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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적 반로환동-188화 (188/250)
  • [제61장] 신선맹 1

    [제61장] 신선맹

    열 명의 도전자.

    백자안 입장에서는 다소 과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숫자였다.

    하지만 이미 수락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백자안이 별 반대를 하지 않자, 곧바로 비무 시합이 개시되었다.

    군웅들 처지에서는 구경거리가 늘어나는 격이라 다들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천축노인이 말했다.

    “그럼 바로 시합을 개시하겠습니다. 누구든 좋습니다. 녹림왕께 도전하고 싶은 분은 비무대 위로 올라오십시오. 참고로 오늘 시합은 모두 생사결로 상대의 목숨을 취하는 것을 용인합니다. 다만 시간 관계상 그 전에 비무대 밑으로 떨어지게 되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아, 물론 비무대 위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든 스스로 기권을 하거나 패배를 자인할 수 있는 점도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도전자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일각의 시간 동안 도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더 이상의 도전은 받지 않아도 됩니다.”

    천축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백자안을 떨어뜨리려는 지휘부 의도가 드러난 상황. 어찌 도전자가 없을 수 있겠냐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출전 자격에 아무런 제한이 없으므로 벌써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지휘부 고수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로서는 아무리 새 녹림왕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났다 해도 두려워하는 자는 극소수였다.

    게다가 일정 부분 그 소문이 과장되었다고 믿는 분위기였다.

    이런 상황에서 백자안을 끌어내리고 대신 기권 선언을 하게 되면 큰 공을 세우는 격이라 다들 솔깃한 표정이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천축노인이 소리쳤다.

    “첫 번째 도전자는 오르시오! 먼저 올라오는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질 것이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흥분하는 가운데 중년인 한 명이 경공을 펼쳐 비무대 위로 올라왔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측 고수들이 서로 눈치를 보고 있는 가운데 의외로 흑도 고수가 먼저 올라온 것이었다.

    “나는 독안독귀(獨眼毒鬼)라고 한다. 사흘 전 왕일 네놈 손에 죽은 녹림왕께서는 나의 의형이시다. 내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네놈을 죽여 대녹림의 기치를 다시 세울 것이다.”

    독안독귀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독안독귀는 무림십대악인 중 한 명이었다.

    그 무공은 전대 녹림왕보다 뛰어났으며 공공연히 녹림왕 자리에 관심을 표했다.

    왜냐하면 독안독귀 역시 녹림 출신이기 때문이었다.

    젊었을 때부터 악명이 높았던 그는 무림공적이 되어 무림인들로부터 쫓기는 중 절세비급을 발견해 절세고수가 되었다.

    무공이 급상승한 그는 악행을 마음껏 저질렀고 그 결과 십대악인 중 한 명이 되었다.

    전대 녹림왕은 이러한 독안독귀를 두려워해 일부러 의형제를 맺고 원하는 재물이나 미인을 제공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전대 녹림왕이 죽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오늘 백자안에게 도전하게 된 것이었다.

    절세무공을 연마하기 위해 스스로 한쪽 눈알을 없앴다고 알려진 그가 하나 남은 눈알을 번들거렸다.

    백자안 역시 그의 악명을 듣고 있었다.

    낙양으로 오면서 양민을 해치는 흑도들을 처단하면서 그 역시 제거하려 했었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었다.

    ‘마침 잘 만났다. 저놈에 의해 간살을 당한 부녀자만 백 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깨끗하게 죽여줘야겠군.’

    백자안이 무심히 말했다.

    “독안독귀라고 했나? 하늘을 대신해 네놈을 죽여주겠다.”

    “미친놈! 녹림왕 자리를 차지한 네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네놈을 죽여 의형의 복수를 하겠다. 그런 후 기권을 하여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두 맹주께서 공정한 대결을 벌일 수 있도록 협력할 생각이다. 아, 물론 녹림왕 자리는 내가 차지해야겠지. 하하하!”

    독안독귀가 내공을 실어 껄껄 웃었다.

    비무대 가까이 있던 군웅들이 비틀거릴 정도로 강력한 내공이었다.

    백자안이 흠칫했다.

    ‘만만치 않은 놈이다. 자칫 방심하면 내가 당할 수도 있다.’

    독안독귀가 허리에 차고 있던 지팡이를 들었다.

    지팡이는 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특히 지팡이 끝부분에는 뱀의 아가리처럼 벌어져 있었다.

    독안독귀는 주무공이 독공으로 알려져 그 지팡이 역시 독과 관련 있을 가능성이 컸다.

    둥둥둥!

    “시작!”

    천축노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독안독귀가 윙윙 소리를 내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순간, 회색빛 경력이 지팡이 끝부분에서 발출되었다.

    바로 독장이었다.

