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27화 (227/250)
  • [제73장] 마계살수 2

    “아! 도무지 알 수 없구나. 사부님 체취는 확실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돌에 불과하니······.”

    방일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 앞에는 백자안 모습을 한 석상이 놓여 있었다.

    무저곡을 나가는 것을 연기하고 지난 사흘간 석상을 연구했지만 아무 소득이 없었다.

    ‘이대로 보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득이 없겠다. 차라리 이전처럼 사부님이 중상을 입었다고 생각하고 내공을 넣어 드리는 게 어떨까?’

    방일화가 눈을 빛냈다.

    이전에 자신의 무명진기로 백자안을 치료했던 기억을 떠올린 것이다.

    무명진기는 그 자체가 치유 능력이 있었다. 이 기운이 백자안의 몸속으로 들어가면 자체 회복력을 기대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과연 석상에 내공을 넣을 수 있느냐에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파괴될 수도 있으므로 위험부담이 컸다.

    ‘천천히 넣어보자. 조짐이 이상하면 중단하면 되니까.’

    방일화가 결단을 내리고 석상의 등 부분에 두 손을 대고 천천히 진기를 주입했다.

    “아!”

    방일화가 탄성을 터뜨렸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석상이 진기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방일화가 기뻐하며 진기의 양을 늘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석상의 색이 금빛으로 변했을 때였다.

    쩍쩍하는 소리와 함께 석상 표면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방일화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석상에 변화가 생긴 것이 혹여 파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석상은 마치 허물을 벗듯 겉면이 사라지며 사람의 몸을 드러냈다.

    한데 그 사람은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낡은 백의지만 옷까지 입고 있어 백자안이 틀림없었다.

    말은 길었지만 석상이 사람으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실로 찰나였다.

    겉으로는 마치 허물이 벗겨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방일화는 그것이 둔갑술이 풀리는 현상임을 알 수 있었다.

    “사부님!”

    완전히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 백자안을 방일화가 부축했다.

    하지만 백자안은 의식이 없었다.

    방일화가 급히 그의 맥을 짚어보았다.

    극히 희미하게 맥이 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살아있다!”

    방일화가 매우 기뻐하며 본격적으로 내공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무명진기가 효험이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게 또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 시진 정도 지났을 무렵.

    마침내 백자안이 눈을 떴다.

    “으으······ 일화냐?”

    “네. 저예요. 사부님. 어떻게 된 거예요?”

    “아! 내가 죽지 않았구나.”

    백자안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방일화가 지은 모옥을 비롯해 무저곡의 풍광이 들어왔다.

    “나를 얼마 만에 보는 것이냐?”

    “반년이 훨씬 넘었어요. 태산으로 갔던 사부님께서 실종되신 후 무림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되었어요.”

    방일화가 눈물을 흘리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혈교가 지존맹을 무너뜨리고 무림혈맹을 세운 일과 마계살수까지.

    방일화의 설명은 끝없이 이어졌다.

    백자안은 굳은 표정으로 듣기만 했다.

    이윽고 긴 설명이 끝나자, 이번에는 방일화가 물었다.

    “사부님께서는 그때 어떻게 되신 건가요? 태음동이 무너졌던데 그 안에 갇힌 거예요?”

    “그렇다. 마계로 잡혀갔었지. 그러다가 운이 좋아 천계로 가게 되었지만 결국······.”

    백자안 역시 지난 기억을 정리하듯 찬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일화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계와 천계가 정말 존재하는 곳이었군요. 한데 사부님 단전이 정말 파괴되신 건가요?”

    “그렇다. 내단을 빼앗기면서 단전까지 파괴되었지. 그 바람에 무공을 잃고 말았다. 다만 내가 왜 아직 살아있는지는 모르겠구나.”

    “그럴 리가 없어요.”

    방일화가 고개를 저으며 백자안의 단전 부위를 살폈다.

    옷은 찢어져 있었지만, 외상은 보이지 않았다.

    급히 맥을 다시 짚어보았지만 사실 그것은 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백자안이 익힌 무공의 특성상 겉으로는 전혀 내공이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포기할 방일화가 아니었다.

