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이제 남은 건 나뿐인가..”
“뭐가?”
연왕은 술을 마시다 용천의 혼자 말을 들었는지 궁금한 듯 물었다.
“아니. 별거 아니다.”
“흐음. 나를 도와 줄 수는 없겠지?”
연왕은 진지한 목소리로 용천에게 물었다. 진실로 자신을 도와주기를 바라는 목소리였다.
“알고 있지 않나. 연왕. 서축군은 서축에 있어야만 서축군이야. 다른 곳으로 간다면 더 이상 서축군이라고 할 수 없지.”
“하지만... 자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로서는 선택 할 수 있는 길이 한가지 밖에 없지 않은가 자네... 설마 내가 그렇게 하기를 바라는 건...”
연왕은 말을 흐리며 용천을 바라보았다.
아무 말 없이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 있는 용천은 아무 말도 듣기 싫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용천... 나는 이제 황제가 된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황제란 모든 이들에게 평등하게 대해주어야 하지 그렇지 않다면 서로 분란을 일으킬 뿐이니깐 말이야. 자네가 나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자네를 내칠 수밖에 없어.”
“알고있다. 그리고 조비 녀석, 생각보다 세가 큰 것 같더군. 그리고 그 녀석은 나를 지독히도 싫어하지. 어리석은 녀석. 그런 녀석이 너의 최측근이니 너도 조비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아니냐. 다 알고 있다. 더 이상 말하지 마라.”
‘젠장. 이 녀석 애초에 목숨을 버릴 작정이었군.’
연왕은 속으로 화를 삭였다.
사실 연왕이 이렇게 대규모 병사들을 무리해서 서축으로 이끌고 온 것은 서축을 치려는 의도보다는 장강을 건너기 위해서 4성의 병사들을 좀 더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용천의 기마대의 모습을 보면 느끼는 바가 있을 테니 자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가능성은 적지만 여차하면 서축군과 함께 이동 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용천과 이야기를 나눈 후 바로 사천과 중경으로 향하려고 했는데... 이런...’
“너 이 녀석 진심이냐! 꼭 이렇게 까지 해야 되냐고! 나는 황제가 된다. 내가 말하면 듣지 않을 자가 누구란 말이냐!”
“방금 전에 황제는 가신들을 평등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 게 누구였지? 그리고 이렇게 흐지부지 넘어간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거다. 자신들의 군대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지. 특히 조비같이 욕심이 많은 녀석은 말이야. 그리고 맹약을 아는 자는 적을수록 좋은 거지.”
“젠장...”
“나는 걱정 말고 내 아들이나 잘 돌봐줘라. 아마도 조비 녀석이 어떻게 해서든지 없애려 할 테니. 비사를 모르는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들은 그저 폐하의 뜻을 따르지 않는 불순한 무리들로 밖에 보이지 않으니깐 말이다.”
“알았다. 누구도 건들 수 없도록 내가 꼭 지켜주마.”
“아니. 그럴수록 더욱 위험하지. 또 괜한 다른 이들에게 경각심을 가지게 할 수도 있고 말이야. 그저 2년 동안만 죽지 않게 해주면 돼. 그 후에는 악이 녀석이 알아서 해쳐 나가겠지. 자식을 사지로 내모는 것은 하늘에 큰 죄를 짓는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 네가 감싸면 감쌀수록 더욱 위험하니... 이제 일어나야지. 다들 오래 기다렸다.”
“알았다. 빌어먹을 놈아. 젠장 할 놈. 그런데 왜 하필 2년이냐?”
“그때 쯤이면 오늘일은 대부분 잊을 테고 또 다른 이유가 있지만 굳이 알 필요는 없겠지...”
용천은 파묻혔던 몸을 일으키고 손을 뒤로 뻗으며 기지개를 키며 일어났고 연왕 역시 술병을 탁자에 소리 나도록 내려치고는 일어났다.
차라리 서축으로 오지 말걸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결국에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차라리 지금 해결 하는 게 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오랜 친우가 사라져 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천막에서 나온 두 사람은 서로의 진영으로 다가갔다. 연왕은 자신의 말위에 앉아 용천이 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여기까지 오면서 설마 그럴수도 있겠구나 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니 정말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착찹했다.
