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89화 (189/250)
  • [제61장] 신선맹 2

    도전자 열 명을 모두 물리친 백자안에게는 반시진의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최종 경쟁자라 할 수 있는 불사대불과 우주존자 역시 시합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시간 동안 군웅들에게는 간단한 술과 음식이 제공되었다.

    워낙 많은 인원이라 모두에게 다 돌아가기는 어려웠으나, 음식을 제공하지 않으면 이탈이 있을 수 있기에 필수적인 절차였다.

    백자안은 방일화와 함께 대기석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과 간단한 떡을 먹고 회복운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방일화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백자안이 흑도맹 지휘부 고수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명한 것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분위기가 좋지 못했다.

    도전자 열 명을 모두 물리치고 최종 출전권을 완전히 확보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도전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승리할 때마다 열렬한 지지를 보냈던 군웅들 역시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그리고 황궁까지.

    천하를 장악한 이들 세 곳의 지휘부 고수들이 백자안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 백자안과 불사대불, 우주존자 세 사람의 대결 방식도 결정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백자안은 스스로 기권을 하든지 도전자에게 패하든지 해서 실제 시합에는 나오지 못할 것으로 예측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엄연히 백자안이 최종 도전자 세 명에 포함된 상태.

    당연히 누가 먼저 백자안과 붙을 것인가를 두고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양 측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금 양 맹의 지휘부 고수들이 모여 회의를 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 세가 조금 약한 서장무맹이 양보해야 할 상황으로 흐르고 있었다.

    다시 말해 서장무맹주 불사대불이 백자안의 다음 상대가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서장무맹 측에서 백자안에 대해 뭔가 꼬투리를 잡으려 하고 있었다.

    서장무맹의 신임 총군사 안심서생(安心書生)이 불사대불에게 말했다.

    “맹주님. 아무래도 신임 녹림왕의 정체가 수상합니다. 칠십이 호법 출신이라고 하는데, 짧은 시간 안에 무공이 높아진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으음, 총군사는 그럼 저자가 역용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요?”

    “네. 거의 확실합니다. 만약 저자가 저항세력에서 보낸 간자라면 절대 시합에 응해서는 안 될 겁니다. 분명 맹주님을 상대할 암수를 준비해두었을 테니까요. 물론 맹주님 상대는 되지 않겠지만, 예기치 못한 내상을 입으실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상태로 어떻게 우주존자를 상대할 수 있겠습니까? 맹주께서 불리함을 감수하고 이곳까지 무사들을 이끌고 온 그 과정을 생각하면, 절대 녹림왕 저자에게 휘둘려서는 안 됩니다.”

    “그럼 어쩌자는 것이오? 이미 열 명의 도전자를 물리쳐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가 아니오?”

    “사문을 밝히게 하고 따로 역용 여부를 심사해야 합니다. 대답을 못 하거나 거부하면 즉시 탈락이 되겠지요.”

    “으음, 총군사가 알아서 하시오.”

    “네.”

    안심서생이 천축무맹 측과 이야기를 나눈 후 사회를 맡은 천축노인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다.

    천축노인이 반색했다.

    “알겠소.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소.”

    안 그래도 백자안에 대해 반감이 컸던 천축노인이 사회 권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결심을 굳혔다.

    사실 무림 관례상 영웅대회 사회자에게는 많은 권한이 있었다.

    예를 들어 사회자가 시합 개시 선언을 하지 않으면 대결을 벌일 수도 없었다.

    천축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백자안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이제 휴식 시간은 거의 끝나갈 상황.

    “녹림왕께서는 잠시 비무대 위로 오르십시오. 몇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알겠소.”

    백자안이 담담히 비무대 위로 올라갔다.

    아직 최종 삼인 결승전이 시작되지 않았으나, 군웅들이 크게 술렁였다.

    뭔가 이상한 조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천축노인의 질문이 이어졌다.

    “조금 전 서장무맹 측에서 이의가 제기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녹림왕의 신분에 관한 겁니다. 녹림왕의 본명이 칠십이 호법 중 한 명인 왕일이 맞습니까?”

    “그렇소.”

    “좋습니다. 사문은 어디입니까? 최근에 무공이 급상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연히 비급을 얻게 되어 신공을 익혔을 뿐이오. 따로 사문은 없소.”

