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용악은 병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아마도 무슨 일이 일어난 듯 했다. 대장군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다니... 그 일을 벌인 사람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을 벌이든지 말든지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용악은 잠에서 깬 부스스한 모습으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비는 정말 무지막지 내렸다. 아주 그냥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이윽고 병사들의 웅성거림이 좀 더 심해지고 어디선가 여민의 목소리를 들은 용악은 무슨 일인가 싶어 대충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밖에 라고 해봤자 비 내리는 밖이 아닌 천장이 있는 통로와 같은 곳이었다.
다행히도 바람은 불지 않아서 비가 안쪽까지 쏟아져 내리지는 않았다. 용악은 한쪽에 우두커니 기대고 서서 비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의 소란스러움이 더욱 커지는 듯 했고 무언가 저 앞에서 달려오는 듯 했다.
타다다다닥
빗속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듯 했다. 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는 것으로 보아 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듯 했다.
용악은 좀 더 자세히 보기위해 통로의 가운데로 향해서 소리가 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놀라서 감히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는 굳어져 가고 자신도 모르게 손은 덜덜덜 떨었다. 입에서는 사정없이 침이 흘러 나왔고 턱은 탁탁탁탁 소리를 내며 이빨끼리 부딪치고 있었다.
용악은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이 살기라는 것은 기억해 낼 수 있었다.
예전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늑대를 만났을 때 느낀 그 기분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그저 무서울 뿐 이였다. 마치 호랑이 앞에 놓여있는 토끼와 같은 심정이 이랄까.
이상하게도 몸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은 자세히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어디선가 여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칠흑 같은 밤,
그리고 그 밤을 그림자 삼아 빗속에서 무언가 튀어 나왔고 그 뒤를 따라 또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용악은 마치 천둥이 치는 줄 알았다.
번쩍거리며 자신 앞으로 하얀 빛살이 쏟아져 내렸고 그것을 보고서 그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어디선가 쇠붙이가 살을 쑤시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그게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수련한 용악의 신체는 뇌가 명령을 내리지 않았음에도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올려 날아오는 무언가를 막으며 뒤로 몸을 조금이나마 날렸다.
푸학!
용악은 손에서 느껴지는 무언가의 뜨거운 느낌과 자신의 눈 밑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무언가를 느끼고 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치 야차와 같은 표정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여민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리고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쓰러져 버렸다.
여민은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저 미친 꼬맹이는 정말 황당하게도 자객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것도 정면으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미친 짓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다.
"이 미친 꼬맹아! 피하라고! 거기서 뭐해!"
여민은 자객의 손이 검을 뽑으려 하는 것을 보고 창대가 끊어지도록 잡으면서 소리쳤다.
“안 돼! 피해!”
‘젠장! 늦은 건가? 아니 아직 아니다. 그럼 거리는?’
여민은 용악과 자객이 마주칠 시간을 대충 계산 한 후에 자신과 자객과의 거리를 잰 후 창을 던 질 준비를 했다.
여민은 어깨 높이로 두 손을 올리고는 창날 바로 밑 부분을 한손으로 바치고 다른 한손으로는 온 힘을 다해 창을 빠르게 회전시켰다.
회전시키는 손으로 거리를 계산하고 바치고 있는 손으로 방향을 계산 한 후 목표물에서 눈을 떼지 말고 창을 던진다. 그러면 너의 창은 날아가는 폭탄이 될 것이고 그걸로 너는 황제폐하를 위한 길을 열 수 있을 것이다!
여민은 오래 전... 언제인지도 모를 어린 시절 대장군부 밀전무공인 육가창식 후반부 특별 제3식을 배울 때에 교관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힘차게 진각을 밟으며 창을 던졌다.
육가창식(六加槍式) 후 삼식(後 三式) 비폭창(飛爆槍)!!
여민은 창을 던진 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허리에 차고 있던 도를 꺼내 들고 계속 달려 나갔다.
자객은 이제 검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용악 앞에서 휘두르려 했으나!
퍼벅!
그 순간 그보다 먼저 날아온 여민의 창은 소리를 내며 자객의 옆구리를 꿰뚫었다.
충격이 상당했을 텐데도 자객은 그저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용악에게 검을 휘둘렀다. 다행히도 충격을 무시하지 못했는지 처음과 같은 속도는 아니었고 어렴풋이 용악이 뒤로 물러서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 모습이 보였다.
푸학!
용악에게서 피가 쏟아져 나왔고 여민은 정말 자객을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비록 다 큰 애늙은이 꼬맹이고 반역자의 자손이라는 딱지가 붙은 꼬맹이긴 하지만 그래도 2년 동안 같이 지내온 아이다. 정이 없을 리가 있겠는가.