    정식 명칭은 칠사독장(七蛇毒掌)이란 것으로, 독사 일곱 마리의 극독을 배합한 절대독을 배출할 수 있었다.

    특히 상대의 호신강기를 무너뜨릴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지금까지 숱한 고수들이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연마하기가 너무 어려워 수백 년 전 실전된 무공이기도 했다. 한데 독안독귀가 자신의 한쪽 눈알을 파헤쳐 부작용을 없앤 후 기어코 연마에 성공한 것이다.

    쏴아아.

    악마의 아가리 같은 독무가 안개처럼 백자안을 덮쳤다.

    워낙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 도저히 피할 공간이 없었다.

    백자안이 상황보검을 앞으로 던져 버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동시에 호신강기를 발산했다. 칠사독장이 소문과 달리 강기를 뚫지 못했다.

    반면 독안독귀의 경우 날아오는 검을 피하지 못했다.

    목에 정통으로 맞은 그가 피분수를 쏟아내며 뒤로 날아가 비무대 밑으로 떨어졌다.

    쿵.

    “크윽!”

    뒤늦게 비명을 쏟아낸 그가 곧바로 숨을 거두었다.

    백자안이 우수를 들어 검을 회수하자,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독안독귀는 양민뿐만 아니라 같은 흑도들도 수없이 죽인 악인이었다.

    그 때문에 그에게 원한을 가진 자가 많았다.

    오늘 백자안이 그 복수를 해주자 다들 환호한 것이었다.

    “녹림왕의 승리요!”

    천축노인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독안독귀는 천축무맹 지휘부에서 미리 준비해둔 고수였다.

    독안독귀가 백자안을 죽이면 그에게 다시 하수인 수괴 역할을 맡기려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본맹과 서장무맹에서 나서야겠군.’

    천축노인이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두 번째로 도전할 분은 나오시오!”

    두 번째 도전자는 서장무맹의 장로였다.

    만수대불(萬手大佛)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는 그는 서장무맹 내에서도 무공이 높기로 소문이 난 자였다.

    차기 맹주감으로도 알려진 그는 시종일관 태연했다.

    자신의 독문무공인 만불수(萬佛手)를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만불수는 한번 펼치면 만 개가 넘는 손이 나타나며 그 수공을 당해낼 자가 없는 희대의 무공이었다.

    백자안은 만불수가 펼쳐지자마자 상황보검으로 검막을 펼친 채 앞으로 나갔다.

    만개의 손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뒤로 밀린 만수대불이 최후로 펼친 것은 일종의 자폭공이었다.

    그가 익힌 자폭공은 몸속의 내공을 일순 폭발시켜 일장 이내의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는 무공이었다.

    따라서 어떤 고수라도 죽일 수 있었다.

    물론 그 자신은 일 년 이상의 회복운공을 해야 하는 후유증이 있지만 그렇다고 목숨을 바쳐야 하는 동귀어진의 수법은 아니었다.

    백자안의 호신강기는 구중천심공을 익힌 이후 금강불괴의 경지에 달해 있는 상황.

    만수대불이 자폭공을 펼치자 검막에 이어 호신강기로 방어함과 동시에 왼 주먹으로 상대의 가슴을 강타했다.

    만수대불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가 즉사하자 서장무맹 측 지휘부 고수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를 표시했다.

    하지만 생사결 도중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경우였다.

    백자안이 졌다면 마찬가지의 결과였을 것이었다.

    와아아.

    군웅들 특히 흑도맹 무사들의 함성이 크게 터졌다.

    서장무맹이나 천축무맹의 장로급 고수만 해도 그들에게는 신급고수였다.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경지의 고수로 생각했었다. 한데 한 방에 즉사하자 통쾌함을 느낀 것이었다.

    “으음, 두 번째 시합 역시 녹림왕의 승리요!”

    천축노인이 안색을 굳히며 백자안의 승리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미 백자안이 선을 넘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양 맹주들이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아직 도전 횟수가 많이 남았기에 다들 지켜보려는 것 같았다.

    시합이 계속될수록 백자안의 피로도가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도전자는 천축무맹의 장로였다.

    그 역시 천축무맹 내에서 손꼽히는 자였다. 게다가 전반적으로 천축무맹 고수들이 서장무맹 고수들보다 무공이 조금씩 높은 게 현실이었다.

    그 때문일까.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오늘 대회의 최종 승자는 우주존자가 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예측이었다.

    불사대불은 패배를 감수하고 직접 무사들을 이끌고 왔다. 패배하게 되면 이를 인정하고 신선맹의 부맹주 자리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도 예측 중 하나였다.

    하지만 천축무맹의 장로 승리존자(勝利尊者) 역시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천축무맹 백대존자 중 한 명인 그는 장력 대결을 제의했다.

    백자안 역시 흔쾌히 받아들여 대결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 결과 승리존자의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말았다.

