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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207화 (207/250)
  • [제67장] 구천마녀 1

    [제67장] 구천마녀

    “어서 말해라. 백자안 그놈이 가르쳐준 무공을. 이게 마지막 경고다.”

    반야마신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우수를 높이 들고 있는 것이 당장에라도 방일화의 머리를 내리칠 기세였다.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황제로 있는 절대황녀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방일화가 거듭 물었다.

    실제 절대황녀의 정체에 관해 의문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시간을 끌려는 의도가 더 컸다.

    “후후후! 좋다. 마지막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만 해주도록 하지. 이후에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약속할 수 있겠느냐?”

    “약속한다.”

    방일화가 마지막으로 무명심법 운기를 시도하며 말했다.

    이제 곧 일주천이 이루어져 혈도가 풀리기 직전이었다.

    짧은 시간이겠지만 그것이 그녀의 생사를 가를 수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녀의 몸을 묶고 있는 쇠사슬이었다.

    해독도 해야겠지만, 일단 혈도를 푼다고 해도 쇠사슬을 풀지 못하면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절대황녀는 가짜가 아니다. 지난번 장사성 전투 때 나는 그녀를 아무도 모르게 빼돌려두었지. 그러다가 저번에 내가 백자안으로 역용해 사람들 앞에 나설 때 그녀 역시 데려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황녀 그분을 세뇌한 것이냐?”

    “그렇다. 생각보다 똑똑하구나. 사실 그때 나의 입지는 불안정했다. 그래서 여차하면 황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해 그녀를 이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실 세뇌를 시킬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내가 백자안이라고 믿고 있으니까. 다만 내가 그녀를 빼돌렸을 때부터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의 기억은 없는 상황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녀는 내가 신선계에서 자신을 구출해준 것으로 알고 있지. 그러니 어찌 내 청혼을 거절하겠느냐?”

    “가증스러운 놈. 사부님 행세를 한 것도 모자라 공주님까지 농락하려 한 것이냐? 절대 네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후후후! 네년이 무슨 힘으로? 자, 이제 대답이 끝났으니 어서 말해라. 백자안 그놈이 가르쳐준 심법이라도 가르쳐준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흥!”

    방일화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면서 빠르게 무명심법으로 일주천을 했다.

    ‘성공이다!’

    방일화가 속으로 매우 기뻐하며 내친김에 혈도를 풀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툭툭 소리와 함께 반야마신이 그녀의 혈도를 다시 찍었다.

    이번에는 다른 곳의 혈도로 그 수법이 특이해 무명심법으로도 풀 수 없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녀의 무명심법 경지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방일화의 안색이 굳어졌다.

    해혈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새 혈도를 찍힌 것 때문이 아니었다.

    애초 반야마신이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그게 바로 백자안이 전수한 심법이었구나. 잘 보았다. 기혈의 흐름을 알았으니 이제 심법으로 연결만 하면 될 듯하다.”

    “설마 내 몸속 흐름을 본 것이냐?”

    “그렇다. 나는 처음부터 네년이 순순히 심법을 가르쳐주리라 믿지 않았다. 분명 심법으로 혈도를 풀 것으로 추측했었지. 그래서 특수 독과 진기를 이용해 네년의 기혈 흐름을 살핀 것이다.”

    “교활한 놈!”

    방일화가 분노했다.

    자신이 죽는 것은 이제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백자안의 무공이 간파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어서 죽여라! 더는 네놈과 말하기도 싫다.”

    방일화가 눈을 질끈 감았다.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다가 백자안이 가르쳐준 무공을 더욱더 간파당할 것 같았다.

    반야마신이 껄껄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한번 점검을 해보고 죽여줄 테니까.”

    반야마신이 가부좌 자세로 앉은 후 무명심법 운기에 들어갔다.

    사실 어떤 심법이든 일주천에 성공해야 그 연마를 했다고 할 수 있기에 바로 시도를 해보려는 것이었다.

    ‘다른 마신들은 몰라도 천마신은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야 한다. 어차피 마계에 있는 진성마신들은 무림 지배에는 별 관심이 없으니, 나의 적수는 오로지 천마신뿐이다. 그는 분명히 살아있을 것이며, 이번에 돌아올 때는 그 힘이 가히 무적이 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본연의 무공과 백자안 그놈의 심법을 조화시킬 수만 있다면 나 역시 꿈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반야마신이 눈을 빛내며 무명심법을 운기했다.

    일주천이 바로 진행되었다.

    다시 눈을 뜨고 이를 지켜보는 방일화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전에 백자안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지. 무명심법은 마음이 올바른 사람만이 익힐 수 있다고.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연마하게 되면 주화입마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던가.’

    방일화가 일말의 기대를 하고 반야마신을 쳐다봤다.

    반야마신은 지금 무명심법으로 일주천을 시도하고 있었다.

    표정이 편안한 것이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으로 보였다.

    오히려 점차 득의에 찬 미소가 걸리는 것으로 보아 뜻대로 진행이 되는 게 확실했다.

    그 모습을 보고 방일화가 절망할 때.

    반야마신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떤 후 피를 토했다.

    “으윽!”

    방일화가 놀라서 보니 반야마신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으으······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있나. 내가 주화입마되다니.”

    반야마신이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방일화를 향해 다가왔다.

    “어쩔 수 없다. 네년의 음기를 보충해 주화입마를 벗어날 수밖에. 아직 늦지 않았다. 후후후! 어차피 죽을 계집이니 남자 맛을 보게 해주마.”

    “비켜라!”

    방일화가 놀람과 당황 속에 소리를 질렀다.

    그녀 역시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반야마신이 음양화합을 통해 자신의 음기를 흡수하려 한다는 것을.

    사실 이론적으로 반야마신의 시도는 해볼 만한 것이긴 했다.

