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 적성
이곳저곳 구석구석 용악을 데리고 북경을 뒤지고 다닌 여민은 용악이 재밌어 하는 표정을 지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허승대장군에게 벼루에 맞아 죽을 날 만 기다리려고 했는데 말이다. 때문에 덩달아 여민도 기분이 좋았다.
용악은 처음 보는 거리의 모습에 매우 놀랐다.
서축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 이었다. 군사도시의 성격을 많이 띠고 있는 황적관에서 대부분 지내거나 밖으로 나가 노는 곳은 기껏해야 옥천관이나 마청이 운영하는 목마장에서 말을 타는 것 뿐 이었고, 두 곳 다 사람 구경하기는 힘든 곳이었다.
그랬기에 이렇게 사람 많은 곳을 구경하기는 처음 이었다.
난주도 비록 서축의 성도이고 사람도 많이 다니지만 이곳은 황제가 있는 황도. 북경이다. 비교자체가 되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여민은 용악을 데리고 서축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운하를 구경시켜주고 사막너머 저 먼 용의 산맥에서 잡아온 지룡들과 남만에서 잡아온 특이한 동물들을 구경시켜 주었다.
지룡의 몸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거리며 진녹색과 검은색 여러 가지 개통의 색을 띄고 있었다. 이빨은 호랑이의 그것보다 날카로웠고 튼튼한 두 다리는 곰의 그것보다 튼튼해 보였다.
남만에서 잡아온 코끼리라는 동물은 정말 엄청나게 크고 코도 길었다.
여민이 그 코를 잡아당겨서 코끼리들이 흥분하는 바람에 경비무사들이 달려드는 사소한 일도 있었지만 용악은 벌렁거리며 꿈틀거리는 대상의 코를 정말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다리도 길고 목도 긴 얼룩얼룩 거리는 기린도 보았고 곤제국에서 들여온 대아호라고 불리는 엄청나게 큰 송곳이를 가진 호랑이도 보았다.
송곳니가 마치 멧돼지의 그것처럼 솟아있는 모습에 용악은 자기도 모르게 움츠렸다.
멧돼지의 송곳니가 아래서 위로 솟아 있다면 대아호의 송곳니는 위에서 아래로 솟아 있다는 것이 그 둘의 다른 점이었다.
특이한 동물들을 구경하고 난 후에는 여민은 용악와 함께 북경제일루라 이름 붙은 곳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황도가 있는 북경이여서 그런지 아니면 북경제일루가 고급이어서 그런지 어쩐지는 몰라도 사치스럽고 고급스러운 음식들이 줄지어 나왔고 바삭한 튀김요리와 매콤한 볶음요리 등 처음 먹어보는 음식들을 용악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비록 북경제일루를 나올 때 내일 허승대장군에게 날아갈 외상값 영수증과 자신에게 날아올 단단하고 검은 벼루를 걱정하던 여민의 심각한 표정이 걱정되기는 했는다.
다행히도 다음날 여민은 살아있는 체로 용악을 데리고 적성으로 떠났다.
허승대장군에게 죽지 않고 이정도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여민은 눈 주위가 시퍼렇게 멍이 든 채로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용악이 어제 만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친 사람과 자신이 함께 이동해야 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여민한테 뒤통수를 맞은 것을 빼놓고는 순조로운 출발이었다.
그리고 얼마 걸리지 않아 용악과 여민은 군무사관에 들어갔다. 군무사관은 한제국 시대부터 유지되어온 군사학교중 하나였다.
연왕이 비록 난을 일으켰지만 그 동안 고통 받던 백성들은 오히려 연왕을 반기는 분위기였고 연왕이 정리한 곳은 황궁과 환관과 관련된 기관 및 그들의 후원자나 후원기관 혹은 환관들이 후원한 기관이나 후원자들을 정리한 것 뿐 이어서 그렇게 눈에 보일정도로 바뀐 곳은 많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피가 흘렀는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곳 군무사관도 연왕이 난을 일으킨 것과는 상관없이 잘 운영되고 있었다.
군무사관은 철저하게 장군들 혹은 1급 무림문파 이상의 자제들만이 들어 올 수 있는 곳이다.
