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장.
“음...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될까... 흠... 어차피 어려운 말을 해봤자 이해도 못할 테니 쉽게 설명해주마. 너의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있다. 아니군. 너의 아버지 뿐 만 아니라 너의 어머니하고도 사이가 안 좋군.
어쨌든 그 사람은 너의 아버지를 매우 싫어하지. 그런데 이번 연왕폐하께서 서축으로 향했을 때 너의 아버지가 죽고 말았다. 그럼 너는 어떻게 될까? 그냥 거기에 내버려 둘까? 아님 어떻게 할까? 또 그 사람과 너의 아버지와의 사적인 관계를 벗어나서 분노에 불타오르는 서축군에 용씨가문의 마지막 후손을 남겨두고 와야 했을까?
이미 연왕폐하가 이끄는 군과 서축은 적대적인 관계가 되고 말았는데 그곳에 지휘관을 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자를 그냥 두고 올수는 없지. 여민! 이 보고서 누가 작성한거야? 이 자식 잘라버려! 이게 대장군한테 올린 보고서냐?”
허승대장군이라 짐작되는 사람은 용악의 옆에 앉은 병사에게 보고서를 집어 던지며 말했다. 보고서는 꽤 두꺼웠는지 하나도 흩어지지 않고 그 병사에게 날아갔다. 그것을 받은 병사는 입을 실룩거리며 혼자서 뭐라 하는 듯 했지만 들리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이 사람 그냥 병사가 아니었나?’
“미안하군. 꼬마야. 어쨌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우리들 입장에서는 너는 그냥 죽어 버리는 게 더 편한데 말이다. 그런데 연왕폐하께서 나를 너한테 맡겼단 말이다. 그것도 2년 동안이나 말이다. 왜 맡겼는지. 그것이 또 왜 하필 나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폐하의 명령이니 행할 수밖에 없다. 이거지.”
‘그런 건가.. 나는 그냥 살리라는 명을 받았으니 살아라 그런 말인가. 왜? 내가 뭘 잘못했기에? 나의아버지는 뭘 잘못 했기에? 나와 아버지에게 이러는 거지? 왜??’
“그런 표정으로 날 보지마라. 나도 잘 모른다니까... 너의 아버지와 연왕폐하 사이에 무슨 약속이 있었나보지. 어쨌든 복잡한 이야기는 나도 잘 모르니깐 그만두고 넌 이제 부터 너의 옆에 있는 사람과 함께 생활하게 될 거니까 궁금한 것은 모조리 다 저 녀석에게 물어보도록 해 알겠지? 그럼 나가봐.”
용악은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체 그냥 등을 떠밀려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그냥 계단에 쭈그려 앉아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생각을 정리했다. 하지만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지만 이제 겨우6살. 정리는커녕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고 있었다.
“장군님. 굳이 꼬마 애한테 그렇게 말할 필요 있어요? 그냥 좋게 좋게 말하지”
허승대장군 앞에 마주 앉은 병사는 건들건들 한쪽 다리를 흔들며 말했다. 아무리 보아도 대장군 앞에서 병사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야. 임마. 너 바보냐? 어우. 왜 내 밑에 있는 녀석들은 다 왜 이 모양이냐. 저 아이는 완전히 화탄이다고 너 화탄이 먼지는 알지?”
허승대장군은 보고서를 정리 하다말고 다리를 책상위에 올린 채 의자에 파묻혀 소리쳤다. 아무리 보아도 대장군이라고 보기는 힘든 모습이었다. 그 장군에 그 부하라고 장군이나 부하나 제대로 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보였다.
“화탄은 저도 알죠. 어떤 화탄을 말하는 겁니까? 지뢰? 폭뢰? 진천뢰? 이번에 서대륙에서 새로 들어온 화룡포? 아님 새로 개발한 진천벽력탄?”
“어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조비대장군이 저 녀석을 노리고 있다. 괜히 저 녀석한테 잘해 줬다가 조비대장군 눈 밖에 나고 싶지 않단 말이다. 이거다. 멍청한 녀석아! 아악! 왜 폐하는 나한테 이런 일을 시킨 거야! 젠장. 내가 바로 옆에 있어서 그랬나..”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죠. 힉!”
허승대장군의 말이 당연하다는 듯 여민이라 불린 병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하지만 곧바로 호랑이가 먹이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허승대장군의 눈을 보고 말을 집어넣었다.
