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31화 (231/250)
  • [제74장] 심단전의 위력 3

    중간지대 망부곡.

    백자안이 이곳에 도착했을 때는 황량한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오고 있는 늦은 오후였다.

    수백 만개가 넘는 석상들이 있던 곳.

    그들 대부분이 이전 삼의맹 무사들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백자안이었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이 이곳에 모두 있을 거라는 강력한 추정이 있었다.

    한데 지금 이곳 망부곡을 바라보고 있는 백자안의 표정은 황망하기 짝이 없었다.

    “모두 사라졌다!”

    그랬다.

    망부석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

    그 많던 돌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백자안이 황당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아무래도 좋은 의도를 가진 자의 소행은 아닐 것 같았다.

    ‘혹시 마제 그자가?’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자신의 내단을 빼앗아간 마제의 경우 그럴만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천계비고에 있을 때 천선생과 천상선녀와 대화를 하면서 들은 이야기도 있었다.

    중간지대에 있는 망부석의 잠재적 이용가치가 매우 높을 거라는 것을.

    그 말은 석상들을 잘만 이용하면 무적의 강시 부대를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천계에서는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마제라면 경우가 달랐다.

    천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마계 쪽에서 어떻게든 망부석들을 이용하려 할 가능성이 컸다.

    그 방법만 알고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직 추측에 불과했다.

    백자안이 숨을 골랐다.

    아직 자신의 무공이 마제와 비교해 역부족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내 힘이 완벽해질 때까지 최대한 마제 그자와의 싸움을 피해야 한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가 망부곡 내부를 세밀히 살피기 시작했다.

    군데군데 바닥이 팬 곳도 있고 먼지가 탑처럼 쌓인 곳도 있었다.

    석상 일부가 아직 남아 있을 가능성도 배제 못 했다.

    하지만 단 하나의 석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래도 통째로 특수 이동대법을 통해 다른 장소로 옮겨진 것 같았다.

    백자안이 품속에서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가죽옷을 꺼냈다.

    호랑이 영물로 만들어진 이 옷을 가져온 이유가 생각났다.

    급히 그 냄새를 맡은 후 특수 대법을 펼쳤다.

    후각을 이용해 그 흔적을 찾는 방법으로, 천리향을 통해 추적하는 것과 같았다.

    “으음······”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비슷한 냄새가 느껴진 것이었다.

    그곳은 십장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바닥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백자안이 양손으로 바닥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사장처럼 쉽게 파헤쳐지며 그 안에 있던 것이 드러났다.

    “아!”

    백자안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망부석 하나가 옆으로 눕혀져 있었다.

    어떤 경로로 이렇게 파묻혀져 있는지는 몰랐다. 단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스스로 거부반응을 보인 것 같았다.

    ‘혹시 소영이?’

    냄새를 다시 한번 확인하니 호랑이 영물의 가죽에서 나는 것과 같았다.

    그가 냄새를 맡는 방법은 특수한 것으로, 일반 사람은 그저 돌에 불과한 석상에서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석상을 완전히 꺼낸 백자안이 앞에 세워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사 가죽옷을 안에 입고 있다고 하더라도 원래 사람으로 회복시키는 방법이 쉬울 리가 없었다.

    더구나 이 석상은 무림에서 십만혈군이 금지된 술법으로 만든 돌이 아니라 중간지대의 고유한 특성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만큼 회복이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일단 무저곡으로 데려가야겠다. 마계 놈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백자안이 석상을 들고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스스슷.

    * * *

    다시 돌아온 무저곡에는 한 사람이 백자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방일화였다.

    “사부님!”

    “왔느냐?”

    방일화와 백자안 두 사람 모두 매우 기뻐했다.

    “사부님이 안 계셔서 놀랐어요. 한데 그 석상은?”

    방일화가 백자안이 들고 있는 석상을 보며 의아해했다.

    백자안이 한숨을 내쉬며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물론 마계살수들이 무저곡 안으로 들어온 일도 이야기했다.

    “아! 놈들이 제 흔적을 찾았군요. 아닌 게 아니라 그게 좀 걱정이 되어서 이번에 돌아올 때는 주위의 흔적을 깨끗하게 지웠어요.”