용천은 장군들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하얀 백마위에 앉아있던 어린아이에게 머라 말하는 듯했다.
저 아이가 그의 아들이리라.
어린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말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나 창을 들고 있는 모습이 어색해 보이지는 않았다.
과연 그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들과도 이야기를 마친 용천은 천천히 갑주를 벗었다.
그의 갑주를 다른 병사들이 받아 들었고 그는 이윽고 갑주를 다 벗고 티끌 한 점 없는 하얀 무복에 창을 하나 들고 병사들 앞으로 나섰다.
애초에 이럴 작정으로 입고 온 무복일 것이다.
그리곤 창을 들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왕 말고는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연왕군 소속 병사들과 무림인들은 왜 저러는가 하는 모습으로 바라보았고 서축군 병사들은 저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기에 눈시울을 붉혔다.
용천에게 다가가려는 마음을 가진 장군들과 병사들도 있었지만. 좌,우장군이 너무나도 엄숙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용천은 천천히 용아창법을 펼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용악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어제 밤. 그는 용악의 몸에 자신의 내력을 모조리 집어넣었다.
내력을 집어넣었다고 해서 용악이 순식간에 내력이 높아진다거나 그의 무공이 상승된다는 일 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내력은 겨우 십 분지 일도 들어가지 않았고 그 내력이 용악의 내력과 합쳐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다.
다른 모든 고수들이 다른 이에게 내력을 전수해 줄 수 있다면 명문대파의 장문인 들은 수십년. 수백년동안 내려온 내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없는 일. 다른 이의 내력이 자신의 내력과 합쳐지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은 어린 용악의 몸에 내력을 집어넣어서 그의 몸을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준 것 뿐 이였다. 그것을 활용하느냐 못하느냐는 용악에게 달린 것. 그의 내력이 온전히 몸에 흡수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2년이다. 그렇기에 용천은 연왕에게 2년 동안 용악을 돌보아 주라고 부탁한 것이다.
용악은 아버지의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눈에 집어넣었다.
지금 보는 모습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펼치고 있는 것이 용아창법의 오의(奧義) 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용천의 창은 용악이 볼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천천히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용악은 지금 용천이 용아창법을 어떻게 펼쳐내고 있는지를 눈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익혀온 용아창법이다.
용아창법의 호흡법. 초식, 기의 운용방법은 이미 다 외운 상태
그럼에도 용악이 보기에는 용천이 펼치는 용아창법은 새로운 용아창법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전(全)초식을 한번 펼치고 난 후 용천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한 번 용아창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방금 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창은 희뿌연 연기와 함께 뒤덮여 있었고 그가 창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주위의 풀들은 찢겨져 날아올랐고 그의 창이 지나갈 때 마다 공기는 찢어지는 듯 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소리는 창이 빠르게 지나갈 때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창에서 만들어진 바람이 내는 소리였다. 즉 바람이 바람을 밀어 낼 때 나는 소리였다.
다른 병사들과 무림인들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해도 팽가주는 그 사실을 알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창풍을 일으켜 저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의 창주위에 뿌려져 있는 듯 한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은 바로 용천의 내력이 뿜어져 나와 유형화 된 것이다.
‘저것이야 말로 부친인 태상가주가 말년에 이룰 수 있었던 도기와 같은 것 아닌가!’
그의 경지가 결코 낮지 않음에 팽가주는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무가 거의 끝나간 듯 그는 잠시 창끝을 뒤로 향한 채 잠시 멈추어 있었다. 하지만 그 주위로 움직이는 기의 흐름을 팽가주는 느낄 수 있었다.
강렬한 기의 소용돌이가 창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번에 행할 초식은 궁극의 경지의 초식일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창은 맹렬히 돌아갔고 곧 먼지에 뒤덮여 용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천동지할 만한 소리가 들리고 난 후 먼지는 용천의 주위에서 밀려나 하늘로 날라 갔다.
그 후 병사들과 무림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용천 앞에 있던 풀들은 모조리 날아가 버리고 그곳에는 거대한 아홉 마리의 용이 서로를 노리는 모습으로 서로서로 엉켜있었다.