“어쨌든. 명령이다 여민장군! 2년 동안 군무사관에서 잘 돌봐주도록!”
“예예. 하여간 겨우 장군 시켜준 주제에 뒤치다꺼리는 내가 다해야 된다니깐. 히익!!”
여민은 머리를 긁으며 말을 하다가 먹이 뚝뚝 떨어지는 벼루를 들고 던지려는 허승대장군의 모습을 보고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제기랄. 거 성질하고는! 어 꼬맹아 뭐하냐?”
비록 칼은 들지 않았지만 충분히 자신을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는 무기인 벼루를 들고 살기어린 모습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허승대장군을 보고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뛰쳐나온 여민은 문 뒤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를 듣고 안도했다.
그는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를 보고서 옆에 쪼그리고 같이 앉았다. 의외로 둘의 모습은 동생과 형과 같은 모습이었다.
“꼬맹아. 너무 복잡하게 생각 할 것 없어! 나도 천수평야에 있었다. 아. 너도 봤지? 너의 아버지께서 기를 이용해서 하늘에 글씨를 쓴 것 말이야!
그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연왕군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사람은 없을걸!? 아! 아니군. 호표기대장이라면 가능할지도 어쨌든 정말 대단한 거라고 너의 아버지는!”
여민은 수다스럽게 말을 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는 아이를 보고 아차 싶었다.
‘젠장... 쩝. 말을 잘 못했군. 아이돌보는 일은 역시 나한테 안 어울려. 어울리면 내가 보모지 군인이냐.’
여민은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며 용악에게 말을 이어갔다.
“아.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너의 아버지가 쓴 그 천명이라는 말이다. 이거야... 뭐 어쩔 수 없지 천명이라는데. 그냥 그렇고 그런 거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천명이고 네가 이렇게 된 것도 천명이고 내가 너를 만난 것도 천명이고...”
‘젠장..’
여민은 이젠 아예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보고 자신의 멍청함과 무능력함을 자책했다.
‘아 오늘 왜 이렇게 꼬이지. 대장군한테 죽을 뻔 하지를 않나.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이를 울리지 않나. 에혀 나도 모르겠다.’
여민은 속편하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고는 울고 있는 용악 옆에 아예 다리를 뻗고 손을 뒤로 받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도 참 무지하게 높구만. 오늘 같은 날은 놀러 나가야 하는데 쩝.’
용악은 이제 울음을 그치고 여민처럼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음. 나는 여민이라고 한다. 이래 뵈도 장군이라고 여민장군! 에헴.”
여민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용악을 보고 말을 건넸다.
자기 딴에는 기분 좀 풀라고 가슴을 한손으로 우스꽝스럽게 떵떵치며 말했는데 용악의 표정은 마치 ‘그런데 어쩌라고’ 하는 표정 이었다. 여민은 애를 쓰며 굳어져 가는 얼굴을 피면서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군무사관에 들어 갈거야. 군무사관이 어디냐면 여기가 북경이니까 여기서 북서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적성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합숙소 겸 훈련소라고 할 수 있지.”
여민은 주저리주저리 군무사관은 한제국초창기 때부터 유지되어온 군사학교라니, 아무나 들어 갈 수 없다느니, 너 또래의 아이들만 가는 곳이니 그곳에서 대장이 돼야 한다느니, 누나가 있는 친구들과 사귀어야 한다느니, 하는 딴에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말했지만 용악은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젠장. 이거야. 원. 이 꼬맹이 왜 이런데... 에고고 복잡하구만. 그래! 되는 일 없이 싱숭생숭 할 때는 나가 노는 게 최고지.’
여민은 이렇게 자신의 놀고 싶어 하는 마음을 용악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용악의 손을 붙잡고 일어났다.
“젠장! 이렇게 좋은날에 남자들만 칙칙하게 모여 있는 이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는 없다! 나가자 용악! 일단 나가는 거다!”
여민은 대장군부를 나가면서 병사들을 시켜 자신의 짐과 용악의 짐(짐이라고 해봤지 몇 벌의 옷과 용천의 창에서 분리한 창날뿐 이였지만 말이다. 용악는 왜 이게 여기 있냐고 물었고 여민은 서축군이 너에게 주었다는 간단한 대답을 했다.) 을 적성으로 옮기라고 지시하고 용악을 데리고는 북경시내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