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33화 (33/107)
  • 33장

    항상 하던 대로 용악은 10일전에 불귀동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해적들이 들어가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용악은 그냥 알아서 들어갔다. 그러는 편이 해적들도 그도 편하니 말이다.

    용악은 자신이 항상 앉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곳은 함정을 파 놓은 자리기도 했으니 다른 사람에게 그 자리를 빼앗겨서는 안됐다. 하지만 그곳에는 용악 또래의 아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용악은 여러모로 놀랐다. 자신의 또래만한 아이를 여기 와서 처음 본 것이 그랬고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신기하기도 했다.

    ‘이 아이도 자신과 같은 아이일까? 무슨 죄. 아니 죄라고 하기도 그렇군, 무슨 짓을 저질렀기에 여기에 와 있는 걸까?’

    그 아이도 용악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흠칫 놀라며 무릎을 끌어안고 있던 손을 좀 더 움츠렸다.

    ‘훗, 경계하는 건가?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어찌됐건 말이나 걸어 볼까?’

    “너 이름이 뭐냐?”

    “으응?......”

    “이름이 뭐냐고.”

    “아.... 이련....”

    그 아이는 용악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용악이 자신에게 다가와 자신의 앞에 앉으며 다시금 묻자 그제 서야 고개를 들어 용악을 바라보고는 대답을 했다.

    ‘이련이라고? 보아하니 남자 같은데 이름은 여자 같군.’.

    “너는 여기 왜 온 거냐?”

    “으으... 나는 사람을 죽였어. 내가 죽였어...”

    그 아이는 고개를 머리로 감싸며 괴로워하며 한마디씩 천천히 그리고 무언가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말을 토해냈다. 토해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한마디 한마디가 무언가에 절어 있었다.

    ‘흠. 이 녀석도 결국 나와 같은 꼴을 당한건가? 도와줘야 하나’

    “아아,.. 그만, 그만”

    용악은 그 아이의 머리를 치며 정신을 깨웠다. 저대로 두면 무슨 짓을 저지를 지도 모른다.

    ‘나도 곽철형이 없었으면 미쳐버렸을지도 모르지.’

    그 아이는 용악에게 맞고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용악을 바라보다가 이제는 울기 시작했다.

    ‘하아... 가지가지 하네. 일단 여기서 살고 볼 일이다.’

    용악은 품속에 가져온 육포덩어리를 만지며 이련 옆에가 누웠다. 흐음.

    ‘육포라. 큭큭 시체도 고기이니 육포라고 할 수 있겠지.’

    그렇게 7일이 지나갔고 여지없이 사람들은 서로들 싸우기 시작했다. 용악은 그동안 계속해서 보아온 것이라 이젠 흥밋거리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련을 그렇지 않은 듯 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아는 척도 하고 걱정도 해주니 말이다.

    ‘자기걱정이나 하지.’

    쿨럭..

    쿨럭..

    이련은 또 피를 토하고 있었다. 소년은 이곳에서 죽어가고 있다. 굶주림이 아닌 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병 때문에. 이련이 말하길 자기는 이곳에 잡혀 온지는 이제 1달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사이에 병을 얻은 것이다.

    치료를 하면 나을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치료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련은 그저 수많은 포로 중에 한명이니 해적들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아이가 죽든 살든.

    ‘그런 점은 나도 마찬가지겠지.’

    용악은 자신의 몸도 주체하지 못하며 피를 토할 때 마다 몸을 휘청거리는 이련의 몸을 잡아주며 옷으로 피를 닦아 주었다. 피를 토하는 것 보니 폐에 관련된 병 같아 보였다.

    “괜찮냐?”

    ‘괜찮냐니.나도 참 쓸데없는 걸 묻는 군. 아예 죽을 듯이 보이는데. 하지만 죽을 듯이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도 저 녀석은 괜찮다고 말할 것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그래왔으니까.’

    “응. 이제 좀 나아졌어..”

    이련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말을 했다.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그런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용악은 이련을 벽을 마주 보게 해서 눕히고 육포를 건넸다. 이련은 다른 사람이 볼 수 없게 조용히 그것을 받아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이련은 용악이 육포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에게도 줘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용악은 물론이고 이련까지 죽을 것이다.

