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208화 (208/250)
  • [제67장] 구천마녀 2

    다음날. 지존맹 총단.

    영웅대회가 시작되는 이날 구름처럼 많은 무림인이 모였다.

    백자안의 복귀가 정식으로 알려졌기 때문인지 그를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수백만이 넘는 군웅들이 모여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표면적으로 이제 무림의 혼란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정심회 반선들과 백대마신은 신선계에서 종말을 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었다. 지존맹주 자리를 차지했던 반야마신도 백자안에 의해 제거되었다.

    황궁 역시 절대황녀가 여황제가 된 이후의 안정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은 백자안과 절대황녀의 혼인에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공식적으로 대회 기간 중 예정된 혼례식에 대하여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백자안이 절대황녀의 입장을 고려해 섣불리 취소를 발표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절대황녀의 생각은 또 다를 수 있었다.

    다만 아직 대회장에 절대황녀가 도착한 것은 아니었다.

    백자안은 방일화 등 지존맹 지휘부 고수들과 함께 단상에 앉아 비무대회 본선을 구경하고 있었다.

    총순찰이 된 방일화가 옆에 앉아 있는 백자안에게 말했다.

    “사부님. 절대황녀, 아니 황상 폐하께서 낙양 인근까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해지기 전에 총단에 도착하실 것 같습니다.”

    “으음, 알겠다. 그동안 비무 시합을 구경하고 있으면 되겠군.”

    “네. 부맹주를 뽑는 시합이니 잘 살펴보셔야 할 거예요.”

    “너는 혹시라도 수상한 자가 우승을 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냐?”

    “네. 무엇보다 그 구천마녀라는 여자가 걱정이 돼요. 지금쯤 반야마신이 죽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너무 조용한 것 같아요.”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얼굴도 모르고 그 능력도 모르니 어찌하겠느냐? 나타나면 임기응변할 수밖에.”

    “네. 지금으로서는 별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 사실 제일 좋은 것은 구천마녀가 사부님을 두려워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계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녀가 나보다 무공이 약할 것으로 생각하느냐?”

    “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녀는 진성마신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녀를 견제할 수 있는 천계사자인 천상선녀라는 분도 계신다고 했잖아요? 제 생각에는 천상선녀 그분이 충분히 구천마녀를 견제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만 되면 얼마나 좋겠느냐? 나 역시 천상선녀 그분에 대해 기대를 하고 있다. 사자들끼리는 서로 간섭을 하는 게 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 때문인지 사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천마신의 복귀다.”

    “천마신 역시 죽었을 가능성이 커요. 그렇지 않다면 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을까요? 게다가 여전히 신선계 문이 닫혀있는 것 같으니, 설사 살아있다고 해도 직접 무림으로 올 수 없을 거예요.”

    “하하. 네 말만 들으면 걱정할 게 없겠구나.”

    “호호. 사실 제 걱정은 따로 있어요.”

    방일화가 안색을 조금 붉혔다.

    비무대 위에는 비무가 한창이었지만, 그녀의 관심은 백자안과의 대화에 있는 것 같았다.

    백자안 역시 비무를 지켜보면서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데 싫증 내지 않았다.

    두 사람 주위 음파를 차단해 말이 새어나갈 위험도 없어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오해하지 마세요. 제 걱정은 바로 절대황녀예요. 저는 그분이 사부님께 혼인을 강요할까 걱정이에요. 황제로서 명을 내리면 사부님도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에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내 의사에 반해서 그럴 분이 아니니까. 게다가 나에게는 정혼녀가 있지 않으냐? 지금 망부석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생사가 완전히 밝혀지기 전까지 내가 다른 여인과 혼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악 소저를 사랑하시는 건가요?”

    “그것까지 내가 답해야 하겠느냐?”

    “호호! 죄송해요. 사부님.”

    방일화가 얼굴을 다시 붉혔다.

    그때였다.

    함성과 함께 비무의 승자가 가려졌다.

    무명노승(無名老僧)이란 자의 승리였다.

