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26화 (26/107)

26장

사관관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항상 아침에 일어나서 구보 아침 먹고 훈련. 점심 먹고 훈련. 저녁 먹고 훈련. 정말 밥을 먹다가도 토할 만큼 징그러운 이야기지만 사람은 상황에 적응하는 동물 아닌가.

이런 생활이 몇 달 하다 보니 다들 몸에 익어 다들 그냥 그러려니 했다. 어릴 때 노력해야 어른이 되어 편하다는 격언을 떠올리며 용악은 열심히 땅을 팠다. 오늘은 처음으로 제 4연무장에서 매복훈련을 받는 날이었다. 대체 매복과 땅 파는 것과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키기에 열심히 팠다.

용악이 이곳에 온지도 벌써 칠일이 지났다. 하지만 조창은 용악을 건들이지 않았다.

호오라 조창이 용악을 용서를 한 것인가!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원래 어린애들끼리는 아무 일 아닌 것 가지고 원수가 되기도 하지 않는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피를 보게 만든 용악을 그럼에도 건들지 않는 이유는 이제 내일부터 시작되는 가을대전이 열리기 때문 이였다.

가을대전이란 말 그대로 가을이 되면 매년 열리는 대회였다.

궁술, 승마술, 그리고 비무! 역시나 무림인들이 많은지라 비무는 어딜 가나 빠지지를 않는다. 예비 졸업생들이 우승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또 꼬맹이들 노는 것을 구경하는 게 어른들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귀여운가. 그랬기에 예비졸업생들 뿐만 아니라 신입생 및 다른 아이들도 참가를 했고 한 번도 빠짐없이 가을대전은 개최가 되고 있었다.

가을대전을 앞두고 다들 수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에 특히 예비 졸업생인 조창은 더욱 그러했기에 용악에게 신경을 쓸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용악은 가을대전에 대해 생각을 하며 열심히 땅을 팠다. 솔직히 신입생들이 참가를 한다 해도 신입생이 어떤 성과를 거두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신입생들은 그저 가을대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열심히 훈련을 했다.

그렇게 신입생들은 훈련을 받고 예비졸업생들과 중급생들이 열심히 수련을 하였고 가을대전은 순조롭게 시작이 되었다.

첫째 날은 궁술대전이었다. 용악은 알지도 못하는 선배가 우승을 했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갔다.

둘째날은 마상무기술 대전이 열렸고 이날은 용악도 아는 모용소천이 우승을 했다. 아무래도 기마민족의 후예인 모용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놀라운 승마술을 보이며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쳤다.

용악이 보기에도 모용소천의 승마술을 굉장했다. 사실 용악 자신도 나이가 들어 몸이 커지면 저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 비무 대전이 있는 날.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날은 용악에게 있어서의 고행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었다.

비무대전의 방식은 간단했다. 비무를 원하는 자가 나와서 비무를 받으면 된다. 3번 이상 이긴 사람끼리 다시 모여서 비무를 하고 한번 이기면 한 계단 올라가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비무대전에서 우승을 한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비무대전은 나름대로 꽤 의미가 있었기에 대장군부에 적을 둔 장군 들뿐만 아니라 인근은 다른 무림문파의 어른들도 많이들 참석을 했고 황제를 비롯한 몇몇 황족들도 참석을 했다. 그랬기에 정말 황송하고도 대단하게도 친히 황제가 우승을 한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 치열한 비무대전 끝에 용악이 재수 없게 생각하던 조창이 우승을 하였고 조창은 황제 앞에서 신입생인 용악과 비무를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황제와 다른 장군들 그리고 무림세가의 어른들은 정말 황당했다

무슨 우승소원이 신입생과의 비무를 해달라는 것인가! 그 신입생이라는 용악이라는 아이가 그렇게 대단한 아이라는 말인가! 대체 왜! 그런 소원을 빌었는가!

추측이 난무 했으나 황제는 흔쾌히 소원을 들어 주었고 그 결과 용악은 창을 들고 지금 비무대 앞에 서 있었다.

‘미친 자식 대체 왜 나하고 비무를 하자는 것이냐! 그렇게 소원을 빌게 없었냐!’

“흐흐흐 이 빌어먹을 반역자의 자식아”

조창은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리고 조용하게 용악에게 말을 걸었다.

“쳇. 빌어먹을 자식아.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러는 거냐!”

“흐흐흐. 아무렇게나 짖어대라. 내가 왜 너를 지목했는지 궁금하지? 흐흐흐 난 네 녀석이 싫었기 때문이야.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널 내 앞에서 무릎을 꿇리고 싶었거든.”

‘설마 그런 황당한 이유로? 너 정말 바보냐?’

용악은 정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조창을 바라보았고 조창은 용악의 표정을 어떻게 읽고서는 말을 이었다.

“훗, 다른 사람들을 속여 먹을 그건 일단 표면적인 이야기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지만. 중요한건 넌 이 자리에서 죽.는.다 비무에서 죽었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으니까”

지금 말하는 조창은 조금 전까지의 조창의 모습 그리고 모용소천과 항상 투닥 거리며 다른 아이들을 내세워 치기어린 행동을 하던 조창과는 완전히 달랐다.

