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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25화 (225/250)
  • [제72장] 천계 태자 4

    다음날 새벽.

    목욕을 마치고 다시 옷을 입은 백자안은 계속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기이하군. 새롭게 형성된 내단이 마치 살아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천제께 여쭤보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백자안이 단전에 형성된 내단을 다시 살폈다.

    미약하지만 조금씩 커지고 단단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고개를 들어 천계수가 담겨있었던 샘터를 보니 완전히 말라 있었다.

    ‘회오리바람만 아니었다면 그래도 다시 스스로 보충이 되었을 것 같은데, 내가 그 원천 기운마저 모두 흡수한 것 같다. 다음에 이곳을 사용할 사람에게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지금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수양이 깊어져 그다지 괴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정작 예정된 석 달의 수련 기간이 모두 끝나자 앞일이 우려된 것이었다.

    한마디로 그의 운명은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일부터 해야 후회를 남기지 않을 것이다.’

    백자안이 고민한 결과.

    역시 가장 시급한 일은 중간지대에 가서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전에 마제와의 충돌을 피해야 했다.

    사실 마제와의 대결은 그 결과와 관계없이 그에게 있어 마지막 여정일 가능성이 컸다.

    마제에게 패배해 죽는 것은 물론이고, 그 반대의 경우에도 그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니, 나는 그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내 의지로 묵묵히 걸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내가 죽거나 소멸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숙명(宿命)일 테니까.’

    마음을 다스리자 안색도 편안해졌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천계석실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내 성공했구려. 수고가 많았소.”

    백자안이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천제였다.

    그는 마치 이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던 것처럼 담담한 모습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역시 천계의 주인이라 할 수 있겠구나. 인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백자안의 마음이 어딘지 모르게 무거워졌다.

    천제의 무공은 마제의 무공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지난 석 달간 천상선녀와 천선생이 올 때마다 그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 결과 생소하기 짝이 없었던 천계와 마계의 상황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의 부족 때문에 아직도 백자안이 아는 사실은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백자안이 지금 실망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무공이 여전히 천제와는 매우 큰 간격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직도 멀었구나. 지금 실력으로 천제와 비슷한 무공을 지닌 마제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단전에 만들어진 내단이 좀 더 커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백자안이 애써 희망을 품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천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그렇소. 석 달 만에 처음 보는데 놀랍게도 내단의 기초를 만들었구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백자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천제가 말하는 뜻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을 여전히 우담화로 보고 있는 천제였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다시 물었다.

    “제 몸속에 생긴 내단이 바로 말씀하셨던 우담화 열매입니까?”

    “그렇소. 다만 아직 더 자라야 하오. 금제 때문에 전혀 반응이 없을 줄 알았는데, 백 공자의 무공이 극도로 높아져 소기의 성과가 생긴 것 같소. 다만 미완성 열매로는 지성자가 될 수 없으므로 마제를 죽여야 하는 것은 변함이 없을 듯하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천제님 말씀에 의하면 저는 사람이 아니라 꽃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이제는 언제 소멸할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지요. 이런 상태로 마제를 죽일 수 있을까요? 천계비고 안의 모든 무공을 연마했지만 천제님을 보니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마제와의 승부도 사실 어렵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보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시오.”

    “일단 저에게 시급한 것은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키는 겁니다. 그게 어렵다면 최소한 제 가족이라도 회복시켜놓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천제님을 만나 뵙고 중간지대로 떠나려 했습니다. 물론 이후 마제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어차피 이제 최대 한 달밖에 살지 못할 거니까요. 아, 물론 천제님 말씀대로 이미 죽은 귀신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일단 저는 생각을 하는 한 그 생명이 유지된다고 보니까요.”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동안 내가 혼동을 자꾸 주었는데, 앞으로는 우담화가 아니라 백 공자로 부르도록 하겠소. 그러면 되겠소?”

    “감사합니다. 일단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오. 혹시 지금 능력으로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 궁금한 것이오?”

    “네.”

