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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46화 (246/250)
  • [제79장] 시산혈해 3

    천계 총단 취의청.

    천제와 천선생, 천상선녀를 비롯한 백여 명의 지휘부 고수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열고 있었다.

    참석한 고수들의 기도는 대단했다.

    한 명 한 명이 가히 절대적이었다.

    비록 지난 마계와의 전쟁에서 대패를 당했지만, 여전히 주력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이는 증거였다.

    한편 백자안 역시 천제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태자의 몸으로 들어간 지 이틀이 지난 지금 생각보다 잘 적응하고 있었다.

    당분간 태자로 행세하기로 마음먹은 그가 적극적으로 행동한 덕분이었다.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가지고 있던 멸천비수를 없애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도움이 된 것은 바로 태자의 이전 행동과 특징 등이 적혀있는 비망록이었다.

    그 비망록은 태자가 생사천겁에 들기 전에 스스로 기록한 것이었다. 지금과 같이 기억에 문제가 있을 때를 대비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태자 외에는 절대 볼 수 없는 것으로, 그 안에는 태자가 익힌 무공까지 수록되어 있었다.

    대부분 백자안이 천계비고에서 익힌 것들이었지만, 처음 보는 것들도 있었다.

    백자안은 단 하루지만 그 모든 것을 연마할 수 있었다.

    사실 그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었다.

    처음 보는 무공들도 마치 이전에 익힌 것처럼 한번 보는 것만으로 습득이 되었다.

    백자안은 그 이유를 태자의 육신을 취한 때문으로 생각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생사천겁과 관련된 기억이 없다는 점이었다.

    하기야 생사천겁 전에 기록한 비망록이니 어쩔 수 없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무공이 급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성자가 되지 못했으니, 마제를 상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완벽한 준비는 바로 지성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특별한 계기가 없기 때문인지 여전히 난망한 상황이었다.

    ‘일단 좀 더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겠군. 다행히 천계 내에서 은거하고 있던 고수들이 대거 모였다고 하니 어쩌면 쉽게 마계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돌강시 부대들인데, 어떻게 해야 그들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양신이 내 통제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 같다. 이 또한 마지막에 가서 큰 변수가 될 것 같구나.’

    백자안이 자신의 양신에 대해 생각을 했다.

    마침 그와 관련한 천선생의 보고가 진행 중이었다.

    “대별산에 있던 무황연합군이 낙양으로 진격했다고 합니다. 내일쯤 도착해 무림혈맹과 마계살수단 연합 병력과 전면전을 벌일 것 같습니다.”

    “총군사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지금 무황연합군을 이끄는 지존맹주가 바로 백자안 공자가 맞습니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천계의 태상장로 만수자(萬壽者)였다.

    마제에게 패해 공력을 모두 잃은 천제를 대신해 각종 임무를 맡고 있었다.

    그나마 천계 총단이 봉문을 선언하고 폐쇄진법을 펼쳐 방어력을 극대화한 것도 그의 빠른 결단 덕분이었다.

    “사실 그게 의문투성입니다. 원래는 무황연합군을 이끄는 지존맹주가 백자안 공자 얼굴로 역용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이번에 특별사신을 보내 확인한 결과 자신이 진짜 백자안이라고 했답니다.”

    천선생의 말에 좌중이 술렁였다.

    다들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가장 놀란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양신이 통제권을 벗어난 것은 알았으나, 자신이 진짜라고 믿고 있다는 것은 처음 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이게 다 내가 본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혼백까지 흩어졌다면 양신 역시 사라졌을 것이나, 그렇지 않자 양신이 폭주하여 자기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것 같구나. 이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백자안의 안색이 더욱더 굳어졌다.

    양신이 폭주하여 진짜 백자안이 되고자 한다고 해도 지금 당장은 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양신의 능력이 극대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서 적을 상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양신이 폭주하면 그 능력은 본신을 압도할 가능성이 크다. 어쩌면 양신만이 마제를 제거할 수도 있겠구나. 문제는 그다음인데 분명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제거하려 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내가 죽게 되면 마제를 뛰어넘는 대악마가 되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백자안은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일단은 마제를 제거할 때까지 양신을 이용할 필요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 당장 그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은 혼란만 부추길 뿐이다. 좀 더 상황을 지켜보며 지성자 수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지만 마계의 총공격이 임박해 있으니 그럴 시간도 없겠군.’

    백자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럴수록 마음을 편히 하려는 그였다.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단 양신을 만나보는 것이 중요하다. 혹시 가까운 거리에선 통제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백자안이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동안 회의는 계속되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마계의 총공격 개시로 폐쇄진법이 며칠 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무황연합군에 대한 천계 차원의 지원은 아예 거론도 되지 못했다.

    천제가 물었다.

    “지금 상황으로는 앞으로 며칠 더 폐쇄진법이 버틸 수 있겠소?”

    “길어야 이삼일입니다. 그 전에 원군이 총단에 도착해야 놈들과 최종 승부를 겨뤄볼 수 있습니다.”

    천선생의 말에 좌중이 다시 술렁였다.

    그들이 기대하고 있는 원군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신선계 은둔반선들에게서 연락이 왔습니까?”

    “네. 은둔반선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무법반선과 우리가 보낸 특별사신이 만났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행스럽게도 그동안의 불개입 원칙을 깨트리고 우리를 돕기로 했습니다. 마제의 다음 목표가 그들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 은둔반선들이 온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오. 그들의 수가 십만이 넘는다고 했소?”

    “네. 천제님. 일단 드러난 수가 그 정도이고 더 늘어날 수도 있을 겁니다. 일단 폐쇄진법을 우회해서 이곳 총단으로 오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다행이오. 사실 특수 은둔반선의 진정한 힘은 아무도 모르고 있소. 그들의 능력이라면 기대해볼 만하오.”