용악은 처음으로 진정한 용아창법의 위력을 보았다. 내력을 운용하여 펼쳤을 때 어떤 위력이 나오는지는 오늘에서야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땅바닥에 커다란 붓으로 그린 듯이 선명한 9마리의 용!!
그것은 바로 용아창법의 마지막 초식. 흑산포(黑散爆) 구룡(九龍)이였다.
천수평야에 모인 모든 병사들 무림인들을 놀라게 한 용천은 옷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창대를 옆에 세우고 서축군을 향해 돌아섰다.
“친애하는 전우들이여!”
“예, 대장군!”
용천의 말을 들은 서축군은 모두가 하나가 되어 대답했다.
용천이 병사들에게 친애하는 전우들이여 라는 말을 붙일 때는 항상 목숨을 걸만큼 위험한 전투에 나갈 때 하는 말이었다.
용천은 별 생각 없이 말하곤 했지만 병사들이 느끼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 것 인가 하는 의문이 병사들 모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친애하는 전우들이여! 우리는 서축군이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내가 없을 때에도 우리는 서축군 이었고 내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서축군이었다. 모두들 서축을 위해서만 칼을 뽑아라! 그것이 내가 내리는 마지막 명령이다!”
“대장군님?!”
병사들이 용천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할때 용천은 연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창날을 하늘에 향하게 하고는 가만히 서있었다.
그러자 창대 끝에서 희뿌연 연기 비슷한 것이 흘러 나와 하늘에 어떤 모양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 연기 비슷한 것이 흘러나올수록 용천의 얼굴은 굳어갔다. 이윽고 더 이상 연기 비슷한 것이 흘러나오지 않자 병사들과 무림인 그리고 특히 연왕은 그 연기의 모습을 보고 탄식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하얀 연기는 하늘에 단 2글자를 나타내고 있었다.
天命!!
용천은 힘이 들었는지 창대를 내리고는 뒤를 돌아 용악을 바라보았다.
‘나의 어린 아들아. 미안하다.’
용천은 용악을 향해 힘겹게 애써 웃어보이고는 창으로 자신의 심장을 찔렀다.
병사들이 어찌 할 틈도 없이 용천의 창은 그의 가슴을 뚫고 지나갔다. 용천이 창을 뽑아내자 폭포수가 떨어지듯이 시뻘건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용천의 흰 옷이 시뻘건 피가 물들어 혈의가 되자 용악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용천은 용악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피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숨쉬기도 힘들 지경이었고 다리는 땅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창대 끝을 땅에 깊숙이 박고 그것으로 붙잡고 쓰러지는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졌다.
“대장군이시여!!”
“대장군이시여!!”
말위에 앉아있던 병사들 모두다 말에서 내려 바닥에 쓰러지며 용천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개중에는 연왕군을 향해 달려드는 병사들도 있었으나 좌,우장군과 전,후장군 밑 다른 장군들이 그런 병사들을 저지 했다. 하지만 저지하는 장군들도 달려 나가는 병사들 모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연왕군은 그 모습을 보고 감히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
‘하아. 용천.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인가!! 이것이 과연 천하를 위한 것인가!!’
연왕은 깊이 탄식하며 발길을 돌렸다.
충격에서 휩싸였던 연왕군도 연왕의 명령을 듣고 천천히 기수를 돌렸다.
“연왕전하. 용천대장군을 저대로 내벼려 두는 것은...”
허승대장군이 걱정이 된다는 듯이 말을 꺼냈지만 연왕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내버려 두어라. 우리보다는 저들에게 맡기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자네가 용악을 맡게”
“용악이라 하심은...?”
“용씨가문의 마지막 후손이지...”
연왕은 대답을 하고는 한숨을 깊이 쉬었다.
마치 자신이 한제국에 충성을 다 받친 용씨가문을 없앤 듯한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연왕은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려 기수를 돌렸다.
서축군의 살을 에는 살기가 느껴졌지만 그들은 다행히도 연왕군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단지 창대를 손에 쥐고 굳어있는 용천을 둘러싸고 울부짖을 뿐 이였다.
그렇게 연왕군은 울부짖는 서축군을 뒤로하고 천수평야를 떠났다.
훗날 연왕의 서축정벌이라고 불리우는 연왕과 용천과의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제국력 1331년 위대한 장군의 죽음과 함께 바야흐로 난세는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