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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34화 (234/250)
  • [제75장] 수혈대법 3

    다음 날 아침 날이 밝자 백자안과 방일화, 백소영은 무명장원을 나와 악양루로 향했다.

    백자안과 방일화에 이어 백소영 역시 역용을 한 상태였는데, 간밤에 백자안이 직접 역용술을 가르쳐 준 것을 놀랍게도 바로 터득한 그녀였다.

    “소영아. 아무래도 네가 돌로 변해있었던 동안 가죽옷이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앞으로 무공 상승 속도가 매우 빨라질 듯하다.”

    “호호. 오라버니. 안 그래도 나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 원래도 자질이 우수했는데 더욱더 잘된 일이지.”

    백소영이 미소와 함께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비록 기초이긴 하나 백자안으로부터 무명심법까지 전수받은 그녀는 혈색이 매우 좋아져 있었다.

    백자안 역시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이전처럼 쉽게 남에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마계 고수들을 만나면 무조건 피하도록 해라. 그것만 명심해라.”

    “알겠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절대 무리하지는 않을 테니까. 한데 정말 사람이 많이 모였네.”

    백소영이 인산인해를 이룬 악양루를 가리켰다.

    한눈에 보기에도 백만 명은 넘어 보이는 군중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치 낙양 총단에서 거행되는 무림대회 같았다.

    방일화가 말했다.

    “사부님. 아직 무림혈맹과 황궁 어느 쪽도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아요. 두 곳 모두 병력이 성안으로 들어왔다고 하던데,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아직은 모르겠다. 좀 더 두고 보도록 하자.”

    백자안이 신중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악양루로 오긴 했으나 일부러 그 이상은 알아보지 않았다.

    황궁 측의 계획을 일단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굳이 그가 나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괜히 존재를 드러냈다가 마제의 공격을 받게 되면 매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무림 상황이 위급하지만, 근본적으로 마제를 제압하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임시방편밖에 되지 못한다. 내가 지성자가 되었다면 이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백자안이 씁쓸해하며 방일화, 백소영과 함께 자리를 잡았다.

    악양루와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하지만 지대가 높아 모든 광경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오라버니. 이곳에서 혼례식이 거행되는 것이 맞아?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네.”

    백소영이 의아해했다.

    “아직 양측의 합의가 되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기다려보자. 예정된 시간이 되지 않았으니까.”

    백자안이 말한 바로 그때였다.

    군중들이 술렁이며 한쪽을 가리켰다.

    “무림혈맹 무사들이다!”

    “십만혈군이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가운데 이십만 명가량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들이 물결이 갈라지듯 길을 비켜주었다

    “저자가 십만혈군이에요.”

    방일화가 선두에서 오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대로 그는 바로 십만혈군이었다.

    여유 있는 표정인 그의 옆에는 총군사 혈천자의 모습도 보였다.

    그 외 선두에는 무림혈맹의 지휘부 고수 삼백여 명이 품자 형으로 포진하며 은근히 십만혈군을 호위하고 있었다.

    “곧 혼례식이 거행될 것이니 준비를 해라.”

    혈천자의 명에 무림혈맹 무사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혼례식에 필요한 물건들이 빠르게 악양루에 놓였다.

    십만혈군과 혈천자 등 무림혈맹 지휘부 고수들이 악양루에 오르자, 나머지 무림혈맹 무사들은 악양루 좌측에 진을 치며 대기를 했다.

    그 기세가 강해 사람들이 잔뜩 긴장한 것은 물론이었다.

    백만 군중이라 하지만 태반은 무림을 모르는 양민들이었다.

    황제의 혼례라는 말에 성안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모두 나왔다. 인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대다수 몰려들었다.

    “폐하께서 과연 오실까요?”

    방일화의 물음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이미 기호지세이니 어찌 멈출 수 있겠느냐? 다만 어쩌면 혼례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을 것 같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십만혈군의 표정이 너무나 태연했다.

    ‘내 예상을 뛰어넘는구나. 웬만한 진성마신보다 무공이 뛰어난 것 같다. 금지된 술법을 대성해서 그런 것인가. 우습게 보면 큰일 나겠군.’

    백자안이 고심에 빠졌다.

    상황이 어떻게 되든 최대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게 어려울 것 같았다.

    ‘어쩌면 오늘 이곳에서 향후 무림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겠군. 비록 무림혈맹 병력 대부분이 낙양 총단에 있다고는 하지만, 십만혈군 저자만 제거하면 지리멸렬할 것이다.’

    백자안이 십만혈군을 주시할 때.

    뿌우우! 하는 나팔 소리와 함께 악양루 우측에서 황군들이 나타났다.

    “황제 폐하 납시오!”

    “오!”

    “폐하께서 오셨다!”

    사람들이 놀라며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백자안 일행 역시 무릎을 꿇고 쳐다보니 십만 황군을 이끌고 오는 절대황녀의 모습이 보였다.

