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장 - 불귀동
밤은 깊어갔고 이제 사람들이 다들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자고 있을 때 용악은 자신의 목덜미를 누르는 억센 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용악을 누른 괴한은 순식간에 용악의 볼을 눌러 입을 벌리게 하고는 천을 집어넣고 다른 천으로 입에서부터 목뒤로 돌려 묶었다. 용악이 소리를 지를 수 없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곧바로 천으로 용악의 손을 등 뒤로 묶고서는 용악의 바지를 벗겼다.
‘뭐....뭐 얏. 이 미친놈!’
용악은 서축과 사관관, 군무관에서 병사들에게 들었던 음담패설을 떠올리며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미친새끼! 왜 나한테 이런 지랄이야! 젠장! 젠장! 젠장!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용악은 자신의 엉덩이를 탐하는 우악스러운 손길을 느끼며 소리는 질렀지만 그 소리는 천에 막혀 밖으로 퍼지지는 않았다. 용악을 탐하던 그 손은 미끈하고도 미지근한 액체를 용악의 엉덩이에 바르고는 본격적으로 용악의 엉덩이를 탐하기 시작했다.
‘아! 아프다고! 하지마! 하지마아!!! 곽철형! 형 어디있어! 형!’
용악은 고개를 흔들며 항상 자신의 옆에서 잠을 자던 곽철을 찾았지만 곽철은 보이지 않았다.
‘형! 어디 간거야! 아!! 아파! 이 미친놈아! 하지 말라고!’
용악은 눈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그르륵 거렸다.
‘젠장! 젠장! 제발 풀려라 풀려! 풀려줘. 제발!’
용악은 천에 묶인 손을 비비며 소리쳤다.
“학학, 학학. 역시 날로 먹어도 안 비릴 정도 싱싱하군. 흐흐흐”
용악의 엉덩이를 탐하던 그자는 야릿한 신음 소리를 흘리며 말을 했다. 그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했는지 손을 아래로 내려 용악의 배를 바쳐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용악의 품안에 있던 쇠꼬챙이가 땅으로 떨어졌다.
흥분의 절정에 다다른 그는 쇠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자신에게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던 것을 찾으려는 용악은 그 작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 저것이 필요해! 저것이 필요해!’
용악은 묶인 손을 비비며 풀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용악을 탐하던 그 자는 이제 흥분의 절정에 다다라 용악의 온몸을 쓰다듬다가 용악의 묶인 손을 건들었고 용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손을 빼낼 수 있었다.
‘됐다! 이제 저 것만 잡으면 돼! 이 개새끼! 죽여 버릴 테다!’
용악은 바닥에 떨어진 쇠꼬챙이를 손을 뻗어 집었다. 됐다.
‘잡았다!! 죽여. 죽여 버릴 테다!’
용악은 손에 쥔 쇠꼬챙이로 그 자의 허벅지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푸학!
비록 작은 상처 구멍 이였지만. 피는 엄청나게 품어져 나왔다.
“으아아! 이 미친 자식이!”
용악은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하는 그 자를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는 그자의 손을 쇠꼬챙이와 함께 땅에 박아 넣었다. 땅은 비록 바위였지만 쇠꼬챙이는 개의치 않고 파고들었다.
그동안 피나게 수련했던 일섬의 위력이리라.
“끄악! 이 개새끼. 감히!”
용악을 탐하던 그 해적은 -용악는 이제야 그가 해적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남은 한손으로 용악을 후려치려 했지만 용악은 잽싸게 피하고는 그자의 목에 달라붙어 이빨을 그자의 목에 박아 넣었다.
끄드득.
인간의 근육 중 튼튼한 곳을 고르라면 어디 일까?
여러 곳이 있지만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턱 근육이다.
그럼 인간의 신체 중 가장 단단한 곳은 어디 일까?
바로 이빨이다.
그 두개가 합쳐진 결과를 용악은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용악은 자신의 입안으로 들어온 살점을 뱉어내고는 계속해서 그자의 목을 씹으며 피를 뽑아냈다.
언젠가 여민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의 신체와 정신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정신은 신체를 이끌기도 하고 신체가 정신을 이끌기도 하지. 정신이 신체를 극복하여 정신이 신체를 이끌도록 하는 것은 노력을 하면 할 수 있는 거야.
하지만 신체가 정신을 극복하여 신체가 정신을 이끌도록 하는 것은 정말 어렵지. 그건 진정한 고수들만이 할 수 있는 거야.
생각이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 것.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느끼고 몸이 움직이는 것.
그 정도 되면 어느 정도 신체가 정신을 이끈다고 볼 수 있지.
용악.
너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것이니까 정신이 신체를 극복하는 것부터 연습 하도록 해.-
용악은 여민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암시를 걸었다.
그 해적은 남은 하나의 솥뚜껑만한 손으로 용악의 머리를 후려치고 몸을 후려 쳤지만 용악은 꿈쩍하지 않고 꼭 달라붙어 그의 피를 뽑아냈다.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 난 아프지 않다.
나는 목이 마르다. 나는 목이 마르다. 목이 마르다.
이것은 물이다. 이것은 물이다. 이것은 물이다. 이것은 물이다!’
용악은 끊임없이 자기에게 자기암시를 걸며 그의 손길을 견뎌 내며 비릿한 피를 끊임없이 뽑아내고 삼켰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까.
자신의 몸을 때리던 그 손은 이제 움직이지 않고 그의 몸은 식어가고 있었다. 이제야 죽은 것이다.
"키키키 죽었어! 내 손으로 죽였어! 죽였다고!"
용악은 첫 살인의 충격으로 정신이 미쳐버린 듯 광소를 내질렀고 곧바로 누군가의 발길질을 몸으로 느끼며 용악은 정신을 잃었다.
