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29화 (29/107)

29장 - 불귀도 : 준비

용악과 다른 선원 및 죄수들은 포박을 당한 체로 배 갑판에 우두커니 뭉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심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기분 좋은 바닷바람은 그들의 얼굴을 간지럽게 했다.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상당히 오랜 시간을 이렇게 묶여 있는 듯 했다. 줄을 느슨하게 풀었는데도 손에 피가 잘 안 통하는 것 같았다. 용악이 그렇게 생각을 하며 비록 손목까지 밖에 안 올라가지만 손을 주무르려 할 때 드디어 해적들의 근거지인 동해군도에 도착했다.

동해군도는 말 그대로 동해에 모여 있는 섬을 가리켰다.

사람이 살만한 섬은 대략 50개정도 되었는데 그것들 모두 해적들의 차지하고 있었다. 섬과 섬 사이는 물길이 그렇게 강하지는 않았지만 수심이 얕아 큰 배가 들어오기는 힘들었다. 물론 해적들은 물길을 알았기에 침몰하지 않고 알아서 다 운행했다.

용악과 다른 포로들은 해적들을 마중 나온 다른 해적들에게 인수되어 다른 해적선에 타 이동했고 그들이 타고 온 군선은 해적들이 몰고 어디론가 향했다. 다들 분담하여 일처리를 하는 것을 보니 꽤나 군기가 잡힌 듯 보였다. 해적하면 대충 여자나 끼고 술을 마시는 모습을 상상했던 용악은 역시 책은 밑을 게 못 된다고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용악과 포로들이 배에서 내린 곳은 동해군도의 남쪽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는 돌섬이었다. 돌섬을 가운데 두고 주위의 3개의 섬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어서 만약에 빠져나가려 한다면 매우 힘들 것으로 보였다.

돌섬은 말 그대로 돌섬이었다.

나무라곤 하나도 없고 물이 솟아나는 우물도 없었다. 그저 있는 것이라고는 회색의 화강암과 군데군데 쳐져 있는 천막들 뿐 이였다. 아무래도 동해군도는 화산섬 같았다. 그리고 이곳은 그냥 용암이 조금 분출한 곳처럼 보였다. 마치 기생화산처럼 말이다.

물론 이것은 용악이 생각한 것이 아니고 용악과 함께 온 곽철이 생각한 것이다. 용악는 아직 이런 것을 배우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용악은 그저 사람 죽이는 것 밖에 배우지 못했지 않은가.

돌 섬은 섬 가운데로 갈수록 높아지는 듯 했다. 즉 돌 섬의 가운데에 돌 산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돌산의 최정상에는 거대한 5개의 비석이 서로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비석 주변에는 번개 맞은 나무처럼 바싹 마른 검은색의 나무가 마치 덤불처럼 엉켜있었다.

그 나무들 중앙에 비석이 있었는데 마치 지금의 9대신전 이전의 과거에 존재했다던 고대신전의 기둥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4개의 비석은 오각형을 이루며 거인의 발처럼 박혀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석들은 침식되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할퀴고

비바람이 때리고

그리고 이곳에서 해적들에게 죽은 수많은 원혼들이 기둥을 좀먹었다.

기둥에는 용악이 알아 볼 수 없는 이상한 글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지만 침식이 너무 심해 글자를 아는 사람이라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 침식이 가장 많이 일어 난 곳은 비석의 끝에 올려 져 있는 거대한 조각상들이었다.

너무 많이 훼손당해 본 모습을 찾기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조각상들이 처음에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은 할 수 있었다.

나체의 여인을 조각한 모습.

긴 뿔을 가진 염소머리를 조각한 모습.

부리가 기이할 정도로 긴 독수리머리를 조각한 모습.

마치 해골처럼 뼈만 있는 인간을 조각한 모습.

용악은 기이한 그 조각상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책 속에서만 보던 지옥의 악마들을 조각해 놓은 것 같았다. 그 조각상들과 기둥을 처음 본 다른 포로들 역시 용악처럼 그 조각상에서 흘러나오는 불길한 기운에 다들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두려움과 불안감에 떠는 새로 온 포로들을 보며 이미 잡혀있던 다른 포로들은 그 기둥에서 멀리 떨어져 개미처럼 달라붙어 돌을 파내고 있었다. 그렇게 파낸 돌을 옮겨서 천막 밑에서 어른 머리통만큼씩 쪼개고 그걸 다시 배에 실어 다른 섬으로 옮겼다.