    “지금은 불가능하오. 지성자와 같은 능력을 지니려면 마제를 죽여 금제를 완벽하게 해제해야 하오. 따라서 섣불리 중간지대부터 갈 생각하지 말고 마제부터 제거할 생각을 하시오.”

    “하지만 마제부터 찾아가면 그 결론은 이미 정해진 게 아닙니까? 이기든 지든 제가 소멸할 것이니, 언제 제 가족과 무림인들을 살려내겠습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 때문에 내가 한 가지 방도를 마련했소.”

    “그게 뭡니까?”

    “지난 석 달간 내 모든 능력을 기울여 다시 하나의 영단을 만들었소. 그 영단을 먹게 되면 백 공자는 그야말로 지성 바로 전 단계인 영성(靈聖)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오. 단 영단의 힘을 빌린 것이라 그 효력은 하루만 지속하오.”

    “으음, 그러니까 지금 그 영단이란 것을 복용하고 영성에 도달한 후 마제를 죽여 금제를 풀라는 겁니까? 이후 저는 어떻게 됩니까?”

    “저번에도 이야기했듯이 마제가 죽게 되면 금제가 풀리고 내단이 완성될 것이오. 동시에 생사천겁도 끝나게 되어 원래라면 그때 백 공자는 소멸하고 내단만 남게 되오. 하지만 예외적으로 영단의 약효가 지속할 때까지는 소멸하지 않을 것이오. 비록 그 기간이 단 하루뿐이지만 곧바로 중간지대로 가서 무림인들을 회복시킬 시간은 있을 것이오. 시간이 더 남으면 무림에서 돌로 변한 무림인들도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오. 그때는 그야말로 지성자와 버금가는 힘을 가지게 될 테니까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오.”

    “지성자에 버금가는 능력이라. 단 하루라지만 그 느낌이 궁금하긴 하군요. 하지만 결국 완전한 지성자의 경지는 어렵겠지요? 지성자는 아마도 제 몸속에 생성된 내단을 복용하게 될 태자님이 이루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소. 만일 백 공자가 무림인들을 회복시키는 데 실패하게 되면 태자가 직접 그 일을 대신해줄 것이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아! 그런 방법도 있었군요. 그럼 태자님이 무림의 질서도 회복시킬 수 있는 겁니까?”

    “그렇소. 지성자는 어떤 한계도 없소. 무림의 일에 간섭하는 것 또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오. 이제 영단을 복용하겠소?”

    “복용은 어렵지 않으나 그 모든 일을 하루 만에 한다는 게 걱정입니다. 특히 마제를 죽인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영약을 먹고 영성 단계에 오른다고 해도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마제 그자는 영성 단계의 백 공자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착각일 뿐이오. 그는 욕심에 눈이 멀어 자신의 무공 수위를 과대평가하고 있소.”

    “일리가 있군요. 욕심은 사람을 약하게 만드니까.”

    “바로 그렇소. 이제 결심이 섰소? 날이 밝아오니 서둘러야 할 것 같소.”

    천제가 품속에서 약병 하나를 꺼냈다.

    약병을 기울이니 금빛 단약 하나가 나왔다.

    “어서 복용하시오. 지금부터는 언제라도 우담화가 시들 수 있으므로 지체할 여유가 없소. 천하는 백 공자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오. 물론 기적도 생길 수 있으니 절망은 하지 마시오.”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단약을 받아 들었다.

    “바로 드시오. 내가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백자안이 단약을 입에 가져갔다.

    하지만 끝내 복용하지 않고 손을 내렸다.

    “왜 그러시오?”

    “일단 중간지대에 가보려 합니다. 지금 상태에서 한번 시도해본 후 결정해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단 하루의 시간이라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단약을 복용하면 현실적으로 곧바로 마제와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이 단번에 끝나겠습니까? 마계의 고수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말입니다.”

    “지금 상태로 중간지대로 가면 너무 위험하오. 마제가 주시하고 있을 것이니 곧 따라가 백 공자를 해칠 것이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오. 그가 지성자가 되면 세상이 멸망할 것이오.”