    무명심법을 익힌 그녀의 기를 흡수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방일화에게 절망적이었다.

    ‘내 어찌 이놈에게 당할 수 있으랴. 차라리······.’

    방일화가 혀를 깨물고 자진을 하려 했다.

    ‘사부님. 먼저 갈게요. 죄송해요.’

    방일화가 눈물을 흘렸다.

    백자안이 아직 살아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그녀였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으나 백자안이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맹주 대행을 맡기면서 모든 것을 부탁했던 백자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반야마신이 그녀의 옷을 찢으려 하자 혀를 깨물었다.

    ‘모든 게 끝이구나.’

    산골 처녀로 자라나다가 백자안의 제자가 된 후 남몰래 품었던 사모의 정. 그 정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한 그녀였다.

    그녀에게 백자안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래서일까.

    죽는 이 순간에도 백자안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그녀의 혀가 잘리기 직전 혀가 굳어졌다.

    아혈까지 찍힌 것이었다.

    “후후후! 어디서 네 마음대로 죽으려 하는 것이냐? 어림도 없지. 일을 끝내면 자연스럽게 황천에 갈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라.”

    방일화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반야마신을 쳐다봤다.

    기다리던 백자안은 오지 않고 아혈까지 찍히자 어이가 없었다.

    “후후후! 음양화합만 한다면 오히려 내게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기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반야마신이 이제 정말로 방일화의 옷을 벗기려는 순간.

    그의 뒤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추시오.”

    반야마신이 매우 놀라며 고개를 돌릴 때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졌다.

    그것이 바로 반야마신의 최후였다.

    방일화가 놀라 보니 한 사람이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처음 보는 청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를.

    “아! 사부님!”

    “그래. 나다. 내가 늦게 와서 너를 고생시켰구나.”

    청년, 즉 백자안이 미소와 함께 방일화의 혈도와 쇠사슬을 풀어주고 해독까지 시켜주었다.

    “사부님. 돌아오셨군요.”

    방일화가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을 잃고 말았다.

    백자안은 그녀를 등에 업었다.

    이후 삼매진화를 일으켜 반야마신의 시체를 없애버렸다.

    그다음 순서는 역용을 풀고 자신의 본래 얼굴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본래 모습으로 돌아온 그가 방일화를 데리고 감방 밖으로 나갔다.

    ‘이제 천하 사람들에게 진실을 밝히고 사태를 수습해야겠구나. 문제는 구천마녀라 할 수 있겠는데, 어떤 식으로든 내게 접근해올 것이다. 그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겠군.’

    * * *

    백자안의 충격적인 복귀는 예상대로 무림을 강타했다.

    그동안 그들이 백자안이라고 믿고 있었던 지존맹주가 실제 반야마신이었다는 폭로가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태수습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반야마신이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그동안 철저히 연극을 했기 때문이었다.

    지존맹 지휘부 고수들을 비롯하여 휘하 무사들 역시 처음에는 놀랐으나 이내 적응할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맹주 한 사람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총군사와 총순찰 등 주요 보직 역시 아직 공석이었기 때문에, 백자안이 따로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하지만 몇 가지 변화도 있었다.

    당장 방일화가 복귀했기 때문에 부맹주 자리가 문제였다.

    비무대회 우승자에게 부맹주 자리를 주기로 예정되어 있어 정리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는 방일화가 총순찰을 맡기로 자청함으로써 일단락이 되었다.

    사실 부맹주 자리는 그녀에게 격이 맞지 않았다. 그만큼 부담도 많이 되었다.

    아직 백자안에게 배울 것이 훨씬 많은 그녀로서는 총순찰 자리가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맹을 정비한 오늘은 바로 영웅대회 전날이었다.

    대회를 예정대로 치르기로 한 것은 바로 절대황녀 때문이었다.

    전서구를 보내 자초지종을 그녀에게 알린 백자안은 얼마 후 답장을 받았다.

    그 내용은 고무적이었다.

    반야마신이 백자안에 의해 죽임을 당한 그 시각.

    절대황녀 역시 미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었다.

    이는 이전 기억이 모두 되살아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절대황녀는 예정대로 대회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두 사람의 혼인 문제는 서신 상으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는 지극히 사적인 일이라 두 사람이 직접 만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혼례식은 취소될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었다.

    백자안으로서도 절대황녀의 몸 상태를 직접 보고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어 그녀의 도착을 기다렸다.

    “사부님. 반야마신 그놈 말에 의하면 천마신이 살아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한 대비가 있어야 할 거예요. 물론 마계사자라는 그 구천마녀 역시 주의해야 할 인물이지요. 어쩌면 천마신보다 더 무공이 강할 것 같아요.”

    방일화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며칠간 맹의 정비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다가 오랜만에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된 그였다.

    “일화 네 말이 맞다. 사람들은 이제야말로 무림에 영구적인 평화가 왔다고 하지만, 실제는 전혀 아니지. 만약 마계에 있다는 진성마신들이 일제히 무림을 노린다면 그야말로 참혹한 결과가 발생할 것이다.”

    “마계는 천계의 견제를 받고 있는데 섣불리 개입하려 할까요? 두 곳이 서로 충돌하지 않기 위해 맺은 묵계가 상당히 강해 보이던데요.”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 했으니 철저한 대비가 필요할 것이다.”

    “따로 생각하신 대책이 있으신가요?”

    “물론이다. 어찌 대책이 없을 수가 있겠느냐? 다만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구나.”

    “그게 뭔가요?”

    “바로 무공의 완성이다. 만약 내가 지성자가 되면 마계 역시 절대 무림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게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중간지대로 다시 가서 망부석들을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렇다. 그렇게 알고 너도 무공 연마에 매진하도록 해라.”

    “네.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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