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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15화 (215/250)
  • [제69장] 천족의 후예 3

    석 달 후.

    낙양 지존맹 총단.

    맹주 집무실에 세 사람이 모여 회의를 열고 있었다.

    바로 백자안과 방일화, 그리고 무명노승이었다.

    신선계에서 무림으로 돌아온 백자안은 천상선녀를 기다리면서 맹을 정비하는데 힘을 쏟았다.

    무림인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에 따른 행동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가짜 백자안이 나타난 것이 여러 번이었기에 이번에야말로 확신을 심어주어야 했다.

    신선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성공한 백자안은 무림질서를 다시 세우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석 달이 지난 지금 무림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다만 태산 쪽에 혈교 잔당이 나타났다는 보고가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늘 지휘부 회의를 열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참석자 중 방일화는 총순찰 자격으로 온 것이었다. 무명노승은 석 달 전 지존비무에서 우승한 사람으로 현 부맹주였다.

    총군사 자리가 여전히 공석 중이라 백자안은 이들 두 사람과의 회의로 대소사를 결정하는 중이었다.

    방일화가 말했다.

    “태산에 나타난 혈교 잔당의 수는 대략 삼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우두머리는 십만혈군(十萬血君)이란 자로 그 무공 수준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한 달 전 갑자기 혈교 잔당을 이끌고 나타나 태산파를 멸문시키고 태산 일대를 장악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태산이라면 산동성에 있는데 제남에 있는 지존맹 지부에서 지원하지 않았나?”

    “지원 무사를 보냈지만 모두 전멸당했다고 해요. 보고에 따르면 십만혈군이라는 자가 혈교의 금지된 술법을 구사해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고 해요. 다만 그 세력 범위를 태산 일대에 한정하고 있어, 지금 당장은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부맹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무림은 맹주님의 위명으로 인해 평화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사마의 무리가 점점 갈 곳이 없어지고 있지요. 한데 혈교 잔당이 태산 일대를 장악하자, 그놈들이 모두 그곳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세력이 더 커지기 전에 싹을 도려내야 합니다.”

    “으음, 생각보다 심각하군요. 아무래도 토벌군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그곳 병력만으로는 놈들을 토벌하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네. 놈들에게 당한 무사들이 워낙 많아 병력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산동성 성도인 제남에 있는 본맹의 지부에서 지원무사들을 보내달라고 계속 요청해오고 있습니다.”

    “제남지부의 장은 누구입니까?”

    “모용세가 출신인 모용곽(慕容郭)이 맡고 있습니다.”

    “모용곽에 대해서 아는 게 있으십니까?”

    “저도 잘은 모릅니다. 다만 모용세가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로 알려져 있습니다. 직계가 아니라 방계라는 한계 때문에 일찍이 강호에 나와 방랑 생활을 했지요. 그 때문에 그를 흑도로 분류하는 사람도 많지만, 무림세가의 본분을 잊지 않아 제남지부의 장이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토벌단이 구성되면 일단 제남에 들러 병력을 합치는 게 좋겠군요.”

    “네. 그게 가장 확실하겠지요. 많은 무사로 태산을 포위한 후 혈교 잔당을 토벌하면 놈들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겁니다. 다만 병력도 부족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고수라고 합니다. 십만혈군을 상대할 수 있는 절세고수 말입니다. 무사들의 피해가 대부분 그자의 술법 때문이라고 하니까요.”

    “으음, 혈교 잔당 개개인의 무위는 그렇게 높지 않은가 보군요. 맹의 고수 중 누구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제가 가겠습니다.”

    “으음, 부맹주께서는 여기서 할 일이 많으신데 굳이 그곳까지 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원로 중에 십만혈군 그자를 상대할 고수가 정말 없겠습니까?”

    “안타깝게도 쉽게 찾기 힘듭니다. 그동안 흑도뿐만 아니라 은거해 지내던 정파 고수들이 대거 맹에 들어왔지만, 십만혈군 그자의 술법이 워낙 괴이하고 악랄해서 역부족일 겁니다. 사실 저 역시 놈을 이긴다고 장담하기 힘듭니다.”

    “그 정도입니까?”

    백자안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사실 지난 석 달간 그가 무림을 정비한다고는 했지만, 정신은 온통 다른 데 가 있었다.

    바로 천상선녀 때문이었다.

    무법반선의 말에 의하면 그녀가 백자안을 찾아올 것 같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 소식도 없었다.

    답답해하던 백자안이 여러 번 신선계로 가서 무법반선을 만났지만, 그 역시 난색을 보였다.

    다만 백자안이 신선계에 다시 간 것은 신선계 동태를 살피기 위함도 있었다.

    과연 무법반선 말대로 모든 게 잘 되어 나가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 신선계는 매우 잘 돌아가고 있었다.

    백자안이 내린 소환령에 응해 특수 은둔반선들이 예상대로 십만 이상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함께 모여 다시는 정심회 같은 사이비 집단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명목의 단체도 결성하지 말자는 결론에 달한 것이다.

    요괴나 마물 등의 공격 역시 반선 개개인이 퇴치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마계와의 인연을 완전히 끊기로 했다.

    백자안은 그러한 신선계의 움직임에 기뻐했고 안도했다.

    지금 그의 관심 대부분이 망부곡에 돌로 변해 있는 무림인들을 회복시키는데 있어, 그 밖의 일에 집중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천상선녀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은 그로서 매우 답답한 일이었다.

    그녀로부터 돌로 변한 무림인들을 회복시킬 방법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알고 싶은 것 역시 당연했다.

    그렇게 무림과 신선계를 오가느라 석 달이 훌쩍 지나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그 때문일까.

