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장] 공전절후 2
우주존자가 황제에게 전음을 날린 후 불사대불과 눈빛을 교환했다.
이미 이심전심으로 본격적인 공격을 가하기 직전이었다.
황제 역시 준비를 마친 상태.
백자안과의 대치가 길어질수록 그의 회복이 빨라질 것을 우려한 삼인이 어느 순간 합공을 가했다.
쏴아아아.
세 갈래 방향에서 날아오는 장세.
백자안은 준비한 대로 상황보검을 휘둘러 절대검강을 펼쳤다.
사실 이들 네 명의 무공은 최상급이라 그 무공의 종류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검법이든 장풍이든 지풍이든 하나의 무공이 경지에 오르면 다른 것도 비슷해지는 법.
황제와 우주존자, 불사대불이 장풍을 택한 것은 합공의 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들 역시 사전 기세 싸움을 통해 백자안의 무공이 만만치 않음을 알았기에 조금의 방심도 없었다.
그야말로 전신의 공력을 발출한 상태였다.
이는 백자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단 한 번의 승부.
후유증이 걱정되었지만 지금 상대하는 세 사람은 적의 수장들이었고 최고수였다.
이들만 제거하면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큰 혼란이 올 것은 분명했다.
반야마신의 존재가 부담되긴 했으나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할 뿐.’
백자안은 이번 절대검강에 모든 내공을 담았다.
비록 구중천심공은 삼성에 불과하지만, 무명심법은 구중천심공 덕분에 십성을 넘어 십이성 대성까지 이룬 상태.
사실 무명심법 십이성 대성은 이론에 불과해 사실 거의 포기했던 경지이기도 했다.
백자안이 이번 공격에 무명심법을 가미한 것은 진정한 십이성 경지의 위력을 맛보기 위해서였다.
‘어쩌면 구중천심공 삼성보다 무명심법 십이성이 더 뛰어날지 모른다.’
순간적인 그의 깨달음이 임기응변적으로 이번 공격에 담긴 것이었다.
꽈아앙.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음이 울렸다.
대연무장에 모인 군웅들의 신형이 모두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아직 그 결과를 알 수 없었다.
폭음과 함께 일어난 거대한 광채와 먼지구름이 시야를 가렸다.
특이한 것은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더욱더 결과를 몰랐다.
얼마 후 먼지구름이 걷힌 후의 광경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기세등등하던 우주존자와 불사대불, 황제 세 사람의 몸이 갈기갈기 찢긴 채 널브러져 있었다.
이미 목과 몸이 분리되어 세 사람 모두 즉사한 상태였다.
백자안은 묵묵히 서 있었다.
하지만 안색이 극도로 창백한 것이 조금 전 대결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상상하기 힘든 결과에 군웅들도 놀란 것일까.
함성 대신 정적이 감돌았다.
하지만 방일화의 박수를 시작으로 군웅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
짝짝짝!
반면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그리고 황궁 무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모습이었다.
수장들이 갑작스레 사망하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였다.
백자안이 먼저 백만 황군을 향해 소리쳤다.
“황위를 찬탈한 역적 승상은 죽었다. 나는 공주님께서 임명하신 장사성주 신분으로 명을 받들어 역적을 죽였다. 이제 강요 때문에 보위를 빼앗긴 황제 폐하를 찾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그대들은 누구를 따를 것인가. 결정하라. 지금 그대들의 선택이 생사를 결정할 것이다.”
백자안이 내공을 발산했다.
서릿발과도 같은 그 기세에 황군들이 흠칫했다.
창백한 안색과 달리 백자안의 무공은 오히려 더 강해진 것 같았다.
털썩.
황궁 무사 중 한 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마치 전염이라도 되듯 백만 황군이 모두 무릎을 꿇었다.
“성주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지금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은 전대 황제가 아니었다.
절대신위를 보여준 백자안이 그들에게 있어 실질적인 황제라고 할 수 있었다.
백자안 역시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전대황제의 생사가 불분명한 지금, 만약 그가 죽었다면 구심점이 있어야 했다.
‘만일 황제 폐하께서 이미 돌아가셨다면, 공주님을 찾아 보위를 이어받게 하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여자 황제 역시 여러 번 나왔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생각보다 후유증이 거의 없구나. 무명십법을 십이성 대성해서 그런 것일까.’
백자안이 무릎을 꿇은 황군들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지금 그러한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 삼백만 명이 서서히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었다.
백자안은 황군들에게 명을 내려 흑도맹 무사들과 합류하도록 했다.
따라서 백자안 측 무사들도 그 병력이 이백만이 되었다.