    “조금 전까지 제 내공을 잘 받아들이셨잖아요? 단전이 파괴되었다면 그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않다. 네 말대로라면 무공을 모르는 사람에 대해 내공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인데, 치료를 받는 데는 단전이 파괴되든 안 되든 상관이 없는 법이지. 물론 나의 몸은 보통 사람과 조금은 다른 면이 있긴 하다. 아까 네가 내게 무명진기를 넣어줬을 때 내 마음이 자동으로 반응해 기를 흡수할 수 있었지. 아무튼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절대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음으로 기를 받아들였단 말씀인가요?”

    “그렇다. 마음은 절대 외부의 힘으로 파괴가 되지 않기 때문이지. 다만 단전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마음 역시 영향을 받게 되어, 지금 나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말았단다. 목숨은 건졌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지.”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담담한 표정이었으나 실망감이 매우 클 것이라는 점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방일화가 탄식하면서도 일단 목숨은 구했다는 말에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예요. 지성자가 되면 마음의 단전이라 할 수 있는 심단전(心丹田)이 형성되어 모든 기운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건 그렇긴 하다. 심단전이 형성되면 기해혈에 있던 원래 단전도 완전히 복구되긴 하지. 물론 그때는 단전의 유무가 중요하지 않게 되지만, 문제는 지금 상태에서 내가 어떻게 지성자가 될 수 있겠느냐?”

    “그 모두가 바로 가증스러운 그 천제 때문이에요. 사부님께 도움을 준 게 사실이지만, 결국 자기 아들을 살리려고 사부님을 이용한 게 아닌가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부님이 사람이 아니라 우담화라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죠.”

    “내가 우담화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른다. 내단을 잃고 죽음의 문턱에 갔지만 결국 살아났으니 우담화가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면 예외적인 현상으로 살아난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아무래도 나의 정체성에 대해 아직 내가 모르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네 생각은 어떠하냐?”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그 천제라는 분의 말은 신뢰할 수 없어요.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안다고 가짜 약을 사부님께 먹이려고 한 것은 확실한 거짓말이잖아요? 정말 대의를 위해서 사부님의 희생을 바랐다면 솔직하게 말하고 도움을 구했어야지요.”

    방일화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었다.

    “너는 그가 정말 천제님이라고 생각하느냐?”

    “사부님께서 조금 전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 아직 확인한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내 생각으로 그는 천제님이 아닐 것이다. 누군가 천제님으로 변장해 내게 접근한 것이지.”

    “그럼 누구였지요?”

    “마제. 그가 내 몸에 손을 댔을 때 마제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게 되어있었지. 마제의 무공은 극한에 달해 있어 당시 나는 그를 꺾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임기응변으로 다소 특별한 연기를 했던 것이지.”

    “그래서 내단을 빼앗겼을 때 귀식대법을 펼친 건가요?”

    “그렇다. 이전에 한번 귀식대법으로 그를 속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지. 하지만 단전까지 파괴될 줄은 몰랐고, 그때 죽었다고 생각하며 의식을 잃었었지.”

    백자안이 다시 쓴웃음을 지었다.

    내단만 내주고 회복하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진 데 대해 아쉬움을 느낀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그 구멍 안에 돌로 변해 계셨던 것이죠? 천제, 아니 마제 그자가 사부님을 이곳 무저곡으로 보내줬잖아요? 물론 시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내준 것이라 고맙지도 않지만 말이에요.”

    “이후 일은 나도 기억이 없다. 내가 왜 돌로 변했었는지도 모르겠구나. 나도 깨어난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이곳 무저곡으로 특수 이동되는 도중에 내 몸이 변화를 일으킨 것 같은데, 그 이유를 알려면 시간이 필요할 것 같구나.”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아무래도 당분간 이곳에 머물면서 무공 회복에 전념하셔야 하겠지요?”

    “그렇게 해야겠지. 하지만 무림 상황이 최악이니 한 달 정도 있어보고 발전이 없으면 그때 이곳을 나가 상황을 알아보도록 하자.”

