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장] 천족의 후예 2
천마룡의 등장에 우두머리 독지네가 분노했다,
“백자안! 정녕 고집을 부릴 것이냐? 어리석은 놈! 설사 네놈이 뜻을 이룬다고 해도 천계에 의해 토사구팽당할 것이다.”
“쓸데없는 소리!”
백자안이 마음을 굳힌 듯 천마룡에게 명을 내렸다.
천마룡은 천마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신선계 내에서 볼 때는 실제 살아있는 것 같았다.
실제 천마룡은 고대마물 중 한 마리였기에 그러한 해석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일까.
천마룡이 돌연 사람의 말을 했다.
“주공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오! 사람의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
“네. 주공. 사실 제가 그동안 본신을 잃어버리고 환영으로 존재한 것은 서약의 돌 때문이었습니다. 서약의 돌은 마신들의 봉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운이 나빠 저 역시 함께 봉인되고 말았지요. 하지만 이제는 저의 본신을 되찾았습니다. 지금 보시는 저의 모습이 바로 본신입니다.”
“하하하! 그것 잘되었군. 본신을 찾은 것을 축하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를 돕겠다는 것인가?”
“네. 일단 주공의 명에 따라 저놈들을 제거하겠습니다.”
천마룡이 고개를 돌려 우두머리 독지네를 향해 불을 내뿜었다.
화르르!
거대한 화염이 우두머리 독지네의 몸을 휘감았다.
“으윽! 네놈이!”
천마룡의 화염은 보통 불이 아니었다.
우두머리 독지네의 몸이 그대로 타들어 가 한 줌 고름으로 변해 버렸다.
한바탕 접전을 벌일 것으로 생각했던 백자안이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마룡은 바위기둥 위에 거대한 장벽을 쌓고 있던 독지네 떼 역시 특수 화염이라 할 수 있는 천마화(天魔火)로 완전히 녹여버렸다.
백자안이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어마어마한 숫자로 불어나 있었던 독지네들을 깔끔하게 제거해주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고 보니 독 지네의 극성이 바로 천마룡이었구나. 지존검 외에도 천마검이 있어야 은둔반선들을 소환할 수 있게 안배되어 있었던 것이다. 천마검이 없었다면 정말 낭패를 볼 뻔했다.’
“수고했다.”
백자안이 천마룡을 치하한 후 다시 천마검 안으로 불러들였다.
지금부터는 집중해야 하므로 천마룡을 갈무리하려는 것이었다.
다행히 천마룡 역시 군말 안 하고 천마검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녀석은 더는 환영이 아니라 일종의 영물로서 백자안을 돕게 될 것이었다.
스스슷.
백자안이 신형을 솟구쳐 다시 바위기둥 위로 올라갔다.
바닥 위에 있던 동심원 모양의 표시는 그대로였다.
백자안이 지존검을 뽑은 후 아래로 겨누었다.
불도 꺼져 모든 장애는 제거된 상태.
이제 지존검을 꽂아 은둔반선들을 소환하면 되었다.
다만 마음에 조금 걸리는 것이 바로 우두머리 독지네가 했던 말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은 놈의 말을 모두 믿지 않았다.
물론 일부는 사실이었을 것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자신의 과거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으니까.
‘어떤 경우에도 돌로 변한 분들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운명으로 받아들이자. 지금에 와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지 않은가. 올바른 수도를 통해 신선계 질서를 회복시킬 반선들을 불러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들에게는 영구 은둔이 일종의 봉인이라 할 수 있을 터. 이제 그 봉인을 풀어 모든 반선이 자유롭게 수도에 전념할 수 있다면 신선계 역시 자정 작용을 통해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지금 내 손에 달려있다.’
백자안이 지존검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바위기둥 전체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어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어서 마무리해야 했다.
백자안은 지체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까지 신중을 기하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천상선녀가 나타난다면 진실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녀의 등장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주위는 조용했고 더는 지체하기 힘들었다.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한 것. 이왕 지금까지 왔으니 끝까지 한번 해보자. 내 마음 또한 그것을 원하고 있지 않은가.’
백자안이 결단을 내리고 지존검을 아래로 향한 채 하강했다.
슈우욱!
처음에는 조금 느린 듯했던 그의 신형이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푸욱!
지존검이 마침내 동심원 문양이 새겨진 표면을 파고 들어갔다.
그때였다.
바위기둥 전체가 금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백자안이 지존검을 뽑고 바위에서 물러나 절대황녀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바위기둥의 변화를 보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지존검을 회수한 것은 이미 임무를 완수한 것을 직감한 때문이었다.
실제 바위기둥은 금빛으로 변한 후 빛을 사방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마치 안개처럼 금빛이 신선계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빛이 증폭되는 속도가 너무나 놀라웠다.
‘저게 바로 신선비급에 적혀 있던 신선금광(神仙金光)인가. 신선계 어떤 곳에 은신해 있어도 그 빛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 어떻게 보면 혜광심어와도 같은 것인데, 봉인이 풀렸음을 알리고 소환에 응할 것을 전달하고 있겠군.’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미소를 지었다.
우려와 달리 자신의 몸 상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이제는 기다릴 뿐이었다.
* * *
은둔반선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지존검으로 소환령을 내린 지 하루가 지나서였다.
그동안 백자안은 절대황녀의 치료에 집중했다.
그 결과 절대황녀는 깨어나 있었다.
그녀에게 지금까지의 과정을 모두 설명해준 것은 물론이었다.
