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38화 (38/107)
  • 38장

    “야! 뭐해! 빨리빨리 안 올라와?”

    연중호는 불귀동에 내려갔던 작삼이 올라오지 않자 대체 뭐하고 있는 건가 해서 불귀동 근처로 다가갔다.

    이제 아침이 시작되고 해가 떠오르려고 수평선에 살짝 머리를 걸치고 있었다. 연중호는 혼자서 작삼을 욕도 하며 투덜거리면서 사다리 근처로 다가갔다.

    그 때

    사다리를 타고 무언가 칼을 쥔 손이 올라왔다.

    ‘작삼인가? 작삼 손이 저렇게 작던가? 그리고 칼은 왜 들고 있어?’

    연중호가 그렇게 생각은 했지만 별다른 경계를 하지 않고 사다리 바로 앞까지 다가갔을 때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그 무언가는 절대 작삼이 아니었다. 그 무언가는 연중호의 머리를 갈라 버렸으니까

    연중호는 지금 일어난 일을 믿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며 쓰러졌다. 연중호의 머리를 가른 자는 칼로 몸을 지탱하며 쓰러지려는 몸을 세웠다.

    크윽..

    크억....

    목에서 무언가 삐져나온다.

    그것이 무언가는 알 수 없었다.

    이유 없는 헛구역질이 나온다.

    -키킥킥 죽여! 죽여!

    -죽여라! 죽여라!

    -다 죽이는 가다! 모조리 다!

    -그리고 너도 죽는 거야! 너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

    환청과 환영이 사방을 뒤덮고 불귀도를 감싸고 있었다. 불귀도의 중앙에 위치한 5개의 석상을 중심으로 환영과 망령들이 원을 그리며 용악과 비석사이를 날아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용악은 지금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걸쳐 있었다. 흔히 말하는 저승의 강에 한 발짝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이었다. 독연은 과연 지독했다. 그 수많은 시체의 불꽃을 억누르면서 용악에게 다가올 정도로.

    하지만 용악은 살아났다.

    그는 자신이 왜 살아났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살아났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독연을 막으려는 방법의 부작용으로 지금 용악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그 중간상태에 걸쳐 있었다.

    사실 용악는 죽었어야 했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옛날 용천이 용악에게 남겨준 선물. 용비의 몸속에 숨어있던 용천의 진원진기 -수백년 이어온 용가(龍家)의 비전심법이 독연과 맞서 용악을 구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용악은 그 사실을 모르리라. 그 누구도 모르리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독연은 정말 대단했기에 용악를 죽음에 까지 몰고 갔고 지금 용악은 죽은 것도 아닌 산 것도 아닌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용악은 지금 끊임없는 환청을 듣고 있었다.

    그동안 용악이 먹었던 시체에 담겨 있던 원혼들.

    그리고 불귀동에서 죽은 자들의 원혼들.

    독연으로 죽은 해적들과 포로들의 원혼들이 지금 용악에게 달라붙어 서로 말을 걸며 정신을 공격해 혼돈상태에 빠뜨려 용악의 몸을 빼앗으려고 하는 중이였다.

    사람이 죽어 혼이 명계로 떠나지 않고 이 세계에 남아 있게 되면 그 혼은 살아 있을 때의 이성과 지성을 잃는다. 그저 다른 이들의 몸을 탐하는 욕망과 다른 이들을 죽이려는 분노와 자신이 죽었다는 것에 대한 슬픔으로 인해 다른 이들까지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그런 감정 밖에 남아 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금 용악에게 달라붙은 원혼들 역시 용악에게 그런 것을 강요하고 있었다.

    아직은 완전한 낮이 아니기 때문에 원혼들이 용악에게 뭐라고 말을 걸고 있지만 낮이 되면 이렇게 활동하지 못한다. 하지만 밤이 된다면 더욱 심해지리라.

    -죽여!

    -남은 자들을 모두 죽여

    -너도 죽는 거야

    -킥킥킥

    명부의 망령들의 자기들끼리 키득키득 웃으며 용악에게 속삭였다.

    ‘죽어? 죽을까? 그냥 죽는거야? 모두 죽이고 죽어? 아아!!’