    “그렇군요. 하지만 증거가 없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금 서장무맹 측에서는 녹림왕께서 왕일을 죽이고 그로 역용했다고 하는데 역용 여부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지금 트집을 잡아 본인을 끌어내려는 것이오? 불사대불께서 나와 대결하면 패할까 두려워하는 것 같군. 그렇지 않소?”

    백자안이 불사대불을 쳐다봤다.

    비록 자신의 역용술은 완벽해 다른 사람이 알아차릴 수 없었으나, 대기석에 있는 방일화의 경우는 달랐다.

    불사대불이나 우주존자의 무공 정도라면 그녀의 역용 여부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불사대불을 자극해 어서 대결을 벌이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불사대불은 태연했다.

    “역용 여부 검사를 회피하는 건 녹림왕께서 뭔가 숨기는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소? 역용하지 않았다면 조사를 거부할 이유가 있겠소?”

    “으음, 좋소이다. 마음대로 살펴보시오.”

    백자안이 즉각 수락했다.

    역용술에 일가견이 있는 안심서생이 백자안의 얼굴을 만지며 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백자안이 인피면구를 쓴 것이 아니라 근육과 골격을 바꾸는 역용술을 펼쳤기 때문이었다. 원래도 파악이 어려운 데 워낙 역용이 완벽했다.

    하지만 우려가 현실이 된 걸까.

    느닷없이 안심서생이 방일화를 가리켰다.

    “저분도 살펴보고 싶소. 녹림왕과 늘 함께 다니던 왕이 호법이라고 했지요?”

    “그렇소.”

    방일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거부하면 그 여파는 백자안에게 미칠 가능성이 컸다.

    백자안 역시 불안했으나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역용이 꼭 발각된다고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불사대불과 우주존자 두 사람이 아닌 이상 일화의 역용을 쉽게 알 수 없을 것이다.’

    방일화가 펼친 역용술은 백자안이 가르쳐준 것으로 그 화후가 조금 낮을 뿐 큰 차이가 없었다.

    백자안이 지켜보는 동안 안심서생이 방일화의 얼굴을 만지며 살펴봤다.

    하지만 백자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상한 점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으음, 역용은 아닌 것 같군요.”

    안심서생이 안색을 굳히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때였다.

    잠자코 앉아 있던 불사대불이 방일화를 향해 다가갔다.

    “본 맹주가 한번 시험을 해보겠소이다. 내공으로 역용을 알아내는 비술을 알고 있는데 한번 시험해보고 싶소.”

    “······.”

    방일화가 안색을 굳히며 백자안을 쳐다봤다.

    그녀 역시 불길한 예감을 느낀 터라 백자안의 지시를 따를 생각이었다.

    하지만 기호지세였다.

    백자안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발각되면 그때 상황에 맞게 행동할 생각이었다.

    ‘아직 발각되지 않았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는 법이지.’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연마한 비술 중에 원격으로 무형지기를 상대에게 주는 것이 있었다.

    격체전공과 비슷했다. 지금처럼 아무도 모르게 기를 보조해 상대의 검사를 막아내는 경우에도 사용이 가능했다.

    불사대불이 방일화의 얼굴을 만지며 내공을 사용한 그 순간.

    백자안이 비술을 이용해 무형지기를 방일화의 얼굴 쪽에 보냈다.

    워낙 은밀해 불사대불 또한 이를 알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성공이었다.

    방일화의 내공이 일시적이지만 백자안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능가하게 된 것을 모른 불사대불이 검사에 실패한 것이다.

    “으음, 역용은 아닌 것 같소. 우리가 너무 과민했던 것 같소. 다만 녹림왕의 사문은 여전히 의심스럽소. 혹여 정파 놈들의 무공을 연마한 것이라면 어찌 신선맹주 자리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소?”

    “하하하. 지금 보니 맹주께서도 생떼를 쓰시는 것 같구려. 아직도 우리 흑도맹을 귀맹과 천축무맹의 하수인으로 생각하는 것이오?”

    “지금 뭐라고 했소?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오?”

    불사대불이 발끈했다.

    이전 녹림왕은 자신에게 감히 고개도 들지 못했다.

    한데 백자안이 녹림왕이 된 후 완전히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안심서생이 소리쳤다.

