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장] 지성자 4<완결>
백자안과 지존맹주.
즉 본신과 양신의 대치가 잠시 이어졌다.
천계연합군과 마계연합군의 수많은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두 사람은 대결에 앞서 서로 전음을 주고받고 있었다.
「어쩌자는 것이오? 마제와 먼저 겨룬다고 하지 않았소?」
백자안의 전음에 지존맹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 좋으라고 내가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겠나? 너는 나와 마제 두 사람이 양패구상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게 확실한데 순순히 따라갈 줄 알았느냐?」
「그게 아니라 마제를 이길 자신이 없어서겠지. 사실 양신 스스로가 깨달음을 얻어 지성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오.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기 바라오.」
「헛소리하지 마라. 네놈만 제거하면 나는 무림왕이 되어 때를 기다릴 수 있다. 때가 되어 내가 먼저 지성자가 되면 불완전한 지성자가 된 마제를 충분히 제거할 수 있지.」
「나를 제거하면 지성자가 되지 않는 한 양신인 그대도 위험할 거라고 하지 않았소?」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모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나를 제거하면 마제가 그대를 정말 무림왕으로 대우해줄 거라고 생각하오? 분명 힘이 빠진 그대를 곧바로 제거하려 할 것이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오?」
「으음, 네 말도 일리가 있군. 그럼 어쩌자는 것이냐? 나와 함께 마제를 공격하자는 것이냐?」
「그렇소. 그게 우리 두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오.」
「거절하겠다.」
「그럼 나 혼자서 저들을 상대할 것이니 방해만 하지 마시오. 어떻소?」
「좋다. 내가 양보하지.」
지존맹주가 전음을 보낸 후 갑자기 쓰러졌다.
“으으······ 내가 졌다. 태자 너의 무공이 이렇게 높을 줄이야.”
와아아!
천계 무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태자의 무공이 지존맹주를 압도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는 지존맹주의 의도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을 자극해 마제와 먼저 겨루게 해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이라는 것을.
‘지존맹주 저자 역시 마제가 아니라 나를 더 위협적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충분히 마제를 제거할 수 있음에도 나를 견제하기 위해 연극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었군.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백자안이 마음을 편히 했다.
일단 지존맹주와 마제의 합공을 면한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
백자안이 말했다.
“마제 그대와 단둘이 겨루고 싶소. 그대가 나를 죽이면 모든 것을 얻게 될 것이오.”
“후후후! 태자! 깨어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소문대로 무공이 급상승한 것이냐? 백자안 저자를 제압하다니 놀랍군.”
마제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놀랍다고 했지만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했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곧바로 무명폭잠공을 일으켰다.
지성자가 되지 못한 지금 자신의 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얼마나 지속할지 모르지만 최소 한시진은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 적들을 섬멸해야 한다.’
백자안의 몸에서 장엄한 금빛 기운이 우러났다.
하기야 지금 그의 무공 경지에서 이번의 무명폭잠공은 특별했다.
원래 무명폭잠공을 일으키지 않아도 되는 경지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한계를 뛰어넘는 최후 잠력 폭발이라고 할까.
그 때문인지 백자안은 이번이야말로 마지막 무명폭잠공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성자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감행한 일종의 편법이었기에 일말의 불안감은 남아 있었다.
특히 과연 나중에 지존맹주까지 제거할 시간과 능력이 남아 있을지 지극히 비관적이었다.
눈을 돌려 지존맹주를 보니 그는 한쪽 옆으로 물러나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아들아. 내 혈도를 풀어다오. 합공을 해야 마제 저놈을 제거할 수 있다.”
천제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 혼자서 상대하겠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천선생과 천상선녀 두 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천계연합군 무사 모든 분께 말씀드립니다. 저 혼자서 저들을 모두 제거하려 하니 지켜봐 주십시오.”
“하하하! 미친놈이로군!”
마제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마선생이 말했다.
“일단 고수들을 내보내 저놈의 실력을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으음, 알아서 하시오.”
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백자안의 기도는 압도적이었다.
마제 역시 어느 정도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십만랑 그대가 다시 한번 수고를 해주겠소?”
마선생의 말에 십만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태자 저놈은 실속이 없는 놈이니 일장에 죽여주겠소.”
십만랑이 앞으로 나왔다.
그러자 아까처럼 십대괴수왕이 따라 나왔다.
반면 백자안은 혼자서 앞으로 나왔다.
“천계 태자! 이제 시작하지. 일단 나 혼자 너를 상대해주겠다.”
십만랑이 앞발을 들어 장력을 발출했다.
쏴아아.