    황제가 된 그녀는 이전보다 더욱 성숙해졌고 아름다웠다.

    다만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기색이 보였다.

    하기야 국사로까지 임명한 최측근 황룡선생이 전사한 후로 그녀를 보필할 사람이 부족해진 게 사실이었다.

    게다가 백만 황군 중 구할 정도가 이미 마계살수단에 의해 전멸한 상태였다.

    한편 소문과 달리 무명노승이 이끄는 지존맹 무사 십만 명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일어나세요.”

    절대황녀가 손을 들어 말하자,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 옆에 있던 중년인 한 명이 소리쳤다.

    “십만혈군 그대는 어찌 폐하를 보고도 예를 취하지 않았던 것이오?”

    “하하하. 폐하께서는 이제 본인의 아내가 되실 것인데 어찌 내가 무릎을 꿇을 수 있겠소? 그대가 바로 이번에 새롭게 국사가 된 청룡선생(靑龍先生)이오?”

    “그렇소. 앞으로는 무례를 범하지 않도록 하시오.”

    청룡선생이 엄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절대황녀가 도착하자 악양루 주위에 모인 모든 사람이 무릎을 꿇어 예를 표했다.

    아무리 힘이 약해진 황제라 해도 격식은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십만혈군은 자리에서 일어났을 뿐 무릎을 꿇지 않았다.

    청룡선생이 그 점을 지적하려 했으나, 절대황녀가 전음으로 그를 저지해 모든 사람이 일어난 후 뒤늦게 한마디를 한 것이었다.

    사실 황제 앞에 무례를 범하는 것은 대역죄와도 같았다.

    하지만 지금 천하의 실세는 십만혈군이었다.

    「국사. 너무 저자를 격동시키지 마세요. 지존맹 부맹주 무명노승 그분이 먼저 나선다고 했으니 지켜보도록 하지요.」

    「네. 폐하.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더 의심할 겁니다. 한데 무명노승 그분이 과연 십만혈군 저자를 제거할 수 있을까요?」

    「일단 믿어야 하겠지요. 천계로부터 도움을 받아 무공을 완성했다고 하니 승산이 있을 거예요. 국사께서는 십만혈군이 죽으면 지존맹 무사들과 힘을 합쳐 놈들을 모조리 소탕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지존맹 무사들을 군중 속에 숨겨두겠다고 했으니, 무명노승 또한 저 안에 있겠군요.」

    「네. 하지만 우리가 진짜 의지할 곳은 바로 천계에요. 천상선녀와 천선생 두 분이 천계 고수들을 이끌고 온다고 하셨으니, 만약 마계살수를 비롯해 마계 고수들이 나타난다면 그분들이 막아주실 거예요. 하지만 제일 좋은 것은 마계와 천계의 개입 없이 십만혈군 저자를 제거하는 것이겠지요.」

    절대황녀가 눈을 빛냈다.

    병력 구할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던 그녀에게 희망이 생긴 것은 바로 얼마 전이었다.

    천계의 총군사 천선생과 천계사자인 천상선녀가 그녀를 찾아왔던 것이다.

    두 사람은 그녀에게 예를 표한 후 십만혈군의 혼인 제의를 받아들이는 척하라고 권유했다.

    그래야 일거에 놈들을 섬멸시킬 수 있는 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절대황녀는 기쁘면서도 확신이 없어 당시 새롭게 임명한 국사인 청룡선생과 상의를 했다.

    청룡선생은 죽은 황룡선생이 생전에 추천한 책사로 은자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황룡선생이 죽자마자 직접 찾아가 모셔온 사람이었다.

    특히 청룡선생은 황룡선생과 달리 지혜뿐만 아니라 무공도 뛰어났다.

    그녀로서는 위기의 순간에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었다.

    상의 결과 청룡선생은 천계의 제의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여러 계획 수립과 과정을 거쳐 이곳 악양루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참고로 무명노승을 비롯해 남은 지존맹 무사 십만 명과의 연락도 청룡선생이 먼저 추진한 것이었다.

    정보전이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한 청룡선생이 지존맹 세력이 다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적극적으로 그들을 찾은 결과였다.

    그렇게 무명노승이 절대황녀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천계 사람들까지 소개받아 무공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오늘 무명노승이 직접 십만혈군을 제거하겠다고 나선 배경이기도 했다.

    하기야 오래된 관례에 따라 여전히 천계와 마계의 힘이 무림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두 곳 모두 꺼리는 분위기였다.

    이미 묵계가 깨어져 소수의 인원은 큰 상관이 없었지만, 무림에서 천계와 마게가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부담이 큰 것이다.

    이는 백자안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였다.

    마계가 고육책으로 마계살수단이라는 힘을 만들어 무림을 지배하려는 것도 다 그런 이유라고 판단했다.

