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23화 (223/250)
  • [제72장] 천계 태자 2

    천제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천제의 아들인 태자의 생사천겁은 운명적인 것으로 이를 피할 방법은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넘어가야 할 장벽이었다.

    다만 그 위험부담이 매우 컸다.

    바로 다른 천족의 후예와 달리 태자의생사천겁은 차기 천제의 자리와도 연관이 깊기 때문이었다.

    만약 생사천겁에 실패한다면 태자는 소멸해버리고 마는데, 그 때문에 대리자가 필요했다.

    대리자가 대신 생사천겁을 겪게 되면 비록 실패하더라도 태자가 소멸하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관례에 따라 태자의 대리 생사천겁이 결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담화였다.

    우담화는 만년에 한번 피는 꽃으로, 깨달음의 정화라고 할 수 있었다.

    한데 공교롭게도 이 우담화가 태자의 생사천겁과 연결되어 버린 것이다.

    우담화는 신비한 힘이 있어 자체 의지로 그렇게 결정해버렸다.

    이는 우담화가 태자의 대리인이 되어 생사천겁을 수행하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천제는 태자가 우담화 열매를 복용해 지성자가 될 기회를 얻은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다만 문제는 남아 있었다.

    우담화가 생사천겁을 대신 겪으려면 사람의 육신이 필요했다.

    그래서 육신을 제공하기로 결정된 사람이 바로 백자안이었다.

    천제의 말에 의하면 백자안은 반로환동을 겪은 후 시간 회귀를 할 때 이미 죽었다고 했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사람은 백자안이 아니라 우담화라는 것이었다.

    “그걸 지금 저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백자안으로서의 제 기억은 모두 그대로입니다. 어찌 제가 우담화일 수 있겠습니까?”

    백자안의 물음이었다.

    천제로부터 확실한 설명을 듣고자 했지만,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무엇보다 자신은 우담화로서의 기억이 전혀 없기 때문이었다.

    천제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 공자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소.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오. 예를 들어 상식적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오?”

    “으음, 그것이 바로 우담화의 힘 때문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게다가 우담화가 전혀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아니오. 우담화는 자신의 목적인 깨달음의 열매를 맺기 위해 한 가닥 힘을 외부에 보존해 두었소. 그게 바로 백 공자를 여러 번 구해줬던 회오리바람이오.”

    “아!”

    벡자안이 탄성을 내었다.

    그는 여태까지 그 회오리바람이 천계의 안배라고 생각했었다.

    한데 우담화 기운 중 일부라고 하니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놀라움은 함께 있던 천상선녀와 천선생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백 공자가 이미 죽은 상태라는 건가요? 저는 태자께서 깨어나시기 위해 백 공자가 희생을 당한다고 생각해 이를 우려했는데, 그럼 대체 어떻게 되는 거죠?”

    천상선녀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의 실체가 정말로 우담화라면 굳이 그를 보호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백자안이 담담히 물었다.

    “저기 관속에 누워있는 태자님과 저는 어떤 관계입니까?”

    “대리 생사천겁이 행해지게 되면 그 대리자는 생사천겁이 끝난 후 소멸하게 되오. 그것을 이해하기 쉽게 백 공자가 죽어야 태자가 깨어난다고 말했던 것이오. 하지만 아까도 말했지만 백 공자은 이미 죽었고 실체는 우담화라고 할 수 있소. 우담화가 백 공자의 육신을 빌린 것이오.”

    “하지만 저는 제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생사천겁 때문이오. 기억을 모두 지워버리면 생사천겁을 수행할 수 없으므로 우담화의 기운이 기억까지 계승한 것이오. 이 부분은 이해하기 힘들 거로 생각하오.”

    “좋습니다.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습니다. 저는 우담화가 아니라 백자안입니다. 천제께서 무슨 말씀을 하셔도 저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제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뭡니까? 태자를 살려야 되니 저보고 죽어달라는 말씀입니까?”

    “으음, 일단 좋을 대로 생각하시오. 사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생사천겁이 끝나고 우담화가 열매를 맺었을 것이고, 그 열매는 아마도 백 공자 몸속에 내단으로 형성되었을 것이오. 그 내단을 태자가 복용하게 되면 지성자가 되는 동시에 깨어나게 되는 것이오. 한데 마제의 금제 때문에 생사천겁 완성이 늦춰지게 되었소.”

