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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11화 (211/250)

[제68장] 생사천겁 2

중간지대로 들어가는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백자안은 구천마갑을 무력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달하고 말았다.

한데 그 목적지는 놀랍게도 망부곡이 아닌가.

통로가 끝나고 중간지대에 들어서자마자 구천마녀와 천마신이 특수 이동대법을 펼쳐 망부곡으로 단숨에 온 것이었다.

물론 이 망부곡이란 이름은 백자안이 지은 것으로 구천마녀와 천마신은 알지 못했다.

“아!”

백자안이 망부곡에 있는 수많은 돌을 보며 탄성을 터뜨렸다.

여전히 수백만 개의 돌이 있었다. 한데 입구 쪽에 이전에 보이지 않던 만여 개의 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 모양 역시 투박해 원래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백자안은 단번에 느낌이 왔다.

‘정심회 반선들과 마신들이다!’

백자안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직 구천마갑을 풀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피로 이들이 부활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 분명했다.

“후후후! 뭘 그렇게 놀라느냐? 네 생각이 맞다. 이들이 바로 정심회 일만 반선과 백대마신들이다. 돌들이 세밀하지 못해 분간하기 어렵겠지만 나는 잘 알 수 있지.”

천마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자안을 데리고 이곳까지 무사히 와서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셈이냐?”

백자안이 여전히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구천마녀와 천마신 두 사람의 계획에 따라 그 역시 행동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냐? 네놈 피로 부활대법을 펼쳐 저들을 되살려낼 것이다.”

“그럼 저분들은?”

백자안이 뒤쪽에 있는 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삼의맹과 영웅맹 무사들로 추정되는 자들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백자안의 가족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후후후! 너무 걱정하지 마라. 저놈들도 모두 부활시킬 생각이니까. 다만 저들 역시 부활을 하는 대신 모두 나의 명을 따르는 충성스러운 수하들이 될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저분들 역시 내 피로 되살릴 것이냐?”

“그렇다. 원래 내가 저들을 이곳으로 날린 것은 다 생각이 있어서였다. 바로 천계와의 전쟁에 대비해 비밀 무기로 삼기 위해서였지. 그 때문에 내가 직접 특수대법을 펼쳐 저들을 이곳으로 날린 것이고, 오직 나만이 저들을 원래대로 만들 수 있다. 대신 평생 내 명에 따라야 하지. 이제 알겠느냐?”

“대단하군. 한데 굳이 내 피가 필요한 것은 역시 서약의 돌 기운 때문이냐?”

“그렇다. 원래 서약의 돌의 기운은 네놈이 아니라 내가 흡수할 계획이었다. 지존검의 완전한 주인이 되어 그 기운을 흡수하면 내가 원래 가졌던 절대마력과 조화를 이루어 가히 지성자와 버금가는 능력을 갖추게 되지. 나는 저들을 부활시킨 후 천계를 정복할 비밀 무기로 만들 생각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까? 구천마녀님.”

“옳으신 말씀이에요. 그렇게만 되면 천마신께서도 진성마신이 되실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굳이 마계로 돌아갈 필요 없이 이곳 신선계와 무림을 다스리게 될 것 같군요. 천계 정복은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까.”

“하하하! 역시 구천마녀님이시군요. 신선계와 무림을 다스리는 것은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아, 물론 황제 역시 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마계 총단에 계신 마제(魔帝)께서도 이미 윤허하신 일이에요. 대신 천계와의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면 오늘 부활시킬 반선들과 마신들, 그리고 무림인들을 동원해 지원해주셔야 할 거예요.”

“당연합니다. 어찌 마제님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하지만 천계 쪽에서 쉽사리 개입하지 못할 겁니다. 기껏 해봐야 천상선녀 정도이겠지요.”

“천상선녀 그 계집은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에 만나면 갈가리 찢어 죽일 테니까. 하지만 그 계집 역시 더는 개입하기 힘들 거예요. 생사천겁 때문에 직접 백자안 이자를 도울 수 없으니까. 아니 아까도 말했지만, 그 계집은 이자가 죽기를 바랄 가능성이 더 커요. 그렇게 되면 그 계집 역시 천계로 돌아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테니까요. 요컨대 천계와 마계는 현 상태로 유지가 되고, 신선계와 무림, 그리고 황궁만 천마신 그대의 지배하에 들게 되는 것이지요.”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이제 대리자도 필요 없으니 제가 생각하는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할 겁니다.”

“총지배자가 되면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요?”

“당연히 잠재적 저항 세력부터 제거해야겠지요. 일단 신선계의 경우 은둔반선들을 찾아내 한 명 한 명씩 제거할 생각입니다. 무림의 경우에는 정파 세력을 뿌리부터 색출해 모두 죽여 버릴 겁니다. 황궁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대대적인 숙청이 필요하겠지요.”

“잘되기를 바랄게요.”

“감사합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면 구천마녀께서도 마계로 돌아가 평화롭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천마신이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옆에 백자안이 있음에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구천마갑의 위력 때문에 백자안은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자, 말이 나온 김에 어서 저들을 부활시키도록 해요. 한데 정심회 반선들 역시 그대의 명을 들을까요?”

“물론입니다. 이미 신선경의 힘을 제가 흡수했으니, 제 지시를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하기야 정심반선이 복용한 대왕정심단 역시 신선경의 기운으로 제조한 것이지요.”