용악 자신은 잘 몰라서 그렇지만 그래도 귀엽게 생긴 얼굴이다.
용악의 얼굴을 갈라버린 자객의 검은 창대마저 잘라버리고는 두 동강 난 창을 뽑아 던져버리고는 계속 달려 나갔다.
‘젠장! 이거 어쩌지! 쫒아 가야하나! 아님 꼬맹이를 먼저! 아... 젠장! 어쩌지! 저놈을 잡으면 그동안 의심스러웠던 일들이 모두 실타래 풀리듯 풀릴 텐데!
하지만 꼬맹이를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어! 페하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으니깐! 젠장. 일단 꼬맹이가 먼저다! 이 빌어먹을 부하들이랑 병사들은 어째서 하나도 보이지를 않는 거냐!’
여민은 저 멀리서 뒤따라오고 있던 병사들과 부하들을 욕하고는 쓰러져 지는 용악을 안았다.
‘젠장! 꼬맹아! 잠이나 자지 이 시간에 왜 깨서 돌아다니는 거냐!’
그렇게 전대미문의 대장군 암살사건은 무려 39명의 자객과 3명의 호위병의 생명을 빼앗아 가며 끝을 맺었다.
그 참혹하고도 황당했던 암살사건 발생한지도 벌써 1주일이 지났다.
여민은 1주일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건의 경과를 보고하고 허승대장군이 행하던 일들을 마무리 짓느냐 눈,코 뜰 세 없이 바빴다. 그리고 오늘 이 마지막 보고서를 제출하면 얼마 동안은 쉴 수 있기를 기대하며 북경시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은 비밀리에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 누구도 여민이 그 사람과 만나는 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왜? 사람이 바글바글한 북경시내로 향하는 것일까? 곤제국 격언에도 나와 있듯이 등잔 밑이 어둡다고 비밀스러운 곳에서 나누는 비밀스러운 만남은 더욱더 비밀스러운 자에 의해서 뒤를 밟힐 우려가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혀 비밀스럽지 않은 곳에서 비밀스럽지 않게 만나는 것이 그 비밀을 지키는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지금처럼.
여민은 북경시내에 위치한 한 주루로 들어갔다. 그렇게 화려하지도 그렇게 허름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주로 서민들이 애용하는 소문나지 않은 주루였다.
딸깍.
화악~
주루에 들어서자 술 냄새가 풍겨져 나왔고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이 보였다.
여민은 자꾸 자신의 다리를 거는 누구의 발인지 알 수 없는 발을 피하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은 그래도 1층보다는 조용했지만 다른 유명한 주루와는 비교할 수 없게 시끄러웠다.
여민은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을 부른 사람을 찾았다. 2층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약간 동떨어진 분위기를 풍기면서 창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두 사람이 보였다.
‘흠. 두 사람?’
여민은 자신을 부른 사람이 여기에 와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자신이 만날 사람은 아마도 혼자 왔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여민의 추측을 무참히 깨버리며 여민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두 사람 중 한명이 자신에게 손짓을 했다.
'아마도 이쪽으로 오라는 뜻이렸다?'
여민은 주변에 있는 아무 의자를 들고 가 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앉았다.
“나다.”
“나가 누구요?”
술병을 든 한 남자가 여민에게 술병을 건네며 말했고 여민은 술병은 받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 잔은 어디 있는 거지.’
“너 지금 그게 황제한테 할 말이냐?”
“황제가 이런 곳을 왜 옵니까?”
여민은 술병을 건 낸 사람의 잔을 빼앗아 술을 따라 마시며 말을 이었다.
“내 말이 맞지? 그래도 이놈이 제일 재미있는 놈이다니까.”
“그렇군요.”
자신을 황제라고 밝힌 사내 옆에 앉은 사람이 조용히 웃으며 대답을 했다.
상처투성인 손으로 잔을 드는 것으로 보아 쉽게 살아온 자는 아닐 것 이라고 생각하며 여민은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시는 자를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경계심을 가졌다.
비록 그 분과 같이 나온 것으로 보면 신분은 확실하다지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경계심을 가졌다. 다른 사람이 듣지 않도록 조용히 말을 건냈다.
“만세 만세 만만세! 폐하를 뵙습니다.”
“큭큭. 왜 갑자기 안하던 인사는 하는 거냐?”
그랬었다.
자신을 황제라고 말한 남자는 정말로 한제국의 황제, 과거에는 연왕이라 불렸던 인물 유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