    천축무맹 고수마저 죽임을 당하자 단상에 앉아 있던 지휘부 고수들이 다시 술렁였다.

    하지만 불사대불과 우주존자는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시합을 계속 허용한다는 표시였다.

    그렇게 네 번째 시합부터 아홉 번째 시합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그들 여섯 고수는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원로고수들이었다.

    양맹에서 각각 세 명씩 출전했지만, 그 결과는 모두 패배였다.

    게다가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와아아아.

    군웅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흑도맹 무사들은 물론이고 단순히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도 다들 흥분한 표정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왕이면 외세무림이 아니라 중원무림세력이 무림을 장악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열망을 지금 백자안이 이루어주고 있었다.

    “이제 남은 도전자는 딱 한 명이오. 누가 도전하시겠소?”

    자포자기한 듯한 천축노인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일각의 시간을 주겠소. 그동안 도전자가 나오지 않으면 녹림왕께서 모든 도전을 막아낸 것으로 하겠소.”

    천축노인이 재차 강조했다.

    바로 그때였다.

    단상 위에 있던 무사 한 명이 비무대 위로 날아왔다.

    한데 그는 황제를 지키고 있던 호위무사가 아닌가.

    아무래도 황제의 지시를 받고 마지막 도전자로 나선 것 같았다.

    “곤붕검객(鯤鵬劍客)이라 합니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녹림왕께 도전하고자 합니다.”

    곤붕검객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곤붕검객이라면 황궁제일고수라는 그 신비의 인물이 아닌가?”

    “폐하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호위한다고 하더니, 저 사람이었군.”

    “생각보다 젊어 보이네. 서른 살 정도 같은데······.”

    “저자의 손에 폐하를 암살하려던 숱한 자객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

    군웅들이 떠들어대는 가운데, 백자안이 삼장 앞에 무심히 서 있는 곤붕검객을 쳐다봤다.

    낡은 검 한 자루를 허리에 차고 있는 그는 매우 담담했다.

    ‘수련이 매우 깊은 자다. 비록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만, 무공만큼은 제대로 배웠구나. 하지만 저런 자야말로 자신의 출세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자다. 이전에 공주님께 들은 바로는 전대 황제에게 충성을 바쳤던 많은 장군이 저자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던가. 이제 그 복수를 해줄 때가 된 것 같군.’

    백자안이 상황보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곤붕검객 또한 검을 빼 수평으로 세웠다.

    자신의 독문검법인 곤붕십이검식(鯤鵬十二劍式)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곤붕검객이 백자안을 쳐다봤다.

    자신처럼 담담한 기도를 가진 자였다.

    ‘일초에 목을 벤다. 저자만 죽이면 승상 자리도 가능할 것이다.’

    곤붕검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노리는 것은 비어 있는 승상 자리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높은 명성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음지에서 황제를 호위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알릴 기회가 적었다.

    ‘한 번도 펼치지 않았던 마지막 초식을 사용하면 누구든 죽일 수 있다. 혹여 반야마신을 상대하게 되면 펼치려고 아껴둔 초식인데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겠구나.’

    곤붕검객이 갑자기 눈을 감았다.

    바로 곤붕십이검식 중 마지막 초식인 곤붕비상(鯤鵬飛上)을 펼치기 위해서였다.

    한데 곤붕비상을 펼치려면 먼저 눈을 감아야 했다.

    그 이유는 바로 마음의 초식이기 때문이었다.

    ‘일개 도적 떼 두목인 네놈이 심검(心儉)을 막아내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후후후! 네놈만 죽이면 나는 승상이 될 것이고, 훗날에는 지금 황제처럼 나 역시 황제가 될 것이다.’

    둥둥둥!

    “시작!”

    천축노인의 말이 떨어졌다.

    곤붕검객이 검으로 원호를 그린 것은 그 직후였다.

    바로 곤붕비상이었다.

    쐐애액.

    겉으로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일반 검초에 불과했다.

    미약해 보이는 원형 검기 하나가 천천히 백자안에게 날아갔다.

    백자안이 그 검기를 보고 흠칫했다.

    ‘무형검에 근접했군. 구중천심공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백자안이 상황보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깡.

    날아오던 검기가 반으로 갈라졌다.

    한데 갈라진 검기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계속 전진해 오는 것이 아닌가.

    백자안이 당황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며 다시 검기를 잘랐다.

    까까깡.

    다시 검기들이 잘렸다.

    한데 이번에는 계속 진격해오지 않고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닌가.

    곤붕검객이 놀라며 호신강기를 펼쳤다.

    꽝.

    폭음과 함께 곤붕검객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비무대 밖에 떨어져 죽은 그의 가슴에는 큰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백자안의 승리였다.

    와아아.

    군웅들의 함성과 함께 천축노인이 굳은 안색으로 소리쳤다.

    “녹림왕의 승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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