삼백만 대 이백만.
수적으로 봐서 크게 밀리지 않은 형국이 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구경하던 군웅 중 백만 정도가 백자안 쪽으로 합류했다.
처음부터 중립을 지키던 그들이 대세에 따라 힘을 보탠 것이었다.
하지만 개개인의 무공 실력은 여전히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이 월등했다.
다만 백자안 쪽도 황궁무사들의 합류로 만만치 않았다.
한편 적들의 임시 수장이 된 사람은 바로 서장무맹의 총군사 안심서생과 천축무맹 총관 천축노인 두 사람이었다.
두 사람은 각기 모시던 맹주의 죽음으로 매우 놀랐으나 곧 침착성을 되찾았다.
지금 상황이 그들에게 큰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일까.
안심서생이 천축노인과 의견을 교환한 후 말했다.
“백자안! 네놈이 우리 맹주님들을 시해했으니 지금 당장 찢어 죽여도 성이 차지 않는다. 하지만 율법에 의해 지금은 두 분의 장례를 치러야 한다. 따라서 잠시 휴전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거절하겠소. 그대들은 오늘 이곳에서 단 한 명도 살아남을 수 없소.”
백자안이 무심하게 말했다.
그의 몸 상태는 지금 최상이었다.
무명심법의 완벽한 대성의 위력을 몸소 체험한 그였다.
이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몰랐다.
특히 지금은 문제없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 못 했다.
“흥! 좋다! 네놈이 그렇게 오만방자하니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모두 총공격하라!”
“총공격하라!”
안심서생과 천축노인의 명이 떨어졌다.
와아아.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삼백만 무사들이 일제히 돌진했다.
그야말로 거대한 움직임이었다.
흑도맹과 황군, 그리고 일반 무림인들이 모인 삼백만 연합무사들도 백자안의 명을 기다렸다.
하지만 조금 전 기세등등했던 표정과 달리 긴장감이 역력했다.
백자안의 도움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백자안이 지존금광을 펼친 것은 그때였다.
번쩍.
그의 몸 전체에서 금빛 광채가 우러나오며 적들을 덮쳤다.
마치 해일처럼 뻗어 나간 금빛 광채는 무서운 속도로 확장되어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을 휘감았다.
“으윽!”
“으윽!”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이 흠칫하며 비틀거렸다.
금빛 광채에 몸이 닿은 순간 내공 발현이 제한된 것이었다.
다만 워낙 많은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 백자안이 개별적으로 가해지는 힘을 줄였기 때문인지 아직 쓰러지는 사람은 없었다.
하기야 삼백만이나 되는 무사들을 일거에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아직 백자안에게 없긴 했다.
하지만 처음 계획대로 반 시진 정도 적들의 내공을 제한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도를 했는데 그것이 성공한 것이었다.
그 효력이 생각대로 반시진까지 갈지는 백자안 자신도 몰랐다.
적들이 내공 발현에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을 확인하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급히 명령을 하달했다.
“놈들은 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 때를 놓치지 말고 섬멸하라!”
와아아아.
삼백만 연합군이 일제히 함성과 함께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적들이 내공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백자안의 말에 그들의 사기는 매우 올라가 있었다.
이후는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연합 무사들의 공격에 서장무맹과 천천무맹 무사들이 속절없이 당했다.
무공이 강한 황궁 무사들이 선봉에 섰는데 그것이 주효했다.
백자안은 계획대로 작전이 진행되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직접 싸움에 가담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전 지존금광을 펼치며 모든 공력을 발산했다.
아군들의 사기를 생각해 내색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금 서 있기도 힘들었다.
‘조금 전에는 괜찮았는데 이제야 무명폭잠공의 후유증이 오는 걸까. 후유증 없이 펼칠 수 있든 단계에 오른 지는 제법 되었지만, 무리를 거듭해서 그런 것 같구나.’
백자안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방일화가 빠르게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
“사부님! 괜찮으세요?”
“나는 괜찮다. 혹시 내가 쓰러지면 네가 마무리를 해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추세라면 놈들도 곧 전멸될 거예요. 보세요. 일방적으로 놈들을 무찌르고 있어요.”
방일화가 전장을 보며 매우 기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은 빠른 속도로 섬멸되고 있었다.
이미 백만 명 이상이 숨을 거둔 상태.
이대로라면 목표한 반 시진 안에 전멸시킬 수 있었다.
백자안이 자꾸 감기는 눈을 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순간적으로 반야마신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사실 여러 가지 행운이 따랐지만, 너무 순탄해 조금 의심이 가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반야마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무사들 역시 마침내 모두 소탕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 아군 측도 사상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대승이다!”
