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6화 (6/107)

6장

서축군의 진형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쐐기꼴로 전진하던 전위는 점점 들어가고 양쪽 후위부분이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거대한 덩어리 중 한부분이 뜯겨져 나오듯이 무언가 튕겨져 나오며 연왕의 진형으로 향했다.

“가자! 백룡!”

용천은 용천의 애마 백룡에게 나지막하게 말하고는 고삐를 잡아채고 앞으로 나갔다.

진정 폭풍이 몰려오려는 것인가!

용천은 군사들의 기세를 자신이 모두 받은 듯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었다.

2미르가 넘는 목책은 백룡이 한 번에 뛰어넘어 전혀 그 효용을 다하지 못했고 병사들은 그저 그 놀라운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연왕이 있는 곳은 그 목책의 바로 뒷부분에 위치한 약간 솟은 둔턱이었다.

그곳을 향해 폭풍처럼 달려드는 용천 앞에 정신을 차린 팽가주와 허승대장군이 달려들었다.

말을 박차고 곤제국도(鶤帝國刀)를 닮은 도를 꺼내든 팽가주와 연왕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을 타고 달려드는 허승대장군의 모습은 평생 호흡을 맞춰온 두 사람 같았다.

‘용천이라 했나? 과연 대단하다. 그렇다면 나의 도를 한번 받아봐라!’

팽가주는 용천을 향해 하늘에서 날아들며 팽가의 가전무공인 오호단문도를 펼쳤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오호아(五虎牙)!

팽가주가 위에서 덮치는 동시에 허승대장군은 말을 타고 장군도(將軍刀)를 뽑아들며 용천의 정면에서 대장군부 밀전무공인 육가창식을 펼쳤다.

육가창식(六加槍式) 십겹단망(十層短罔)

병사들과 무림인들은 이제야 겨우 혼란에서 벗어나 3명의 고수들이 맞부딪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무림인들은 그 와중에서도 눈을 반짝이며 승부를 점치고 있었다.

‘팽가의 가전무공은 오호단문도에서 시작해서 오호단문도로 끝난다는 말은 들었다. 하지만 감히 호랑이의 이빨을 용의 이빨에 들이 대는가!’

용아창법(龍牙槍法) 칠절참혼(七絶斬魂)

용천은 한쪽 손은 창날에 닿을 정도로 다른 손은 창대 끝에 닿을 정도로 늘어뜨려서 팽가주의 도를 받아드는 동시에 순식간에 창대 끝으로 다른 한손도 마저 옮기며 휘둘러 팽가주를 날려 버렸다.

말 그대로 허공으로 팽가주를 날려 버렸다.

팽가주는 허공에서 공격하는지라 피하지도 못하고 용천도 부딪친 후 뒤로 날아갔으나 자세를 잡고 착지 했다.

그러나 착지 했을 때는 이미 허승대장군의 도와 용천의 창이 부딪치고 난 후였다.

용천은 팽가주와 부딪치자마자 팽가주를 날려 보내고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허승대장군의 앞으로 빠르게 쇄도 했다. 마치 팽가주는 안중에도 없었는 모습이다.

‘대장군부 밀전무공인 육가창식은 나 또한 알고 있다. 나 또한 대장군중 한명이 아니던가. 십겹망은 창으로 펼치는 무공, 도로 펼치기 위해서 십겹단망을 펼친 것인가! 빠른속도로 공격을 10번 부딪쳐 그 충격을 흡수하는 십겹단망! 그렇다면 처음 부딪칠 때 다시 부딪치지 못하도록 그물을 찢어 놔야하는 법. 그렇다면!’

생각은 순식간으로 이루어지고 용천의 창은 기묘한 회전을 하며 허승대장군의 도로 뻣어나갔다.

용아창법(龍牙槍法) 흑산포(黑散爆)

‘흑산포는 충격을 타격부위에서부터 사방으로 뻗어나가게 만들고 또한 타격부위의 반대편에 충격을 주는 무공. 십겹단망으로는 막을 수 없다!’

허승대장군의 도마저 뚫어버린 용천은 그대로 연왕 앞으로 쇄도 했다.

하늘높이 치켜든 창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모두의 눈을 부시게 만든 후 연왕의 머리로 떨어지는 듯 하여 연왕 주위에 있는 자들은 모두 탄식을 내뿜었다.

바람이 용천의 창을 타고 올라가며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를 냈다

연왕의 머리를 뚫는 듯 날아가던 창은 연왕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춰 더 이상 나아가지 않았다. 허나 풍압을 이기지 못하고 연왕의 쓰고 있던 왕을 나타니던 관과 머리를 묶고 있던 끈이 날아가면서 연왕의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하늘에 휘날렸다.

용천은 그런 연왕을 보며 조용히 입술을 말아 올려 미소를 지었다.

연왕 역시 그런 용천을 바라보며 입술을 말아 올렸다. 그리고는 진정 기쁜 듯 소리쳤다.

“하하하!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용천!”

이것이 바로 용천과 연왕이 나누는 인사다.

다른 이들은 이해 할 수도 없는 오랜 동안 이어져 내려온 그들만의 인사.

오랜 친우는 그렇게 다시 그리고 마지막으로 만났다.

