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41화 (41/107)

41장. 흙 섬 - 비사

용악이 도착한 섬은 정말 불귀도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나무들이 있었으며 나무 열매가 있었고 흙이 있었고 동물들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우물과 시냇물이 있었다. 더 이상 물고기 피를 빨아먹고 빗물을 받아먹으며 살 필요는 없었다.

용악은 어렵지 않게 해적들이 사용하던 집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집이라고 하기도 조금 뭐한 그런 것이었지만 그래도 불귀도의 천막보다는 훨씬 나았다. 집 바로 옆에는 망루가 위치하고 있었다.

섬은 불귀도보다 약 2배정도 큰 것 같았다. 섬 끝에서 끝까지 걷는데 걸리는 시간을 재어보니 그 정도 될 것 같았다.

‘이곳은 산이 있으니 더 작을 지도 모르지.’

해적들이 생활 하던 집은 섬 정 중앙, 즉 산의 거의 정상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산이라고 해봤자 높이는 바닷물을 기준으로 해서 겨우 120미르정도 될 만한 높이였다.

이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지 벌써 여덟 달이 지났다. 혹시나 하고 항상 해안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는다.

‘지금 내가 몇 살이지.’

용악은 새삼스럽게 자신이 몇 살인지 궁금해 칼로 바닥에 숫자를 써가며 생각을 했다.

‘내가 불귀도에 처음 갔을 때가... 여덟살 하고 8월이였고... 포로생활을 세달 했고 불귀동에서 일년을 살다가 이련하고 강백호를 만난 후 3달을 살았고 그담에 불귀도에서 육개월을 살았고 이곳에 와서 팔개월을 살았으니까. 지금 열한살하고 6월인가? 벌써 삼년이나 지났군. 이곳 동해군도에서 지낸지 말이야.’

‘하지만 그동안 누군가와 함께 있었던 시간은 그 반절도 되지 않는군.’

오늘은 만월이다.

용악은 자신도 감성적이고 격정적으로 변화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해안가의 바닷물은 달빛에 비쳐 은색의 물결을 만들어 내며 모래에 부딪혀 사그라지고 있었다.

손에 든 도에서 무언가가 느껴진다. 두 도(刀)역시 만월이 되면 기승을 부린다.

다른 망령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랬기에 밤이 될 수록 용악은 오히려 더 이 도를 들고서 수련을 했다.

쉭쉭

칼이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부드럽다.

칼이 바람을 정면으로 막아서지 않고 바람을 타고 흐른다.

그렇다 말 그대로다.

칼이 공중에서 흐른다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강백호가 알려준 수련방식은 더 이상 용악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미 그 경지는 뛰어 넘은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비록 흑산포는 아직 무리지만 지금은 창으로 펼치는 흑포와 산포를 도(刀)로도 펼칠 수 있었다. 비록 손목에 엄청난 압력을 주기는 했지만 견딜 만 했다.

얼마나 그렇게 용악이 수련을 했을까.

저기 바다 저편에서 무언가 밝은 불빛이 보인다.

‘응? 밝은 불빛?’

용악은 칼날이 비친 빛을 본 게 아닌가 하고 칼을 내리고는 다시금 바다를 살폈다.

보인다!

확연히 보인다!

완전히 검은 빛으로 물든 저편에 티끌 만하게 불빛이 빛나고 있었다. 항상 바다를 보고 살았더니 원시력(遠視力)은 정말 놀랍도록 발전했다. 용악은 자신의 눈을 확신했다.

‘배다! 배다!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본 배다! 해적선이라도 좋다! 이곳에 와서 해적선도 단 한척도 보지 못했다!’

용악은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 망루에 불을 피우고 해안가에도 나무를 모아 불을 피우고는 다시 망루로 올라갔다.

확실했다.

이제 배는 그 모습을 대충 짐작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하지만 저쪽은 곤제국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럼 곤제국에서 온 배인가? 상선? 어찌됐건 상관 없겠지.’

용악은 그동안 쓰지 않아서 잊어 버렸던 곤제국어를 다시 상기 시키며 열심히 횃불을 든 두 손을 흔들었다.

