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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36화 (236/250)

[제76장] 무림왕 2

마지막 도전자로 나선 그는 바로 백자안이었다.

원래는 좀 더 상황을 지켜보려고 했지만, 이쯤에서 십만혈군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귀하는 뉘시오?”

혈천자가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백자안은 역용을 하고 있어 그 얼굴을 아는 사람이 당연히 없었다.

한 마디로 무명소졸이었다.

그 때문일까.

내심 어느 정도 기대를 하고 있던 절대황녀와 청룡선생 등이 실망 어린 표정을 지었다.

다들 말은 안 했지만 실종된 백자안이 다시 나타날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의 바람은 실질적으로 이루어진 셈이지만, 백자안은 아직 자신의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다.

마제의 견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신분으로 최대한 활동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악양객(岳陽客)이라 하오. 원래 이곳 악양루 인근에서 조용히 지내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 이렇게 나선 것이오. 십만혈군 그대를 제거해 세상에 평온함을 되찾아주려 하오.”

“흥! 감히 맹주님을 모욕하다니! 맹주님. 저런 놈은 상대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혈천자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수하에게 명령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십만혈군이 손을 저어 만류했다.

“그럴 필요 없소. 겨우 도전자가 나섰는데 어찌 시간을 허비하겠소? 내가 상대하겠소.”

십만혈군이 여유 있는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에 대해 그렇게 크게 경계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분은 어서 대결하시오.”

청룡선생이 말을 한 후 급히 절대황녀에게 전음을 날렸다.

「엉뚱한 사람이 도전자로 나섰으니 패배는 확실할 겁니다. 싸움이 끝나는 즉시 전면전을 명하십시오. 그러면 지존맹 무사들도 나설 겁니다. 종국에는 천계 고수들도 참여할 것이니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알겠어요. 결심이 이미 섰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예요.」

절대황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천계 고수라 할 수 있는 천선생과 천상선녀는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상황.

결과가 불확실하지만 과감하게 부딪혀볼 생각이었다.

절대황녀가 의지를 다질 때.

백자안과 십만혈군의 비무는 시작되고 있었다.

쏴아아.

선공을 펼친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었다.

장풍.

평범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십만혈군이 깜짝 놀라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고수다!’

십만혈군이 급히 호신강기를 강화하며 석변개술을 펼쳤다.

단순한 반탄강기로 상대할 공격이 아니었다.

꽈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으······.”

신음을 낸 사람은 다름 아닌 십만혈군이었다.

비틀거리고 있는 그의 상태는 처참했다.

가히 천하무적으로 여겨지던 그의 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핏속에는 산산조각이 난 내장 부스러기가 보였다.

“맹주님!”

혈천자가 급히 십만혈군을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중상을 입어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십만혈군이 백자안을 보며 말했다.

“석변개술이······ 통하지 않는다니··· 설마 네놈이······ 백자안이냐?”

“그렇소. 내가 바로 백자안이오.”

백자안이 역용을 풀자 그의 본모습이 드러났다. 다소 이른 감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와아아.

군중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백자안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는 여전히 대단했다.

무엇보다 일장에 십만혈군을 압도한 것이 마음껏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했다.

특히 절대황녀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백 맹주!”

“오랜만입니다. 폐하.”

백자안이 절대황녀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군중 속에 있던 지존맹 무사 십만 명이 일제히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모두 일어나시오.”

백자안이 두 손을 들어 그들을 일으켰다.

지존맹 무사들이 그 힘에 놀라면서 다시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

“지존맹 만세!”

“지존맹 만세!”

지존맹이 부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십만혈군이 숨을 거둔 것은 아니었다.

기본 내공이 워낙 강해서인지 오히려 숨이 편안해지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십만혈군은 자신이 백자안의 장력에 당하자마자 회복술법을 펼치고 있었다.

이는 회복운공처럼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중상을 입기 전의 몸으로 되돌리는 희대의 술법이었다.

원래 자동으로 몸이 재생되는데, 이번에 워낙 강력한 공격을 당해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백자안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저지를 하지 않았다.

청룡선생이 소리쳤다.

“악양객, 아니 백자안 맹주의 승리요. 이에 대해 이의가 있소?”

“으으······ 없다. 하지만 무림왕이 되기 위해서는 백자안 저자도 도전자를 받아야 한다.”

십만혈군이 가부좌를 한 채 말했다.

회복술법을 펼치는 그의 주위에는 무림혈맹 지휘부 고수들이 둘러싸서 호법을 서고 있었다.

백자안 역시 십만혈군보다 마계 고수들을 더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속사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그 역시 상당한 내상을 입었기 때문이었다.

십만혈군의 석변개술.

그것은 백자안이라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다만 다른 사람과 달리 돌로 변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기야 처음 중간지대로 들어갔을 때도 그는 무사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무공이 더욱더 높아져 일단 석변개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석변개술은 상대를 돌로 변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술법이 통하지 않으면 곧바로 그만큼의 공격이 가해지는 특성이 있었다.

따라서 상대의 신체적 특성 등으로 술법이 통하지 않더라도 같은 타격을 주어 목숨을 빼앗을 수 있었다.

이점이야말로 금지된 술법의 숨겨진 위력이었다.

‘시간이 필요한 것은 오히려 나다. 내가 내상을 입은 사실을 마계 쪽에서 알면 절대 안 된다.’

백자안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핏물을 다시 삼켰다.

마계의 개입만 없다면 십만혈군을 비롯한 무림혈맹 무사들은 어느 정도 제압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중 가장 중요한 상대는 십만혈군이었다. 일단 그를 제압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한 시름 놓은 것은 사실이었다.

이를 세세히 알 리 없는 청룡선생은 일단 무림왕 책봉 절차를 진행했다.

