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북경
“하아.. 오늘 진짜 왜 이런데 되는 일이 없네. 아침부터 비 맞고 돌아다니를 않나 젓가락이 부리지지 않나”
“젓가락 하나 부러 진거 가지고 세상 다 산 거처럼 말하기는.”
용악는 그렇게 핀잔을 주고 소면을 집어 먹었다. 오늘은 뭔가 안 되는 날이라며 계속 궁시렁거리며 여민도 식탁에 놓여있는 새 젓가락을 꺼내서 소면을 집어 먹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뚝 하고 젓가락이 끊어지면서 애써 들고 있던 소면은 그릇으로 떨어져 버렸고 그것을 먹을 준비를 하던 여민의 입은 참으로 난감한 지경에 빠졌다. 그리고 젓가락과 함께 여민의 인내심도 끊어져 버렸다.
“하하하... 젠장. 점소이 나와! 너 죽을래! 응! 젓가락이 무슨 여인네 속곳 끈이냐! 손 만지면 끊어지게!”
‘여인내 속곳은 만지면 끊어지나?’
용악은 여민이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대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식탁정리를 하던 점소이를 죽이려고 하는 여민을 애써 말려서 살인죄로 감옥에 가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객잔 주인은 의외로 착해서인지 아니면 여민이 입고 있는 옷을 알아보고 주눅들은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만두 값과 소면 값을 받지는 않았다.
용악은 음식 값을 내지 않기 위해서 꾸민 자작극이 아닌가도 생각해 봤지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저 인간이 그렇게 고차원적인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암. 그렇고 말고’
용악은 젓가락을 끊어뜨리는 것, 그것도 2번씩이나 끊어뜨리는 것과 벼루로 맞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귀찮은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옷을 챙겨 입고 문을 나섰다.
그 후 여민과 용악이 북경의 대장군부에 도착할 때까지 둘은 비오는 날 용기있게 날아다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미친 새들의 배설물을 한 번 뒤집어썼고, 관도가 파손된 줄도 모르고 지나가다 마차가 한번 뒤집어져서 도저히 마차라고 부를 수 없는 장작더미를 관도 옆으로 치우고 비를 맞으며 북경으로 도착했고, 진흙을 온통 뒤집어 쓴 여민을 성문을 지키는 병사가 알아보지 못해서 한시간 동안 밖에서 비를 맞고서야 비로소 대장군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용악아. 오늘 내가 뭐 잘못한 거 있냐?”
“많죠. 가장 큰 잘못은 무슨 생각으로 군패(황군에게 나누어 주는 패, 무림패와 비슷하다)를 안가지고 와서 안 맞아도 되는 비를 맞은 것이 오늘 일어난 일 중 가장 잘못 한 거죠 ”
“그래 맞아. 내가 잘못한건 없다고.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일어나는 걸까?”
여민은 용악의 말은 전혀 듣지도 않고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고 있었다. 하긴 오늘 일은 용악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마치 1년 동안 일어날 재수 없는 일을 하루 종일 다 당했다고나 할까.
여민은 깨끗이 씻은 후 새 제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느니, 저번에 헤어진 여자가 저주를 내렸다느니, 하늘이 자신의 재능일 시기해서 그랬다느니 하는 등의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용악에게 동의를 구하고 있었다.
용악은 동의를 애타게 구하는 눈빛을 외면하고 젖은 머리를 말렸다.
“그나저나 빨리 허승대장군님한테 가야 하지 않아요? 벌써 점심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 하늘이 우중충해서 그런지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네.”
“음. 용악 너는 오늘 일에 대해 완벽하게 분석한 뒤 나한테 보고 하도록 해. 그럼 난 간다. 저녁때는 혼자 자라. 이 몸은 이 몸을 기다리는 여인네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러 가야 한다.”
‘저건 또 무슨 미친 소리야. 하여간 정신없다니깐.’
여민은 용악에게 대답도 구하지 않고 옷을 다 입자마자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하아. 나는 뭐하고 놀지.’
비는 여전히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이거야 원. 책이나 빌려다 봐야겠다. 오면서 먹을 것도 몇 개 가져오고’
용악은 결국 방에서 박혀 있기로 결정하고 책을 빌리려 방을 나섰다.
“어 왔나? 왜 이렇게 늦었냐? 응? 오라고 한지가 언젠데!”
허승대장군은 안으로 들어오는 여민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전했다. 2년이 지났지만 허승대장군은 용악이 처음 봤을 때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바라보지도 않고 보고서를 정리하면서 말하는 것까지...
“에에예. 온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부터 일이에요. 오늘 같은 날은 쉬어야 한다고요. 힉!”
여민은 의자에 앉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느끼고는 의자채로 뒤로 넘어졌다.
부르르르.
여민 뒤로 무언가 떠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쇠로 만들어진 물건인 듯 했다.
쇠로 만들어졌고 던지면 잘 날아가고 벽에 잘 박히는 물건은 소도 혹은 단검이라고 부르는 물건일 것이다.