******

곤제국에서 가장 유명한 부대를 뽑으라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부대를 뽑을까? 곤제국 사람이든 한제국 사람이든 젠국 사람이든 모두 아마도 사람들은 이 두 부대중 하나를 뽑지 않을까 싶다.

505 강습기마대 와 808 수륙특전대.

군 장교들이 흔히 백룡대 와 흑룡대 라고 부르는 두개의 특수부대들.

한제국과 젠국의 일반 병사들에게는 하얀 악마들과 검은 악마들 이라고 불리는 그들.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가 왜 나왔을까? 바로 용악이 보고 있는 배에 하얀 악마들이 타고 있기 때문 이였다.

“대장, 대장!”

“엉 무슨 일이야?”

백룡대의 대장인 고율은 망을 보던 부하가 소리를 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앞에 있던 체스판을 엎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그가 지고 있던 경기였다. 대충 어떻게 넘어갈 구석이 없을까 싶었는데 저 녀석이 도와주었다.

‘흐흐 좋아.’

“뭡니까! 왜 엎어요! 이거 내가 이긴 겁니다. 강소 도착하면 대장이 쏘는 거요!”

고율과 함께 체스를 두던 대원은 황급히 말들을 주워 담으며 소리쳤다.

‘그건 내 알바 아니지. 나중에 강소 가서 생각하자고’

그는 부하에게 상큼한 미소를 날려주고는 주 돛대를 밧줄을 타고 올라갔다. 아무것도 없이 손으로만 밧줄을 타고 올라가는데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였다.

“왜 무슨 일이야?”

“저기 저 앞에 있는 섬에서 불길이 났습니다.”

고율은 품에 있던 시가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부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역시 서대륙에서 건너온 시가는 정말 맛이 끝내줬다. 동대륙에 있는 연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오랜동안 필 수도 있고 말이지.’

“제 말 듣고 있어요?”

“엉? 뭐라 했냐?”

“저기 보이는 섬에서 불길이 일어났다고요”

“불길이 일어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이 자식 정말 웃기는 놈일세. 불길이 일어나던 말 던 무슨 상관이냐 어차피 동해군도에 있는 해적들이라면 부하들 몇 명만 나서면 정리되는 거 아닌가. 이 자식 정체가 뭐지?’

고율이 띠껍게 쳐다보자 부하는 왜 그렇게 바라보냐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음. 그런데 저거 해적들이 피운 게 아닌 거 같은데요? 아무래도 구조신호 같은데.”

“흠?”

고율은 손가락으로 시가에 있던 재를 털어버리고는 섬에서 일어나는 불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흠. 구조신호라... 저런 구조신호가 있던가. 없었던거 같은데. 저건 아무래도 그냥 아무렇게나 흔들고 있는 거 같은데? 뭐 상관은 없겠지 잠시 들렸다가 가도.’

고율은 그렇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자기가 뭔가를 잊고 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했다.

“황태산에서 내려온 손님들은 어디 있지?”

고율이 그렇게 부하를 보며 말을 하자마자 부하의 뒤에서 마치 유령처럼 한 두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태산은 동방10도 중 하나로 곤제국에 북쪽에 위치한 태행산맥의 지류에 있는 산이었다. 고도는 그렇게 높지 않지만 풍경이 화려하고 특히나 자연지기(自然之氣)가 충만한 유명한 산 중에 하나였다. 그런 산이었기에 술사들이나 서대륙에서 가끔씩 넘어오는 마법사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리고 고율이 명령을 받아 출동하기 얼마 전 두 노인은 황제의 인장이 찍힌 명령서를 들고 고율을 찾아왔었다. 그들이 찾는 무언가가 있는데 그것이 곤제국과 한제국 사이의 바다인 서해에 있으니 고율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가는 길에 두 분의 일을 도우라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고율은 그 손님들의 의견을 참고할 수밖에 없어 그 들을 부르려 한 것이었는데 두 사람이 먼저 고율에게 다가온 것이었다.