‘아. 이곳은 다른 섬의 성을 만드는데 필요한 돌을 채석하는 곳이구나.’

재수 없는 기둥에서 멀어진 용악은 찜찜한 기분을 애써 날려버리고 섬을 한눈에 보고서 섬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용악과 다른 포로들은 수갑과 족쇄를 차고 정과 망치를 들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대충 보니 해적들도 군데군데 석궁과 칼을 차고 있었다.  흔히 보이는 채찍은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 이곳이 있는 사람들을 제제 하는 것이 있는 듯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용악도 노역에는 예외가 아니었다. 이상한건지 아님 당연한 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용악의 나이 또래는 없었다. 다들 적어도 신체적으로는 장년인 자들만 있을 뿐 이였다.

‘이곳에 끌려오지 않았는지 아님 끌려와서 죽었는지 모르지만.’

용악이 정과 망치를 가지고 해적에게 이끌려 간 곳은 허름한 천막이 쳐져 있는 곳이었다.  이곳 돌섬은 나무라고는 없다. 아니 그 재수 없는 비석 근처에 나무가 있긴 하지만 그건 덤불처럼 생겨 건물을 짓기에는 부적합하고 또 사람들은 그 곳에 가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그늘 진 곳이라고는 천막을 친 곳과 때에 따라 변하는 돌산의 그림자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군데군데 천막이 쳐있는 것이었다.

용악이 도착한 곳에서는 큰 덩어리로 운반되어온 돌을 쪼개서 어른 머리통만한 크기로 즉 벽돌 모양으로 다듬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용악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 없으리라.

용악은 그렇게 돌섬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 에 내리쬐는 곳.

이글이글 익는 회색의 바위에서 연신 김이 솟아 나오는 듯 하는 곳.

마치 흰 화선지위에 튄 한 방울의 먹처럼 푸른 바다위에 있는 이질적으로 존재하는 회색 섬.

바로 용악이 돌을 깨고 있는 그곳 바로 돌섬,

불귀도.

용악이 이곳에 도착한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대충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해적들이 어떻게 하는지 자신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데에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용악은 자신과 함께 돌을 깨는 사내. 아니 사내라고 부르기도 힘든 오히려 노인에 더 가까운 사내에게서 이곳을 자식들은 불귀도 라 부르고 해적들도 그렇게 부른다고 말해주었다.

불귀도.

돌아갈 수 없는 섬,

그렇다.

그들이 지은 섬의 이름이 그들의 운명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이 섬에 있는 포로들은 모두 200명 정도 되었다.

그 중에서는 난다긴다하던 무림인도 혹은 순박했던 농민도 바다와 싸워가며 지내던 어부도 그야말로 무수한 직업을 가진 자들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그들이 어찌 탈출할 생각을 안했을까.

그런데 이곳에서 어떻게 탈출한다는 말인가?

이곳은 섬.

이곳에서 대륙. 그 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한 제국으로 가려고 하더라도 배를 타고 적어도 10일은 가야했다.

그런 배를 돌만 가득한 이곳에 어디서 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사방에서 해적들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담하게 배를 띠울 수 있는가!

그랬기에 탈출을 하려 했던 무림인들은 모조리 불귀동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말을 해주었다. 용악이 이곳에 와서 어째서 포로들을 다그치지 않는 가 했던 의문의 해답은 바로 불귀동이였다.

그곳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말을 안 듣는 포로들을 죽인다고 들었다. 어떻게 죽이는지는 듣지 못해서 용악은 몰랐다. 그저 불귀동에 들어가서 살아 돌아온 포로가 없으니 불귀동이라고 불린다는 것만 알았다.