연왕과 용천은 연왕군과 서축군이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그 팽팽한 기운이 맴도는 두 군대 사이에 위치한 천막 안에 앉아있었다.

용천과 연왕과의 거친 인사가 끝나고 연왕군 휘하의 장군들과 병사들은 발작을 일으키며 용천을 잡으려 했으나 연왕의 한마디에 물러가고 연왕군과 서축군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둘 다 휘하 장수들을 물리고 간단한 술상이 놓여있는 탁자에 마주 앉아 있었다.

“오랜만이군. 벌써 4년이나 지났나?”

연왕은 술상 위에 놓여 있던 술병을 들어 용천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그렇군. 벌써 4년이나 지났군...”

용천과 연왕은 서로 한잔씩 주고받으며 술을 마셨지만 더 이상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어색한 침묵 속에 서로는 서로의 잔 만 비워가고 있었다.

“그래... 유표는 어떻게 하고 있지?”

“하하. 유표라니 황제페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다니 무엄하다!”

연왕은 짐짓 화가 난 듯 눈을 부라리며 용천에게 말했지만 용천은 그저 얼굴을 잠깐 찡그렸다. 그게 연왕의 말을 듣고 그런 것 인지 아님 목으로 넘어가는 독한 술 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농담할 기분 아니다.”

“그 녀석 지금쯤이면 아마도 술독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그 녀석이 무공을 괜히 익힌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그 녀석이야 평소에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지만 누구보다도 심기가 깊은 녀석이니 10년동안 술에 빠져 지냈어도 무리는 하지 않았겠지. 그나저나 이제 황도 정리는 다 끝난 것 인가?”

“거의 다 끝났다. 나는 환관들이 독자적으로 일을 벌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더군. 곤제국과 오크족하고도 연관이 있었어. 곤제국이야 항상 우리에게 공작을 펼치기에 막연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 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오크족에서도 공작을 할 줄은 몰랐다. 어찌 되었건 거의 다 정리가 되었고 남은 나머지 잔챙이 들은 금의위에 맡겼다.”

“금의위?”

“아. 이번에 호표기들을 해체하고 금의위를 새로 만들었다. 황실 직속 감찰기관으로 말이야”

‘호표기들을 해체 했다고?’

용천은 비어 있는 술잔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호표기들은 고아 출신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황궁에서 훈련시켜 황궁과 황실 인물들을 보호하는 일종의 친위대였다.

‘그런 호표기를 해체 했다라...’

“그럼 황궁은 누가 ?”

“아. 그건 새로 뽑기로 했어. 일단은 지금은 호표기들이 맡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호표기들은 금의위로 자리를 옮기고 믿을 수 있는 장군들이나 세가의 후손들로 친위대를 새로 조직하려고.”

“그렇군. 그런데 호표기 대장은 어떻게 됐지? 우리들의 약속을 알고 있는 자 인데 그냥 내버려 두었나?”

“그는 강호의 야인으로 돌아갔다. 20년전 우리에게 나타났던 그대로 말이야. 강소 쪽으로 간다는 말을 들었다. 그가 비밀을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고 사실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자도 아니니 말이야”

“그렇군. 그나저나. 혼하고 빈이 걱정이다. 그 녀석들 어떻게 할 것 같나?”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동생이 나에게 왕위를 다시 넘겨준다 하더라도 20년 약속을 모르는 녀석들이니 그저 자기 아버지가 압박에 못 이겨 넘겨준 것 이라고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자기 아버지가 술에서 완전히 벗어나 정사에 관여하는걸 보면 또 혼란스러 울 수도... 일단은 유표가 몸을 추리고 활동을 해야 알 것 같다. 지금으로써는 대치하고 있을 수밖에 없지.”

연왕은 말을 마치고 혼자 술을 따라 마셨고 용천은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고 의자에 깊숙이 몸을 눕히고 눈을 감았다.

20년 약속.

그것은 용천과 연왕, 황제인 유표 그리고 호표기 대장만이 알고 있는 약속이다.

이미 연왕의 아버지인 유현폐하께서 나라를 다스릴 때부터 환관들의 폭정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고 유현폐하가 돌아가실 때쯤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그 세가 커져 있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실행하였으나 결국은 실패하고 장자인 유공. 연왕은 동생에게 황위를 맡기고 변방으로 떠났다.

황도와 관계도 없는 용천이 이 계획에 합류하게 된 것은 연왕의 둘도 없는 친구였을 뿐 만 아니라 연왕과 유표의 계획이 실패 했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지난 10년 동안 유표는 꼭두각시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연왕 역시 변방에서 강력한 군대를 모으고 각 성의 성주들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계획은 성공을 고작 한 발자국 앞두고 있었다.

문제라면 생각지도 못한 두 왕자들이라고 할까? 이제 남은 것은 약속을 알고 있는 자 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뿐.

호표기 대장 강서린은 호표기 출신이 아닌 무림의 인물.

그가 어떻게 호표기 대장에 까지 올랐는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는 20년 약속을 맺기 전부터 그는 호표기 대장이었던 인물이다. 어찌됐건 그는 더 이상 황도에 있지 않고 강소로 떠났으니 남은 건 용천 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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