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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37화 (237/250)
  • [제76장] 무림왕 3

    우우웅!

    지존검에서 검명이 울려 퍼졌다.

    대결 직전 이렇게 검명이 울리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백자안의 간절한 바람을 지존검이 알아차린 것일까.

    하지만 어떤 위력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였다.

    거대한 도 한 자루를 들고 있는 총살수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미동도 없는 그는 도를 수직으로 세운 채 공격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백자안은 지존검을 비스듬히 세워 지존검법을 펼칠 준비를 했다.

    그가 펼칠 초식은 지존검법 제7초식인 지존무변(至尊無變)이었다.

    이론적으로는 터득한 지 오래지만, 실제 펼쳐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총9초식인 지존검법은 제7초부터는 지존검 자체의 각성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가능한 한계가 있었다.

    이는 백자안 또한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로, 그만큼 그 위력이 절대적이었다.

    “후후후! 놀랍군! 하지만 네놈의 내상이 이미 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잘 가라.”

    총살수가 도를 그대로 내리쳤다.

    쏴아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공격.

    하지만 백자안은 거대한 도강이 마치 해일처럼 자신을 향해 들이닥치는 것을 느꼈다.

    ‘피할 수 없다.’

    공간 전체를 압박하며 무섭게 들이닥치는 도강.

    백자안은 일단 피하려는 생각을 멈추고 지존검을 휘둘렀다.

    특별한 형식은 없었다.

    도강에 맞게 자연스럽게 검강을 일으킨 것이었다.

    하지만 지존검법 제 7초식 지존무변임은 확실했다.

    쏴아아.

    동심원 모양으로 검광이 크게 일며 다가오는 도강과 부딪쳤다.

    꽈아앙.

    거대한 폭발음.

    지축이 흔들릴 정도로 그 충격은 매우 컸다.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그 자리에 서 있지 못하고 주저앉을 정도였다.

    백자안과 총살수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공격을 집중해서 망정이지,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을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얼마 후 먼지구름이 사라지고 드러난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기세등등하던 총살수의 목이 몸과 분리된 게 아닌가.

    반면 백자안은 비틀거리며 연신 피를 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자세를 바로잡는 그였다.

    누가 봐도 백자안의 승리였다.

    와아아!

    황군과 지존맹 무사들, 그리고 군중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바로 그때였다.

    예기치 않던 일이 벌어졌다.

    한쪽 구석에서 회복술법을 펼치고 있던 십만혈군이 두 손을 뻗어 석변개술을 펼쳐 백자안을 공격했다.

    쏴아아.

    “으윽!”

    백자안이 신음과 함께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십만혈군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드디어 당했구나. 네놈이 보록 총살수를 죽였지만, 진기가 바닥난 것을 알고 있었다. 내 어찌 이 기회를 놓칠 수 있겠느냐? 애초에 네놈이 나를 살려둔 것이 패착이었다.”

    “으으······.”

    백자안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억지로 십만혈군을 향해 다가가려 했다.

    그때였다.

    십만혈군의 말이 적중한 것일까.

    백자안의 몸이 흐릿해지며 돌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부님!”

    지켜보던 방일화가 급히 올라와 백자안을 부축했으나, 이미 전신이 돌로 변한 이후였다.

    “후후후! 아무리 체질적으로 나의 석변개술을 막아낼 수 있다고 해도 진기가 바닥난 경우는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지. 네년도 없애주마.”

    십만혈군이 다시 한번 석변개술을 펼치려 했다.

    그때였다.

    다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방일화가 분노하며 일장을 날리려던 찰나.

    돌로 변한 백자안이 신형을 날려 그대로 십만혈군을 향해 날아간 것이었다.

    “이놈이!”

    십만혈군이 매우 놀라며 석변개술을 펼쳤다.

    꽈아앙.

    백자안이 술법력에 당해 한번 휘청거렸다. 한데 십만혈군을 향해 날아오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십만혈군이 기겁하며 옆으로 피하려는 순간.

    백자안의 돌주먹이 그의 머리를 타격했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뇌수가 터지며 십만혈군의 머리가 박살 났다.

