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공전절후 3
중간지대 망부봉.
언제부터인가 한 사내가 봉우리 위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데 그는 바로 백자안이 아닌가.
아직 회복이 덜 되었는지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창백했다.
‘중간지대로 돌아온 지 벌써 석 달이 흘렀구나. 일화가 잘 마무리를 했는지 모르겠다. 내 이름을 내세워 지존맹 부맹주로서 활동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나, 과연 황궁의 일까지 마무리를 했을지 걱정이 크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석 달 전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을 완전히 제거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너무 무리해 주화입마에 가까운 내상을 입었고 마지막 힘을 발휘해 이곳 중간지대까지 오게 된 그였다.
‘불가능하리라 믿었던 특수 이동대법이 성공한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덕분에 이곳에 온 이후로 더 내상이 깊어지지는 않았다. 문제는 석 달간 조금의 치료 효과도 없었다는 점이다. 이제 더는 무명폭잠공을 펼칠 기운도 없어 무림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결국, 이 상태로 평생 이곳에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백자안이 탄식하며 초가로 돌아갔다.
망부봉 위에 있는 초가는 이전 모습 그대로였다.
백자안은 방에 들어와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지난 석 달간 무수히 실패했지만 다시 회복운공을 하려는 것이었다.
무명십법의 십이성 대성, 그리고 구중천심공 삼성을 터득한 그였지만 후유증은 너무나 컸다.
아예 운공 자체가 되지 않았다.
하기야 지금 그의 몸 상태는 주화입마 직전에 잠시 멈춰진 상태였다.
운기조식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진기라도 있어야 했다. 하지만 주화입마의 위험 때문에 운기 자체가 불가능했다.
백자안이 주화입마를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몸이 먼저 그 위험을 감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현 상태를 유지하려는 보호 작용이 모든 것에 우선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태 또한 백자안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중간지대 안에 흐르는 신비한 기운 덕분에 그의 생명이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많았고 무엇보다 어서 무림으로 돌아가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물론 무공을 회복한다고 해도 다시 무림으로 돌아가는 게 가능할지는 미지수였다.
중간지대로 들어오는 것과 나가는 것이 분명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무공을 회복한다고 해도 중간지대에서 무림으로 가기 위해서는 회오리바람의 도움이 필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일단 무공을 회복한 다음에 걱정해도 늦지 않다.’
백자안이 조급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무명십법을 운공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반응이 없었다.
기해혈에서 기운이 일어나기가 무섭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마치 촛불을 켤 때마다 누군가 옆에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끄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몸 자체가 저절로 반응하는 것이라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백자안이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는 구중천심공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 모든 기운이 시발점에서 끊어지기 때문에 운공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상태로는 치료도 물론이거니와 수련 자체가 불가능했다.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백자안이 궁리에 들어갔다.
지금까지 운공 성공에만 너무 집착했던 것을 내려놓고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이었다.
‘내부의 기를 돌리는 것이 어렵다면 거꾸로 외부의 기를 들여오는 것은 어떨까. 외부의 기를 들여와 그 힘으로 막힌 장애를 뚫는다면 내부의 기 또한 그 흐름이 재개될 것이다. 다행히 이곳 중간지대에 가득한 기운은 하나의 좋은 내공이라 할 수 있으니 분명 시도해볼 만할 것이다.’
백자안이 눈을 빛내며 곧바로 두 손을 머리 위에 들었다.
‘흡수대법으로 승부를 건다. 자칫 잘못하면 남아 있는 진기마저 빠져나가 죽을 수도 있지만 이대로 영원히 있을 수는 없다.’
백자안이 주저하지 않고 흡수대법을 펼쳤다.
흡수대법의 원리는 역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기존 심법의 운용이 불가능한 경우에도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그 결과는 곧바로 나왔다.
극히 미세하지만 두 손을 통해 중간지대의 기운이 그의 몸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 성공이다!’
백자안이 매우 기뻐했다.
사실 이번에도 실패했으면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따라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최후의 도박을 한 셈이었다.
‘기가 들어온다. 한데 이 느낌은 바로 천력과 비슷하구나.’
백자안이 몸속으로 들어오는 기운을 느끼며 의아해했다.
중간지대에 가득한 기운의 속성이 천력과 유사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의 몸속에 있던 천력은 아직 남아 있었다.
하지만 세맥 깊숙이 들어가 있어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중간지대의 기운인 중간지기(中間之氣)가 바로 천력의 근원이었단 말인가. 그 때문에 중간지대에서 내 몸이 늙지 않았던 것인가.’
백자안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중간지기를 계속 흡수했다.
그러자 몸속에 내재해 있던 천력이 다시 일어나 이에 반응했다.
그 반응이란 바로 중간지기를 자신과 같은 천력으로 변환하는 것이었다.
다만 중간지기 전체가 천력으로 변환되는 것은 아니었고 그중 일할 정도가 정화과정을 거쳐 천력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문제가 되지 못했다.
중간지대에 있는 중간지기는 무한했고, 결국 시간의 문제였던 것이다.
백자안으로서는 천력을 몸속에 가득 채워 주화입마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정도만 해도 기본적인 운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흡수대법 역시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기본적인 천력이 몸속에 내재해 있다고 해도 상대 내공보다 강해야 한다는 원칙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상대가 무림인이 아니라 중간지기였지만 한 번에 모든 힘을 흡수하는 것은 극히 위험했다.