‘이 자식은 날 진짜로 죽일 작정이다. 그런데 왜 자신의 본심을 숨기고 있었지? 무엇 때문에? 대체 왜? 그리고 나를 죽여야만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용악은 조창의 몸에서 풍기는 살기에 긴장을 했다. 지극히 미약한 살기였다. 즉 비무대 밖에 있는 사람들이 눈치를 채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고수들은 눈치를 챌 수도 있겠지만 비무에서 이정도의 살기가 흘러나오는 것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갈 것이다.

하지만 조창 바로 앞에 서있는 용악은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몸을 휘감는 살기를 말이다.

‘그때의 그 자객이 이럴 때 도움이 되다니.’

용악은 자신의 상처를 한번 쓰다듬으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조창은 모르겠지만 용악은 꽤 큰 희생을 하고 지금보다 더한 살기를 맛보았다. 이것으로 위축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지만 용악이 위축이 되건, 안되건 간에 애초에 그는 조창의 상대가 아니었다.

조창의 창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역시 대단했다. 하지만 기세만으로는 죽일 수 없는 법이다 물론 대종사나 천하제일인에 근접하는 고수의 기세는 대단하겠지만 조창은 아직 그 수준은커녕 발끝도 못 미치는 실력이다.

하지만 용악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지만 천하제일인에 근접하다는 자신의 아버지와 항상 대련을 해오지 않았는가. 적어도 기세만으로는 절대 굽히지 않는다!

“후후. 그래야지 이 정도에 쓰러지면 재미없지. 안 그래?”

‘그래. 확실히 다르다. 지금 모습은 호랑이가 토끼를 앞에 두고 장난을 하는 것과 같잖아! 지금의 조창은 지금까지의 조창과는 완전히 달라! 말하는 투도 그 분위기도! 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왜 하필 나한테 이러는 거냐!’

용악은 압박하는 기세를 흘리며 조창에게 달려들었다. 그동안의 수련의 효과가 있었는지 용악의 창은 꽤 매서웠다. 하지만 조창은 비무대전에서 우승을 한 아이. 수많은 예비 졸업생들을 이겨내고 우승한 아이다. 절대 용악에게 지지는 않는다.

용악의 창은 번번이 조창의 창에 가로막혔다. 둘 다 육가창식으로 대련을 하고 있기에 서로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체격과 키의 차이가 있는 터라 똑같이 막아도 충격이 점점 쌓이고는 있었다.

용악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육가창식에서 용아창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직 완벽하지 않은 육가창식으로는 공격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기에 조창의 창도 점점 변화를 일으켰다. 조창의 창이 변화를 일으키자 용악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제 조창의 창에 몸을 내주기 시작했다.

‘젠장! 막을 수 없다! 힘도 다 떨어졌어! 이 빌어먹을 자식! 어떻게 하지! 정말로 죽일 기센데!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더 이상 막을 수는 없어 단 한방! 단 한방을 노린다!’

용악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완벽한 수세에 몰려 방어를 했다. 조창도 그것을 알았는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용악을 압박했다. 하지만 아까의 그 토끼를 앞에 둔 호랑이의 모습과는 다르게 한껏 여유를 둔 모습이었다.

사실 조창이 생각하기에는 지금까지 용악이 버틴 것 만해도 대단한 것이었다. 그 자신도 이렇게 오랫동안 용악이 버틸 줄은 몰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변하지는 않지. 이제 슬슬 지겨워지는군.‘

“아... 지겹군 좀 더 보여줄게 없다면 이제 끝이다.”

용악은 조창의 말을 듣고 자신의 최대 위기를 짐작했다. 조창은 먹이를 앞에 둔 독사 같은 눈으로 용악을 바라보며 창을 찔렀다.

조가창법(曺家槍法) 통천경(洞天耿)!!

지금까지와는 다른 속도! 다른 파괴력! 젠장!

하지만 이번만 어떻게 처리하면 한방을 먹일 수 도 있다.

‘살을 내주고 뼈를 깎는다! 이렇게 나온 이상 나도 어쩔 수 없다! 내가 죽더라도 너만은 죽이고 가마! 이렇게 억울하게 죽을 수는 없어!’

용악은 날아오는 빛살을 옆구리로 받아내며 조창의 창을 멈추게 하였고 조창이 잠시 머뭇한 찰라 그의 오른손에서 맹렬히 일어난 회전을 창에 담고 그 창을 내질렀고 조창의 다리에 닿기 바로 직전에 왼손에서 일어난 순간적인 역회전!

용아창법(龍牙槍法) 흑산포(黑散爆)!!

용악은 비밀리에 아무도 모르게 특히 여민도 모르게 몰래 몰래 익혀 두었던 흑산포를 결국 조창에게 사용하고야 말았다.