    “맹주님! 저자가 궁지에 몰리니 시비를 걸고 있는 것 같습니다. 흑도맹이 이 정도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 누구 덕분인지 모르는 것 같군요. 배은망덕이란 말이 지금의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흑도맹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제 중원무림 지배가 공고화되어 더는 저들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으음, 나 혼자 결단할 일이 아니오. 우주존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불사대불이 우주존자를 쳐다봤다.

    우주존자가 미소를 지었다.

    겉으로 봐서는 그의 속셈을 알 수 없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불사대불로 하여금 백자안과 승부를 겨루게 해 힘을 빼는 것이 그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불사대불보다 자신이 무공에 있어 한 수 위에 있어서 애초에 백자안을 제외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선택은 이제 우주존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선택에 어려움을 겪는 표정이었다.

    결국 그가 결정을 황제에게 미뤘다.

    “오늘 대회의 보증인이신 폐하께서 결정해주십시오.”

    “으음, 알겠소.”

    황제가 주저 없이 수락했다.

    이미 그가 아끼는 호위인 곤붕검객이 백자안에게 죽임을 당해 매우 분노하고 있는 상황.

    다들 황제의 결정이 백자안에게 불리할 것으로 추측했다.

    “짐이 볼 때도 녹림왕의 신원은 매우 의문스럽소. 게다가 도전자들을 상대할 때의 태도는 신선맹주로서의 자격이 없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소. 모두 봤듯이 그는 열 명의 도전자를 모두 죽였소. 그의 능력을 생각했을 때 충분히 살려줄 수 있음에도 굳이 죽인 것은 딴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오. 짐은 비록 무림인은 아니나 많은 무림인을 알고 있고 또 겪어봤소. 전대 황제가 황위를 넘긴 것도 짐의 안목을 믿었기 때문이오. 그런 짐이 볼 때 신임 녹림왕은 이전 삼의맹이나 영웅맹의 잔당이 확실하오. 아니, 어쩌면 실종되었다는 백자안일 수도 있겠지.”

    황제의 말에 군웅들이 웅성거렸다.

    특히 백자안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황제의 말이 이어졌다.

    “물론 어떤 증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오. 다만 녹림왕이 들고 있는 검이 아무래도 황궁의 상황보검인 것 같소.상황보검은 반역도인 절대황녀 그 계집이 가지고 있던 것으로 소문에 의하면 죽은 영웅맹주에게 넘겼다고 하오. 녹림왕께 묻겠소. 그 검이 상황보검이 맞소?”

    “네. 상황보검입니다.”

    백자안이 순순히 시인했다.

    군웅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아니! 정말 상황보검이란 말인가!”

    “그럼 저자가 영웅맹주란 말인가!”

    “정체가 무엇이지?”

    군웅들의 술렁임 속에서 황제가 물었다.

    “그대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인가? 죽었다던 영웅맹주인가?”

    “영웅맹주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십니까?”

    “으음, 내가 알기로 영웅맹주가 바로 삼의맹주 백자안이네. 자네가 바로 백자안이었군.”

    “그렇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더는 숨기지 않겠습니다. 제가 바로 백자안입니다.”

    백자안이 역용을 풀고 본 모습을 드러냈다.

    방일화 역시 급히 역용을 풀고 앞으로의 상황에 대비했다.

    “네놈이!”

    “백자안 네놈이었구나!”

    불사대불과 우주존자 등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지휘부 고수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백자안은 태연했다.

    불사대불이 흑도맹 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백자안 저자는 그대들의 수장을 죽이고 녹림왕 자리를 빼앗았다. 어찌 복수를 주저하는가?”

    흑도맹 백만 무사들이 큰 동요를 보였다.

    이미 신선맹이 결성된 상태.

    내부적으로 흑도맹 조직은 유지되겠지만 지휘체계가 바뀐 것만은 확실했다.

    백자안이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흑도맹 무사들은 들어라. 나 백자안은 오늘 무림을 어지럽히는 무리를 모조리 없애버리려 한다. 나를 따라 외세 놈들과 진정한 반역자인 황제를 타도하겠는가? 아니면 이놈들을 도와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다 결국은 토사구팽당하여 개죽음을 당할 것인가? 선택은 자유다. 나를 따르면 살고, 따르지 않으면 죽음뿐이다.”

    백자안이 상황보검을 높이 드니 거대한 검강이 형성되어 하늘로 솟구쳤다.

    실로 거대한 힘이었다.

    털썩. 털썩.

    흑도맹 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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