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흑영 기병대-3화 (3/107)
  • 3장

    용천은 조용히 웃으며 물었다.

    “연왕과 대장군님께서 알고 지내신지도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물론 저도 연왕을 알기는 하지만 대장군님만큼은 아니지요. 그는 우리 서축군의 힘을 알고 있고 그 힘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을 것 입니다.”

    “바로 나지.. 아마도. ”

    용천은 사마군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예. 대장군님. 그는 대장군님에 대한 서축군의 충성심을 잘 알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렇겠지. 그럴 거야. 그리고 내가 그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것도 알고 있을 것 이고 말이야. 양탁 그대도 그렇게 생각하는가?”

    “죄송스럽지만. 그렇습니다. 대장군님. 연왕은 그런 인물이지요. 원하고자 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을 사용하는 인물이니깐 말이지요.”

    “그렇다면 힘을 얻을 수 도 없을 것을 알면서 왜 4성의 군사들을 이끌고 올까?”

    용천은 그 말을 마치고 술잔을 돌리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아. 연왕이여 꼭 그래야 만 하는가...’

    용천이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 양탁과 사마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용천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가. 용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눈빛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차마 용천에게 그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였다. 양탁과 사마군이 입을 다물고 술잔만 바라보자 용천이 입을 열었다.

    “자신이 얻을 수 없으니 남도 가질 수 없게 하기 위해서겠지. 나쁜 심보다. 연왕!”

    용천은 자신 앞에 연왕이 있는 것처럼 하늘을 보며 소리쳤다.

    4성의 병사를 이끌고 온다면 용천이 연왕과 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싸울 수야 있을 것이다.

    서축의 기마대는 강하니.

    그렇지만 싸우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연왕이야 그저 많은 병사 중 조금 버린 것에 불과 하지만 서축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용천의 임무는 황도를 지키고 황제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종족으로부터 서축을 지키고 서축을 비롯한 천하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 천명을 받은 용씨 가문의 용천이 감히 싸울 수 있을 것인가.

    용천은 독한 화주를 목에 쏟아 붓 듯 마셨다.

    “하아아...”

    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나이야 살만큼 산 인생이다. 하지만 나의 아들. 그 어린아이는 어찌 되는 것이냐. 하늘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아쉬운 마음을 가눌 순 없구나...’

    “나 하나와 서축을 바꾼다면 남는 장사기는 남는 장사지 안 그런가? 사마군? 적어도 연왕이라면 내 목숨을 가지고 서축을 더 이상 건들지는 않겠지.”

    사마군과 양탁은 차마 서축보다 당신의 목숨이 더 중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용천이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용천은 아들을 데리고 하후양과 함께 옥천관으로 떠났다. 병사들은 용천이 왜 갑자기 옥천관으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요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니 옥천관에 순시라도 가는가 보다 하고 쉽게 생각했다.

    다만. 우장군과 좌장군은 왜 떠나는지 알고 있었기에 다른 장군들에게 들볶였다.

    옥천관에 도착해서 용천은 병사들을 살펴보고 군마를 살펴보는 등의 기본적인 사항을 살펴보고 하후양의 동생인 하후민을 만나 상황을 보고 받고 여러 가지 일을 처리 하자 벌써 해가 질 때가 되어 버렸다. 병사들을 물리고 용천은 아들과 함께 옥천관 성벽을 거닐었다.

    거친 모래바람이 성벽에 부딪치고 아스라한 햇볕이 내리쬐는 가운데 용천과 그의 어린 아들은 끝나지 않을 성벽을 계속 걸었다.

    아이의 다리가 아파할 때 쯤 되서야 용천과 그의 아들은 옥천관 성문위의 성벽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용천의 아들은 아직 어렸지만 고집스럽게 거친 모래바람 앞에서도 고개를 돌리자 않고 지평선으로 떨어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악아. 네가 지금 몇 살이더냐?”

    용천은 아들 악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는 아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의 아들은 어려도 너무 어렸다.

    비록 천재라니 신동이라니 그런 말을 듣는 아들이었지만 어린 것은 어린 것이다. 그런 아들을 두고 떠나야 한다니 가슴이 막막했다.

    “6살이요. 아버지는 제 나이도 잊어버리신 겁니까?”

    악이라 불린 아이.

    용청의 아들은 똘망똘망한 눈을 돌리며 대답했다.

    어린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아이. 완전 애 늙은이가 따로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쯤이면 자신에게 어리광 부리며 달려들 나이 아닌가. 그렇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아들이었다. 용천은 아들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용악을 들어 올려 목마를 태웠다.