거대한 승리를 거둔 무사들이 백자안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의 명을 듣기 위해서였다.
방일화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서 있는 백자안의 안색은 더욱더 창백해져 있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그런 모습이었기에 군웅들은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백자안의 모습은 바로 영웅이자 황제였다.
황궁 무사 중에는 벌써 백자안을 황제로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자들도 많았다.
이는 무림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무림맹을 결성하여 당연히 그 맹주로 백자안을 추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백자안의 생각을 들어야 했다.
모든 사람이 백자안의 입을 바라보았다.
백자안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비록 신선계의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현재 무림을 어지럽히고 있던 세력을 타도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 희생이 너무 컸다.
‘지금처럼 신선계 문이 닫힌 상태가 영구히 지속한다면 무림의 평화가 어느 정도 왔다고도 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반야마신은 자유롭게 무림과 신선계를 오갈 수 있고, 조만간 천마신의 봉인 역시 풀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신선계의 문도 자연스럽게 열릴 터. 그때가 되면 지금 무림인들의 실력으로 그들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나라도 건재하면 어떻게 해볼 수 있으련만······.’
백자안이 안색을 굳혔다.
조금 전까지 최고의 몸 상태를 자랑하던 그의 모습이 아니었다.
백자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몸 상태가 최상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큰 착각이었다. 회광반조 현상으로 잠시 무공이 최고 상태를 유지했었던 것을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다시 무리했으니. 문제는 내게 남은 시간은 불과 일각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단 내가 죽게 되면 천하는 다시 혼란에 빠질 터. 차라리 그 전에 몸을 숨겨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복귀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것이 더 낫겠구나. 무림과 황궁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그때는 내 죽음이 알려져도 큰 혼란은 없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최후의 힘을 사용해 중간지대로 돌아가 몸을 회복하는 데 집중한다. 그곳만이 나의 상태를 더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회오리바람의 도움 없이 돌아가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구나.’
백자안이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영웅 여러분! 여러분의 힘으로 마침내 정의를 이루었소. 하지만 아직 신선계에 우리의 적들이 남아 있소. 그들을 모두 소탕해야 후환이 없을 것이오. 나 백자안은 지금 바로 신선계로 가서 놈들을 소탕할 것이오. 그동안 나의 제자 방일화가 전권을 이어받아 모든 일을 결정할 것이오.”
백자안이 몸속에 보관해두었던 지존령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새로운 무림맹의 이름을 지존맹(至尊盟)이라 할 것이오. 본인이 그 맹주를 맡을 것이오. 이의가 있는 분이 있소?”
“아닙니다.”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맹주님 만세!”
털썩. 털썩.
군웅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무릎을 꿇었다.
황군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백자안이 방일화에게 말했다.
“지존맹주로서 명한다. 방일화는 나의 제자로서 그 무공이 탁월하며 덕이 높다. 지존맹 부맹주로 임명하니 내가 없는 동안 맹주 대행을 맡아 무림의 일을 다스리도록 하라.”
“사부님.”
방일화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어느 정도 백자안의 의도를 간파한 것 같았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의심을 살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되었다.
백자안이 그런 그녀에게 전음을 날렸다.
「일화야. 내가 없는 동안 무림과 황궁의 일을 잘 해결하도록 해라. 아직 천하 곳곳에 잔당들이 있을 것이니 그들을 소탕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사부님. 꼭 떠나셔야 하겠어요? 저와 함께 있으면서 회복운공을 하시면 되잖아요? 제가 옆에서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신선계로 가신다는 것도 거짓말이죠?」
「어떻게 알았느냐? 사실 내가 가려는 곳은 중간지대이다. 그곳은 육체가 더는 늙지 않는 곳이니 내게 회복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더는 시간이 없어 설명을 못 해주겠구나. 나는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모든 일을 순리대로 처리하도록 해라. 혹여 특수 이동대법을 펼치는 와중에 내가 죽게 되면 네가 맹주가 되어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너를 도울 젊은 영웅들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럼 나는 가보겠다.」
백자안이 전음을 보낸 후 서둘러 특수 이동대법을 펼쳤다.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 같은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특수 이동대법을 펼치는 것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직 중간지대로 오가는 데 성공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회오리바람 없이는 이번에도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얼마 후 방일화를 비롯한 군웅들은 놀라운 광경을 목도했다.
백자안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방일화를 제외한 군웅들은 백자안이 자신의 말대로 신선계에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부님!”
방일화가 급히 소리쳤으나, 백자안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