    얼굴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그가 즉사한 것은 물론이었다.

    “사부님!”

    방일화가 다시 다가와 백자안을 부축했다.

    그때였다.

    돌로 변했던 백자안의 몸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와아아!

    황군과 지존맹 무사들, 그리고 군중의 함성이 다시 터진 것은 물론이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방일화의 물음에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석변개술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직접 내가 겪어보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행히 모험에 성공했구나.”

    백자안이 말을 한 후 무림혈맹 무사들과 마계살수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순식간에 지휘자를 잃었지만, 그 무력만큼은 압도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그들이 승리하리라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백자안의 안색이 굳어져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완전히 회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잠력까지 모두 사용한 터라 일각을 채 버티기 힘들었다.

    ‘지금 내가 쓰러지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죽고 만다. 최대한 버텨야 한다.’

    백자안이 적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을 바로 그때.

    마계살수들과 무림혈맹 무사들 사이에 붉은 안개 같은 것이 일어났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아! 저것은 특수 이동대법! 마계 쪽에서 저들을 철수시킬 생각인가?’

    백자안이 놀랄 때.

    마계살수들과 무림혈맹 무사들이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황군과 지존맹 무사들 역시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비록 적의 수장들을 제거했지만, 전면전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었다.

    특히 백만이나 되는 마계살수들의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그들 모두를 백자안 혼자서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다들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한데 갑자기 사라져버리니 솔직히 기뻐하는 사람도 많았다.

    “백 맹주! 어떻게 된 건가요?”

    절대황녀가 급히 백자안에게 물었다.

    백자안이 대답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들이 사라진 것은 특수 이동대법으로 보입니다. 어쩌면 십만혈군과 총살수가 죽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철수했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그 말씀은 십만혈군과 총살수의 목숨과 그 수하들의 목숨이 연동되어 있다는 뜻인가요?”

    “네. 하지만 추측일뿐입니다. 다만 급히 철수한 것으로 봐서 놈들 나름대로 대비책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사실 지금 우리 병력으로 놈들과 전면전을 벌이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까요.”

    “네. 하지만 아직 방심할 때는 아닙니다.”

    백자안이 말을 한 후 주위를 둘러봤다.

    특히 그가 주시해서 보고 있는 곳은 마계살수들이 있던 자리였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든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누군가 급히 소리쳤다.

    “화약 냄새다!”

    “앗!”

    여기저기서 다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청룡선생이 급히 말했다.

    “마계살수 그놈들이 우리에게서 훔쳐간 화약을 매설한 것이 아닐까요?”

    “그럴리가!”

    절대황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마계살수들이 화약을 매설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출귀몰한 그들의 움직임을 생각해볼 때 그 믿음은 견고하지 못했다.

    백자안 역시 얼마든지 마계살수들이 화약을 매설해두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백자안이 화약 냄새가 나는 곳을 조사해보려던 순간.

    거대한 폭발이 시작되었다.

    불길한 예감대로 화약이 폭발한 것이었다.

    그 위력은 악양루를 둘러싸고 있는 백만이 넘는 사람들 모두를 날려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백자안이 지존금광을 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미 잠력이 바닥난 상태였지만, 어쩔 수 없이 최후의 잠력을 폭발시킨 것이었다.

    이는 무명폭잠공과도 다른 것으로 그야말로 동귀어진이라 할 수 있었다.

    무릇 동귀어진은 그 상대가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화약이었다.

    그 화약을 누가 언제 매설했는지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사람들부터 살려야 했다.

    백자안이 본능적으로 최후 잠력을 폭발시킨 이유였다.

    이런 최후 잠력 폭발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가장 비슷한 경우가 죽음 직전 자신의 몸을 폭사시켜 상대와 동귀어진하는 경우였다.

    백자안의 경우가 그것과 유사했다.

    하지만 그의 몸이 폭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콰콰콰쾅.

    한번 폭발한 화약은 연쇄반응을 일으키며 거대한 폭발음을 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죽거나 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백자안이 발출한 지존금광이 땅속에 침투해 그 폭발을 모두 해소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의 폭발음은 땅속에서 들리고 있었다.