조창은 용악의 옆구리에서 창을 뽑아내고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흑산포에 맞은 다리에서 충격에 쏴아 하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조창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견뎌 냈다. 다리의 뼈는 적어도 금이 간 듯했다. 그렇게 조창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머뭇거릴 때 용악의 창은 다시금 회전을 일으키고는 조창의 어깨로 날아갔다.

하지만 조창은 용악의 창을 쳐내 빗겨내고 용악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 긴박한 순간에 조창은 용악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잠시 움찔 거렸다

‘웃다니? 지금 자신의 목숨이 위험 할텐데? 함정인가?’

조창이 용악의 웃는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느낌을 가지고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렸고 조창이 몸을 날리자마자 그가 있던 자리로 창이 내리 꽂혔다. 빗겨낸 용악의 창은 오히려 그 힘을 더하고 또 이용해 위로 한 바퀴 돌아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조창이 뒤로 몸을 날리는 그 틈을 노치지 않고 뒤따라 몸을 날린 용악의 창은 조창의 가슴으로 날아갔다.

‘이 기회를 놓치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 한계다! 마지막이야!’

용악은 속으로 그렇게 점점 감기는 눈을 깨우며 창을 내질렀다.

석교관은 성황리에 전개된 비무대전에 매우 흡족했다. 다행히도 황제폐하께서도 만족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조창이 비무대전에서 우승한 것은 그도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일이였다. 그는 조창을 다시 봐야겠는 걸 하며 조창이 황제 폐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을 보았다.

이윽고 황제폐하께서 결정을 내리시고 조창은 비무대로 올라가 용악을 불러냈다.

‘뭐지? 왜 용악을! 석교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황제폐하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게? 어쩌자고?’

하지만 황제는 조용히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는 비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신경 쓰지 말라는 의미였다. 석교관은 어찌 된 일인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용악의 실력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적어도 배는 뛰어났다. 혼자서 열심히 훈련하는 것으로 봐서는 무언가 성과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실력이 향상될 줄은 몰랐다.

그렇게 진행되던 비무가 용악이 조창의 창에 맞으면서 급반전했다. 이젠 비무가 아니라 비무를 빙자한 진검 대련이었다. 누군가 한명의 목숨을 가져갈 그런 진검대련.

그리고 그 목숨은 용악의 목숨이 될 확률이 컸다. 석교관이 어떻게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조창도 역시 용악의 창에 맞았고 뒤이어 용악의 창이 조창의 가슴을 향해 날아갔다.

‘헉! 흑산포! 정말 제대로 된 흑산포다! 어떻게 벌써 저것을 사용할 수 있는 거지! 그냥 단순한 기술인줄 알았는데 흑산포라니! 상체에 한방만 맞아도 무조건 조창은 즉사다. 그러면 용악 역시 무조건 사형이다! 안 돼! 어떻게든 용악은 살려야 한다! 빌어먹을 황제폐하! 당신은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것입니까! 아님 제가 이렇게 막을 줄 알고 그런 결정을 하신 겁니까!’

석교관은 용악이 흑산포로 조창의 다리를 맞추자마자 일어나 주위의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을 빼앗아 들고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다행히도 아슬아슬하게 용악의 창이 조창의 가슴을 찌르기 전에 석교관은 용악의 창을 막아낼 수 있었다.

‘젠장. 흑산포라니! 그것도 이 나이에 이런 위력이라니! 빌어먹을 정체가 들어날까 안 쓰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군.’

육가창식(六加槍式) 전 일식(前 一式) 흑방총벽(黑防摠壁)!!

석철원은 대장군부 밀전무공 중의 밀전무공인 육가창식 전반부를 펼쳐 무서운 속도로 날아오는 용악의 창으로 뛰어 들었다.

조창 앞에서 용악을 가로막고 서자 용악의 눈이 보였다. 자신의 몸을 지탱하기 힘든 듯 감기려는 눈을 억지로 크게 뜨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더 처절하게 보였다.

‘왜 막는거죠? 왜? 이제 끝낼 수 있는데 이 지친 몸이 쉴 수 있는데.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든데. 왜? 막는거죠?'

'왜! 포기하는 거지! 왜! 너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녀석이 죽는다면 너는 필시 죽을 수밖에 없어! 그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너의 아버지를 위해서도! 나의 주군을 위해서도!‘

‘당신이 뭔데! 당신이 무얼 안다고! 내가 그동안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는데! 당신이 뭔데!’

용악과 석교관은 눈을 마주치며 소리 없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의 창은 멈추지 않았고 굉음을 내며 부딪쳤다.

하지만 석교관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용악의 창은 그다지 큰 힘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석교관의 창에 막힌 용악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뒤로 튕겨져 쓰러졌다.

‘젠장. 몸이 안 풀렸더니, 힘 조절이 덜 됐군. 하아 이거 정말 미치겠네. 돌겠네.’

석교관은 창을 바닥에 놓고 뒤로 날아가는 용악을 향해 몸을 날렸다.

1333년. 가을바람이 불어오든 어느 날. 한 아이의 눈물겹게 처절한 인생은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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