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장] 생사천겁 1
[제68장] 생사천겁
갑작스러운 천마신의 등장.
그것은 백자안에게 놀라움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놀라게 한 것은 천마신이 보호진을 깨트리고 석실 안에 들어온 사실이었다.
그것도 단숨에 진입했다.
보호진은 이미 파훼되어 완전히 사라진 상태.
백자안은 천마신의 무위가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높아진 것을 알 수 있었다.
‘큰일 났구나. 내가 무공을 회복해도 패배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구천마녀 또한 나의 아래가 아니다.’
백자안이 내심 탄식했다.
아직 내상이 회복되지도 않았고 혈도 또한 풀지 못했다.
거기에다가 구천마갑의 압박 역시 너무 심했다.
무공을 회복한다고 해도 구천마갑 때문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깨닫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바로 그의 부친 백청의 생사였다.
“네가 천마신이냐? 내 아버님은 어떻게 되었느냐?”
“후후후! 백자안! 너 역시 용케도 살아남았구나. 아마도 그것 역시 네가 천족의 후예라서 안배가 있었던 것이겠지?”
“잔말 말고 내 아버님에 대해 말해라.”
“백청 그자의 육신은 다른 반선들과 마신들과 함께 중간지대로 넘어갔다. 서약의 돌이 파괴되고 서약봉이 무너질 때 나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지. 나는 육신을 탈피하여 살아남을 수 있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특수 대법을 펼쳐 마신들과 반신들을 모두 중간지대로 날려 보낸 것이다.”
“네가 날려 보낸 게 아니라 서약의 돌의 힘 때문이었겠지. 나와 너는 특수한 몸 상태로 인해 날려가지 않았지만, 다른 마신들과 반선들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지. 그것이 바로 천계의 안배였으니까 다들 속수무책이었겠고. 그렇지 않으냐?”
“후후후! 어리석지는 않군. 하지만 내가 그들의 목숨을 보존시켜준 것 또한 사실이다. 특수 대법을 펼쳐 그들이 부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두었으니까.”
“그게 무슨 뜻이냐?”
“후후후! 너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원래 중간지대로 떨어져 돌이 되면 지성자가 아니면 그들을 회복시키기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서약의 돌 때문에 마신들과 반선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했기 때문에, 부활의 여지를 주기 위해 내가 특수 대법을 펼쳤던 것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 이번에 돌이 된 마신들과 반선들은 지성자가 아니라도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이냐?”
“그렇다. 제법 총명하군. 원래 서약의 돌에 담긴 기운이 중간지대로 넘어갔을 때의 변형력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서약의 돌의 기운으로 다시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네놈의 피로 반선들과 마신들을 원래대로 회복시킬 수 있지. 다만 네놈 아비는 이전의 삼의맹과 영웅맹 놈들처럼 지성자만이 회복시킬 수 있다.”
“복잡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지만 중간지대로 무사히 들어갈 방법을 알고 있느냐?”
“물론이다. 이번에 서약봉 전체가 무너지면서 신선계 전체를 지탱하던 진법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신선계와 중간지대 사이의 통로가 열렸다는 점이지.”
“통로가 생겼다면 이제 아예 특수 이동대법으로 들어가면 되지 않으냐?”
“중간지대로 들어가도 돌이 되지 않는 안전한 통로가 생겼는데, 왜 위험을 무릅쓰고 특수 이동대법을 펼치겠느냐? 게다가 너는 이미 특수 이동 능력을 잃지 않았느냐?”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너는 그대로 가능하다는 말이냐?”
“후후후! 물론 나 역시 처음에는 이동 능력을 잃었다. 특수 이동이라는 것이 신선계 전체 진법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지. 물론 무림에서도 특수 이동이 가능하긴 하나, 그것은 특수 이동진기가 몸에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라 일시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지.”
“그래서 너는 어떻게 그 이동능력을 회복한 것이냐?”