    “네. 하지만 그들 역시 지성자가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칭 지성자가 되었다는 마제를 제압하려면 우리 역시 그에 버금가는 고수가 있어야 합니다.”

    천선생의 말에 다들 안색이 무거워졌다.

    지성자의 부재는 모든 사람의 걱정거리였다.

    마제가 정말 지성자가 되었다면 그를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마제의 지성자 달성이 불완전하다는 겁니다. 엄밀히 말해 지성자라고 할 수 없지요. 만약 그가 지성을 달성했다면 단숨에 폐쇄진법을 뚫었을 겁니다.”

    “그건 총군사의 말씀이 옳소. 하지만 지성자에 가장 근접한 것 또한 사실이오. 내가 놈에게 패한 것이 바로 그 증거요. 불사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나 역시 공력을 잃은 것에 그치지 않고 소멸했을 것이오.”

    천제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과 같은 중차대한 시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 같았다.

    “태자님은 어떠하십니까? 지성자 달성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만수자의 물음에 모든 이의 시선이 백자안에게 쏠렸다.

    아직 태자의 기억이 불완전하니 최대한 성가시게 하지 말라는 천제의 명이 있었지만, 꼭 필요한 질문이라 한 것 같았다.

    “저 말입니까? 제 몸 상태는 이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기억은 이전에 써 놓은 비망록 덕분에 많이 돌아온 것 같습니다. 다만 지성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실망을 끼쳐 드려 모든 분께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태자님. 무황연합군을 이끄는 지존맹주가 진짜 백자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짐작했습니다. 어쩌면 생사천겁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요.”

    “그 말씀은?”

    백자안이 관심을 보였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점이 있을까 해서였다.

    “생각해보면 간단하지요. 아직 백자안이 살아 있기 때문에 생사천겁이 완료되지 못한 것이지요. 다만 태자님께서 깨어나신 것은 필시 그 과정에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다시 말해 태자님을 깨어나게만 하고 생사천겁은 끝나지 않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지요.”

    “어렵군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백자안의 말에 천상선녀가 말했다.

    “특별사신이 전한 말 중 이런 것이 있어요. 좀 더 살펴본 후 밝히려 했으나 지금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지존맹주가 작전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양신을 만들었으며, 아마도 저와 천선생을 마계 총단에서 구출한 사람이 바로 백자안 공자의 양신일 거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요컨대 백 공자 본신이 소멸해야 완전히 생사천겁이 끝나 태자님이 지성자가 되시는데, 뜻밖에 양신이 소멸해 그냥 이전 능력대로 태자님께서 깨어나기만 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백자안 그자가 죽어야 제가 지성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백자안이 당혹감을 억누르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양신이 거꾸로 본신을 양신으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었다.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사전 작업을 하다니. 하기야 양신 입장에서는 마제보다 내가 더 껄끄러운 상태일 것이다. 내가 결국 몸을 회수하려 할 것을 알고 있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약간의 혼동은 여전했으나,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된 백자안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양신을 죽일 수도 없었다.

    “지존맹주를 죽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그를 죽인다고 제가 지성자가 된다는 보장도 없고, 지금 마제를 상대할 수 있는 고수는 사실상 그가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무황연합군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다고 하던가요?”

    백자안이 불필요한 논란을 미리 막고자 화제를 돌렸다.

    천선생이 대답했다.

    “네. 특별사신에게 무림혈맹과 마계살수단을 제거한 후 전 무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온다고 약속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방법을 가르쳐 준 겁니까?”

    “네. 마침 숭산에 있던 신선계와 통하는 출입구가 다시 생성되었기에 그쪽으로 무사들을 이끌고 오라고 했습니다. 일단 신선계에 들어오면 은둔반선들이 그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올 겁니다. 우리 쪽 특별사신들도 대기하고 있으니 오는 데는 문제 없을 겁니다.”

    “아! 은둔반선들이 무황연합군을 우리 총단에 데려오기로 했군요. 잘 되었습니다.”

    “네. 다만 이 모두가 무황연합군이 무림혈맹과 마계살수단을 제거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지요.”

    “그렇군요. 중과부적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백자안 공자의 능력을 믿어볼 수밖에요. 특별사신의 말로는 백 공자 역시 이번에 깨달음을 얻어 충분히 마제와 겨뤄볼 만한 것 같다고 하니 기대할 만할 겁니다.”

    “그렇군요. 예상대로라면 이삼일 후 원군들이 모두 도착하고 진짜 마계 쪽과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될 것 같습니다. 놈들의 전력에는 무슨 변화가 없습니까?”

    백자안이 자연스럽게 회의를 주재하며 질문을 던졌다.

    천상선녀가 대답했다.

    “정보에 의하면 은둔반선들이 우리와 협력하기로 하자, 신선계에 있던 마물과 요괴들이 대거 모여들고 있다고 해요. 아마도 마계 쪽과 힘을 합쳐 우리를 공략할 것 같아요.”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이번에 적대세력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이번 싸움은 그야말로 양측에서 엄청난 사망자가 나올 듯하군요.”

    “네. 모든 힘이 집결하는 데다가 어느 한쪽이 완전히 제거되어야 끝날 것이니까요. 아마도 싸움이 벌어질 천계벌(天界伐)에 시체가 산같이 쌓이고 피가 바다같이 흐를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다만 희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며칠 남지 않았지만 노력해 반드시 지성을 이루겠습니다.”

    “아!”

    “오!”

    백자안의 패기 넘치는 말에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만 된다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 겁니다.”

    “기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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