    “오랜만에 목마를 태우시는 것을 보니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죠?”

    역시 애 늙은이다. 그렇지만 기분은 좋은지 목소리가 흥얼거리듯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아들아. 우리 용씨 가문의 사내는 어때야 한다고 했느냐?”

    용악는 왜 그런 것을 물어보냐는 듯이 잠시 용천을 바라보았다.

    “서축을 지키고 백성을 지키는 방패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렇지. 잘 기억하고 있구나.”

    “천재는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라구요”

    “자기 입으로 천재라고 하는 게 부끄럽지도 않느냐?”

    “사실인 걸요 뭘.”

    용천과 용악은 말을 마치고 이제는 지평선에 붙어버린 태양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이제 붉은 빛으로 완전히 물들여져 버렸다. 아니 하늘뿐만이 아닌 사막뿐인 땅도 붉은 빛으로 물들었다.

    “이 못난 아비는 이제 떠나야 한단다.”

    “어디로요?”

    “너의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말이다.”

    용악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어머니는 용악이 태어난지 얼마 안 되서 돌아가셨다. 워낙 병약했던 그의 어머니는 용악을 낳느냐 너무 무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 곁으로 아버지가 떠나간단다.

    ‘갑자기 왜?’

    용악은 왜 그런지 계속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그 말을 내 보내지는 않았다. 그리고 생각과는 다른 말을 꺼내고야 말았다.

    “그렇군요. 물론 용씨 가문의 후손답게 서축을 위해서 가시는 거죠?”

    용천은 아들의 대답에 잠시 머뭇거렸다.

    아이가 그가 생각하는 답안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기 때문 이였다.

    천재라는게 이럴 때는 아쉽구나하고 용천은 잠시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내가 원망스럽지 않느냐?”

    ‘원망스럽겠지. 나도 이런 내가 원망스럽고. 이렇게 만든 연왕도 그리고 세상도 원망스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더욱 원망스럽고 안타구나.’

    용천은 소리 없이 울부짖었다.

    “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겠죠.”

    대답을 하는 아이의 목소리는 울먹이는 목소리였다. 아무리 천재고 신동이라고 해도 아이다. 어찌 아버지와 헤어지는 게 슬프지 않을까. 용천은 아들을 내리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안아주었다.

    아이는 더욱 서러운 듯 울었다.

    자신을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울음을 참으려고 하는 모습에 용천은 더 없이 고맙고 서글펐다.

    아이에게는 무엇인가 해줄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고 더 이상 아이에게 남아 있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서글펐다.

    용악의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의 친척들 모두 이 모래바람에 뭍 힌지 오래. 오로지 남은 것은 용천과 용악 둘뿐 이였다. 그런데 이제 용천마저 떠나가려 한다. 용씨가문이 이제 용악 하나 밖에 남지 않는 것이다.

    “아버지와 약속해 줄 수 있느냐?”

    아이는 울음을 그치려 애를 쓰며 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면 또다시 울음이 튀어 나올 것만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첫째는 이 죄 많은 아버지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 서축과 백성을 용서해 달라는 것이고 셋째는 꼭 살아남으라는 것이다. 너는 이제 더 이상 서축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단다. 초대황제와 용씨가문의 약속은 나로써 이제 끝났으니깐 말이다. 행복해야 된단다. 이 아버지의 몫까지 말이다.”

    용천은 말을 하고 입을 다물었다.

    차마 용악에게 말할 수 없었다. 약속을 지키라고. 반드시 살아남아서 약속을 지켜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너무나도 희박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용천은 다시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을 바라보았다. 석양의 붉은 빛이 모래바람과 어우러져 알 수 없는 묘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악아 보아라! 원한을 갚을 필요도 원수를 죽일 이유도 없단다. 원수가 누구이며 원한이 무엇인가. 원수라면 이 세상 자체일 것이고 원한이라면 이 세상에 대한 원한이다.

    이 용천 한평생 떳떳이 살아왔고 그 어떤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단지 이제 때가 되었을 뿐인 것이란다. 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태양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가 되면 사라지는 것이란다. 저 태양의 모습이 바로 이 용천은 모습인 것이란다.”

    아이는 용천의 말을 들으며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사라질 때 까지 눈 길 한번 떨어뜨리지 않고 바라보았다. 마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듯이 말이다.

    그렇게 아이와 아버지는 이별을 준비 했다. 세상에서 한번 밖에 할 수 없는 이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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