“무림왕 예정자에게 도전해 이기게 되면 그 사람이 바로 무림왕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되오. 이제 백자안 맹주께서는 세 사람의 도전을 받아 무림왕이 될 수 있소. 계속 진행하겠소?”

“네.”

백자안이 몸속에서 지존검을 꺼냈다.

스르릉.

지존검이 외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 눈에는 백자안의 손에 갑자기 지존검이 나타난 것으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군가 소리쳤다.

“지존검이다!”

“천하제일검!”

와아아.

또다시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황군과 지존맹 무사들은 물론이고 구경을 하고 있던 군중 모두 흥분한 모습이었다.

반면 무림혈맹 무사들은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선을 제압당한 것 역시 사실이었다.

그들은 숨죽이며 십만혈군이 회복하기만을 바랐다.

마침 백자안이 도전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그 시간이 만들어졌다.

백자안이 선 채로 회복운공을 하며 생각했다.

‘마계 고수들만 아니면 가볍게 비무를 하면서 내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심호흡을 했다.

여러 번 경험했지만, 그의 몸은 자체 회복력이 있었다.

비무를 한다고 해도 상대가 강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시간을 끌면서 기를 다스릴 수 있었다.

“첫 번째 도전자는 나오시오. 열을 살릴 동안 나오지 않으면 곧바로 무림왕 책봉을 확정 짓게 될 것이오.”

청룡선생의 말에 백자안이 흠칫했다.

비무를 하면서 시간을 끌려던 자신의 의도와 다른 말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기호지세였다.

어떤 경우에도 임기응변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그때였다.

악양루 주위로 안개 같은 것이 깔리며 살수들이 나타났다.

마치 허공에 숨어 있다가 나타난 것처럼 그들의 등장은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하나같이 귀면탈을 쓴 살수들.

바로 마계살수단 살수들이었다.

악양루에 모인 무사들과 군중들 전체를 에워싼 그들의 수는 무려 백만 명.

그토록 많은 사람이 기존에 모인 사람들을 포위하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일각도 채 되지 않았다.

“앗! 저들은?”

“마계살수들이다!”

사람들이 경악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만큼 마계살수들의 악명은 자자했다.

하지만 정작 두려움을 주는 것은 지금과 같은 은밀함이었다.

“하하하! 드디어 백자안 그대를 만났군. 나는 무명살수단의 단주인 총살수라고 하오”

황금 귀면탈을 쓴 사내 한 명이 비무선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마계총살수였다.

비무선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은 백자안과 대결을 벌이겠다는 의도를 보인 셈이었다.

“역시 살아있었군. 마제께서 그대를 죽였다고 들었지만 어쩐지 살아있을 것 같았소. 아무튼, 잘되었소. 백자안 그대와 한번 겨뤄보고 싶었으니까. 마침 자리도 마련되었으니 본인이 첫 번째 도전자로 나서겠소. 도전을 받아주겠소?”

총살수가 담담히 말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귀면탈이 더욱더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백자안 역시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듯 담담히 말했다.

“물론이오. 누구든 도전할 수 있으니, 내 어찌 거부할 수 있겠소?”

“고맙소. 참고로 본인은 마계의 진성마신 출신이오. 원래 본계는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으려 했으나, 천계의 지원을 받은 백자안 그대 때문에 부득이 묵계를 깨트릴 수밖에 없을 듯하오. 아울러 오늘부터 우리 마계살수단 역시 본격적으로 무림의 일에 개입하겠다는 것을 천명하는 바이오.”

총살수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지금까지 마계살수들의 횡포에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의 은밀함 때문이었다. 한데 이제 본격적으로 나선다고 하니 마치 마계가 무림을 접수하겠다는 공식 선언으로 들렸다.

혈천자가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총살수의 뜻은? 우리 무림혈맹마저 휘하에 들이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이게 다 그대들의 맹주인 십만혈군이 백자안 저자에게 패했기 때문이오. 무림의 질서를 새로 세우기 위해서는 절대강자가 무림을 다스려야 하오. 하지만 마제께서 다시 기회를 주실 수도 있을 것이오.”

총살수의 말에 회복술법을 펼치고 있던 십만혈군이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백자안에게 패한 것이 사실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에게도 최후의 수단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조금 전 죽음의 위기에서 다시 살아나는 과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니까.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석변개술을 보완하면 이전보다 백 배 이상의 위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참아야 한다.’

십만혈군이 마음을 다스리며 이런 생각을 혈천자에게 전음으로 보냈다.

혈천자가 고개를 끄덕인 후 총살수에게 물었다.

“한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오늘 필요할 때 도움을 주시겠다고 약속했던 진성마신 세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허공대마신, 뇌옥대마신, 호법대마신 세 분은 급히 마계 총단으로 복귀하셨소.”

“무슨 일로?”

“마제님께서 마침내 지성자가 되시려 하자, 천제가 이를 알고 쳐들어와 지금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을 것이오.”

“그럼 천계 고수들도 돌아간 겁니까?”

“물론이오. 천선생과 천상선녀 그들도 천제와 함께 있을 것이오. 이제 이곳 일은 내가 주관하게 되었으니, 백자안 저자만 제거하면 모든 일은 순리대로 풀릴 것이오.”

“감사합니다. 일단 백자안 저놈부터 죽여주십시오.”

혈천자가 고개를 숙였다.

총살수가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백자안을 향해 말했다.

“이제 시작합시다.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그대를 완전히 소멸시켜주겠소.”

“실력이 있다면 가능할 것이오.”

백자안 역시 지존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지금 믿을 것은 지존검이다. 지존검의 진정한 위력은 사실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 힘을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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