    “그럼 됐다. 사실 나 역시 돌아오면서 한 번 흔적을 지웠으니 다시 놈들이 찾아올 우려는 적을 것이다.”

    “네. 한데 어딜 갔다가 오신 건가요? 혼자서 계곡 밖으로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무공이 회복되신 건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아까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마계살수 그놈들과 싸우다가 죽음을 겪었다고. 그게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 물론 그게 진정한 죽음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사부님께서 돌아가셨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한데 그 석상이 정말 중간지대에 남은 유일한 것인가요? 수백만 개가 넘는다고 하셨잖아요? 그 모든 것을 마제가 가져갔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렇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가장 유력하지. 그리고 이 석상은 아마도 내 동생 소영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안전하게 회복시키기 위해 이곳으로 데려왔지. 한데 너는 어떻게 되었느냐? 부맹주를 만나봤느냐?”

    “아니에요. 말씀하신 곳에 가봤지만 습격을 받았는지 폐허가 되어 있었어요. 대신 한 가지 소식을 듣고 왔어요.”

    “그게 무엇이냐?”

    “십만혈군 그자가 황제 폐하와 혼인을 한다고 해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으음······ 당금 황제가 여전히 절대황녀 그분이시냐?”

    “네. 십만혈군 그자가 무림을 장악한 후 황궁에 계속 압력을 가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혼사를 받아들였다고 하던데, 그게 정말일까요? 혹시 이전처럼 폐하께서 어떤 세뇌를 당한 게 아닐까요?”

    “혼례식은 어디서 거행한다고 하더냐?”

    “그게 조금 이상해요. 낙양 무림혈맹 총단도 아니고 황궁도 아닌 악양루로 정해졌다고 해요.”

    “날짜는?”

    “열흘 후라고 들었어요. 시급한 일인 것 같아 무명노승님 찾는 일은 다음에 미루고 급히 돌아왔어요. 아무래도 사부님께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으음, 심상치 않구나. 다만 절대황녀께서 다시 세뇌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저번에 두 번 다시 세뇌를 당하지 않도록 조처를 해뒀기 때문이지. 아무래도 폐하를 만나봐야 할 것 같구나.”

    “황궁으로 가시게요?”“아니다. 우리가 직접 악양으로 가면 될 것이다. 황궁에 간자들이 많을 텐데 괜히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필요가 없겠지.”

    “그렇다면 일단 혼례식을 지켜보실 생각인가요?”

    “그렇다. 물론 끝까지 진행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지. 내 생각에 그 전에 황궁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은 황궁에서 이번 기회에 십만혈군 그자를 제거하려 한다는 뜻인가요?”

    “그렇다. 하지만 예감일 뿐이다. 무엇보다 혈교 쪽에서 그 정도도 예상하지 못하겠느냐? 이미 무림혈맹이란 거대한 조직을 만들었는데,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그럼 놈들의 노림수는?”

    “최악의 경우 황제를 폐하고 새 황제를 세우려 할 것이다. 아니면 십만혈군 그자가 직접 황제가 되려 하겠지.”

    “감히 놈이 그런 대역무도한 일까지 벌일까요?”

    “십만혈군 그자는 지금 자신의 자리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다. 마계의 눈치를 계속 봐야 하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최후의 보루로 황궁을 장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마계로서는 아무래도 황궁보다는 무림이 우선이니, 나중에 십만혈군이 황제가 되는 것을 묵인해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

    “그렇다면 황제께서 위험하신 것이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단순히 황궁의 힘만으로 십만혈군을 제거하려 하겠느냐? 십만혈군의 뒤에 마계가 있듯이 어쩌면 천계에서 황궁을 돕고 있을 수도 있겠지. 이미 천계와 마계의 전면전이 시작되었다고 했느냐?”

    “네.”

    방일화가 천계와 마계의 전쟁에 대해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말했다.

    그 외 여러 가지 수집한 정보를 보고 했는데, 백자안에게는 제법 유익한 것들이었다.

