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23화 (23/107)
  • 23장

    석교관, 석철원은 용악를 의약당으로 대리고 와 침상에 눕혔다.

    아무래도 정신적 충격을 억지로 참으려다 혈이 약간 손상된 것 같았다. 상태를 보아하니 그렇게 크게 다친 것은 아니어서 오늘 푹 자고 일어나면 나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외상이 아닌 정신적인 상처였다. 용악의 아버지가 그렇게 치욕스러운 일을 당했는데 얼마나 억울할까. 석교관은 직접 서축에 가지는 않았지만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 용천대장군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 분을 반역자로 만들다니!

    아무리 죽은 사람이라지만 이럴 수 있는가!

    당사자가 아닌 자신도 이렇게 화가 치미는데 당사자인 용악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용악은 침상에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석교관은 단지 잠시 기절을 시키기 위해 혈을 누른 것이어서 바로 깨어 날 수 있었다. 용악은 여기가 어디인지 가만히 눈만 돌리며 살펴보았고 자신 옆에 누군가 앉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 석교관이구나. 이 사람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와 준건가.’

    “깨어났느냐? 깨어났으면 이제 합숙소로 가자. 여기 오래 있는 것도 좋지 않다.”

    “혹시, 용천대장군. 제 아버지 아세요?”

    “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도 안다. 그분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지. 다만 시기가 좋지 않아 그 분의 죽음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제지.”

    “그렇군요”

    용악은 아까와는 사뭇 다르게 안정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무언가.

    그의 내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린 것 같았다. 하지만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의약당 병실 안에서 침상위에 일어나 앉아 있는 용악의 두 눈은 무언가 알 수 없는 기괴한 안광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었지만. 훗날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눈빛은 마치 복수를 다짐하는 눈빛과도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석철원은 애써 용악의 눈빛을 외면하고 용악을 합숙소에 대려다 주면서 좀 더 주의를 하기를 당부했다.

    물론 조창에게도 주의를 줄 것이다. 하지만 조창은 바로 조정의 실세인 조비의 아들. 그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이이기도 해서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용악이 합숙소에 들어오자 조식과 그 친구들은 용악에게 다가와 뭐라 말을 건넸지만 용악은 피곤하다는 말만 하고 자신의 번호가 적힌 자리에 누웠다. 조식은 연신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기 형이 용악한테 그렇게 할 줄은 몰랐다고 하면서 울고 있었다.

    ‘아.. 이 녀석이 말 한 거였나? 조창이라고 했던가. 이 녀석은 조식이고 그럼 둘이 친형제라는 말인가. 조창. 언젠가 후회하게 해주마. 그것도 빠른 시일 내에.’

    용악은 타오르는 감정을 애써 가다듬었다.

    현재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창! 얼핏 봐도 자신과 상대도 되지 않을 만큼 강한 놈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강해지는 게 우선이다.’

    용악은 내일부터 어떻게 수련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도 어제와 같은 일상이었다.

    구보를 하고 아침식사를 하고 제 2연무장에가서 궁술훈련을 하고 점심식사를 했다. 하지만 어제와는 다른 일이 오늘은 벌어났다. 바로 조창이 용악에게 다가와 용악을 건드린 것이다.

    조창이 어젯밤에 말한 것이 이것을 의미하는 듯 했다. 조창은 자신들 패거리와 함께 용악에게 다가와 밥을 먹고 있는 용악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푹푹 누르며 건방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조운과 허산, 마충을 뺀 용악 주위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조창이 다가와서 말하는 것을 보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곳으로 갔다. 하지만 은근슬쩍 이쪽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야. 반역자 자식. 밥이 잘 넘어 가냐? 응?”

    조창과 그 패거리들은 별로 웃기지도 않은 말을 하고서 지들끼리 키득 키득대며 웃었다.

    용악은 자신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생각하던 중 오래전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나섰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용악과 용천은 분위기에 취해 호위병도 멀리 띄어 놓은 채 사냥을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굶주린 승냥이 떼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승냥이들 입장에서는 맛있는 식량이 둘이나 나타났으니 기뻐하며 달려들었지만 재수가 없게도 맛있는 식량은 먹을 수 없는 식량이었던 것이다.

    “아들아 저기 가장 앞에 있는 승냥이가 보이지? 저 녀석이 저 무리의 우두머리란다 승냥이 떼라는 건 우두머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녀석들이지 그래서 대장만 죽이면 나머지들은 알아서 물러간단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고는 순식간에 화살을 날려 가장 앞에 서있던 우두머리 승냥이를 꿰뚫어 버렸고 우두머리를 잃은 승냥이 떼들은 용악과 용천을 어찌 하지도 못하고 다 물러가 버렸다.

    ‘지금이 그때와 마찬가지 상황이야. 승냥이 우두머리가 저 조창이라는 녀석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고.’

    “사관관밥은 서축보다 맛있군요. 선배도 드실 겁니까?”

    용악은 조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젓가락으로 밥을 들어 조창에게 들이 밀었다.

    주위에서 헉!헉! 하며 아이들이 놀라 입을 틀어막는 소리가 들렸고 조창은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했는지 얼굴이 시뻘게 져서 화난 목소리로 용악의 뒤통수를 치며 말했다.

    “뭐? 선배도 드실 겁니까? 내가 개냐! 너가 주는 밥을 주워 먹게! 이 자식 아주 웃기는 놈이고만!”