단순하게 보였지만 십만랑의 필생 공력이 담긴 일장이었다.
십만랑 역시 방심하지 않고 최대의 공격을 퍼부은 것이었다.
백자안이 우수로 원호를 그리자 금빛 경력이 발출되어 십만랑의 장력과 부딪혔다.
꽈앙.
“으윽!”
신음과 함께 쓰러진 사람은 놀랍게도 백자안이었다.
연신 피를 토하고 있는 그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십만랑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이전보다 백배는 더 강해졌다. 네놈이 비록 잠력을 폭발시켰지만, 내 상대는 될 수 없지. 마지막 숨통을 끊어주마.”
십만랑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백자안에게 다가갔다.
한편 백자안은 아득한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마계연합군 전체를 몰살시킬 생각을 하고 있던 그가 아니던가.
하지만 현실은 최악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괴수대왕 십만랑이라 하지만 이렇게까지 참패를 당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분명 무명폭잠공이 가동되었고 그 무위도 충분했다. 한데 왜 갑자기 힘이 발휘되지 못한 것일까.’
백자안이 눈을 감았다.
십만랑이 눈을 시뻘겋게 해서 다가오고 있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원인 발견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충격으로 오장육부가 모두 뒤틀렸고 기혈은 엉망이 되었다.
살아있는 것만 해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태자의 몸이 원래 내 몸이 아니기 때문인가. 이제 내게 남은 수가 뭐가 있을까. 참을성으로써 혼을 보전할 수밖에 없겠구나.’
인내필성(忍耐必成).
백자안은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혼백 보존에 집중했다.
그의 혼백은 다름 아닌 마음이었다.
어떤 타격을 받더라도 마음만은 다치게 할 수 없었다.
심단전의 기초를 이미 이룬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 진정한 잠력은 바로 마음에 있다. 내 마음을 비운다면 그만큼 채워지는 것을. 그리고 비우고 채워지는 것을 모두 여의면 그 자체로 완성되는 것을. 죽음에 이르러 그 뜻을 알게 되는구나.’
퍽.
십만랑의 앞발이 백자안의 머리를 가격하자 수박처럼 터져버렸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죽음이었다.
“하하하! 수고가 많았네. 십만랑.”
“모두 마제께서 지도해주신 덕분입니다.”
십만랑이 마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와아아.
마계연합군 무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천계연합군 무사들의 사기는 최악이었다.
마계 십대호법을 상대하기 위해 나섰던 불패마왕, 임요요, 방일화 등 십인의 고수가 마제를 향해 공격을 가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마제만 죽이면 그 목숨이 연동된 마계 무사들이 몰살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기습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지존맹주였다.
지풍을 날려 불패마왕, 임요요, 방일화 등의 혈도를 가볍게 찍어버렸다.
“으윽!”
“으윽!”
마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백자안! 역시 약속을 잘 지키는군. 친동생의 혈도까지 찍는 것을 보니 말이야.”
“과찬이십니다. 진정한 군자라면 대의를 위해 사소한 것은 희생해야지요.”
지존맹주가 마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혈도가 찍힌 백소영이 소리쳤다.
“오라버니! 정신 차려! 지금 제정신이야?”
“소영아. 미안하다. 어쩔 수가 없구나. 한마디만 더 지껄이면 아무리 내 동생이라도 숨통을 끊어놓겠다.”
“아!”
백소영이 탄식했다.
방일화가 소리쳤다.
“저자는 사부님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저도 속았지만, 사부님의 기운이 이제 느껴지지 않아요. 저자는 가짜예요.”
“하하하! 무슨 헛소리냐?”
지존맹주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제 역시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백자안! 네가 정말 진짜라면 증명을 해라. 지금 바로 천계연합군 무사들의 혈도를 모두 찍으면 인정하겠다.”
“그게 가능합니까?”
“후후후! 아직 그럴 경지가 되지 않는가? 그럼 일단 내 능력을 보여주지.”
마제가 우수를 한번 흔들었다.
순간, 그의 장심에 붉은 기류가 흘러나와 순식간에 천계연합군 무사들의 몸을 감쌌다.
“으윽!”
“으윽!”
비명과 함께 이백만에 달하는 천계연합군 무사들이 모두 쓰러졌다.
혈도를 제압당한 것이었다.
천계연합군에는 천계 무사들뿐만 아니라 지존맹, 황궁, 마교, 동방, 은자림 등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순식간에 모두 제압당한 셈이었다.
“우리를 어쩔 셈이냐?”
창백한 안색의 천제가 소리쳤다.
