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11화 (11/107)

11장.

군무관에서 졸업수속을 마치고 물론 용악이 아닌 여민이 했지만 용악은 할 일 없이 빈둥빈둥거리고 있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와서 그런지 날씨도 많이 포근해졌고 사실 뭐 그런 건 신경 쓰지도 않지만 어쨌든 "다 때려치우고 놀아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게하게 요즘 날씨였으나 재수없게도 오늘은 비가 내렸다.

그것도 아주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폭우가 쏟아졌다.

“꼬맹아. 사관관에 들어가려면 아직 1주일이나 남았으니깐 짐 챙기고 혼자 놀고 있어라”

“또 놀러 가는 거죠? 좀 책임감을 가지라고요. 벌써 2년이나 지났는데 어쩜 처음 올 때하고 지금하고 변한 게 하나도 없죠?”

용악은 주륵주륵 창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침대에 누워 발을 튕기며 말했다.

여민은 오늘은 의외로 놀러가는 복장이 아닌 대장군부 정식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저것도 어떤 길 잃은 아가씨를 낚아채기 위한 수단일게 분명했다.

‘비도 오는데 무슨 제복이냐!’

“꼬맹아. 아 난 긴급임무를 수행하는 중이라니까. 그리고 오늘은 신경질쟁이가 북경으로 오는 날이니까 내가 또 친히 가봐야 하지 않겠냐. 안가면 또 뭐가 날아올지 모른다고. 제길. 아침부터 왜 비가 내리고 그래 짜증나게.”

여민은 제복위에 검은색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 검은 장포를 입고난 후 우산이 어디 있는지 방안을 뒤지며 말했다.

검은색 호랑이.

대장군부의 표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정식으로 대장군부 표식으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호랑이가 새겨진 옷이 대부분이어서 대부분 병사들은 그냥 검은색 호랑이를 대장군부 표식으로 여기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허승대장군이 북경으로 오는 날인가. 여민이 신경질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허승대장군이니까. 어떻게 저렇게 안 어울리는 둘이 상관하고 부하 관계가 될 수 있지?

그나저나 저번에 강소지역으로 갔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돌아 왔나보네. 뭐... 나하고는 상관없겠지. 내가 보러 가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아닌가. 보러가야 하나. 사관관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까..‘

여민은 아직도 우산을 찾지 못했는지 집을 아예 다 뒤집어엎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방에 우산이 있던가?’

용악은 방에 우산이 없다고 말하려고 여민을 바라 봤을때 여민도 용악을 바라보도 있었다. 여민도 용악과 같은 생각을 했음이 분명했다.

“아악! 젠장 우산은 원래 없었잖아!! 너 이 자식 왜 말 안 한 거냐!”

“말하려고 했는데... 알았네요?”

여민은 두 손으로 턱을 바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용악을 보며 혼자서 애써 차려입은 제복을 구기면서 화를 식히고 있었다. 이제는 우산 대신 피풍의를 입으려고 다시 방안을 뒤지고 있었다.

‘애초에 깔끔하게 찾았으면 두 번 일 안하지.’

용악은 어쩜 저렇게 어설플까 하는 생각에 여민이 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고 보면 여민이 장군까지 된 걸 보면 정말 신기했다.

생각은 여민을 동정하고 있었지만 용악의 표정은 도와주고 싶다거나 하는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한, 두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허승대장군님 만나러 가면 저도 같이 가야하는 것 아니에요? 어찌됐건 내 후원잔데?”

“아. 오늘은 정식으로 만나는 게 아니고 잠깐 만날 거니깐 상관없어. 신경질쟁이가 너 보고 싶으면 오라고 하겠지. 너가 언제부터 신경질쟁이 신경 썼다고 난리야. 아악! 대체 어디에 있는 거냐!”

여민은 찾다가 못 찾았는지 방 한쪽 구석에서 무섭게 방안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냥 저랑 같이 가요. 어차피 1주일동안 할일도 없는데 북경이나 가서 놀죠  뭐. 아침 먹고 가죠. 그나저나 아침부터 문을 여는 곳이 있나 모르겠네.”

“대장군부가 무슨 놀이터냐 놀러가게 그리고 아침밥! 그거 혹시 내가 사야 하는 거냐?”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저는 이제 8살이 된 꼬맹이라고요. 돈이 어디 있나요. 그리고 어차피 허승대장군한테 영수증 보낼 거면서 자기가 사는 것처럼 생색내기는...”

