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33화 (233/250)
  • [제75장] 수혈대법 2

    “아! 역시 실패란 말인가.”

    백자안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이미 반시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 수혈대법을 펼친 지는 한시진 째.

    곧 방일화가 지하 광장으로 내려올 것이었다.

    ‘무엇이 문제일까?’

    백자안이 조금도 변함이 없는 석상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결국, 어떤 경우에도 내가 지성자가 되지 않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하지만 가죽옷을 입고 있는 소영이의 경우는 분명 길이 있다. 그걸 내가 모르고 있을 뿐이다.’

    백자안이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몸속에서 지존검을 꺼냈다.

    지존검을 높이 든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지존검에는 많은 효능이 있다. 그중에는 술법을 깨트리는 것도 있지. 문제는 실패했을 경우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존검을 든 백자안의 오른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지존검으로 석상을 내리치려는 시도.

    그것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도저히 감행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백소영의 부활을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들 여지가 큰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직감이란 것이 있었다.

    설사 석상이 두 동강 나는 한이 있더라도 모험을 걸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있지만 분명 수혈대법의 효과가 지금 발휘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화룡점정일 뿐. 모험을 걸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 직감을 믿자.’

    백자안이 입술을 깨물며 그대로 지존검을 내리쳤다.

    지존검과 그는 이미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기에, 석상에 스며든 피와 호응해 어떤 변화가 있을 것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확신은 여전히 없었다.

    석상에 지존검이 닿기 직전까지 백자안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 때문일까.

    막바지에 이르러 지존검의 속도가 느려졌다.

    다시 한번 숙고를 해보기 위해 지존검을 회수하려는 순간.

    백자안은 석상을 통해 어떤 소리 같은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지극히 미미한 신음.

    백자안은 그것이 백소영의 목소리임을 알 수 있었다.

    지존검의 검기에 석상이 반응한 것이었다.

    백자안이 지존검을 다시 원래대로 내리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까앙!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석상의 표면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백자안의 것이 아니었다.

    조금 전 지하 광장으로 내려온 방일화의 것이었다.

    그녀는 백자안이 몰두해 있는 모습을 보고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다가오다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사부님!”

    방일화가 급히 다가왔다.

    백자안은 대답 없이 석상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석상은 겉에 이어 속까지 완전히 파괴되어 가루로 변하고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백자안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석상은 이제 완전히 가루가 되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모두 내 잘못이다. 이제 지성자가 되어도 소영이를 회복시킬 수 없게 되었다.”

    백자안이 자책하며 수북이 쌓인 돌가루를 두 손으로 만졌다.

    그때였다.

    백자안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도 모르게 흐른 눈물.

    그 눈물이 떨어진 곳은 바로 돌가루였다.

    그때였다.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돌가루 전체에 금빛이 일며 형체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

    백자안과 방일화 모두 탄성을 터뜨리는 가운데, 그 형체는 점점 커지며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한데 그 사람은 바로 백소영이 아닌가.

    이전에 입고 있던 옷 그대로 백소영이 원래 몸을 되찾은 것이었다.

    “오라버니!”

    백소영이 백자안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녀는 의아한 표정이었다.

    “소영아!”

    백자안이 매우 기뻐하며 백소영을 안아주었다.

    “오라버니! 어떻게 된 거야? 여기는 어디지?”

    “몸은 괜찮으냐?”

    “응. 아무 이상 없어.”

    “다행이다. 마지막 기억이 언제냐?”

    백자안의 물음에 백소영이 말했다.

    “서장무맹 놈들을 토벌하기 위해 사천성으로 지원을 나갔을 때 나도 참여했었거든. 그때 천축무맹 놈들의 공격을 받고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아. 이후 일은 전혀 기억이 없어. 어떻게 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백소영이 질문을 던짐과 동시에 당시 일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듣던 대로였다.

    낙양 총단에서 출발한 백삼십만 정도의 지원 병력이 얼마 진군하지 못해 기습을 받아 궤멸하였다는 것이었다.

    특이한 점은 삼의맹 무사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은 것이 아니라 백소영처럼 뭔가에 당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는 점이었다.

    “붉은 섬광과 함께 안개 같은 것이 우리를 덮쳤어. 아마 그때 대부분이 쓰러졌을 거야.”

    “그랬었군. 그때 중간지대로 옮겨졌을 것이다.”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인 후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해주었다.

    백소영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옆에 있던 방일화가 부연 설명을 해주자 비로소 믿는 표정이었다.

    그전에 방일화와 백소영 두 사람이 통성명을 한 것은 물론이었다.

    “아!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니. 그러면 우리 가족 모두 돌로 변한 거야?”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모두 사라져서 그 행방을 찾는 중이다. 아무래도 마제 그자가 모든 석상을 이동시킨 것 같은데,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다.”

    “죽일 놈들! 한데 나만 회복한 게 바로 이 가죽옷 때문이라고?”

    백소영이 겉옷 안에 입고 있는 가죽옷을 가리켰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가죽옷만으로는 방어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래도 술법의 위력이 약해진 것은 사실인 것 같고, 그 외 나의 피와 눈물, 그리고 지존검의 힘으로 기적적으로 회복한 것이지.”

    “그 말은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회복시키기 불가능하다는 말이지?”

    “그래. 나머지 분들은 아마도 내가 지성자가 되어야만 회복이 가능할 것 같다. 그나마 소영이 너라도 회복해서 매우 기쁘구나.”