    “그건 안돼요. 확실히 회복하기 전에 무림으로 복귀하면 놈들의 공격을 받을게 분명해요. 마제 역시 사부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면 반드시 죽이려 할 것이고요.”

    “이미 여러 번 죽었던 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숱한 무림인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테니, 내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느냐? 게다가 아직 희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천계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테니,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흥! 천계 사람들은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설사 사부님을 죽이려 한 사람이 마제라 해도 천제 역시 결국 사부님의 희생을 일방적으로 요구했었잖아요? 그들 눈에는 사부님은 태자를 살리기 위한 희생양에 불과해요. 제 말이 틀렸나요?”

    “으음······.”

    백자안이 대답 대신 침음을 삼켰다.

    방일화의 말대로 그 점은 그에게 있어서도 일종의 부담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실력이다. 이왕 단전이 파괴되었으니 한 달간이라도 심단전을 활성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해볼 수밖에 없겠구나. 이전에 비슷한 경험도 있었으니 어쩌면 발전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은 없으니까.’

    백자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으나 일단 그 모든 것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오랜만에 계곡 내부를 둘러보고 싶구나. 이전에는 날씨가 온화하긴 해도 거센 바람이 계속 불었는데, 지금 보니 바람도 없고 봄 날씨가 따로 없구나. 이전에 내가 독 안개를 모두 흡수해버렸기 때문인가. 나를 조금 부축해주겠느냐?”

    “네. 사부님.”

    방일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백자안을 부축했다.

    백자안은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으나 결국 일어설 수 있었다.

    “이제 손을 놓아도 된다.”

    방일화가 조심스럽게 손을 놓자, 백자안이 혼자 천천히 걸어갔다.

    방일화가 마치 호위무사처럼 그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걸렸다.

    비록 백자안이 단전이 파괴되어 무공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녀는 믿고 있었다.

    조만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아니 이번에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십장 정도 걸어갔을까.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

    “아니에요. 제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러게 말이다. 이전에 내가 이곳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잘했지, 그러지 않았다면 영원히 절벽 속에 돌로 변해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사부님께서 무의식으로 저를 부르셨던 것 같아요. 왠지 이곳에 오고 싶더라고요.”

    “그랬구나. 너라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한데 부맹주는 정말 소식이 없더냐?”

    “네. 무명노승께서 실종되셨다고 해서 사방으로 알아보긴 했는데, 마계살수 그놈들이 집요하게 쫓아오는 바람에······.”

    “으음, 마계살수라. 그놈들의 정체가 수상하구나. 이전 삼혈맹 놈들일 수도 있다고 했느냐?”

    “네. 그런 소문이 돌고 있어요. 하나같이 얼굴이 망가져 귀면탈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시체들을 이용해 특수 강시로 만든 것 같아요. 사실 혈교 놈들도 문제이긴 하나, 무림을 다시 정비하려면 놈들부터 제거하셔야 할 거예요.”

    “으음, 큰일이군. 아무래도 마계에서 제조한 특수 강시들 같은데, 문제는 놈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점이다.”

    “맞아요. 백만이 넘는다고 하니 말 다 했지요.”

    “문제는 또 있다.”

    “그게 뭔가요?”

    “바로 천계의 묵인이다. 원래 마계에서 천계의 눈치를 보느라 그런 식이라도 무림 일에 간섭할 수 없는데, 천계에서 조용한 것을 보면 무슨 문제가 생겼을 가능성이 크구나.”

    “마제가 정말 지성자가 되어 천계를 공격한 걸까요?”

    “글쎄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천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선계에 도움을 구하면 되잖아요?”

    “그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더는 무림 일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중립을 지켜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지.”

    “결국 사부님께서 지성자가 되는 길밖에 없군요. 그래야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구할 수도 있고 말이에요.”

    “그렇다. 그것이 유일한 길인 것 같구나. 하지만 이 몸으로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자포자기할 수는 없잖아요? 반드시 길이 있을 거예요.”

    “길은 없을 것이다. 다만 길 없는 길은 혹시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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