    그래서 용악은 딱 잘라 거절하고 사람들 못 보게 이련에게만 하나씩 주었다. 왜 그랬는지 용악 자신도 몰랐다. 자신의 또래를 만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 녀석이 착해서 그런 건지. 어쨌든 용악은 꼬박꼬박 이련에게 육포를 챙겨 주었다.

    처음에만 거절하던 녀석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그냥 아무 말 하지 않고 받아먹었다. 그렇게 3일이 더 지나갔고 이제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음식이 든 바구니가 내려왔고 사람들은 앞 다투어 달려 나갔고 먼저 나간 순서대로 죽었다.

    지겹게 보아온 장면이었다.

    ‘어쩜 그렇게 사람들은 하나같이 똑같은지 모르겠다. 아니. 이러는 내가 이상한 걸지도 큭큭’

    용악은 이련을 자신의 뒤에 숨기고는 사람들이 하는 꼴을 바라보았다. 이제 서있는 자는 두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용악은 뒤에서 이련이 꿈틀대는 것을 느끼고 왜 그러나 하고 잠시 뒤를 돌아보고 나서 다시금 시선이 바구니로 향 했을 때는 한사람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이 사람은 진짜 고수다. 지금껏 이곳에 왔던 자들 중 누구보다도 더.’

    용악은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다. 자신의 손에는 이미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그 젠국인의 도가 들려 있었고 자신의 품속에는 쇠꼬챙이가 숨겨져 있었다. 도는 그냥 들고 있는 것이고 진짜 무기는 이 쇠꼬챙이이다.

    “그만.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일 거다. 이것 다 먹을 때 까지는 움직이지마.”

    그는 용악의 생각을 눈치 챘는지 용악에게 검을 겨누며 말했다. 그저 보기에 다른 한손에는 고기를 들고 있었기에 그렇게 위압감이 느껴지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의 음성에는 살기가 가득 배어 있었다.

    “네 녀석, 이곳에서 오랜 동안 생활 한 것 같아 보이는 군. 보통은 저 녀석처럼 있는 게 보통인데 말이야. 그리고 그 육포는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거고 말이야.”

    ‘육포를 먹는 것까지 알고 있었던가? 소리도 안 나게 먹었는데... 남들에게 들킬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고 말이야.’

    “아... 너는 완벽 했어. 저 녀석이 문제였지”

    그는 음식과 술을 먹으면서 끊임없이 말을 했다. 마치 이제 죽일 테니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많이 들어나 하는 식으로... 그는 음식을 다 먹고 나서 구경을 하고 있는 해적들을 바라보며 바닥에 누웠다.

    “어이! 여기 이 녀석들을 죽여야 하나?”

    그는 누구인지 모를 해적들에게 그렇게 묻고는 혼자 키득키득 소리를 내며 웃었다.

    ‘흥. 쉽게 되지는 않을걸. 아직 함정은 남아 있어. 정안되면 저 녀석을 방패로 삼지 뭐.’

    용악이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해적들은 소란스럽게 뭐라고 자기들끼리 상의를 한 후에 누군가 불귀동을 향해 소리쳤다.

    “네 마음대로 해라. 쳇 불귀동 에서 3명이나 살아나가다니. 오늘은 너무 시시했어.”

    “안 죽여도 된다고 하는군. 너 운이 좋았다. 그 함정을 믿었다면 후회 했을 거다. 몸속에 숨겨둔 그 무기도 마찬가지고 ”

    그는 누운 체로 용악을 바라보고 말을 했다.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어떻게? 함정은 그렇다 쳐도 품속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지? 그렇더라도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

    그는 여전히 누운 체로 어두운 검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네 친구 피를 토하더군. 무슨 병이라도 걸렸나보지?”

    “...”

    “어른이 물어보면 대답을 하는 거다”

    “...”

    용악은 말할 테는 듣는 사람을 쳐다보고 말하는 거다. 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쳇. 어지간히 말이 없는 녀석이군. 나는 좀 잘 테니 날 밝아지면 깨워라.”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모르긴 해도 그 동안 그도 피로가 쌓였을 거다. 용악은 저 자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두기로 했다. 왠지 모르게 그를 죽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불귀동의 생활은 변하게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