“하하. 이젠 부하를 죽이려고 하다니! 이게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여민은 벽에 박혀있는 날이 시퍼렇게 서있는 단검을 뽑아서 손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의자를 일으켜 세워 다시 앉았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익숙했는지 던지는 것을 바라보지도 않고 말했다.
“빌어먹을! 너희들 때문에 깨진 벼루 값 때문에 내 봉급의 절반이 날아간 것은 알고나 있냐! 이 한심하고 멍청한 놈들아!”
“에이 설마요~ 어차피 결혼도 안했으면서 그 많은 봉급을 다 어디다 쓰려고요. 쓸 곳도 없으면서요. 그래서 이제 벼루 대신 단검을 던지겠다는 겁니까. 지금?”
허승대장군은 대답하지 않고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반론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시위였다.
“쩝. 이거야 무서워서 상관 만나겠나. 그건 그렇다 치고, 강소에 갔던 일은 다 끝났어요?”
“아니, 그게 골치 아프게 됐다. 조비대장군한테 단단히 발목 잡힌 거 같어. 빌어먹을 해적 놈들이 아오... 생각만 해도 짜증이 솟구친다.”
허승대장군은 보고서를 정리하다 말고 주먹을 부르르 떨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이번에 강소에 왜 갔는지는 알지?”
여민은 여전히 단검을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적소탕이지. 배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는 내가 왜 해적소탕을 맡았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조비대장군이 나를 물 먹이려고 역었겠지? 아무튼 내가 맡게 됐지. 그래 그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 빌어먹을 해적 놈들이 보통이 아닌 거야. 응? 내 말 알아듣겠냐? 이 빌어먹을 놈아! 말하면 들어 좀! 딴짓 하지 말고”
허승대장군은 여민이 하는 짓을 참지 못하고 단검을 집어 던졌고 여민은 이번에는 의자 한쪽으로 체중을 모아서 빙그르 돌며 단검을 피했다.
그리고는 땅에 박힌 단검을 뽑아서 이제는 단검 2개로 던지고 받는 묘기를 허승대장군에게 보여주었다. 사람 짜증나게 하는 웃음도 함께 말이다. 허승대장군은 하나 더 던질까 하다가 그냥 단검을 손에서 놓았다.
“이... 휴. 어쨌든 그 빌어먹을 해적 놈들이 보통해적이 아닌 거야. 동해군도 섬을 자기들이 다 차지하고 완전 지들 왕국을 만들었다만. 동해군도에 섬이 몇 갠 줄은 알아?”
당연히 여민은 고개를 가로 저었고 허승대장군은 단검을 던질까 말까 고민했다.
“빌어먹을 자잘 자잘한 것 까지 합쳐서 50개도 넘는다. 그게 다 해적들이 집어삼켰 완전히 요새를 만들었어.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지들이 섬을 집어먹든 삼켜먹든 알바 없다 이거야 그런데! 그 미친놈들이! 기뢰(진천뢰를 수면위에 띄울 수 있게 개량한 것) 하고 수룡포 2식(수상용으로 만들어진 화포. 수룡포 1식과 함께 소(小)화포에 속한다)을 가지고 있는 거야! 기뢰야 어떻게든 구할 수 있으니 그렇다고 쳐 수룡포를 지들이 어디서 구하냐! 그건 완전히 군용인데 말이야. 거기다가 더 짜증나는 사실은 녀석들이 너무 잘 쏜다는 말이지 쏘는 족족 우리가 다 맞았으니까.”
여민은 이제야 심각함을 느꼈는지 다리를 바로 하고 단검을 던지는 것도 멈추고 허승대장군을 바라봤다. 계속 말하라는 의미였다.
“그래, 어떤 빌어먹을 놈들이 해적들과 내통을 하고 있다는 말이거나 곤제국 출신 병사들이 해적단에 속해 있던가 아님 젠국에서 밀려난 무사들이 해적단에 속해 있다는 뜻이겠지. 아니면 전부 다 이던가.”
‘젠장. 이건 심각하다’
곤 제국은 동대륙에 있는 국가 중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국가다.
한제국이 하나의 나라일 때도 상대가 안 됐는데 지금처럼 3개로 나누어 진 때에는 더더욱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하지만 곤제국은 절대 먼저 공격 받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으니 그렇게 문제 되지는 않는다.
문제는 곤제국의 화포병이 대륙 최강의 화포병이라는 것이다. 서대륙, 동대륙 합쳐서 말이다. 그런 화포병 출신이 해적단에 속해 있다니...
또한 젠국은 수세기 동안 통일되지 않고 지방영주들끼리 싸우는 나라니 한제국과 별 상관없지만 문제는 가끔씩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영주들이 해적질을 하고는 하는데 그 놈들이 모두 적어도 칼 좀 휘두르는 무림인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곤제국에게서 좀 배워서 화포도 좀 쓸 줄 안다는 것이다. 하나만 있어도 최악인 상황인데 지금은 최악의 상황이 덥친데 또 덥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