    백자안에게 혈교 잔당이 태산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보고한 것도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원래는 무명노승과 방일화가 의견을 모아 자신들 선에서 최대한 해결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십만혈군이란 자의 술법 때문에 부득이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그 금지된 술법이란 게 무엇입니까?”

    “놈의 술법에 당하면 그 자리에서 돌로 변한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무사들의 공포심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으음, 돌이라······.”

    백자인이 눈을 빛냈다.

    망부곡에 있는 돌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든 상대를 돌로 만드는 것이니 어쩌면 무림인들을 되살릴 단서를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천상선녀가 언제 올지 모르니 태산부터 다녀와야겠다. 무사들의 희생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니 머뭇거릴 필요가 없겠군.’

    백자안이 결단을 내리고 말했다.

    “제가 먼저 가보겠습니다. 총순찰만 데리고 가볼 테니 부맹주께서는 맹을 잘 관리해주십시오.”

    “맹주님께서 직접 말입니까?”

    “네. 십만혈군 그자에게 알아볼 게 있어서 그러니 제 뜻에 따라주십시오. 특수 이동대법을 사용하면 얼마 시간도 걸리지 않을 테니 며칠만 수고해주십시오. 다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토벌단을 구성해주십시오. 병력은 넉넉잡고 십만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제가 직접 전서구를 보내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출정 명령을 내려주시면 제가 토벌단을 이끌고 가겠습니다. 다행히 지금 총단 방어의 필요성은 거의 없으니 저까지 가도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 * *

    산동성 성도 제남(齊南).

    태산의 북서쪽에 있는 이곳 제남성은 성도답게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이 관도를 메웠다.

    특징적인 것은 병장기를 찬 무림인들이 많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제남지부장 모용곽이 산동성 내에 있는 무림인들에게 영웅첩을 돌려 자체 무림대회를 연다고 하더니 정말인 것 같아요. 하기야 태산이 혈교 놈들의 세력권으로 완전히 굳어지면 그다음은 이곳 제남일 테니, 미리 그 싹을 제거하려는 게 당연할 거예요.”

    “그런 것 같구나. 일단 우리도 무림대회에 참가하도록 하자. 그래야 십만혈군 그자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있을 테니까.”

    “네. 사부님. 한데 굳이 우리가 역용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방일화가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와 백자안은 지금 전혀 다른 얼굴로 역용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신분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사실이었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지금 산동성 무림인들이 스스로 힘을 합쳐 잘 대응하고 있는데, 이는 나중에 다른 성에도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데 내가 나타나면 그 의지가 약화할 것이다. 모든 일을 내게만 의지하려 할 테니까. 무엇보다 십만혈군 그자를 은밀히 조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나타났다는 것이 놈의 귀에 들리면 어떻게든 대비를 할 것이고, 어쩌면 도망갈 수도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칫 일을 망칠 수 있지. 놈의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면 곧바로 내가 그곳으로 갈 생각이다. 계획대로만 되면 굳이 총단의 지원 병력이 필요 없을 것이다.”

    “아! 계획이 있으셨군요. 아마도 놈이 사람들을 돌로 만드는 그 술법 때문인가요? 혹시라도 중간지대에 돌로 변해있는 무림인들을 되살릴 단서를 찾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 모든 술법에는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해법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독이든 해약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놈을 사로잡아 그 술법에 대해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

    “네. 일단 제남지부로 가도록 해요. 그곳이 산동성 지존맹 총지부이기도 하니까, 어차피 가봐야 할 곳이긴 하네요.”

    “그전에 객잔에 들러 식사부터 하도록 하자. 민심을 파악하는 데는 객잔만큼 좋은 곳이 없으니까.”

    “네. 좋아요. 안 그래도 아침을 아직 못 먹어 배가 고파요.”

    방일화가 즐거워했다.

    그녀 역시 절세고수의 반열에 들었으나, 백자안 앞에서는 어린아이같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았다.

    “그래. 나 역시 배가 고프군. 무림대회는 내일이라고 했으니 서둘 필요는 없을 듯하다.”

    “네. 이미 태산파가 멸문한데다가 괴이한 진법 때문에 태산 근처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하니, 군웅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해요. 아, 물론 그 전에 사부님께서 십만혈군 그놈을 제거해야겠지요.”

    “녀석. 그게 어디 뜻대로만 되는 일이겠느냐? 아마도 십만혈군 그자의 능력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날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시죠?”

    “놈이 나를 적수로 거론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있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신선계에 이어 황궁까지 안정이 되어 마음이 편하구나.”

    “네. 절대황녀께서 황궁으로 돌아가신 후 선정을 베푸셔서 백성들의 칭찬이 자자해요. 지혜로운 황룡선생을 국사로 임명한 것이 날이 갈수록 효과를 발휘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구나. 너무나 잘된 일이다.”

    “하지만 폐하께서 황궁으로 돌아가실 때 왠지 섭섭한 표정이었어요. 아마도 사부님 때문이겠지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사부님께서 너무 무정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 같아요. 폐하께서는 사부님과의 혼인을 원하시는 것 같던데······.”

    “그래서 너도 내가 폐하와 혼인하기를 원하는 것이냐?”

    “아니에요. 저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아요.”

    방일화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내게는 정혼녀가 있다. 악 소저를 구할 때까지 혼인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네. 사부님 뜻대로 하세요. 다만 정혼에 너무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은 인연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니까요.”

    방일화가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순리대로 풀어 가면 모든 일이 잘될 것이다. 다만 지금은 혈교 잔당 토벌에 전념할 때인 것 같구나.”

    “네. 사부님. 객잔에 도착했어요. 어서 들어가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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