용악은 자신이 들었던 말들을 정리하며 돌을 쪼갰다. 오늘은 해적들이 돌을 실으러 오는 날이다. 불귀도의 채석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해적들도 그렇게 독촉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용악이 생각하기에 이상한 점은 이곳 해적들이 과연 해적들이 맞나 싶다는 점이다. 다른 곳은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곳 해적들은 대체로 포로들을 건드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물론 반항하거나 다른 포로들을 선동하는 포로들을 불귀동으로 데려가긴 했다 하지만 보통 때 모여 있는 모습이나 포로들을 대하는 모습들이나 다른 해적들에게 대하는 모습을 보면 이건 해적 이라기보다는 군인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랬기에 포로들이 마음 놓고 느긋하게 채석을 하더라도 그들은 재촉하지 않았고 거의 5일에 한번 씩은 돌을 실으러 배가 왔다. 그래도 한번 실어가면 적어도 5척은 왔다가니 그렇게 적은 양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이 섬은 먹을 것도 없기 때문에 -낚시도 할 수 없다. 낚시 기구가 없으니- 해적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처럼 해적들이 몰려오는 날이면 많은 음식과 술을 가져다주기에 나름대로 포로들도 오늘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해가 질 때쯤.

붉은 태양이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 갈 때 쯤 배에 돌을 가득 채운 포로들과 해적들은 용악의 예상대로 해적들은 해적들끼리 모여서 그리고 포로들은 포로들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고 오랜만이 구경하는 제대로 된 음식들을 먹었다.

이것이 만약 포로들을 해적들로 만들기 위한 심리적인 전략이라면 그 전략을 세운 이는 관연 대단하리라.

‘대단하든지 말든지. 일단은 나부터 살 일’

용악은 다짐을 하며 쉽게 해적들과 친해지는 포로들을 보며 조용히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를 집어 삼켰다.

한 달 만에 먹어보는 고기다.

아니 처음 왔을 때는 뭐가 뭔지 몰라 얻어먹지도 못했기에 근 두 달 만에 먹어보는 고기였다.

무슨 고기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고기다.

용악은 사관관에서 배운 생존수칙들을 되새기며 고기를 씹어 먹었다.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갔고 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을 벗 삼아 사람들은 모여서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곽철 형은 고집스럽게도 갑옷을 벗지 않고 용악의 앞에서 고기를 먹고 있었다. 술은 손도 안 댄 채 말이다.

‘여기에 온지 벌써 두달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갑옷을 안 벗고 있는 것을 보면 형도 정말 대단해. 솔직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용악은 그렇게 생각하며 곽철을 쳐다보았다. 두 달 동안 곽철은 용악에게 부단하게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가르치려 했다. 마치 무언가에 쫒기는 사람처럼...

용악은 그런 것까지는 알지 못한 체 그저 많이 알면 알수록 자신이 살아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가르침을 뼛속깊이 새겨 넣고 있었다.  곽철은 용악에게 항상 자신은 다른 대장군부 병사들과는 달라서 자신은 일당 십 혹은 이십도 되지 못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저 자신은 일당 오,륙정도라고. 용악은 '보통 병사들은 일당 일도 힘듭니다.' 라고 말하려다가 애써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은 무력보다는 이것저것 잡다한 것들을 많이 익혔다고 말을 해 주었다.

예를 들면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는 방법들.

어떠한 상황에서도 먹을 것을 찾는 방법들.

손 과 눈짐작으로 거리를 재는 방법들.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들.

일반인과 무림인들을 구별하는 방법들.

그야 말로 어느 한쪽에 편중되지 않은 엄청난 지식을 용비는 곽철에게서 배워가고 있었다. 아니다. 배운다는 것 보다는 빼앗아간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날이 갈수록 곽철은 점점 힘들어 하고 있었다.

“형. 그 갑옷 좀 벗으면 안돼요? 보는 제가 더 힘들어요.”

“아. 이거? 안 돼. 우리 호표기 아니 대장군부 군인들은 전장 한복판에서도 그리고 아군의 진형의 숙소에서도 갑옷을 벗지 않아.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명예며, 긍지이니.”

곽철은 말을 하다가 도중에 갑자기 말을 돌렸지만 용악은 들을 수 있었다.

‘호표기라고? 그건 또 무슨 부대지. 곽철형은 그 부대 소속이라는 건가? 흠... 한번도 못 들어본 부댄데. 뭐 상관은 없겠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까. 그래도 이런 곳에서 갑옷을 입고 있는 건 멍청한 짓이야.’

“형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인 것 같은데요?.”

“괜찮아. 아직은 버틸 수 있어. 이래 뵈도 나는 꽤 강하다고.”

곽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어 보이며 고기를 뜯어 먹고 있던 용악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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