여민은 침대에서 내려서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 8살짜리 꼬맹이를 보고 말을 하다 억지로 입속으로 다시 쑤셔 넣었다.

‘꼬맹이라고? 니가? 이 몸집만 작은 늙은아. 그런데 저 녀석 어떻게 저렇게 쉽게 찾은 거지. 젠장. 저 녀석 알면서 말 안 해준 건가? 역시 어제 비무할 때 좀 화가 나서 팼더니 앙심을 품은 게 분명하군!’

여민은 용악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뒤통수를 날려 주었다.

"윽."

‘왜 때리냐는 표정으로 바라보지마라 다 알고 있으면서!’

용악과 여민은 대충 피풍의를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갔다. 가는 도중에 우산이라도 빌리려고 했는데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하긴 비 오는 날 누가 돌아다녀.’

용악은 애써 비를 피하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중충하고 거무튀튀한 구름을 보니 비는 오늘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았다. 그것도 많이.

‘젠장. 멍청했다. 내가 왜 나왔지. 그냥 급식소에서 밥이나 먹을걸.’

용악은 비 오는 날 우산도 없이 나온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면 서둘러 문을 연 객잔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적성은 그렇게 큰 도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작은 도시도 아니었다.

그리고 군무사관은 적성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군무사관을 나가면 바로 적성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적성대로가 나왔다 아무리 봐도 대로(大路)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말이다.

어쨌든 용악과 여민은 적성대로를 돌아다니다가 다행히도 문을 연 객잔을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서 피풍의를 소리 내며 탁탁 털어 물기를 조금이라도 없앤 다음에 둘은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의외로 사람은 꽤 있었다. 북경으로 가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적성은 북쪽에서 온 여행객들이 북경으로 가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길목에 위치한 도시였다. 북경 북쪽은 장성너머의 이종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고 그다지 큰 도시라고 부를 만한 도시도 없어서 북쪽에서 오는 여행객들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았다.

곤제국과 한제국을 오가는 무림인들은 오히려 대부분 장성너머로 이동하는 것을 선호했고 -왜 그런지는 사실 용악도 몰랐지만 여민이 그냥 그렇다고 말해주었다.- 곤 제국에서 오는 상인들도 장성너머의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자주 오기도 했다.

한 도시를 지날 때 마다 드는 비용이 많아서 그랬을 것이다.

장성너머 북쪽이 그렇게 여행하기에 나쁜 지형도, 기후도 아니였다. 단지 조심할 것이라고는 이종족과 인간들로 이루어진 마적떼와 늑대떼 정도라고나 할까. 어쨌든 객잔에 있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로 보였다.

검을 든 무림인 몇몇과 "나는 사냥꾼이요" 라고 말해주는 옷을 입은 사람 몇몇 그리고 상인과 그를 지키는 호위무사 몇몇.

용악은 군무관에서 아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처럼  객잔에서 혹시 칼부림이 나는 거 아닌가 하며 혼자서 생각하고는 어이없어 했다.

여민은 이 녀석이 왜 웃나 하고 살펴보다가 곧 점소이를 시켜서 음식을 시켰다. 아침이여서 그렇게 특이한 것은 시키지 않고 그냥 만두 몇 개 와 소면 두 그릇을 시켰다.

겨우 이걸 시킨 여민을 보고 점소이는 짜증을 낼 법도 했지만 여민이 입고 있는 옷을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장군부 소속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용악은 생각만 한다는 것이 자기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이 삐져나왔다.

“이게 바로 권력의 힘인가?”

“넌 또 뭐라고 혼자서 궁시렁 대냐. 젠장. 뭔 놈의 비가 이렇게 내리냐. 우산 파는 가게는 왜 문을 안 연거고!”

“시끄러우니까 짜증 좀 그만 내요! 형이 짜증낸다고 내리던 비가 안 내리는 것도 아니고!”

여민은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용악을 바라 봤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용악 특유의 ‘뭐 어쩌라고’ 하는 얼굴 이였다.

주문한 소면과 만두가 나오고 둘은 허겁지겁 젓가락을 꺼내서 만두를 들어 먹었다. 아마도 배가 많이 고팠나 보다. 용악과 여민이 경쟁적으로 만두를 집어먹으려 하는 찰라! 여민의 젓가락이 뚝 하니 부러져 버렸고 결국 만두는 용악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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