    지반이 군데군데 튀어 오르고는 있었으나,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휴우!”

    “큰일 날 뻔했다.”

    사람들이 한숨 돌릴 때 모든 이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쏠렸다.

    바로 백자안이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채 방일화의 부축을 받고 있었다.

    그는 죽은 것일까, 살아있는 것일까.

    절대황녀와 청룡선생 등 주요 고수들이 백자안을 향해 다가갔다.

    * * *

    백자안이 다시 깨어난 것은 사흘 후였다.

    지난 사흘간 악양성 관아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었던 그가 정신을 차리자, 방일화, 절대황녀 등이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가 깨어나자 가장 궁금한 것은 바로 몸 상태였다.

    누가 봐도 무리했다는 것이 확실했던 이상 그 후유증이 엄청날 것 같았다.

    하지만 백자안은 미소를 지을 뿐 몸 상태에 관해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다는 말만 했을 뿐이었다.

    그나마 거동을 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에, 혹시나 사망할 것을 두려워했던 방일화 등은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백자안이 깨어나자마자 이루어진 것은 무림왕 책봉이었다.

    책봉식은 관아 대연무장에 모인 군웅들 앞에서 진행되었다.

    관례대로 책봉에 앞서 백자안은 두 명의 도전자를 더 받아야 했으나, 예상대로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믿을만한 고수는 백자안 뿐이라 할 수 있었다.

    방일화가 있긴 하지만 역시 진성마신들을 상대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백자안은 그렇게 무림왕이 되었다.

    하지만 무림왕은 황궁과의 관계를 고려한 상징적인 직책일 뿐이었다.

    백자안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자리는 바로 지존맹주였다.

    백자안이 깨어나고 다시 사흘이 흐른 후 관아 취의청에서 회의가 열렸다.

    참석인원은 백자안을 비롯하여 방일화, 절대황녀, 청룡선생 이렇게 네 명이었다.

    참고로 절대황녀는 황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백자안과 행동을 같이하기로 한 바 있었다.

    “놈들의 동태에 관해서 이야기해 보아라. 지난번에 악양으로 왔던 무림혈맹 십만 병력이 모두 낙양 총단으로 복귀했다는 게 사실이냐?”

    “네. 그들뿐만 아니라 마계살수 백만 병력도 모두 지금 낙양 총단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방일화의 보고였다.

    청룡선생이 말했다.

    “맹주님 예상대로 놈들이 그때 특수 이동대법을 통해 낙양으로 복귀했군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놈들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시급한 것 같습니다. 천계와 마계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아내야 하겠지요.”

    “그래도 일단은 낙양에 있는 놈들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요?”

    절대황녀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폐하 말씀대로 낙양부터 수복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놈들이 전 병력을 낙양 총단에 집결시키고 있으니, 우리 역시 병력을 집결시켜 낙양으로 진군하는 것이 필요할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최후의 승부를 겨뤄볼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 병력으로 가능할까요? 놈들은 무림혈맹 백만에다가 마계살수 백만 모두 이백만이 넘어요. 놈들의 수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해도 고작 이십만에 불과한 우리와는 비교가 안 되지요.”

    “그렇긴 합니다만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는 대세를 바꿀 수 없습니다.”

    “좋아요. 백 맹주의 뜻대로 하겠어요.”

    “감사합니다.”

    “그럼 출병은 언제 할 건가요?”

    “사흘 후입니다. 낙양으로 진군하는 동안 병력이 불어날 수도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 백 맹주를 믿겠어요. 무림왕으로서의 직책을 충분히 수행하리라 믿어요.”

    “네. 그럼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요. 내일 다시 회의를 열겠습니다.”

    백자안의 말에 방일화, 절대황녀, 청룡선생 세 사람이 집무실에서 나갔다.

    백자안이 사용하는 집무실은 관아에서 새로 마련한 것으로 침소도 함께 있었다.

    홀로 남게 된 백자안이 침상에 가부좌하고 앉아 묵상에 잠겼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갈 것이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된다. 나 자신을 믿는다면 무엇을 두려워할 것인가. 모든 것이 공(空)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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