얼굴이 붉은 대추처럼 붉은 노인은 곤제국 특유의 복식을 하고 있었다.

투명해 보이는 검은색으로 보이는 갓을 쓰고 한 손에는 벼락 맞은 호두나무에 비취옥이 달려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다른 한 손은 품이 넉넉한 장포 속에 넣고 있었다.

다른 한 노인은 흰 수염이 가슴까지 내려온 보랏빛 눈동자의 서대륙인이었다.

그는 머리까지 감쌀 수 있는 피풍의와 같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그 옷을 로브라고 불렀다. 그 후드의 가슴부분에는 육망성과 그 육망성 안에 위치한 기묘한 동물이 그려져 있었는데 고율이 알기로 서대륙의 영물인 뿔과 날개 달린 말-유니콘 이라고 알고 있었다.

고율은 두 사람을 보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안 그래도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고율이 그렇게 말을 하자 후드를 쓴 마법사는 고율에게 말을 멈추라는 듯 손을 들어 고율의 말을 막았다. 그리고 곧이어 갓을 쓴 술사에게 서대륙어로 뭐라 말을 하자 갓을 쓴 술사는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고율에게 말을 했다.

“바로 이 근처에 우리가 찾던 그것이 있는 것 같군. 장군.”

“이 곳에 말입니까?”

고율은 깜짝 놀라 그렇게 반문을 하고는 혹시 지금 보이는 수상한 구조요청이 두 손님이 하려는 일이 뭔가 관계가 있지 의구심이 들었다.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잠시만 기다리게.”

후드를 쓴 마법사는 이미 뭔가를 느끼고 준비를 해왔는지 후드 속에서 몇 겹으로 겹쳐있는 수정판을 꺼냈다. 그리고 그 수정판을 펼쳐 하나의 판으로 만들었고, 갓을 쓴 노인은 장포속에서 나무덩굴로 된 관을 쓰고 나뭇잎으로 옷을 입은 여인의 모습을 한 하얀색의 나무조각상을 수정판 위에 올려왔다.

나무조각상과 수정판에서 밝은 빛과 함께 12망성이 나타난 걸 확인한 마법사는 손칼로 손바닥에 피를 내 수정판에 떨어뜨리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그 수정판에서 밝은 빛이 나더니 작은 유성이 되어 하늘로 쏟아 올랐다. 밝은 빛이 솟아오르자 그 파동에 거대한 배가 슬쩍 출렁거렸다. 그 밝은 빛이 솟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정판에 붉은 빛과 함께 푸른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수정판에서 배를 주변으로 입체지도가 그려졌다.

수정판에 나타난 붉은 빛은 푸른 빛 바로 옆에 있었다.

“바로 우리 코앞이었군. 실수로 지나갈 뻔 했어.”

갓을 쓴 술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서 고율에게 말을 했다.

“위치를 알 수 있겠는가?”

고율은 격자처럼 줄이 표시된 수정판을 보고서 바로 부하가 가져온 해도를 보고 위치를 파악했다.

“예. 고작 여기에서 2키로미르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군요.”

“그럼 그곳으로 이동하게 그리고...”

갓을 쓴 술사는 마법을 펼친 마법사에게 조용히 서대륙어로 말을 했다. 마법사는 간단해 보이는 마법을 실행했는데도 꽤나 힘들었는지 얼굴에 땀이 흥건했다.

“꽤나 강력해. 누가 벌써 의식을 치룬 것 같아. 우리가 준비한 걸로 충분할 거 같은가?”

“확신을 못하겠군. 어떤 의식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망령들의 사념이 너무 강력해. 차라리 대포를 이용해서 물리적인 타격을 준 후에 결계를 치는 게 좋을 거 같아.”

“좋아.”

두 사람은 서대륙어로 말을 하는 까닭에 고율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꽤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대화를 마친 갓을 쓴 술사는 고율에게 말을 했다.

“가진 모든 포탄을 다 쓰더라도 저 곳을 남김없이 부셔주게. 그 후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그리고 일 끝마치고 이곳에 다시 들르게. 그 동안 우린 저곳에서 머물고 있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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