    조창은 말하면서 더욱 화기 치미는지 용악의 머리를 더욱 세게 후려쳤다. 퍽퍽 조창의 손이 용악의 머리에 작렬 할 때마다 소리가 터져 나왔고 언제까지고 맞고만 있을 것 같았던 용악는 조창의 손을 막으며 식판을 들어 조창의 머리를 향해 내리 쳤다.

    아니 조창의 머리를 향해 식판을 던졌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조창은 용악의 반응을 예측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옆으로 피하면서 날아오는 식판은 피했지만 반찬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어서 조창의 옷은 반찬 범벅이 되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용악이 피식하고 웃자. 주위에 있던 아이들도 조창의 눈치를 보아가며 웃기 시작했다.

    조창은 더 이상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단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에게 망신을 준 용악 밖에 보이지 않았고 곧바로 달려들어 용악를 걷어찼다.

    용악은 조창의 행동을 예측하고 막았으나 조창은 이미 키가 165센미르에 가깝고 체중도 용악과 차이가 많이 났기 때문에 용악은 막았음에도 충격을 입고 뒤로 물러 설 수밖에 없었다.

    조창은 자신의 공격을 막은 용악를 보며 더욱더 달려들어 용악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용악은 이리저리 손을 들어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사실 조창은 용악에게 그리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처음 온 녀석에게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자 한 것 뿐 이었고 반역자니 뭐니 하는 말은 자신의 아버지가 다른 장군들과 나누던 말을 얼핏 들은 것 뿐 이었다.

    그리고 어젯밤 그는 이 꼬마에게 자신의 권위가 먹혀 들어간 것 같아서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오늘도 이놈을 통해서 다른 아이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세워보고자 한 것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은 권위는 떨어진지 오래고 여기저서 비웃는 소리만 들리는 듯했다. 그래서 조창은 자신의 권위를 떨어뜨린 저 놈에게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차마 다가가서 말리지는 못했다 조창과 관계된 일이기도하고 조창패거리들이 다가서는 것을 은연중에 막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용소천은 예외였다. 그는 처음부터 조창은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오. 저 녀석 그래도 쓸 만한 데~ 자존심도 있고 화나게 할 줄도 알고 성격도 화끈하고! 어쨌거나 재밌게 됬군 그나저나 더 맞으면 큰일 나겠는걸. 이쯤에서 나서야 겠지’

    모용소천은 관성빈과 눈을 맞추고 성빈이 조창 패거리들의 주의를 끄는 동안 모용소천은 광기에 휩싸여 막무가내로 용악에게 발길질을 하고 있는 조창의 머리를 향해 회축을 날렸다.

    정확한 타격시점. 정확한 회전반경. 정확한 발의 움직임!

    사관관 무예교본에 나오는 동작과 한 치도 틀리지 않는 정확한 동작이었다. 만약 교관들이 봤다면 박수라도 쳐주었을 것이다.

    조창은 용악를 그야말로 개 패듯이 패던 와중에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무언가를 느끼고 급히 손으로 모용소천의 다리를 막고 그대로 막은 손으로 모용소천을 다리 밖으로 밀어내며 모용소천의 오금을 향해 발을 날렸다.

    이 역시도 무예교본에 나오는 정확한 회축 방어와 반격기술이었다. 둘은 마치 짜고 한 것처럼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공방을 나누었다. 하지만 조창의 발이 모용소천의 오금을 걷어 찰 찰라 모용소천은 조창이 손으로 밀던 힘과 한발로 뛰어오른 힘을 이용해서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조창의 머리를 향해 공중 내려찍기를 했다. 흔히 말하는 여름소금차기를 거꾸로 행한 것이었다.

    엄청난 복근과 등허리의 탄력성과 유연성을 필요로 하는 기술을 모용소천은 방금 행한 것 이였다. 조창은 황급히 두 손을 교차하여 모용소천의 내려찍기를 막았지만 체중이 그대로 실린 탓에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릎이 굽혀 바닥에 닿고 말았다.

    모용소천은 다시 한 번 공중에서 한 바퀴 돈 후 원래 자리에 착지 했다. 실전에서 써먹기에는 체력소모가 무지하게 많은 기술이긴 했지만 조창의 기를 팍 죽여 놓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았고 정식으로 대련할 것도 아니니 이정도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 모용소천은 조창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모용소천의 모습을 그저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만 보고 있었고 뭐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만하지. 쪽팔리지도 않아?”

    “꺼져!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다! 제대로 해보자는 건 아니겠지?”

    “헤에. 방금 전에 얻어터진 게 누구시더라~ 그건 그렇고 이제 교관이 올 텐데~ 교관한테 걸리면 징벌방으로 직행인데~”

    모용소천은 한쪽다리를 식당의자에 올린 채 조창을 약 올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교관이라는 말이 먹혀들었는지 조창은 곧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삼류건달들이 도망가면서 남길만한 말을 용악에게 건네고는 근처에 몰려 있던 아이들을 밀치며 밖으로 나갔다.

    “너 이 자식! 나중에 보자”

    “흥, 멍청한 놈. 야 덩치 큰놈 빨리 용악 데리고 가서 옷 갈아 입혀라 교관한테 걸리면 혼난다. 자자 뭘 구경하냐 다 끝났다. 가서 밥이나 먹어!”

    모용소천은 허산를 불러 용악을 부축하게 하여 용악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라고 말한 뒤 구경하고 있던 아이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방금 전 모용소천의 모습을 본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빠릇빠릇 하게 제자리로 돌아가 식사를 마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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