    “그럴듯하군요. 좋습니다. 그럼 그 내단을 잃게 되면 제가 죽는 겁니까?”

    “그렇소. 우담화에서 열매를 따게 되면 그 생명이 다하게 되오. 백 공자는 이미 죽었지만, 본인은 그때 죽는다고 느낄 것이오. 다만 문제는 우담화가 예정된 시간에 열매를 맺지 못하면 시들어버린다는 점이오. 오늘이 예정된 날이기 때문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소. 생사천겁 완성을 무작정 미룰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오.”

    “천제께서 저에게 복용시킨 그 천계석유 덕분에 금제는 이미 다 풀린 것 같은데,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까?”

    “천계석유는 백 공자의 내상만 회복시켰을 뿐이오. 마제의 금제는 아직 그대로요. 워낙 특수한 금제라 백 공자가 무공을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오.”

    “어떤 금제가 아직 걸려있다는 겁니까?”

    백자안이 의아해했다.

    천제가 안색을 굳혔다.

    “아까 내가 언급한 또 하나의 벽이 바로 그것이오. 마제 그자는 영악하게도 자신의 목숨과 백 공자의 깨달음을 연동시켜두었소.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담화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벽을 세운 것이오.”

    “마제가 죽어야 우담화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소. 그것도 백 공자가 직접 마제를 죽여야 그 장애를 벗어날 수 있소. 대신 마제가 백 공자를 죽이게 되면 우담화를 그가 차지하게 되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가 지성자가 되는 일은 막아야 하오.”

    “마제 그자는 언제든 저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지 않고 저를 이곳에 데려가도록 내버려 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직 백 공자의 깨달음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오. 정확하게 말하면 최소한 완성 직전까지 도달해야 그가 백 공자를 노릴 것이오.”

    “잡아먹기 전에 살을 찌우는 것과 비슷하군요. 제게 할 부탁이라는 것이 혹시 마제를 죽여 달라는 겁니까?”

    “그렇소. 마제 그자는 실로 무서운 자로 예지력 또한 가공할 정도요. 다만 그는 아직 백 공자가 우담화라는 사실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소.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금제를 걸어둔 것인데 우연히 그게 들어맞고 만 것이오.”

    “제가 마제를 죽인 후에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후는 아까 내가 말한 그대로요. 금제가 풀리고 생사천겁이 끝나면서 우담화가 완성된 열매를 맺게 될 것이오. 그리고 내단으로 변한 그 열매를 태자가 복용하게 될 것이오. 사실 나와 마제 두 사람은 기가 순수하지 못해 우담화를 복용해도 지성자가 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오. 하지만 마제 그자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우담화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오.”

    “우담화를 복용했는데 지성자가 되지 못하면 소멸한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천제님 말씀대로라면 제가 마제를 죽이는 데 실패해도 그를 죽일 강력한 한 수가 아직 남아 있는 셈이군요.”

    백자안이 무심히 말했다. 하지만 다소 냉담한 표정이었다.

    “그것은 유감으로 생각하오. 하지만 우리가 백 공자를 이용만 하려는 것은 아니오. 거듭 말하지만 백 공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오. 따라서 어차피 시한부 삶과 비슷한 처지라면 세상을 위해 뭔가 뜻있는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오. 게다가 마제의 금제 때문에 백 공자는 잠시나마 지성자에 버금가는 위력을 발휘할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오.”

    “제게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되돌릴 힘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겁니까?”

    “그렇소. 우담화 자체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지성자가 될 수 없지만, 백 공자는 비록 죽었으나 그 기억이 아직 살아있다고 할 수 있으니 그 정도 위력은 발휘할 수 있을 것이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진정한 지성자가 되는 것은 아니오. 어떻게 하겠소?”

    “으음, 그 점은 구미가 당기는군요. 하지만 약속은 못 해 드립니다. 다만 제가 지성자에 버금가는 경지까지라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우리 천계의 무공서고를 열어 줄 테니 당분간 그곳에서 수련하시오. 다만 언제 우담화가 시들어버릴지 모르니 최소한 석 달은 버틸 수 있도록 영약을 주겠소. 덧붙여 말한다면 이 석 달이란 기간은 백 공자가 무공을 완성할 최소한의 시간이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알겠습니다.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 같군요. 다만 마제를 만나러 가기 전에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키고 무림을 다시 평정할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알겠소. 이 모두가 세상을 위한 것이니 우리 모두 백 공자의 희생을 잊지 않을 것이오.”