2급무림문파란 관에서 무림문파를 관리하기 위해 정한 1급,2급,3급의 무림문파중 2급 무림문파를 말했다. 그렇기에 최고의 수업시설과 최고의 선생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용악에게는 그곳에 가는 것이 그렇게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곳에 입학하는 아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6살에서 12살 사이의 아이들이 입학했다. 6살부터 8살까지는 군무관에서 생활하고 9살부터 12살까지는 사관관에서 생활하게 된다.
군무관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그능력에 따라 반을 나누고 수업을 듣는 방식이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들 보호자들과 같은 숙소에서 지내게 된다. 즉 여민은 용악이 여기서 나갈 때 까지 함께 생활해야 하는 것이었다.
입학수속을 마치고 여민과 함께 군무관에 건물들에 대해서 소개를 받고 숙소에 자리를 잡고 침상에 누울 때까지 용악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와 같은 곳을 본적이 없을뿐더러 자신 나이또래의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용악이 서축에 있을 때는 대부분 마청의 목마장에서 말을 타는 것과 용천과 함께 용아창법을 배우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별로 흥미도 없었고 용천도 따로 용악이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 일은 시키지 않았기에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놀 수 있는 기회는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음날 아침이라고 보기에는 이른 새벽에 여민은 곤히 자고있는 용악을 깨워 군무관 수련복을 입히고 수련장으로 향했다.
군무관의 수련은 아이들의 체력을 한계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보호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수련시간에 보호자들이 아이들을 돌 볼 수는 없었다. 단지 아이들을 따라다니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연무장에 모인 군무관생들은 몸을 풀어주는 운동을 마치고 산행을 시작했다.
군무사관관이 위치하고 있는 적성은 주위에 나지막한 산이 많아서 군무관생들이 산행을 하기에 적합했다.
반 시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나면 군무관에 돌아와 급식소에서 아침을 먹게 된다.
군무사관관의 식단은 대부분 아이들의 발육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고기류가 빠짐없이 들어가 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연무장에 모여 점심때까지 대장군부 무공인 육가창식을 익힌다.
아이들에게 육가창식의 오의를 가르쳐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대장군부 소속이 아닌 아이들에게 대장군부 밀전무공인 육가창식을 가르칠 수 도 없는 일이여서 육가창식의 형(形)그것도 전반부만 가르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힘들어했기에 더 이상 뭔가를 가르칠 수도 없었다. 몇 차례 함께 연무를 하고 난 후에는 자유롭게 연무를 하면 교관들이 돌아다니면서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점심때까지 쉬지 않고 육가창식을 익힌 후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 숙소에 들어가 취침을 한다. 이것도 성장을 위해서 특별히 존재하는 수련과정중 하나였다.
취침을 하고 난후 아이들은 군무관에 있는 가장 큰 건물인 자룡관에서 기본적인 수준의 학문을 익힌다. 학문을 익히고 난 후에는 저녁을 먹는다. 저녁식단도 아침, 점심과 마찬가지로 고기류가 중심이 된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근력을 기를 수 있는 운동을 주로 하고 성장을 위한 수련을 한다. 근력운동부터 유연성을 기를 수 있는 체조까지 끝마치고 난 후 아이들은 함께 온 보호자들과 함께 개인 숙소로 간다.
개인숙소는 잠자는 곳 말고도 따로 연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자기가 속한 가문 혹은 문파의 무공을 익히거나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취침시간은 자유롭지만 아침부터 행해지는 수업에 맞추려면 일찍 자는 게 보통이였다.
용악은 숙소에 도착해서 용아창법을 쉬지 않고 연습했다. 여민이 가끔씩 도와주거나 비무라고 말하기도 뭐한 비무를 해주었고 용악이 하는 일에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고나 할까.
자신은 중요한 임무를 맡아서 그 임무를 수행중이라고 말하곤 했지만 용악이 보기에는 그냥 놀러 다니기 바쁜 것 같았다.
그렇게 금세 겨울이 2번 지나가고 새로운 봄이 되던 해 용악은 군무관을 졸업하고 사관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보통9살이 되어야 사관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아이는 8살에 입학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