“네. 쉽게 말해 정심단을 복용한 자는 대왕정심단을 복용한 자의 수하가 되고, 대왕정심단을 복용한 자는 신선경의 기운을 흡수한 자의 수하가 되게 되지요. 만약 그 명을 듣지 않으면 곧바로 죽게 됩니다. 따라서 만일 제가 죽게 되면 백대마신은 물론이고 정심회 반선 모두가 죽게 되는 것이지요. 정심반선 그자 역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신선경의 기운을 흡수할 능력이 없었지요. 하하하!”

천마신이 껄껄 웃었다.

백자안은 그의 말을 들으며 계속해서 구천마갑을 풀려 했다.

하지만 조금 의아한 느낌도 있었다.

왠지 천마신과 구천마녀가 시간을 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상식대로라면 어서 자신을 죽이든지 피를 뽑든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극비사항이라 할 수 있는 말들을 거리낌 없이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설마 천상선녀를 기다리는 것인가. 하기야 지금 저들에게 남은 적은 실질적으로 천상선녀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지.’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긴 순간.

구천마녀와 천마신은 서로 전음을 나누고 있었다.

「구천마녀님. 천상선녀 그 계집이 과연 올까요?」

「반드시 올 거예요. 아니 이미 와 있을 거예요. 조금 전 느낌이 왔어요. 다만 그 계집의 은잠술이 너무 뛰어나 정확한 위치를 모르겠어요. 하지만 백자안 저자의 피를 뽑으려 할 때 분명 개입할 거예요. 그때 우리가 반격을 가해 그 계집을 반드시 죽여야 해요. 우리 두 사람이 힘을 합치면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거예요.」

「정말 그 계집이 나타났군요. 저는 생사천겁 때문에 나타나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 계집이 천계로 소환되는 것을 각오하고 마지막으로 개입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출수하세요. 다만 반드시 명심하세요. 천상선녀 그 계집이 개입하는 순간 반격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물론 저 역시 합공할 겁니다.」

「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천마신이 전음을 보낸 후 우수를 뻗어 백자안의 심장 부위를 겨누었다.

부활대법을 펼치려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의 좌수 역시 암암리에 출수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구천마녀 역시 내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백자안 또한 마지막 시도를 했다.

‘인간은 누구나 막다른 길목에서 초인적인 힘을 내게 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원래부터 장애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이까짓 구천마갑이 대수이겠는가.’

백자안이 다시 한번 용기를 냈다.

천마신의 우수에서 붉은 실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온 것은 그때였다.

바로 부활대법이었다.

휙휙휙.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얇은 실이 수백 가닥 넘게 백자안의 가슴에 꽂혔다.

“으윽!”

백자안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마치 흡수대법에 당한 것처럼 온몸의 피가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피는 붉은 실을 타고 천마신의 우수로 흘러갔다.

순간. 천마신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운이 일어나 그 피를 안개처럼 분사시켰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붉은 안개가 삽시간에 계곡 안에 가득 찼다.

그러는 동안 백자안의 피는 계속 빠져나갔다.

“으으······.”

백자안이 신음을 내뱉었다.

구천마갑을 파괴하려는 마지막 시도가 실패한 것이 컸다.

마음을 집중한다는 것이 오히려 집착을 키워버렸다.

간절함은 있었지만, 그것이 순수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이 스스로 생각하는 패인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천상선녀의 도움에 대한 기대였다.

그의 예감으로 어쩐지 천상선녀가 자신을 구해줄 것 같았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반대로 천마신은 우려했던 천상선녀의 개입이 없자 날개를 달은 듯 부활대법을 마음껏 펼치고 있었다.

이미 그 부활력의 범위가 마신들과 정심회 반선들에 이어 무림인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

이제 부활대법이 성공하면 그들 모두는 영원히 천마신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강시가 되는 셈이었다.

그렇게 매일 부활대법을 펼치게 되면 생강시의 무공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그것이 일반적인 강시대법과의 차이점이었다.

게다가 천마신 본인으로서도 무공이 상승하기 때문에 큰 이익이 있었다.

이번 부활대법이 성공만 하면 곧바로 진성마신의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 확실했다.

구천마녀는 계속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천상선녀의 기운을 느꼈던 그녀였다.

하지만 백자안의 피가 뽑히는 순간부터 그 기운이 사라졌다.

‘내 예상을 벗어났구나. 하기야 생사천겁에 천계가 직접 개입하게 되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긴 하지. 결국 신선계와 무림, 그리고 황궁보다 천계의 안위를 택했구나. 천상선녀 그 계집은 백자안 스스로 이 위기를 벗어나기를 기대하겠지만, 구천마갑은 내가 죽지 않는 한 절대 벗을 수 없을 것이다.’

구천마녀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사실 천상선녀와 일대일로 붙어도 패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다만 이번 기회에 죽이려 했는데, 그 기회를 다음에 미룬 것뿐이었다.

백자안은 의식이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일각 이내 숨을 거둘 것 같았다.

다만 빠져나간 피는 빠르게 회복할 자신이 있었다.

특수한 체질이 되어 얼마든지 피가 재생되리라는 것을 느낌으로 안 것이다.

문제는 피가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는 더 버티지 못하고 오직 죽음뿐이었다.

백자안의 죽음.

그때가 바로 부활대법이 성공하는 때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망부곡에 있는 모든 돌에 붉은 안개가 감싸고 있었다.

백자안이 문득 생각했다.

‘내가 구천마갑을 푸는 데만 너무 신경 쓴 게 아닐까. 이미 혈도가 풀렸으니 마음으로 흡수대법을 펼칠 수도 있지 않을까.’

백자안의 피가 정말로 마지막 한 방울 남았을 바로 그때.

흡수대법이 실제 펼쳐지며 나갔던 피가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피의 역전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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