    “아직은 저의 경지가 낮아 마제 그자가 제가 가지고 있는 내단을 흡수해도 지성자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는 지성자가 될 수 없다고 하셨으니 오히려 주화입마되어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정 걱정이 된다면 저와 함께 중간지대로 가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생사천겁에 어긋나오. 내가 간섭할 수 있는 것은 지금처럼 백 공자의 무위를 높여주는 것뿐이오. 혹시 내게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천제님이 보살펴주시지 않았다면 이렇게 몸이 회복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마음을 돌리지 않을 거요?”

    “네. 제 마음은 확고합니다. 가능성이 적다고 하나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법으로 무림인들을 한번 회복시켜보려 합니다.”

    “으음, 아무래도 하루라는 시간이 백 공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 같구려. 좋소. 하지만 아직 공력이 부족하니 중간지대에 가기 전에 한 가지 조처를 해야겠소.”

    “그게 뭡니까?”

    “마제가 나타나면 반드시 백 공자의 내단을 노릴 것이니, 내가 내공으로 내단 주위에 결계를 쳐 놓겠소. 그러면 쉽게 내단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오. 만약 마제가 나타나면 곧바로 천계로 돌아오도록 하시오.”

    “알겠습니다. 이대로 서 있으면 됩니까?”

    “물론이오.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으시오.”

    천제가 우수를 백자안의 단전에 갖다 댔다.

    그때였다.

    백자안의 조용한 음성이 들렸다.

    “이제 내단을 가져가십시오. 더는 연극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부터 이때만을 노리신 게 아닙니까?”

    부르르.

    천제의 손이 떨렸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소?”

    “조금 전입니다. 그래도 쉽게 인정을 하시는군요. 사실 영약만으로 영성의 경지까지 오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지요. 아마 그 단약은 안전하게 저를 제압하는 용도일 것 같군요. 한 가지 약속을 해주시겠습니까?”

    “말해 보시오.”

    “태자가 지성자가 되면 꼭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키게 해주십시오. 무림의 평화가 올 수 있도록 혈교 잔당들도 제거해주시고요. 그 정도는 충분히 해주시겠지요?”

    “알겠소. 또 다른 부탁은 없소?”

    “제 시신은 손을 대지 말고 원래 제가 지내던 무저곡으로 보내주십시오. 그렇게 해주시면 저항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저항하면 내단이 파괴될 수도 있으니까 들어주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소. 부탁할 것이 있거나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또 이야기하시오. 내가 미안해서 그러는 것이니까.”

    “딱히 없습니다. 아, 한 가지 있군요. 천제님 말씀대로 아직 제 내단은 크기가 작고 미완성인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내단을 빼서 땅에 심으면 자라나 완성될 것이오. 이후 일은 걱정하지 마시오. 그럼, 잘 가시오.”

    푹.

    천제의 우수가 백자안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그의 손에 금빛 내단 하나가 들려있었다.

    “하하하! 드디어 내 손에 들어왔구나. 어리석은 놈!”

    천제가 단전이 파괴된 백자안을 보며 껄껄 웃었다.

    백자안은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천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우수로 자신의 얼굴을 문질렀다.

    스스슷.

    그의 얼굴이 빠르게 변했다.

    한데 그 얼굴은 바로 마제의 것이 아닌가.

    “후후후! 네놈은 내가 천제로 역용했음을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순순히 내단을 내주었으니 약속대로 네놈의 시신을 무저곡으로 보내주마.”

    마제가 우수를 한번 흔들자 백자안의 시신이 사라졌다.

    마제가 내단을 품속에 넣은 후 중얼거렸다.

    “천제 그놈은 내가 내단을 가져간 것을 꿈에도 모를 것이다. 내가 지성자가 되면 천계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하하!”

    스스슷.

    마제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텅 빈 석실에는 적막만이 흘렀다.

    <제9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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