    사실 마계살수단의 살수 대부분이 마계의 고수라기보다 살인도구로 육성된 강시와 같은 존재였다.

    쉽게 말해서 무림의 일에 불간섭하는 전통은 일조의 묵계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족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묵계를 먼저 심하게 깨트리면 그에 따른 책임도 지게 될 수 있었다. 천제와 마제 두 사람도 그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세상을 창조한 신의 영역이긴 했으나, 그만큼 미지수였다. 게다가 불가해한 부분이 많아 조심스러웠다.

    백자안은 순간적이지만 십만혈군과 절대황녀 두 사람을 보며 그런 부분을 다시 한번 마음속에 떠올리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실력이 좌우할 것이다. 좀 더 지켜보자. 어쩌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혈천자가 말했다.

    “혼례식 치를 준비가 모두 끝난 것 같으니 어서 시작하는 게 좋겠소.”

    “하하하. 그렇게 서두를 필요가 있겠소? 일단 무림왕 책봉식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소이다. 무림왕 정도가 되어야 우리 폐하의 혼인 상대로 격이 맞지 않겠소?”

    “으음, 좋소. 설마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거로 믿겠소이다.”

    혈천자가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별다른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옆에 있던 십만혈군 역시 여전히 태연한 표정이었다.

    절대황녀의 진심을 알기 위해 직접 이곳 악양까지 왔다는 그는 지금 상황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혈천자의 전음이 그에게 들렸다.

    「맹주님. 놈들이 드디어 발톱을 드러내려는 것 같습니다. 무림왕 책봉을 핑계로 맹주님을 시해하려는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염려하지 마시오.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발견해낼 수 있으니 잘된 일이오. 아마도 지존맹 잔당을 이용해 나를 제거하려는 것 같은데, 이미 예견하고 있는 일이오.」

    「일대일 대결을 우려하는 게 아닙니다. 놈들이 가지고 왔다는 화약이 제일 문제입니다.」

    「화약은 없소. 조금 전 점검을 해봤지만, 화약 비슷한 것은 없었소. 아마도 뜬소문이었던 것 같소. 게다가 황제의 나에 대한 마음 또한 아직 가변적인 것 같소. 내가 절대적인 무공을 보여주면 일단 혼인하고 향후 다시 때를 노리려 할 가능성이 크오.」

    「그게 더 문제가 아닙니까? 차라리 이 기회에 아예 제거해버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맹주님께서 직접 황제가 되실 좋은 기회입니다.」

    「일단 내 여자가 되면 황제도 마음이 달라질 것이오. 끝까지 날 시해할 마음을 먹는다면 일단 세뇌부터 시킬 생각이오. 원래는 수작을 부리면 바로 죽이려 했는데 생각을 바꿨소. 저런 뛰어난 미인을 어찌 나 스스로 죽일 수 있다는 말이오? 더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시오. 어쩔 수 없이 죽일 때가 되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다만 지존맹 잔당이 군중 속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 부분 또한 대비하고 있소. 아마도 총군사의 예감이 맞을 것 같지만, 정작 내가 우려하는 것은 천계 고수들이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상황을 좀 더 지켜봅시다.」

    「네. 맹주님. 하기야 진성마신들이 근처에 있을 테니 큰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혈천자가 전음을 보낸 바로 그때였다.

    청룡선생이 말했다.

    “무림왕 책봉에 앞서 관례에 따라 그 무공을 시험해보는 절차를 진행하려고 하오.”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도전자 세 명을 맞아 승리를 거두면 되오. 형식적인 절차이긴 하나 꼭 필요하니 거부하지 않으리라 믿소. 만약 맹주께서 승리한다면 무림왕 책봉이 될 것이고, 연달아 우리 폐하와 혼인도 이루어질 것이오.”

    “세 명은 너무 많소. 한 명으로 줄입시다.”

    “그건 안될 말씀이오. 그만한 무공도 없이 어찌 무림왕이 될 수 있겠소?”

    “맹주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혈천자가 십만혈군을 쳐다봤다.

    십만혈군이 미소를 지었다.

    “수락하겠소.”

    그가 말을 한 후 악양루에서 내려왔다.

    사람들이 비켜나며 비무대로 쓰일 공터가 마련되었다.

    “어느 분이 먼저 도전하겠소?”

    십만혈군이 담담히 말했다.

    “본인이오.”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죽립을 쓴 사람 한 명이 앞으로 나왔다.

    “귀하는 뉘시오?”

    “나는 지존맹 부맹주 무명노승이라 하오.”

    죽립인이 죽립을 벗자 사람들이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말대로 진짜 무명노승이었던 것이다.

    무림혈맹 쪽 고수들이 나서려 하자, 십만혈군이 웃으며 저지했다.

    “이미 그대가 나타날 것을 예상하였소. 다른 말은 필요 없을 듯하니 바로 시작합시다.”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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