    겉으로 보기에 그의 무공은 매우 평범했다. 하지만 예선전부터 쉽게 승리를 거두고 있었다.

    출신은 은자림으로 그동안 무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거고수였다.

    방일화가 말했다.

    “우승 후보가 나왔네요. 제 생각에 저분이 최종 우승을 차지할 것 같아요.”

    “잘 보았다. 무형검에 근접했으니 그 적수를 찾기 힘들 것이다. 부맹주감으로는 제격이라 할 수 있지. 내 부담이 많이 줄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백자안이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무명노승의 무위는 대단했다.

    그때였다.

    이번에 새롭게 지존맹 총관이 된 한빙거사(寒氷居士)가 급히 다가왔다.

    “맹주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폐하께서 괴한에 의해 납치되셨다고 합니다. 지금 막 전서구를 받았는데, 직접 보시지요.”

    한빙거사가 서찰 한 통을 건넸다.

    그 서찰은 바로 백자안도 알고 있는 황룡선생이 보낸 것이었다.

    지금은 황궁의 국사가 된 그는 반야마신이 절대황녀와 함께 장사성 전투 때 빼돌려 세뇌해둔 바 있었다.

    그러던 차에 반야마신이 죽자 그 역시 정신을 차린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절대황녀가 황궁에 복귀하고 여황제가 된 데는 그의 공이 매우 컸다.

    백자안 역시 그의 건재를 확인하고 절대황녀에 대한 걱정을 조금 덜 수 있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갑자기 납치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 절대황녀는 일개 공주 신분이 아니라 황제였다.

    황제가 납치되는 것은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백자안이 안색을 평온하게 하며 말했다.

    “내가 일화와 함께 직접 가보겠소. 이곳은 총관께서 관리해 주십시오. 사람들이 동요할 수 있으니 아직은 이 일을 알리지 마십시오.”

    “네. 맹주님.”

    “그럼 믿고 가보겠소.”

    백자안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일화가 따라 일어나 그를 보필했다.

    두 사람은 맹주 집무실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휴식을 취하러 들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하기야 백자안이 적어도 이삼일은 진행될 지존비무를 모두 다 지켜볼 필요는 없었다.

    오늘은 일단 대회 개회 선언을 했고, 지존비무 역시 최종 결승전 때만 참석해도 무방했다.

    맹주 집무실로 돌아온 백자안과 방일화는 곧바로 뒷문으로 나와 은신술을 펼쳐 총단 밖으로 향했다.

    휙휙.

    두 사람이 향한 곳은 물론 낙양 외곽에 멈춰 서 있는 절대황녀 일행이었다.

    황궁 무사 천 명을 대동하고 총단으로 향하고 있던 그들이 이동을 멈추고 절대황녀를 찾고 있는 것이다.

    백자안으로서는 일단 황룡선생을 만나보고 수색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누가 납치한 걸까. 설마 구천마녀 그녀인가.’

    백자안이 안색을 굳히며 빠르게 나아갔다.

    방일화 역시 온 힘을 다해 그를 따라갔다.

    * * *

    “오랜만입니다. 폐하께서 어떻게 납치를 당하신 겁니까?”

    백자안의 물음에 황룡선생이 황급히 말했다.

    “잘 오셨습니다. 인사를 드릴 여유가 없군요. 폐하께서 실종되신 것은 반 시진 전이었습니다. 낙양 성문이 바로 보여 잠시 가마를 내려두었는데, 아무 기척이 들리지 않아 내부를 보니 비어 있었습니다.”

    “납치를 당했다고 보시는 겁니까?”

    “네. 그 이유밖에 더 있겠습니까? 폐하의 무공을 생각해볼 때 상대는 대단한 고수임이 분명합니다. 가마 주위 위사들의 이목까지 속이고 감쪽같이 데려간 것을 보면 말입니다.”

    “지금 수색 중입니까?”

    “네. 천여 명의 황궁 무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찾고 있습니다. 이곳은 백여 명만 남아 소식을 기다리고 있지요.”

    황룡선생이 초조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공터에 모인 황군의 수는 백여 명 정도.

