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장] 탈태환골 3
정심회에 가입한 백자안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것은 거처였다.
최대한 정심회 내부 정보를 얻기 위해 정심봉에 머물러야 할 백자안이었다.
거처가 따로 없음을 말하자, 정심총관은 기꺼이 동굴 한 곳을 내주었다.
비록 지휘부 반선들이 머무는 정심각은 아니지만, 정심봉 표면에 나 있는 수많은 동굴 중 하나였다.
동굴 석실 바닥에 가부좌하고 앉은 백자안이 한숨을 돌렸다.
“휴우! 생각보다 쉽게 가입했다.”
백자안이 안도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정심각 삼층에 위치한 공동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정심총관을 통해 들은 말로는 사흘 후 이곳 정심봉에서 선마대회가 열리며 그때 천마신을 포함해 백대마신이 모두 참석한다고 했다.
대회를 통해 총회주가 선출되면 그를 필두로 해 정심회 반선들과 마신들이 모두 함께 서약봉으로 갈 거라고도 했다. 서약의 돌을 부수는 행사가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서약의 돌을 부수려면 지존검이 필요한데, 그 지존검을 지금 천마신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가 총회주가 될 것이 유력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다만 처음과 달리 정심회주 역시 총회주 자리에 대한 욕심을 보이고 있어 결과는 예단할 수 없다고 했다.
이상이 백자안이 들은 간단한 설명이었다.
‘내일 아침 정심회 자체 모임이 있다고 하니 그때 보다 자세한 사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하나하나 차근히 알아가는 수밖에 없다.’
백자안이 마음을 편히 했다.
그러다가 문득 가입조건으로 복용한 정심단 생각이 났다.
큰 문제 없으리라고 보지만 찜찜한 것도 사실이었다.
‘구중천심공을 통해 몸속에서 정심단을 없앨 수 있는지 시험해봐야겠다.’
백자안이 즉시 구중천심공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구중천심공은 무명심법과 달리 처음부터 신선술에 특화된 것이었다.
따라서 반선들의 통제 수단으로 사용되는 정심단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중천심공을 일주천하자 그의 몸 밖으로 검은 연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정심단이 만들어낸 독 기운이었다.
기대대로 정심단의 기운을 몸속에서 분리해 빼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알고 보니 정심단은 지독한 고독의 일종이었구나. 아마도 그 조종자는 정심회주일 터. 배신하게 된 것이 발각되면 정심회주가 고독을 발작시켜 곧바로 죽일 수 있게 되어 있다. 내가 구중천심공을 팔성까지 연마하지 않았다면 절대 소멸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백자안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리 정심단을 제거하지 않았으면 나중에 정심회주와 대결을 벌일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뻔했기 때문이었다.
‘식사 때까지 계속 회복운공을 해야겠군.’
백자안의 운공이 끝없이 이어졌다.
* * *
저녁 식사를 하러 가기 전 백자안이 있는 동굴에 한 사람이 찾아왔다.
막 정심각으로 가려던 백자안이 가볍게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하하하! 나는 옆 동굴에 살고 있는 와룡반선(臥龍半仙)이라고 하오. 안 그래도 이쪽은 여러 동굴 중에서도 외진 곳이라 적적했는데, 이렇게 이웃이 들어와서 반갑소이다.”
와룡반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인상이 매우 좋아 정심회 반선으로 있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 정도였다.
“고독반선이라고 하오.”
“오! 고독이라. 인간은 원래 고독한 것이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게 인생이 아니겠소? 특히 우리 반선들은 기약도 없는 수도 생활로 인해 정말 고독하기 짝이 없는 게 사실이오. 그런 의미에서 고독반선이라는 이름이 마음에 와닿는 것 같소. 실례가 안 된다면 함께 식사나 하러 가겠소?”
“좋소이다. 말씀을 들어보니 와룡반선께서는 이곳 정심봉에서 오래도록 머무신 것 같구려.”
“아니외다. 나 역시 일 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소. 고독반선 그대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이곳에 와서 정심회에 가입했소이다.”
“아! 그렇소? 내가 모르는 것이 많으니 앞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오.”
“물론이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시오.”
“고맙소이다. 일단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럽시다.”
얼마 후 도착한 정심각 삼층 공동식당에는 정심회 반선 수천 명이 가득 모여 있었다.
한 층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식사할 수 있을까 의아해할 수도 있으나, 자세히 보면 공간을 확장하는 특수 진법이 설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이곳은 내부 집회에 사용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백자안과 와룡반선은 구석진 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음식은 간단한 생식이었다.
하지만 반선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는 바로 신선주 때문이었다.
수백 년 묵은 신선주를 마시면 수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정심회 반선들이 자신의 거처에서 홀로 수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전체 모임이 있을 때만 모이는데, 사흘 후 있을 선마대회가 그 대표적인 경우였다.
하지만 선마대회 전에도 정심회 자체 모임이 있을 예정이었다.
“내일 아침에 회주의 최종 결정이 있을 것이오. 어떤 결정이 내리질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소.”
와룡반선의 말에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정심회주가 천마신과의 대결을 앞두고 최종 결심을 발표하는 자리일 것 같구나. 원래 정심회주는 마신들을 숭배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는데, 정심회 세력이 커지자 자리를 욕심내는 것 같군. 하지만 천마신의 능력이 소문대로라면 결국 총회주 자리를 포기할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 후 말했다.
“회주가 천마신의 상대가 되겠소?”
“물론 안 되오. 하지만 한 가지 변수가 있소.”
“그 변수가 무엇이오?”
“그건 바로 아직 천마신이 완전히 봉인 해제를 못 했기 때문이오. 서약의 돌이 완전히 파괴되어야 천마신이 자신의 무공을 완전히 회복할 것이오.”