    용악은 망령들이 속삭이는 말을 듣고 자신의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그렇게 싫지는 않았다.

    오래전부터 느껴왔던 그 감정이다. 이련을 화장할 때 본 그 불꽃 앞에서도 강백호를 화장 할 때의 그 불꽃 앞에서 느꼈던 그 감정들.

    ‘비록 들리지는 않았지만 그것들 모두 망령들이 소리친 것 이였나?’

    하아........

    용악의 온몸이 나른해 졌다. 그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지금까지 봐온 세상이 아니었다. 검은 바다는 붉은 빛으로 번쩍 거리고 알 수 없는 바람처럼 보이는 것들이 눈에 보이듯이 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망령들의 삭아 버린 얼굴들이 모여 기괴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사방에서 모래바람 비슷한 무언가 후끈한 바람이 불어온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이렇게... 안돼! 나는 살아야해! 왜? 왜 살아야하지? 그냥 죽어도 상관 없자나?'

    '그래도 살아야 돼!'

    '왜? 무엇 때문에? 이제 지겹지도 않나? 너를 둘러싸고 있는 이 망령들을 봐 너는 지금 너에게 달라붙은 망령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있나? 그들 모두 네가 죽인거야. 네가. 바로 네가!'

    '아니! 나는 죽이지 않았다. 나는 죽이지 않았다. 저들 스스로 자신들을 파멸의 길로 들어선 거다! 나는 그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 적도!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도 않았어!’

    용악의 인격은 둘로 나뉘어서 끊임없이 서로를 유혹했다. 그렇게 얼마나 서로를 헐뜯었을까. 태양은 이제 완연하게 바다 위로 떠올라 불귀도를 내리 비췄다.

    용악은 가만히 서서 자신에게 비치는 빛의 따스함을 느꼈다. 아니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특히 태양 빛은 항마(降魔)의 성질을 띤 것들 중 가장 강력하고 순수한 것.

    용악을 감싸고 있던 망령들은 기괴한 소음을 내며 사라져 갔다.

    ‘아. 따뜻해...’

    아까 느꼈던 지옥불의 후끈함과는 다른 따뜻한 기분이다. 용악의 초점 잃은 눈앞으로 태양이 모습을 보였다.

    용악이 보기에는 둥그런 무언가가 노랗고 붉은 빛을 내며 떠 있었다.

    ‘아... 그렇구나. 너는 태양이구나... 태양...’

    쉭쉭

    소리를 내며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들이 스쳐 지나간다.

    태양,

    모래바람,

    일몰,

    낡은 성벽,

    사막.

    아......

    아버지.....

    용악은 서축에서의 기억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선명해 지는 기억들은 용악을 탐하던 인격 중 하나를 지옥의 저편으로 몰아내자 용악이 바라보는 세상은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다.

    붉은 빛으로 빛나던 바다는 다시금 검은 빛으로 돌아왔다. 후끈한 지옥의 불길은 점점 사그라지며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왔다. 지옥의 망령들은 모조리 허공에서 녹아내리며 사라져 갔다.

    아......

    아......

    용악은 자신의 목을 두 손으로 감싸며 쓰러졌다.

    아.....

    뭐라고 말을 하고는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면서 지옥에서 현실로 정신이 되돌아오고 있는 중이였다. 저승의 강에 한발을 담근 채 다른 발마저 담글 것인지 아님 담겨있던 발을 뺄 것인지의 선택의 순간에 용악은 발을 빼는 선택을 하였다.

    바다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과거 행복하면서 서글픈 기억들이 다시금 자리를 잡고 용악을 깨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동안 저승에 강에 한발을 담근 용악은 한순간에 수많은 신체의 한계를 극복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대가는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만약 그 대가를 알았다면 저승의 강에 발을 담글 생각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얼마나 그렇게 쓰러져 있었을까.

    용악은 얼굴에 느껴지는 바위의 차가운 감촉을 느끼며 깨어났다. 사실 용악이 시체사이에서 깨어나고 다시 쓰러질 때 까지 걸린 시간은 한 시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저승과 이승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갔기에 그 중간에 껴있던 용악은 지금 몇 달은 자다가 깨어난 기분이었다.