절대황녀가 놀라면서도 백자안이 문제를 해결한 것을 기뻐했다.
하기야 황제 자리를 노렸던 반야마신과 천마신, 구천마녀 등이 모두 제거되었으니 이제 평화만 남은 셈이었다.
“반선들이 정말 나타나는군요.”
“네. 폐하.”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닌 게 아니라 소환령에 의해 백여 명의 반선들이 소환봉에 도착하고 있었다.
지금은 백여 명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수가 얼마나 늘어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소환령에 응해 이렇게 왔습니다. 소환반선(召喚半仙)께 인사드립니다. 명을 내려주십시오.”
반선들이 고개를 숙여 백자안에게 예를 표했다.
백자안이 답례를 했다.
“명이라니 가당치도 않습니다. 이제 정심회와 백마회가 제거되었으니 여러분께서 새롭게 신선계를 다스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은둔반선들의 대표로 무법반선(無法半仙)이 말했다.
그는 특수 은둔반선들을 이끌고 있던 반선으로 가장 먼저 도착한 인물이었다.
백자안은 그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상황을 알 수 있었다.
무법반선의 말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들은 지금까지의 신선계 상황에 대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정심회 반선들의 움직임과 백대마신의 출현, 그리고 백자안의 등장까지.
하지만 맹세 때문에 전면에 나설 수 없었다. 그래서 부득이 수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아! 저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겁니까?”
“네. 백자안 공자는 우리 특수 은둔반선들 사이에서 늘 화제의 인물이었습니다. 일반 은둔반선들과 달리 우리는 거의 영구적으로 은둔 수도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정심회 반선들의 빗나간 행동들을 막지 못해 무척 안타까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천족의 후예이신 백 공자의 출현은 희망 그 자체였습니다. 이제 신선계의 일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다시는 정심회 같은 사이비 수도집단은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한데 아까 저보고 소환반선이라고 하시던데 그 명칭은 어떻게 된 겁니까?”
“소환령을 발동한 분을 소환반선이라 부르지요. 반선이라 부르는 것은 백 공자께서 이미 반선의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달리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무법반선이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기도는 매우 평범했다. 하지만 백자안은 그의 무공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궁금한 것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만, 먼저 알고 싶은 것은 특수 은둔반선의 규모입니다. 얼마나 됩니까?”
“특수 은둔반선들의 수는 저희도 잘 모릅니다. 다만 이번 소환령에 응할 반선들은 적어도 십만이 넘을 겁니다. 참고로 폐관수련이나 부득이한 사유로 소환에 응하지 못하는 반선들의 수도 대략 그 정도 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 그럼 특수 은둔반선들의 수가 모두 이십만 정도나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하지만 이는 일반 은둔반선들의 수를 제외한 숫자입니다. 저 역시 그들의 수를 다 알지 못하니, 어쩌면 신선계 반선들의 총수가 백만이 넘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 그렇게나 많이? 하기야 지금도 계속 모여들고 있긴 하군요.”
백자안이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반선들의 수가 만여 명에 달했다.
그들 중에는 봉인이 풀린 특수 은둔반선들도 있었고, 그냥 일반 은둔반선들도 있었다.
설마 했지만 벌써 이전 정심회 반선들만큼이나 모인 것이었다.
무법반선이 말했다.
“아마 소환에 응하는 반선들은 며칠에 걸쳐 계속 나타날 겁니다. 소환반선께서 일일이 그들을 만나보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제가 대신해서 그들에게 명을 전달하겠습니다. 신선계 질서를 바르게 재편하여 다시는 사이비 수도집단이 나타나지 않게 하라는 말씀이었지요?”
“네. 바른길을 걸어간다면 그 범위 안에서 어떻게 행동하시든 여러분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밖에 많은 궁금증이 있을 텐데 말씀하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무법반선님의 눈빛을 보니 이후부터는 저 자신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 담긴 것 같은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겁니까?”
“현명하시군요. 사실 소환반선께서 궁금해하시는 내용에 답해줄 분은 따로 계십니다. 은둔하고 있던 저희가 알고 있는 부분 역시 거의 없고 말입니다.”
“그분이 바로 천상선녀입니까?”
“네. 무림으로 돌아가 계시면 그분이 직접 찾아가실 겁니다. 그때 모든 의문이 풀리실 겁니다.”
“알겠습니다. 뜻이 그러하시다면 조급히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두 가지만 여쭤보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먼저 저의 원래 신분입니다. 반선께서도 조금 전에 제가 천족의 후예라고 하셨는데, 독지네 그놈은 제가 대리인일 뿐이며 천계에 의해 이용당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결국 토사구팽당하고 말거라면서요. 그 부분에 관해 알고 있는 게 있습니까?”
“죄송합니다. 저 역시 처음 듣는 이야기라서. 저희는 백 공자를 무림맹주이자 천족의 후예로만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이 천상선녀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겠군요. 마지막 질문이자 가장 중요한 겁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중간지대에 돌로 변해있는 무림인들이 수백만이나 됩니다. 제 가족도 그곳에 있지요. 그분들을 회복시킬 방법이 정말 지성자가 되는 길뿐입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그것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성자가 되는 길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우화등선과 비슷하지요.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 부분 역시 천상선녀에게 듣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 반선들은 천계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니까요.”
“천계의 일이란 생사천겁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알겠습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럼 신선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자안이 인사한 후 절대황녀를 데리고 무림으로 돌아가기 위해 특수 이동대법을 펼쳤다.
이동대법에 실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실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스스슷.
백자안과 절대황녀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