“그건 바로 내가 봉인을 완전히 풀었기 때문이다. 위기의 순간 지옥염라주가 폭발하며 생긴 기운을 모두 흡수할 수 있었지. 이후 나는 사흘 동안의 회복운공으로 내상 역시 완전히 회복했고 이전보다 열 배는 더 강해졌다. 물론 회복된 능력 중에 특수 이동능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너는 다르지. 너는 비록 천족의 후예이기는 하나 현재는 생사천겁(生死天劫) 중이기 때문이다. 특수 이동능력만큼은 지성자가 되지 않는 한 회복할 수 없을 것이다.”
“생사천겁?”
백자안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생사천겁이라는 것이 자신과 천족의 관계를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후후! 아직도 모르고 있었느냐? 하기야 나 역시 이번에야 알았지만 말이다. 천상선녀가 이야기를 해주지 않은 것이 확실하군.”
천마신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천상선녀가 백자안에게 직접 어떤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흡족한 것 같았다.
구천마녀가 말했다.
“호호호! 천상선녀 그 계집이 생사천겁의 묵계를 잘 지키는군요. 하기야 그 계집 입장에서는 백자안 이놈이 어서 죽는 걸 바랄지도 모르지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백자안이 언성을 조금 높였다.
“곧 죽을 놈이 뭐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느냐? 원래 천계와 마계 일은 천기와 같아 누설할수록 위험이 커지니 더는 묻지 마라.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되었고, 어서 가도록 하지. 구천마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어서 이놈을 데리고 중간지대로 가요.”
“알겠습니다. 그전에 이놈에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습니다.”
“뭔가요? 지존검과 천마검 말인가요?”
“네. 백자안 네놈이 다시 가져간 지존검과 천마검은 어디 있느냐?”
“나도 모른다. 서약봉에서 무림으로 날려 온 후 눈을 떴을 때 병장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지존검과 천마검 등 그가 지니고 있던 물건들은 지금 모두 몸속에 들어가 있는 상태였다.
천마신은 물론이고 구천마녀 또한 미처 그 점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천마신. 아마 그 검들은 서약봉이 무너지면서 잔해 속에 있을 거예요. 이미 봉인을 완전히 풀었으니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마검은 천마룡을 부릴 수 있고, 지존검 역시 각성까지 했으니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면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렇군요. 혹시 나중에 천계와 전쟁을 벌일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아직 지존검이 완전히 각성한 것은 아니에요. 서약의 돌로 각성한 지존검이지만 그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곳에 꽂아야 하지요.”
구천마녀가 말을 하며 백자안을 쳐다봤다.
백자안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지존검을 어디에 꽂아야 하지? 그 이유는?”
“호호호. 몰라도 된다. 역시 모르고 있었구나. 아직 안심할 수 없기에 절대 가르쳐줄 수 없다.”
“혹시 은둔반선들의 소환 때문이냐?”
“으음, 역시 만만한 놈이 아니군.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
“추측을 해봤을 뿐이다. 원래대로라면 은둔반선들이 소환되어 신선계를 평정해야 하는데. 지금 너희 말을 들어보니 신선계에 다른 변화가 없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네 말대로다. 아직 은둔반선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매일 한두 명은 은둔을 끝내고 모습을 드러내지만, 지존검이 소환력까지 발휘하면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은둔반선들이 은신처에서 나오게 되지. 우리는 그런 결과를 원치 않는다. 게다가 이미 그곳을 지키기 위해 절대마물 한 마리가 파견되어 있다. 설사 네가 지존검을 다시 찾는다고 해도 절대 은둔반선들을 소환하지 못할 것이다. 하기야 곧 죽을 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구천마녀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일단 신선계로 들어가도록 해요.”
천마신이 백자안의 맥문을 잡았다.
구천마녀 역시 백자안의 어깨를 짚었다.
그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세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신선계 외곽.
중간지대와 맞닿아 있는 이곳에는 이전처럼 인적이 드물었다.
