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38화 (238/250)
  • [제77장] 분신술 1

    [제77장] 분신술

    한 달 후 하남성 대별산.

    서서히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는 이곳에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어젯밤부터였다.

    줄잡아 오십만 명에 달하는 대군.

    바로 지존맹과 황군의 연합군이었다.

    이들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지존맹주 백자안과 당금 황제 절대황녀였다.

    칠 일 전 악양을 출발한 연합군은 호남성과 호북성을 거쳐 마침내 낙양이 있는 하남성까지 진입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무림혈맹에서 파견한 무사들의 기습 공격을 받은 것만 십여 차례.

    함정에 빠져 위기에 처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백자안의 활약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일까.

    승전보가 쌓일수록 병력은 계속 늘어났다.

    소문을 듣고 천하 각지에서 무림인들이 대거 몰려든 것이었다.

    그 결과 지존맹 무사의 수가 십만에서 사십만으로 대폭 늘어났다.

    황군의 수는 그대로 십만이었다. 하지만 지존맹 무사와 합친 병력이 오십만에 달해 한번 승부를 걸어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은 물론이었다.

    반면 무림혈맹 무사들의 수는 여전히 백만이었다.

    그들이 수차례 기습 공격을 가하다가 패배해 전사자 수가 상당했으나, 그만큼 다시 전력이 보충되고 있었다.

    게다가 백만 마계살수들은 낙양 총단에 여전히 웅크리고 있어 지존맹 무사들과 황군 무사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연합군 병력의 절반 이상을 백자안 개인의 무공에 의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실제 전면전이 벌어지면 여전히 대패할 가능성이 컸다.

    그 때문일까.

    연합군 지휘부에서는 진격을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하기로 했다.

    낙양과 너무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는 거리에 있는 이곳 대별산에 진지를 구축한 이유였다.

    냑양까지는 대략 이삼일 거리.

    지금처럼 느리게 움직이면 보름도 걸리겠지만, 더 이상 접근하면 무림혈맹과 마계살수단의 본진 고수들과 맞부딪힐 가능성이 컸다.

    정오 무렵.

    연합군 지휘막사에서 작전 회의가 열렸다.

    지존맹과 황궁 지휘부 고수들의 회의.

    주재자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지휘체계를 통일하기 위해 악양에서 출발할 당시 모든 지휘권을 백자안이 가지기로 한 바 있었다.

    물론 절대황녀 또한 이번 출정에 참여했지만, 옆에서 백자안을 돕는 차원이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낙양에 있는 놈들의 동태는 어떠합니까?”

    백자안의 물음에 연합군 총군사를 맡은 청룡선생이 대답했다.

    “낙양성을 완전히 장악한 놈들이 그곳을 사수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낙양성 관아 역시 놈들의 손에 들어갔다는 말씀입니까?”

    “네. 정탐무사들의 보고에 의하면 관아 역시 놈들의 손에 들어간 지 오래라 합니다.”

    “으음, 놈들이 한 달 전 악양에서 철수해 낙양으로 돌아간 후 지금까지 대병력을 보내지 않고 기습 공격만 감행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로 봅니다. 첫 번째는 십만혈군과 마계총살수의 사망으로 인해 놈들 역시 일종의 연계 타격을 받아 그 후유증을 최소화할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두 번째는 바로 우리 무황연합(武皇聯合) 무사들을 일거에 공격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물론 지리적 이점도 가져가려는 속셈이겠지만, 굳이 천하 곳곳을 뒤져 저항세력을 숙청하기보다 우리 무황연합 세력이 최대로 커지기를 기다렸다가 단번에 승부를 보려는 계책이 틀림없습니다.”

    “총순찰의 생각은?”

    백자안이 방일화를 쳐다봤다.

    청룡선생이 천하 각지에 퍼져 있는 황궁의 정보방을 이용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면, 그녀는 지존맹 소속인 개방의 도움을 받아 정보를 취합하고 있었다.

    “청룡선생의 말씀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부터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도착한 이곳 대별산은 낙양과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이 정도 거리면 특수 이동대법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하루 이틀 만에 올 수 있는 고수들이 상당할 겁니다. 본격적인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공격 계획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말이냐?”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는 악양루에 매설된 화약 폭발을 혼자 힘으로 막아내고 실신했다가 다시 깨어난 후 다소 신비스러운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이는 무림혈맹 쪽의 기습 공격이 있을 때 잘 드러났다. 놈들이 제대로 된 기습 공격을 가하기도 전에 백자안의 감시망에 걸려 빠르게 전멸하고 만 것이었다.

    놈들의 사인은 대부분 심맥이 끊어졌기 때문으로, 백자안이 무형지기를 발산해 그렇게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수백 장 이상 떨어져 진격하고 있던 연합군 선봉부대에 대한 기습 공격도 백자안이 막아주었단 사실이었다.

    일만 명으로 구성된 무황연합 선봉부대는 그 덕분에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백자안의 원격 도움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쯤 그들 대다수가 전멸했을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무황연합 무사들의 백자안에 대한 믿음은 날이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었다.

    그 힘의 한계가 없어 보이는 배후 세력인 마계의 존재가 한없이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었지만, 백자안이라는 희망의 빛살이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천계와 마계의 전쟁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소식이 있느냐?”

    “아직 정확한 사실은 모르고 있어요. 다만 소문에 의하면 천계가 대패하여 곧 마계의 승리가 확정될 거라고 하네요. 한 달 전 있었던 마제와 천제의 대결에서 천제가 패해 중상을 입었다는 말도 있고 말이에요. 여태까지 천계 고수들이 무림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 소문이 사실인 것 같아요.”