와룡반선의 말에 백자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서약봉으로 가기 전에 천마신이 정심회주와 대결을 벌이는 것은 불리한 일이 아니오? 차라리 혼자서 먼저 서약봉으로 가서 서약의 돌을 깨트리는 것이 낫지 않겠소? 굳이 총회주 자리를 먼저 정하는 이유라도 있소?”
“하하하. 역시 은둔의 최고봉이구려. 고독반선 그대의 말이 맞긴 하오. 하지만 서약의 돌을 완벽히 파괴하기 위해서는 반선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그 역시 어쩔 수 없었을 것이오. 문제는 어떤 경우에도 대결 결과가 바뀌기 힘들 거라는 것이오.”
“불완전 봉인해제라고 해도 천마신이 회주보다 강하다는 뜻이오?”
“그렇소. 그 때문에 회주가 기권을 하고 실리를 챙길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소. 내일 아침 전체 집회 때에는 아마도 그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할 것이오.”
“아, 그렇구려. 많은 도움이 되었소. 하기야 정심회 반선들의 수가 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고작 백 명의 마신들에게 총회주 자리를 넘겨주는 것 또한 좀 그렇긴 하오.”
“그러한 불만은 오래전부터 있었소. 하지만 백마회 뒤에는 마계가 있소. 마계에는 수없이 많은 마신이 살고 있소. 천계에 수없이 많은 천신이 살고 있듯이 말이오.”
“백대마신이 마계의 주력이 아니오? 오래전 천계와 마계의 전쟁 때 백대마신이 주축이 되었고, 마계의 패배로 백대마신이 봉인된 것으로 알고 있소. 한데 마계에 새로운 마신들이 있다는 것이오?”
“그렇소. 그 힘은 추측이 불가하오. 하지만 천계의 저지로 마계 역시 우리 신선계의 일에 간섭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다수 견해요.”
“으음, 그렇구려. 이제 어느 정도 상황을 알겠소. 이게 다 와룡반선 그대 덕분이오.”
“과찬의 말씀이오. 또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오.”
와룡반선이 말을 한 후 여유 있게 기다렸다.
정심회에 들어온 지 일 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백자안으로서는 지금 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다른 반선보다 기운이 밝은 것 같다. 사이함이 거의 없어 보이는데 어떤 사정으로 정심회에 가입하게 된 걸까.’
백자안이 아쉬워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되었다.
대세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가입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적으로 만나더라도 최대한 배려를 해줘야겠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있을까.’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오?”
“아무것도 아니오. 한데 정심회에 가입하게 되면 어떤 일을 맡게 되는 것이오? 정심총관에게 물어보니 차차 알게 될 것이라고 하던데, 특별히 회원들이 해야 할 임무라도 있소?”
“물론이오. 정심봉 근처나 인근에 괴수나 요괴들이 출몰하면 토벌을 하러 소집령이 떨어질 때가 있소. 하지만 최근 마신들과 동맹을 맺은 후로는 괴수와 요괴들도 우리를 공격하지 않고 있소. 그래서인가. 사실 우리가 할 일이 따로 없소. 각자 수도에 전념하면 된다고 할까. 다만 이번 선마대회가 끝나게 되면 무림으로 진출하게 되니까 아마도 그 일원으로 차출될 수도 있을 것이오.”
“서약의 돌이 파괴되면 신선계 문이 다시 열리는 게 확실하오?”
“그렇다고 하오. 서약의 돌은 오직 지존검으로만 파괴할 수 있는데, 최근 천마신이 거의 자신의 검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하오. 원래는 지존검의 주인인 백자안의 피로 씻겨 내어야 하지만, 백자안이 중간지대로 빠져 돌아올 수 없게 되자 차선의 방책을 사용한 것 같소.”
“어떤 방법으로 지존검을 길들인 것이오?”
“자세한 것은 나도 모르오. 다만 천마신이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천마검을 이용했다는 후문이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것은 여전히 지존검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백자안을 죽여 그 피로 검을 씻기는 것이오. 이후 천마신 본인의 피로 지존검을 적신다면 그 주인이 확실히 바뀌게 되는 것이오.”
“백자안이라면 나도 들은 적이 있소. 반선들이 백자안 그자를 잡아 오려 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구려.”
“그렇소. 하지만 이미 중간지대에 빠져 돌아올 수 없게 되었으니 어찌 그가 죽기만을 바랄 수 있겠소?”
“중간지대로 들어가 이미 죽었을 가능성은 없겠소?”
“그럴 가능성도 있소. 하지만 지존검이 아직 완강히 새 주인을 거부하는 것으로 봐서 어떻게든 목숨이 붙어 있는 것 같소.”
“그렇구려. 많은 도움이 되었소. 한데 이왕 물어보는 김에 무림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겠소?”
“무림 말이오?”
“그렇소. 반야마신이란 마신이 신선계와 무림을 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들었소. 회주 역시 신선경을 갖고 있으니 무림의 일을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니오?”
“무림의 일은 나도 잘 모르오. 다만 반년 전 백자안이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을 섬멸한 후 중간지대로 갔다는 것만 들었소. 중간지대로 간 것은 백자안 그자의 자의였다고 하나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소. 혹자는 그가 중간지대에 들어간 것이 두 번째라며 이번 역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주화입마 직전에 들어간 것이라 복귀는 불가능할 것이오.”
“으음, 무림의 일을 모른다? 아마 지휘부에서 보안에 붙인 모양이구려.”
“그런 것 같소. 하지만 이번 선마대회 때 무림의 상황에 대해 어떤 설명이 있지 않겠소? 신선계 문이 열리면 공식적으로 무림 정벌을 한다고 하니, 그때가 되면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