신선계 전체 진법에 변화가 생겨 통로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다.
해 질 무렵.
이곳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바로 백자안과 구천마녀, 그리고 천마신이었다.
백자안의 맥문은 여전히 천마신이 잡고 있었다.
구천마녀가 중간지대로 들어가는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통로는 아마 계속 커질 것이며, 종국에는 중간지대가 신선계로 흡수될 것 같군요. 통로가 생긴 것은 아무래도 서약의 돌이 파괴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습니다. 바로 들어가지요.”
천마신이 백자안을 데리고 앞장을 섰다.
구천마녀가 그 뒤를 따랐다.
백자안은 별 반항 없이 그들을 따랐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내 힘으로 신선계나 중간지대로 들어올 수 없게 되었다면, 이런 식으로 오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문제는 어떻게 해야 삼의맹과 영웅맹 무사들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분명 정심회 반선들과 마신들을 먼저 회복시키려 할 텐데, 이후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여기까지 오면서 자체 회복력으로 내상은 거의 회복했다.
하지만 혈도는 풀리지 않았다.
게다가 구천마갑 또한 그를 압박하고 있었다.
설사 혈도를 풀더라도 구천마갑 때문에 헛수고가 될 것 같았다.
이런 상황이 되자 백자안 또한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목숨 때문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자신의 가족을 비롯하여 많은 무림인을 구해야 했다.
그들은 백자안을 믿고 생사고락을 함께한 무사들이었다.
그들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은 맹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었다.
‘반드시 방도를 찾는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
백자안이 집중했다.
천천히 통로를 따라 중간지대로 들어가고 있었지만, 의지는 더욱더 굳건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아까 천마신이 지존검과 천마검에 대해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천마검이 천마룡을 부를 수 있다고 했었지. 지존검 또한 일단 각성을 이룬 상태고 말이야. 사실 내 몸 역시 서약의 돌 기운을 흡수하고 구중천심공도 이뤄 최상의 상태다. 한데 구천마녀 이 계집에게 당하다니,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과연 내가 절대황녀 때문에 다급해져 이 계집이 은신해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었던 것일까.’
백자안이 잠시 그가 구천마녀에게 제압된 상황을 떠올렸다.
물론 절대황녀를 구하기 위해 치료 중 당한 일이었으나, 지금 그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미리 간파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특수 이동대법 또한 마찬가지다. 천마신은 내가 이동능력을 잃었고 다시 회복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 역시 의문이다. 원래 구중천심공을 대성하면 이동능력이 극대화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아직 내가 나의 능력을 다 모르고 있다는 말인가.’
백자안이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의 무공은 마음과 관련이 깊었다.
마치 흔들림 없는 물이 맑아지듯 그의 마음도 점점 순수해졌다.
그러다 문득 이전에 무명부록에서 배웠던 무명점혈술이 떠올랐다.
이후 그의 무공 경지가 올라감에 따라 따로 혈도 비술이 필요 없어져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었다.
‘무명점혈술은 점혈 뿐만 아니라 해혈에도 탁월하다. 구천마녀의 점혈이 비록 매우 특이하고 악랄하나, 어찌 그 해혈이 불가능할 것인가. 애초 불가능하다고 마음먹은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백자안이 마음을 움직여 무명점혈술로 혈도를 풀기 시작했다.
마혈이 찍혀 몸은 까딱할 수 없고 실제 천마신에 의해 살짝 몸이 바닥에서 들려있는 상태였지만, 마음은 여전히 자유로웠다.
‘절대 평정의 세계는 신이라 해도 건드릴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믿는 것이다.’
그때였다.
한줄기 기운이 몸에서 생성되어 제압되었던 마혈이 풀렸다.
백자안이 매우 기뻐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아직 구천마갑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혈도를 풀었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 없었다.
‘도착할 때까지 외형은 그대로 두더라도 반드시 무력화시켜야 한다. 그래야만 승산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