    “나도 오라버니를 다시 보게 되어 기뻐. 하지만 우리 가족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나처럼 회복되기만을 기다릴 거야.”

    “알고 있다. 하지만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일단 사흘 후로 닥친 이번 혼례식에 집중하도록 하자.”

    “알았어. 나도 돕도록 할게.”

    “일단 회복운공부터 하도록 해라. 긴급 상황이니 내가 너의 공력을 최대한 높여주마.”

    “고마워. 오라버니. 최소한 방 소저만큼이라도 무공이 높아졌으면 좋겠어.”

    “녀석! 욕심 많은 것은 여전하구나.”

    백자안이 웃음을 터뜨렸다.

    앞으로의 상황이 밝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백소영이 다시 원래 모습을 찾자 기쁜 것 같았다.

    “가부좌하고 앉아라. 일단 네게 진기를 넣어주마.”

    “그럴까?”

    백소영이 가부좌를 틀었다.

    백자안과 방일화의 설명을 통해 지금 한 명의 고수가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였다.

    특히 자신 때문에 노심초사한 백자안에게 짐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그래. 이제 시작이야. 마음을 차분히 하자. 그래야만 진짜 고수가 될 수 있어. 그러고 보니 이전보다 몸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구나. 죽다가 살아났기 때문일까.’

    * * *

    “맹주님. 황제가 성안으로 들어왔다고 합니다.”

    “황군의 규모는?”

    “십만입니다. 관아 대연무장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지켜볼 수밖에.”

    무림혈맹주 십만혈군이 눈을 빛냈다.

    마귀처럼 생겼다는 세간의 소문과 달리 그는 청수한 용모였다.

    외모 역시 겉으로 봐서는 사십 대 중반 정도.

    물론 그의 실제 나이는 칠십이 넘었다. 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당금 무림의 제일인자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그가 나타났을 때 혈교 잔당의 일개 수괴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전 무림을 장악한 맹의 맹주로서 그 위세가 하늘을 찔렀다.

    물론 그의 배후에 마계가 있어 그 한계가 뚜렷하다고는 하지만, 마계의 대리자 자격으로 무림을 다스리고 있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 그가 내일이면 여황제와 혼인까지 하게 될 예정이었다.

    가히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그의 옆에 있는 노인은 무림혈맹의 총군사 혈천자(血天者)였다.

    그는 혈교의 전설적인 현자였다.

    나이가 이백 살이 넘어 원래는 죽었다고 알려졌으나, 생존해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된 십만혈군이 직접 찾아가 모셔온 바 있었다.

    십만혈군이 무림을 장악한 데는 물론 마계살수들의 도움이 컸으나, 실은 이 혈천자의 계획대로 모든 것이 진행된 결과라고 할 수 있었다.

    “지존맹 잔당 십만 명 정도가 황제와 작당하여 맹주님을 시해하려 할 겁니다.”

    “확실하오?”

    “네. 첩보에 의하면 놈들이 믿고 있는 것은 화약이라고 합니다. 황궁에서 비밀리에 보관하고 있던 화약을 이번에 갖고 왔는데, 한 번에 수백만 명도 날려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정도나? 우리가 이번에 데려온 병력은 어느 정도요?”

    “이십만입니다. 나머지 팔십만은 낙양 총단을 지키고 있습니다.”

    “으음, 수적으로는 거의 비등하군. 하지만 결국 문제는 과연 놈들의 배후에 천계 고수들이 있는가 하는 것이오. 마계 고수들은 뭐라고 하고 있소? 여전히 상황에 맞게 도움을 준다고 하고 있소?”

    “네. 마계에서 세 사람이 왔는데 허공대마신과 뇌옥대마신, 호법대마신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 말로는 만약 천계 고수가 맹주님의 계획을 망치려 한다면 반드시 막아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총군사의 생각은 어떻소? 마계 고수들의 말을 믿어도 되겠소?”

    “당연히 믿어서는 안 되겠지요. 하지만 천계 고수들이 나타나면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돕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요컨대 우리가 걱정해야 할 세력은 황군과 지존맹 잔당입니다. 일단 가장 시급한 것은 놈들이 갖고 온 화약을 제거하는 일입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아도 좋소. 석변개술(石變改術)을 사용하면 그까짓 화약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없소. 문제는 황제의 진의요. 그녀가 정말 나를 속이려 한다면 가차 없이 죽인 후 나 스스로 황제가 될 것이오. 내가 일부러 이곳 악양까지 온 것도 그녀의 진의를 직접 확인하기 위함이었소. 황군과 지존맹 잔당 이십만 정도는 석변개술로 간단히 돌로 만들 수 있으니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하기야 진성마신들 외에도 마계살수들이 최소한 삼십만 이상은 올 것이니,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물론이오. 사실 내가 염려하는 사람은 백자안 그자뿐이오. 총군사 생각에 그가 살아있을 것 같소?”

    “진성마신들 말에 의하면 마제에 의해 이미 죽었다고 하지만 안심 놓을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그가 나타나도 이미 입신의 경지에 이른 맹주님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겁니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금지된 술법인 석변개술 역시 마계의 도움을 일부 받긴 했지만, 결국 맹주님께서 스스로 터득한 술법이 아닙니까? 진성마신들도 맹주님의 석변개술을 두려워할 겁니다.”

    “하하하. 과찬이시오. 사실 내가 진정으로 적수로 생각하는 인물은 마제와 천제 두 사람뿐이오. 내일은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할 것이니, 총군사는 지금처럼 정보를 취합해 나에게 보고하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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