    온몸에는 알 수 없는 힘이 넘쳐흘렀다. 지금이라면 마지막으로 불귀동 에서 봤던 그 젠국 무사와 싸워도 지지 않을 것 같았다. 용악은 손으로 바닥을 집고 일어서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눈이 부실 법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왜지? 왜 눈이 부시지 않지?’

    용악은 자신의 눈을 매만지며 생각을 이었다. 한참을 서있던 용악은 자신의 발에 걸리는 무언가를 그제야 발견 할 수 있었다.

    머리가 갈려져 죽은 해적의 시체였다.

    ‘내가 한 건가?’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용악의 머릿속에 지금까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왜 힘이 넘치고 태양을 마주봐도 눈이 부시지 않는지 따위의 걱정들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냉철한 이성이 고개를 들었다.

    해적이 죽었다.

    불귀도에는 살아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해적이 죽었다.

    그렇다면 불귀도에서 살아남은 자가 있다는 뜻이다. 해적들은 불귀도에서 살아났다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동료가 죽은 것을 알며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순식간에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정리가 되며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해졌다.

    ‘일단은 다시 시체들 사이에 숨는다. 해적들은 불귀동에 발을 헛디뎌 죽은 것처럼 위장한다. 얼마간 숨어 있으면 해적들은 떠날 거야.’

    용악은 쓰러져 있는 해적을 끌어당겨 머리부터 떨어뜨리고는 사다리를 타고 다시 내려갔다. 밑에는 죽어 있는 해적이 하나 더 있었다.

    용악은 그 도르래를 이용해 그 시체를 올리고는 다시금 떨어뜨렸다. 시체를 완전히 훼손되었기에 시체에 나 있는 검상을 자세히 살펴볼 수는 없었다. 용악은 시체를 떨어진 것처럼 잘 포개 놓고는 다시 시체더미 안으로 들어갔다.

    *******

    “야! 작삼 하고 연중호 어디 있는 거냐! 그 자식들 또 어디에 박혀서 안 보이는 거냐!”

    백고래단의 단주 견호랑은 자신의 꼴통 부하인 작삼과 연중호가 어디론가 사라져 지금 머리를 감싸고 짜증을 부리고 있는 중이였다.

    ‘이 망할 놈의 새끼들. 큰 사고 친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또 사고를 쳐? 이 좁은 불귀도 안에서 갈 곳이 어디 있다고 대체 어디에 숨어있기에 보이지 않는거여!’

    “단주님! 불귀동안에서 그 두 놈 발견했습니다.”

    “근데 왜 안 데려와!”

    “그게 죽었는데요...”

    “이 시발. 왜 또 죽고 지랄이야!”

    견호랑은 저기 모래밭에서 자신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를 치던 부하에게 옆에 있던 칼을 던져버리고는 신경질을 냈다.

    ‘젠장. 정말 짜증나네. 대체 또 왜 죽은 거야? 그렇지 않아도 지금 빨리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그의 입장에서 이렇게 쓸데없이 허송세월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장강수로채 놈들이 이제 바다까지 노리고 자신들에게 덤벼드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한 제국 군선들만 해도 버티기 힘들어 죽겠는데 이제는 장강 놈들 까지 와서 덤벼댄다.

    생각하기도 싫지만 만약 곤제국의 서해제독인 이신이 혹시나 이곳에 관심을 가진다면?

    “으으..”

    견호랑은 그것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어찌됐건 지금 빨리 다른 단을 도와주러 떠나야 하는데 그 두 놈 때문에 지체되고 있었다.

    “에이 시발 왜 죽은 거냐?”

    “그게 떨어져 죽은 거 같습니다.”

    “병신 같은 놈들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 왜 떨어져 죽고 지랄이야. 그 병신 같은 놈들 내버려 두고 빨리 타라! 늦으면 큰일 난다! 장강 놈들이 또 덤벼대고 있다!”

    견호랑은 이미 배를 띄울 준비를 하던 부하들에게 다시 한 번 일러주고는 모래 터에 있던 해적들에게 빨리 배에 타라고 신호를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