    “으음, 무림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구나.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일년 안에 무림의 씨가 마를 것이다. 황궁 역시 파멸의 위험을 안고 있고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하실 건가요? 조금 전 말씀하신 대로 일단 악양으로 가실 건가요?”

    “그렇다. 지금 당장 마제를 제거할 능력이 내게 없으니 급한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느냐? 다만 악양으로 가기 전에 할 일이 있다.”

    “무슨 일인가요? 동생분을 회복시키는 일 말인가요?”

    방일화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특수 이동대법을 이제 자유롭게 펼칠 수 있으니 서둘러 악양으로 갈 필요 없다. 혼례식 사흘 전에 가면 충분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술법을 깨는 방법을 연구해볼 생각이다. 물론 지성자가 되어야만 그게 가능하겠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소영이는 영물 가죽옷을 입고 있었으니 회복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제 생각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석상들은 사라졌는데 그 석상만 남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한데 그 가죽옷이 그렇게 효험이 뛰어난가요?”

    방일화가 백자안이 들고 있는 가죽옷을 호기심 있게 쳐다봤다.

    백자안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내가 깜박했구나. 이 가죽옷은 이제 네 것이다. 너는 이미 무명심법의 상승 경지에 들어섰으니, 이 가죽옷을 입게 되면 최소한 금지된 술법에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 그게 정말인가요?”

    방일화가 매우 기뻐했다.

    사실 그녀가 가장 우려하는 점이 바로 십만혈군에게 당해 돌로 변하는 것이었다.

    직접 돌로 변한 숱한 무림인들을 직접 목도한 그녀가 아니던가.

    무엇보다 백자안이 그녀를 위해 옷을 선물로 준다는 사실이 기뻤다.

    “물론이다. 지금 바로 입어봐라. 겉옷 안에 입으면 될 것이다.”

    “네. 감사합니다.”

    방일화가 가죽옷을 받아들고 급히 모옥 안으로 들어갔다.

    백자안은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백소영이 생각나는 듯 옆에 세워둔 석상을 어루만졌다.

    ‘앞으로 칠일 정도 시간이 있구나. 그때까지 반드시 성공한다. 나 역시 무의식적이지만 한번 돌로 변했던 경험이 있으니, 그때의 느낌을 살린다면 소영이만큼은 우선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석상을 다시 들어 모옥 근처에 있는 평평한 바위 위로 올려뒀다.

    그러는 동안 방일화가 가죽옷을 입고 나타났다.

    겉옷 안에 입고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한결 기도가 부드러워졌다.

    “어떠냐?”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무공 연마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다행이다. 사실 일화 너의 무공 수준은 나를 제외하고 적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악양으로 가기 전에 네게 구중천심공을 전수할 테니 무명심법과 함께 연마하면 큰 발전이 있을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사부님.”

    방일화가 또다시 매우 기뻐했다.

    구중천심공에 대해서는 백자안에게 여러 번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가 기뻐한 것은 그 무공의 위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가죽옷도 그렇고 백자안이 자신을 진정한 제자로 생각해주는 점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부님. 저는 영원히 사부님 곁에 있을 거예요.’

    방일화가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 또한 현재 가장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그녀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게 생각할 필요 없다. 우리 만상문의 수제자로서 당연히 익혀야 할 무공이니까.”

    “아! 문파 이름을 확정하신 건가요?”

    “그렇다. 굳이 다른 이름으로 바꿀 필요가 있겠느냐? 그보다 일단 한번 시도를 해볼 생각이니 네가 호법을 서야겠다.”

    백자안이 석상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으음, 시간을 아껴야 하니 호법을 서면서 구중천심공 구결부터 암기하고 있어라. 내가 따로 정리해 둔 것인데 해석은 틈날 때마다 해주마.”

    백자안이 품속에서 비급 하나를 꺼냈다.

    “아!”

    방일화가 공손하게 비급을 받았다.

    비급을 펼쳐보니 정말로 구중천심공이었다.

    아직 깨달음이 깊지 못해 장구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무엇이든지 시작이 중요한 법이었다.

    백자안이 고개를 한번 끄덕여 준 후 석상에 두 손을 대고 내공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쉽게 성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석상이 부서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천천히 해야 한다. 부디 내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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