‘조금만 더······.’
백자안이 몸속에 들어오는 중간지기가 천력으로 변환되는 것을 느끼며 좀 더 속도를 냈다.
그러기를 얼마나 되었을까.
역전현상이 일어나 백자안의 내공이 다시 빠져나가 중간지대 허공에 흩어지기 직전 흡수대법을 멈췄다.
“휴우!”
백자안이 가부좌를 튼 자세 그대로 무명심법을 운공했다.
타타타탁.
몸속 막힌 혈도가 풀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이는 곧 내상의 회복을 뜻했다.
중간지기 덕분에 천력이 이번에야말로 몸속 내공의 진정한 주인이 되자 주화입마의 위험이 단번에 사라진 것이었다.
하지만 백자안의 목표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내친김에 중간지기를 극한까지 흡수해 새로운 차원의 무공을 터득하려는 욕심이 생겼다.
이는 곧 무형검 경지의 진보를 가져올 것이며, 궁극에는 지성자 도달도 꿈이 아닐 것 같았다.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너무 흥분하지 말자. 지성자는 최고의 깨달음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천력 또한 그 바탕이 될 뿐 천력만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무림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것도 사실이구나. 앞으로 매일 무리하지 않고 중간지기를 오늘 정도만 흡수하면 구중천심공 또한 대성할 수 있을 것이다.’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왔다.
흡수대법 때문에 방문을 열어났지만 보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내일부터는 초가 밖에서 중간지기를 흡수해야겠다. 좀 더 많은 양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쉬었다가 구중천심공을 연마해야겠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다시 중간지대에 끝없이 펼쳐진 산맥을 바라봤다.
내상이 회복된 그의 안색은 활기에 차 있었다.
‘어쩌면 무림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신선계로 들어가는 것이 더 용이할 수도 있겠구나. 회오리바람이 불지 않으면 신선계로 우회해 무림으로 복귀하는 방법도 강구해야겠다. 어차피 천음반선님의 생사도 확인해야 하고 놈들의 동태도 살펴야 하니, 그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 * *
다시 석 달이 흘렀다.
백자안이 중간지대로 돌아온 이후 벌써 반년이 흐른 것이다.
그동안 백자안의 성취는 눈부셨다.
매일 흡수대법으로 중간지기를 흡수해 이제 더는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따라서 중간지기 흡수는 이제 더는 필요가 없어진 셈이었다.
흡수한 중간지기는 모두 천력으로 변환한 상태.
그 힘은 가히 무한대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전에도 백자안의 내공은 절대내공이었지만, 이제는 질적으로도 절대가 된 셈이었다.
‘양적인 수련은 이만하면 된 것 같다. 구중천심공 역시 육성에 달했으니, 슬슬 무림으로 돌아갈 방법을 강구해야겠구나.’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동안 가끔 특수 이동대법을 펼쳐 무림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해봤으나 예상대로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일단 중간지대로 들어온 이후엔 빠져가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지난번에 무림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건은 그야말로 기적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기적을 기대하기가 오히려 더 힘들어진 것 같구나.’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아직 중간지대를 벗어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도 힘든 과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중간지대에서 나가는 것이 쉬울 것 같으면 반선들이 그토록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역시 구중천심공을 구성까지 대성해야만 자유자재로 중간지대에서 나갈 수 있단 말인가. 아무래도 처음 계획대로 신선계로 우회해 무림으로 복귀하는 방법을 찾아야겠다. 신선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곳보다 아무래도 중간지대 끝으로 가는 게 나을 것이다.’
백자안이 주저 없이 구름을 불렀다.
운운술을 펼쳐 중간지대의 끝으로 가려는 것이었다.
아직 망부곡에 있는 수백만 개가 넘은 망부석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렇다고 계속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중간지대 끝은 이전에 한번 가봤던 곳으로 그곳에 가는 데만 석 달이 걸린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동안 시험해본 결과 이전과 달리 중간지대 안에서는 특수 이동대법이 가능해진 것이다.
‘구중천심공 육성부터는 한계의 일부가 사라진다고 하더니 특수 이동대법이 그중 하나였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구름 위에 올랐다.
그동안 알아낸 것이지만 특수 이동대법은 구름 위에서 펼칠 때 그 효과가 가장 뛰어났다.
‘중간지대의 끝, 중간절벽(中間絶壁)으로 간다!’
쉬우웅.
백자안을 태운 구름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바로 특수 이동대법이었다.
얼마 후 백자안을 태운 구름이 중간지대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성공이다!’
잠시 어지러워지고 시야가 흐릿했지만, 특수 이동대법이 성공했음을 깨달은 백자안이 정면을 바라봤다.
지난번에 봤던 금빛 막이 있었다.
이전보다 좀 더 밀려 나간 느낌으로 보아 그동안 중간지대 면적이 더욱더 확장된 것 같았다.
‘지난번에도 생각했지만, 이 금빛 막 건너편이 신선계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과연 특수 이동대법이 통할지 모르겠구나.’
백자안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금빛 막은 부피도 측량할 수 없이 두껍고 그 안팎에는 용암과도 같은 열기로 가득했다.
만약 특수 이동대법에 실패하면 그대로 몸이 녹아내려 즉사할 가능성이 컸다.
‘모험을 해야 한다.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