    “제가 진짜 죽었는지 아니면 죽을지는 나중에 알 수 있게 되겠지요. 아무리 천제님이라지만 세상일은 알 수 없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오. 하기야 자식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 나 또한 집착이 조금 있었던 것 같소. 세상에는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까, 아무쪼록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바라겠소.”

    * * *

    천계비고(天界秘庫).

    천계의 모든 무공이 비치된 곳이었다.

    백자안은 천상선녀의 안내를 받아 이곳으로 왔다.

    그녀로부터 천계비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얼마 후 천선생 역시 왔다.

    그는 천제가 보낸 단약을 들고 있었다.

    “이것은 우리 천계에 있는 절세영약 열 가지를 합쳐 만든 것으로 천계보양단(天界補陽丹)이란 것이오. 딱 하나 남은 것인데 백 공자가 복용하게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백자안이 사양하지 않고 곧바로 천계보양단을 먹었다.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것이 몸속 기운이 샘물처럼 맑아진 것 같았다.

    “백 공자가 복용한 천계보양단은 천년설삼 천 개를 한꺼번에 복용한 것과 마찬가지 효능이 있으니,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석 달간은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오. 게다가 암기력과 이해력을 고도로 높여주기 때문에 무공 연마에도 큰 도움을 줄 것이오.”

    “이후는 어떻게 됩니까?”

    “이후는 그야말로 천운에 맡길 수밖에 없소. 그때까지 무공을 완성한다면 곧바로 마제를 찾아가 그를 제거하는 게 좋을 것이오. 하지만 그전에 백 공자는 할 일이 있을 것이니 시간이 필요할 터. 운이 좋다면 다시 한 달을 더 버틸 수 있을 것이오.”

    “추가된 한 달 동안 마제가 먼저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도 있겠군요.”

    “그렇소.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오. 그때가 되면 우리 천계에서도 고수들이 파견되어 백 공자를 보호하게 될 테니까. 다만 천제님 말씀대로 마제는 백 공자가 직접 제거해야 하오. 앞으로 석 달 동안 나 역시 이곳에 매일 들러 천제님 말씀을 전해드리겠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천상선녀나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면 될 것이오.”

    “감사합니다. 한데 저곳은 최근에 누가 사용하던 곳이었습니까?”

    백자안이 천계비고 구석에 마련된 석실 한 곳을 가리켰다.

    천계비고 안에 따로 마련된 밀실로 앞으로 백자안이 지낼 곳이었다.

    “아! 가장 최근에 천계석실을 사용한 분은 바로 태자 전하셨소. 천계비고는 원래 천제님과 태자님만 들어올 자격이 있는 곳이오. 천상선녀와 내가 들어온 것은 예외로 그렇다고 비고 안의 비급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오. 그럼 오늘은 일단 쉬고 내일부터 연마에 들어가도록 하시오.”

    천선생이 말을 한 후 천상선녀와 함께 천계비고 밖으로 나갔다.

    백자안은 천계석실로 갔다.

    석실 안에는 천계석(天界石)으로 만든 침상 외에도 양식으로 쓸 천계벽곡단과 물을 마실 수 있는 샘터가 있었다.

    백자안은 천계수(天界水)를 마신 후 조용히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조금 전 복용한 천계보양단이 계속 몸속으로 퍼지고 있어 하루 정도 운공이 필요했다.

    백자안이 오늘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천제가 했던 말들이 계속 생각났다.

    특히 자신의 실체가 우담화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애써 부인했지만, 왠지 천제의 말이 맞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생각이 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무공연마에 전념하자. 설사 내가 영원히 사라지더라도 돌로 변한 무림인들만은 반드시 회복시킨다. 그들 중에는 사랑하는 내 가족도 있으니 내 어찌 이번 기회를 놓칠 것인가.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한다.’

    번잡한 생각을 뒤로 미루자 마음이 점점 맑아졌다.

    ‘하늘이 나에게 어떤 역경을 준다고 해도 나 스스로 도를 높이면 능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설사 내가 우담화인들 또 어떠한가. 나는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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