백상어단을 이끄는 백상어 단주 마형영은 정말 할 말을 잊었다.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조금 격한 훈련을 하며 부하들에게 여자를 만나지 못하게 했더니 어떤 미친놈이 꼬맹이를 탐하다가 죽었다.
그것도 피가 빨려서.
그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할 일이었다.
‘그래 꼬맹이를 탐하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죽느냔 말이다. 그것도 참 괴상하게’
마형영은 자신의 발길질에 날아가 쓰러져 있는 꼬맹이를 바라보았다. 무슨 놈의 피를 그렇게 많이 쳐 먹었는지 꼬맹이 입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토해져 나오고 있었다.
마치 그 꼬맹이의 피가 나오는 것처럼
하지만 저건 모두 자신의 부하의 것 일거다. 그 꼬맹이는 그 상황에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하아. 저거 미친놈이네."
마형영은 참고 참아서 부하 하나 죽는 것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기 쓰러져 있는 갑옷 입은 놈은 -미친놈이 갑옷은 왜 입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저 자식은 맨 손으로 무기를 들고 있던 부하 여섯을 죽였다. 저 꼬맹이에게 다가기 위해서 말이다.
‘참나. 무기도 없는 놈한테 여섯이나 죽다니. 이거야 원 쪽팔려서 다른 단주들 볼 면목이 없네.’
마형영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부하들도 참혹한 모습을 보고 해쓱해 하고 있었다.
‘하긴 저 정도면 심하긴 심했지.’
“야. 추영 이 자식들 불귀동에 집어넣어!”
“불귀동이 열리려면 아직 5일이나 남았는데요?”
“그냥 집어넣어! 병신 같은 자식!”
‘씨발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그냥 집어넣어서 죽여 버리면 되지!’
마형영은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 부하를 발로 차주고는 피 냄새 진동하는 현장을 빠져나왔다.
‘썩을 오랜만에 기분 좋게 마셨는데 다 배렸군. 젠장.’
용악이 정신을 차렸을 때 곽철은 용악을 자신의 허벅지에 올려놓고 앉은 채로 잠에 들어 있었다.
‘아... 형. 그때 왜 없었죠? 네? 형을 기다렸는데. 큭큭. 그래도 내손으로 죽였어. 내손으로!’
용악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며 조소했다.
‘그래도 날 탐하다 갔으니 저승길이 그리 슬프지는 않을 거다. 킥킥’
“깨어났니? 미안하다. 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나서.”
“...”
‘뭐 형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요. 나를 도와주지 못한 것도 이유가 있었겠지요.’
“미안하다. 해적들에게 막혀서 가지 못했다. 미안하다.”
“괜찮아요. 여긴 어디죠?”
용악은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주위는 온통 거무튀튀한 돌들만 보였다. 고개를 들자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돌로 된 큰 구덩이 안에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곳이 불귀동....
용악은 확신 할 수는 없었지만 이곳이 불귀동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구덩이의 깊이는 대략 6미르정도 되는 것 같았다. 구덩이의 넓이는 꽤 커 구덩이의 지름은 대략 10미르 정도는 될 듯 했다. 사다리나 다른 어떤 암벽을 타는데 도움이 되는 무언가가 없다면 빠져나가기는 힘들어 보였다.
곽철은 조용히 용악이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속에 묻혀서.
용악과 곽철이 갇히고 난 날로부터 5일이 지났을 때 불귀동으로 사람들이 들어왔다. 대략 30명 정도 될 듯했다. 한명씩 천천히 사다리를 통해 내려왔다.
지난 5일 동안 용악과 곽철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니 곽철은 약간의 고기를 갑옷 안에 숨겨서 가져왔지만 그것만으로는 이곳에서 버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언제 나갈지도 모르니...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가 와서 물을 마실 수 있었다는 것 정도?
사다리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서로를 경계하며 벽 에 등을 기대고 차례차례 앉기 시작했다. 이들도 모두 용악과 곽철처럼 해적에게 포로로 끌려온 자들이었다.
‘다만 우린 좀 더 이곳에 일찍 들어온 것 일 테고’
사람들이 다 내려왔을 때쯤 위에서 뭐라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는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도 사람들은 모두 벽에 붙어 있었기에 재수 없게 그것에 맞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떨어지면서 꽤 큰소리를 냈다. 떨어지면서 그것은 여러 개로 흩어졌다.
용악이 자세히 살펴보자 그 떨어진 물건들은 무기들이었다.
젠국도, 곤 제국도, 언월도, 삼지창. 단검 수도 없이 많은 종류의 무기들이 바닥에 흩어졌다. 사람들은 의아해 하면서도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조심조심 다가가 자신의 손에 맞는 무기들을 집어 들었다. 곽철도 자신에게서 멀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떨어진 도를 집어 들었다. 곽철은 마치 살아 돌아온 애인을 어루만지듯 그 도를 만졌다.
도는 보통의 한 제국식 장도였고 도파는 검은색 가죽으로 감겨져 있었고 도파머리에는 알 수 없는 모양이 새겨져 있었다. 용악이 자신의 도를 자세히 보고 있자 곽철은 용악에게 도를 건넸다.
용악는 도파머리에 새겨진 장식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어떤 모양인지 손으로 만져보았다. 무슨 장식인지 알 수 없었다. 용악이 곽철을 바라보자 곽철은 조용히 웃으며 말을 했다.
“표범머리이야. 눈으로 봐서는 안보이지. 밝은 날 봐야 알 수 있을걸. 자꾸 만져 보다보면 알 수도 있고.”
용악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고 곽철은 그런 용악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표범무늬라. 호표기라는 것과 관계가 있는 건가? 호표기들이 쓰는 무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