아들의 죽음 때문인지 그의 표정에는 절망감이 가득했다.
마제가 담담히 말했다.
“모두 죽여야지. 후환을 남길 내가 아니다. 그전에 백자안 그대를 처리하는 문제가 남았군.”
“무슨 뜻입니까? 마제님. 이들을 모두 죽이고 싶으면 그렇게 하십시오. 저는 무림에 남아 있는 무림인들을 대리 통치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존맹주가 흠칫하며 말했다.
마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네. 왜냐하면 조금 전 내가 진정한 지성에 도달했기 때문이지. 마지막 한 계단을 남겨두고 있었는데,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자 마침내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저까지 제거하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러하네. 물론 아까 태자에게 특수 무형지독을 풀어 꼼짝 못 하게 만든 점은 고맙게 생각하네. 하지만 그 때문에 자네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전 태자가 십만랑과 겨루기 전에 자네는 무형지독을 태자에게 하독했네. 한데 그 방식이 매우 특이했지. 태자에게 직접 살포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몸에 하더군. 그것은 바로 태자와 자네가 한 몸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제 정체를 아신 겁니까?”
“그러하네. 그대는 백자안이 아니라 그의 양신이네. 원래 지성자가 아닌 한 양신을 만들게 되면 불완전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대가 바로 대표적이지. 지금 살려두면 나중에 나를 제거하려 할 것이니, 어찌 모른 체할 수 있겠나?”
“하지만 양신은 본신이 죽으면 소멸하고 맙니다. 태자가 진짜 백자안이라면 어찌 제가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변명은 필요 없네. 나는 이제 확신하니까.”
“후후후!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군.”
지존맹주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마제가 우수를 들었다.
“모두 나와라!”
순간, 천계벌 양옆에서 붉은 안개와 함께 새로운 무사들이 나타났다.
바로 백만 마계살수들과 삼백만 돌강시, 그리고 백만 특수부대 무사들이었다.
마계 쪽에서 혹시 몰라 숨겨두었던 나머지 오백만 무사들이었다.
특히 무림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돌강시였다.
삼백만 돌강시는 마계 십대호법과 마찬가지로 얼굴이 회복되어 있어 그 신원을 알 수 있었다.
대충 몇 명만 살펴보더라도 우문호, 남해기인, 위지경덕, 철혈객, 악소범, 백리관, 소림삼신승, 당기, 죽림거사, 천룡자, 광무대제, 모용곽, 만변술사 등 낯익은 인물이 많았다.
하지만 그들 모두 지금은 마제의 명을 받는 강시에 불과했다.
“일단 몇 명 정도 나서서 저놈의 무공을 시험해보아라.”
마선생이 소리치자, 돌강시 중 세 명이 나섰다.
한데 그들은 바로 소림방장 공무대사, 중원무맹 집법장로 황보생, 형산파 장문인 장대선생이 아닌가.
세 명 모두 고수가 아닐 수 없었다.
쏴아아.
삼인 고수의 장력이 날아오자, 지존맹주가 우수로 가볍게 원호를 그렸다.
꽈앙, 하는 폭음과 함께 공무대사, 황보생, 장대선생이 가루가 되어 즉사했다.
가공할 신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마제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역시 양신의 폭주가 시작되었군. 하지만 너는 나를 절대 이길 수 없다. 이제야 나도 알았지만 폭주의 원인 제공자가 바로 나니까 말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
“태자, 즉 진짜 백자안은 일전에 나에 의해 죽음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무저곡에 시신을 보내 달라는 말을 듣고 의심이 들어 한 가닥 마기를 몸속에 심어놓았지. 아마도 그 마기가 잠복해 있다가 양신을 만들 때 활성화된 것 같다. 다시 말해 지존맹주 네놈 몸속에 내가 심어놓은 마기가 있다는 말이지. 그 때문에 네놈 같은 괴이한 양신이 만들어진 것이다. 불완전하다고 다 네놈 같은 괴물이 만들어지지는 않지.”
“믿을 수 없다. 내 비록 양신이긴 하나 본신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본신이 죽었지만 나는 살아있는 게 그 증거다.”
“후후후! 한 가지 말을 더 안 했군. 내가 심어놓은 마기는 일종의 고독과도 같다. 고독을 발동시키면 곧바로 죽고 말지.”
“믿을 수 없다. 네놈 역시 실은 지성자가 되지 못한 것이 아니냐?”
지존맹주가 마제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예 몸통 전체로 들이받아 마제를 죽이겠다는 의도 같았다.
하지만 마제가 이상한 주문 같은 것을 외우자, 얼마 가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빌어먹을······ 사실이었구나.”
