악이 서투른 곤 제국어로 대답하자 용악에게 물은 자의 뒤를 따라오던 한 병사가 대장에게 뭐라고 말을 하다가 말았다. 그 대장이라고 불린 그 자는 병사를 어깨를 한번 으쓱 하고는 자신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은 이놈이 곤제국어를 아는 가 본데? 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걸 용악도 알 수 있었다.
“네 녀석의 곤제국어를 듣느니 내가 한제국어로 묻는 게 낫겠다. 그래 여긴 너 혼자 있다는 거냐? 왜? 혹시 해적이냐?”
그는 병사들과 함께 자신에게 다가와서는 모래 터에 박혀 있던 커다란 돌덩이 위에 앉아 턱을 괴며 물었다.
“아뇨. 해적은 아닙니다. 음... 포로에요.”
“포로? 여기 해적들은 포로에게 무기를 소지하게 하나?”
“음. 정확히 말하면 탈출한 포로”
“흐음. 탈출한 포로라. 야 어떻게 하는 게 좋겠냐?”
“뭐. 그냥 이 꼬마 혼자인거 같으니 데리고 가죠. 이상한 짓 하면 그때 가서 해결하고 말이죠.”
“좋아. 그렇게 하자. 야 꼬마 따라와라”
그는 용악의 대답을 듣고는 잠시 생각을 하다 자신의 주위에 있던 병사들에게 물어보고는 용악에게 손짓하고는 다시 배로 돌아갔다. 아마도 타라는 뜻일 것이다. 용악은 기쁜 자신의 마음을 내색하지 않고 서둘러 배에 올랐다.
용악이 다시 갈아탄 배는 엄청나게 컸다. 작은 배는 큰 배의 옆에 꼭 맞게 다시 달라붙었으니 다시 장착됐다. 여러 개의 두터운 밧줄로 다시 작은 배를 요리조리 묶은 병사들은 줄사다리를 타고 빠르게 올라갔다.
‘흐음. 빠르다. 숙련된 것뿐만 아니라. 내력을 가지고 있는 무인들이다. 흠. 역시 보통 병사들은 아닌가?’
용악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배를 한번 둘러보았다.
‘정말 엄청 크군. 내해용 배는 절대 아니군. 횡범 형식에 종범을 약간 섞은 형태의 범선인가. 역시 곤제국이군. 이런 범선을 만들어 내다니.’
주 돛대를 가운데에 놓고 거대한 돛대가 무려 3개나 용골에 수직해서 박혀 있었고 거대한 사각 돛이 한 돛대마다 3개 혹은 4개씩 달려 있었다. 돛 사이에는 삼각돛이 또다시 밧줄에 의지하여 달려 있었고 선수에는 거대한 삼각돛 2개가 밧줄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다.
선수에는 앞으로 삐쭉 튀어나온 거대한 쇠기둥의 양쪽으로 파도 막이가 위치하고 있었고 그 뒤로 대포가 2문이 장착되어 있었다.
쇠기둥과 대포에는 양각으로 하얀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크기로 보아 포탄은 대략 20센미르 정도쯤 될 것 같았다.
‘엄청나군. 반동이 엄청날 텐데 이걸 여기에 달았단 말이야? 그나저나 그럼. 장군화포 급 화포인가? 그나저나 이건 또 누구의 기억이야.’
선미는 선수보다 높게 솟아올라 있었고 갑판은 생각보다 넓었다.
‘대양의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 인가보군. 길이는 대충 75미르정도 될 것 같고 무게는 흠. 한 천오백토르쯤 되려나. 이 정도 크기면 수용인원은 대략 300에서 400명 사이일 것 같고’
용악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자신도 몰랐던 기억들을 다시금 정리하며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돛 사이에는 거미줄처럼 어지러울 정도로 많은 밧줄들이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고 한쪽에는 여러 가지 해상용 무기들이 걸려 있었다.
푸르른 빛을 반사하며 쇠뇌가 배 양쪽으로 쭉 나열해 있었다.
‘한 30개 되나? 무지하게 많네.’
밤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한제국의 영토 안으로 들어와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깃발들은 다 내린 모양이다.
검은 바탕에 울부짖는 하얀 용.
거대한 2쌍의 날개. 거대한 4쌍의 다리.2개의 뿔. 하얀 불을 뿜으며 울부짖는 용이다.
처음 보는 깃발이다.
‘멋있기는 하군.’
“어이 꼬마. 이런 배는 처음 타보나 보지? 아닌가. 당연 한 건가.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니. 뭐 어쨌든 우리 하얀 용에 승선한 것을 환영한다!”
그가 그렇게 소리를 치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대체 뭐하는 거냐고 쳐다보았고 그가 병사들을 보고 눈을 부라리자 그제야 박수를 몇 번 예의상 치고는 다들 떠나 버렸다.
‘이사람. 약간 허승대장군과 비슷한 처지인거 같은데.’
용악은 물론 그런 자신의 마음은 감춘 체 빙긋 웃어 주었다.
돛은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어 빠르게 파도를 헤치고 나아갔다.
엄청난 속도였다.
노를 젓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용악은 예전 북경에서 이곳으로 올 때 탔던 배를 생각하며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바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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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흑영기병대 - 249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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