    방일화의 말에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낙양에 도착하면 알게 될 일이다. 그보다 놈들의 수장은 정해졌느냐?”

    “네. 무림혈맹 자체 비무대회를 열어 오늘 새 맹주를 뽑는다고 해요. 마계총살수 역시 새로운 인물이 마계에서 파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자체 무림혈맹주를 뽑는다고?”

    “네. 조금 전 비합전서로 들은 정보이니까 확실할 거예요. 사실 그동안 새 맹주가 뽑히지 못한 것은 치열한 자리다툼이 있었기 때문이라는데, 우리가 이곳 대별산까지 진격하자 부랴부랴 맹주를 뽑는 것 같아요. 한데 왜 그러세요?”

    “아니다.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일단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개인 막사로 향했다.

    오늘 회의에는 절대황녀가 참석하지 않았기에 그가 따로 인사를 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나갔다고 해서 회의가 정말 끝난 것은 아니었다.

    청룡선생과 방일화 중심으로 실무적인 일을 의논해야 했다.

    “일단 진지 주위에 쳐 놓은 방어진법에 대한 검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청룡선생의 말이 시작되며 열띤 회의가 재개되었다.

    * * *

    개인 막사로 돌아온 백자안은 가부좌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막사 밖을 지키는 호위무사에게는 엄명을 내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무림혈맹의 새 수장을 뽑는다고 하니 잘하면 이 기회를 살릴 수도 있겠구나. 이대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설사 승리를 거둔다고 해도 많은 희생이 따를 것이다. 차라리 내가 무림혈맹주가 되어 내분을 일으킨다면 그 효과는 매우 커질 것이다. 하지만 과연 마계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이미 이곳 역시 놈들의 감시망 영향권에 들어 있을 터. 내가 자리를 비우면 분명 의심을 살 것이다. 하지만 분신술로 내가 두 명이 되면 그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백자안이 분신술에 대한 생각에 잠겼다.

    그동안 잠시 분신술을 펼쳐 위기를 모면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같은 장소에서 일시 만들어낸 환영이었다.

    죽은 척하여 적으로 하여금 방심하게 하고 기습 공격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몸이 두 개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진전한 분신술은 아니었다.

    두 개의 몸 중 하나를 시체로 착각하게 하는 것으로 일종의 환영이라 할 수 있었다.

    백자안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분신술은 그야말로 두 명의 백자안을 만드는 비술이었다.

    악양루 화약 폭발 사건 이후 그가 실신하고 다시 깨어났을 때 그의 몸 상태는 매우 신비했었다.

    백자안 스스로 생각해봐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정신을 잃고 있었을 때 심연과도 같은 깊은 무의식 세계에서 뭔가를 느꼈기 때문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그것이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란 것만은 확실했다.

    무엇이든 그 본질을 알게 되면 진면목이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지금까지 백자안이 한계를 겪고 있는 것도 기실은 이 근원적인 진실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딱 한 꺼풀만 벗겨내면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한 꺼풀이 모자라는구나.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인 것 같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고 분신술을 한번 시험해보자. 내가 과연 분신술의 최고봉이라는 양신을 만들 수 있을지. 만약 가능하다면 곧바로 양신을 낙양으로 보내 무림혈맹주 자리를 차지하도록 해야겠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 했던가.

    설사 무림혈맹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놈들의 동태, 특히 마계의 상황을 알아낼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시도해볼 만했다.

    물론 방일화와 의논해 그녀에게 자신으로 역용해 지존맹주 역할을 하게도 할 수 있었으나, 마계 특히 마제의 예지력을 속일 수는 없을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래서 모험이지만 양신을 만들어내려는 것이었다.

    참고로 양신은 본신에 대비되는 것으로 원칙적으로 본신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강시처럼 단순히 임무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었다.

    다만 양신을 만들어낼 때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본신이 양신을 완벽히 제어하는 것이지만, 가끔 그 제어력이 완벽하지 못해 양신의 행동을 제어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양신이 심마에 드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이었다.

    심마에 든 양신은 본능적으로 본신과의 관계를 끊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그렇게 본신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때부터 양신은 폭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기본적으로 양신 역시 본신과 거의 대등한 능력을 지니기에 나중에 어쩔 수 없이 본신이 양신을 제거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대마두를 죽여놓고 보니 사실은 어떤 사람의 심마였다는 상고시대 전설이 바로 그것이었다.

    하지만 양신을 만드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우므로 그러한 이야기는 전설로만 여겨졌다.

    한데 그 전설 같은 이야기가 지금 백자안의 몸에서 펼쳐지려 하는 것이다.

    물론 백자안으로서도 통제만 잘되면 지금 상황에서 양신을 만들어내는 것만큼 효율적인 것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본적으로 양신의 사망은 본신에게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대로 본신이 사망하게 되면 양신 역시 사망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는 수하들을 자신에게 충성하게 만드는 목숨 연동 방식의 일종이라 할 수 있었다.

    ‘모험을 하자. 어쩌면 이러한 시도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밝혀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결심을 굳히고 곧바로 분신술을 통해 양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양신이 만들어지면 곧바로 낙양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특수 이동대법도 함께 준비해두었다.

    그렇게 되면 본신은 여전히 이곳 대별산에 있게 되고, 양신은 낙양에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었다.

    스스슷.

    금빛 안개가 일어나며 백자안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