퍼퍼퍽!
지존맹주의 몸에 균열이 나며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다.
양신의 최후였다.
잔해 속에 남은 지존령기가 역설적으로 그의 죽음을 확인해주고 있었다.
“지존령기? 네놈들 모두를 죽이기 전에 기념으로 가져가야겠군.”
마제가 눈짓하자 마선생이 걸어가 지존령기를 집었다.
그 순간이었다.
마선생이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즉사해버리는 게 아닌가.
마제 등 마계연합군 무사들이 깜짝 놀라 보니 지존령기 주위에 어느새 금빛 안개가 가득했다.
얼마 후 안개가 걷힌 모습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 사람.
담담한 신색의 한 청년이 지존령기를 들고 있었다.
한데 그는 바로 본얼굴을 한 백자안이 아닌가.
“너는?”
마제가 깜짝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태자의 시신이 있는 곳을 봤다.
십만랑에 의해 머리가 터져나갔던 그의 시신은 사라진 상태였다.
“설마 진짜 백자안이냐?”
“그렇소. 폭주한 양신을 대신 처리해줘서 고맙게 생각하오.”
“어떻게 살아날 수 있었느냐?”
“죽음이란 원래 없기 때문이오. 그 점을 아직도 모르고 있소?”
“으으······ 설마 지성을 이룬 것이냐?”
“······.”
백자안이 대답 대신 미소를 지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죽어라!”
마제가 자신의 최후 무공을 펼쳤다.
붉은 광채가 거대한 해일이 되어 백자안을 덮쳤다.
백자안의 손에 지존검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슈우욱.
아무런 광채도 없는 평범한 일초였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나타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마제의 몸이 그대로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있었다.
이에 놀란 십만랑, 신선요괴, 허공대마신, 원로대마신, 뇌옥대마신, 호법대마신, 이중마인, 마계총살수 등이 백자안을 공격했지만 놈들 역시 마찬가지로 가루가 되어버렸다.
천계연합군 무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혈도가 어느새 풀린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반면 마계연합군 무사들은 다들 경직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마제의 목숨과 연동되어 공력을 상실한 데다가 이미 백자안의 무형지기에 당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천마검을 꺼내자 천마룡이 나타났다.
“주공! 부르셨습니까?”
“저들을 모두 태워버려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천마룡이 허공을 선회하며 불을 토해냈다.
화르르.
장작처럼 활활 타는 마계연합군 무사들과 괴수들, 그리고 요괴들.
다만 그 가운데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삼백만에 달하는 돌강시들이 완전히 회복된 것이었다.
무명노승, 만박서생 등 마계 십대호법들을 비롯해 모든 돌강시들이 원래 몸과 마음을 회복했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천계벌에 가득했다.
백자안은 백소영과 함께 돌강시 중에 백청, 유씨부인, 백자룡, 백풍, 곽휘 등 을 찾아내 해후를 했다.
천제와 천상선녀, 천선생 역시 혈도가 풀렸다. 놀라운 것은 천제가 이전 공력을 회복한 사실이었다.
백자안의 치료 덕분이었다.
한데 천제가 백자안을 보는 눈빛이 남달랐다.
놀라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백 공자가 태자의 환생이었다니 놀랍기 그지없소. 언제 내 아들로 다시 돌아올 수 있겠소?」
「이번 생을 마치게 되면 아마도 가능할 겁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게 잘 계십시오.」
백자안의 전음에 천제가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동안 백자안의 곁으로는 절세미녀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악미미와 단목수련, 백리설아, 김지혜, 임요요, 절대황녀, 방일화, 천상선녀, 당기 등이 바로 그녀들이었다.
백소영이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도 골치 아프겠다. 이렇게 많은 미녀들이 좋아하니까 말이야. 한데 정말 지성자가 된 거야?”
“그래. 운이 좋았다.”
“정말? 어떻게 지성을 이룬 것이지? 혹시 우담화를 복용한 거야?”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이전 무저곡에서 바깥세상으로 나올 때 복용했던 꽃이 있었는데, 그게 우담화였던 것 같구나. 이후 그 열매의 일부를 마제에게 빼앗기긴 했으나 진정한 열매는 조금 전 맺게 되었지.”
“깨달음으로 열매를 맺어 지성을 이룬 거야?”
“이룬 것이 아니라 발견한 것이지. 사실 사람은 누구나 지성자란다. 언제 어디서든 진면목(眞面目)을 깨달으면 우담화가 없더라도 가능하지.”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따뜻한 햇볕이 천계벌을 감싸기 시작했다.
<大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