    나머지 구백여 명은 조금 전 그의 말대로 수색 중인 것 같았다.

    백자안은 일단 가마 안을 살폈다.

    가마라 했지만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므로 마차 위에 얹혀 있었다.

    가마 주위에는 근접 호위를 맡은 네 명의 고수가 지키고 있었다고 했다.

    한데 그들 모두의 이목을 숨기고 귀신같이 절대황녀만 빼간 것이니 다들 당황할 만했다.

    백자안은 내공을 끌어올려 탐지에 들어갔다.

    일반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외부인 침입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별다른 흔적을 찾지 못했다.

    “어떻습니까? 맹주님 무공이라면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황룡선생의 물음에 백자안이 다시 정밀 수색을 했다.

    가마 내부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알아볼 수 있는 세밀한 검사였다.

    그러던 어느 순간.

    백자안이 가마 내부 밑바닥에 미세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너무나 작아 최소 무형검에 근접한 고수 이상만이 읽을 수 있었다.

    “아!”

    백자안이 짤막한 탄성을 터뜨렸다.

    “왜 그러십니까?”

    “폐하를 납치한 자의 정체를 알아냈습니다.”

    “누구입니까?”

    “구천마녀.”

    “구천마녀라면 맹주님께서 공표하셨던 그 마계의 사자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간의 사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그 여자에 대해 언급도 했었지요.”

    “으음, 구천마녀라는 그 계집이 감히 폐하를 납치하다니. 또 뭐라고 적혀있던가요?”

    “제가 오는 것을 알고 저와 단둘이 만나고자 하는군요. 폐하를 구해내려면 저 혼자 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곳이 어딥니까? 함정일 수 있으니 함께 가도록 하지요.”

    “아닙니다. 저 혼자 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폐하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일화 너는 여기 남아 국사님을 도와 상황을 관리하도록 해라.”

    “네. 사부님.”

    * * *

    해 질 무렵.

    낙양 인근 야산에 있는 한 동굴 앞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백자안이었다.

    “으음, 이곳이군.”

    백자안이 조금 긴장하며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구천마녀가 어떤 함정을 만들어놓았을지 몰랐으나, 절대황녀를 구출하기 위해 무작정 들어간 것이었다.

    동굴 안에 나 있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그 넓이도 갈수록 넓어졌다.

    벽면에는 야명석이 군데군데 박혀 있어 오히려 바깥보다 밝았다.

    하지만 끝이 없어 백자안이 목소리를 높여 불렀다.

    “백자안이오. 구천마녀란 분이 이곳에 있소?”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백자안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경공을 펼쳐 최대한 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기를 얼마나 들어갔을까.

    길이 끝나며 석실 하나가 보였다.

    석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백자안이 매우 놀랐다.

    석실 바닥에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라 하기에는 아직 어려 보이는 절세미녀.

    하지만 그 미모보다 우선하는 것이 바로 그녀의 신분이었다.

    당금 황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분이 쓰러져 있는 것이다.

    “폐하!”

    백자안이 절대황녀를 부축해 앉혔다.

    한눈에 봐도 중독이 된 것을 알 수 있어 재빠른 해독이 필요했다.

    내공을 넣어주자, 절대황녀가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으으······.”

    “정신이 조금 드십니까?”

    백자안의 물음에 절대황녀가 힘겹게 눈을 떴다.

    하지만 해독이 아직 되지 않은 듯 온몸 혈관이 터질 듯 팽창해 있었다.

    게다가 백자안을 바라보는 눈빛이 기이한 열기에 휩싸여 있는 게 아닌가.

    백자안이 흠칫했다.

    ‘그러고 보니 지독한 음약에도 중독되셨구나. 천하에 이런 음약이 있다니. 설마 마계에서 제조한 것이란 말인가.’

    백자안이 난감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약을 해독시키는 방법은 오직 음양화합뿐이었다.

    하지만 부부 사이도 아닌데 그런 방법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존귀하기 그지없는 황제가 아닌가.

    ‘진퇴양난이구나. 결단을 빨리 내려야 한다.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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