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87화 (187/250)

[제60장] 녹림왕 3

다음날 천축무맹 총단 대연무장.

이전 중원무맹 총단이었던 이곳은 지금 수많은 사람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누군가 천만 명이 모였다고 말할 정도로 실로 무림 유사 이래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라 할 수 있었다.

둥둥둥!

“지금부터 영웅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를 맡은 천축무맹 총관 천축노인(天竺老人)의 말에 군웅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와아아아.

짝짝짝.

박수 역시 천지가 떠나갈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자리에는 당금 강호를 지배하고 있는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무사들이 거의 모두 집결해있었다.

양 맹의 무사들만 합쳐도 삼백만에 육박했다.

게다가 이번 영웅대회에는 그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백자안이 이끄는 흑도맹 무사 백만이 전격적으로 참여했다.

사흘 전 백자안이 이전 녹림왕을 죽이고 새 녹림왕이 된 후 피의 숙청을 감행했지만,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지휘부는 별 간섭하지 않았다.

그 덕분일까.

백자안은 원래 예정된 절차대로 대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황제 역시 예정대로 백만 황군을 이끌고 대회에 참석했다.

황제가 모습을 드러내자 군웅들 모두가 예를 표했음은 물론이었다.

단상에 앉아 있는 지휘부 고수들만 천여 명.

가장 상석에 황제가 자리했다. 양옆에 서장무맹주 불사대불과 천축무맹주 우주존자가 자리했다.

백자안의 자리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그의 옆에는 녹림칠십이채주가 자리했다.

칠십이채주는 숙청된 상록채주 등을 제외하고 모두 기존의 인물들이었다.

하지만 다들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그리고 황궁의 기세에 눌린 탓인지 긴장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사실 다들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는 백자안 때문으로 신임 녹림왕이 된 그가 공공연히 통합맹주 자리에 도전하겠다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기권하고 지금과 마찬가지로 흑도맹이 하수인 역할을 해야 했다.

이는 대다수 흑도맹 무사들이 수긍하는 일이기도 했다.

전력 면에서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하수인 역할을 해서라도 어느 정도 권력 행사를 하려는 생각이었다.

실제 그것만으로도 상당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백자안의 돌발행동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자칫하면 이전 삼의맹이나 영웅맹처럼 몰살을 당할 수도 있으므로 조마조마한 심정이 아닐 수 없었다.

다만 흑도맹 휘하 무사 중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자들은 이미 숙청되었기에 내심 백자안에 대한 기대를 하는 자들도 많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백자안이 보여준 절대무공에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일까.

절대 권력자라 할 수 있는 황제와 불사대불, 그리고 우주존자 세 사람의 눈길이 아까부터 백자안에게 가 있었다.

이미 지휘부 소개는 끝난 상태.

이제는 통합맹 결성과 통합맹주 선출만 남았다.

“자, 그럼 통합맹 결성식부터 진행하겠습니다.”

천축노인의 말에 군웅들이 다시 함성을 질렀다.

“불사대불, 우주존자, 녹림왕 세분은 앞으로 나와 주십시오.”

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호명된 세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천축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통합맹의 명칭은 사전에 합의한 대로 신선맹(神仙盟)이며 세 분의 결성 선언으로 확정이 되겠습니다. 보증인은 지금 이 자리에 참석하신 황상 폐하께서 되어 주실 겁니다. 폐하께서 직접 이 자리에 오신 이유는 다름 아니라 앞으로 신선맹의 단합을 해치는 어떤 행동도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경고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점을 유념하고 선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와아아.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함성 속에서 우주존자가 먼저 말했다.

“우리 천축무맹은 지금부터 신선맹에 가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불사대불 또한 엄숙히 말했다.

“우리 서장무맹은 지금부터 신선맹에 가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이제 남은 사람은 백자안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이제 흑도맹마저 신선맹에 가입하면 무림에서 가장 강한 단체가 탄생하게 되는 셈이었다.

“우리 흑도맹은 지금부터 신선맹에 가입할 것을 선언합니다.”

와아아.

짝짝짝.

천축노인이 득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로써 신선맹이 결성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세 분께서는 맹세의 표시로 황상 폐하께 다시 한번 예를 표시하기 바랍니다.”

불사대불, 우주존자, 백자안이 신형을 돌려 황제에게 허리를 굽혔다.

원래는 오체투지를 해야 하나 무림대회 장소인 만큼 황제가 배려한 셈이었다.

한편 의외로 오십 대 정도로 젊어 보이는 새 황제는 시종일관 태연한 모습이었다.

승상의 몸으로 황궁마신 등의 도움을 받아 황제가 된 그였다.

일 년 전 백자안에 의해 황궁마신이 죽임을 당한 이후에도 그는 조용히 숙청을 계속해 이제는 완전히 황궁을 장악하고 있었다.

사실 절대황녀와 황룡선생이 생사도 알려지지 않고 사라진 이후 그를 막을 세력은 전혀 없었다.

천하 각지의 성주 중 충성심이 의심되는 자들 역시 모두 제거되었다.

다만 전대 황제의 생사는 아직도 오리무중이었다.

이미 죽었다는 말도 있고 황궁 깊은 곳에 계속 유폐되어 있다는 말도 있었다.

백자안은 이왕이면 전대 황제가 살아있기를 바랐다.

그래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때 혼란이 덜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직도 그의 마음을 조금 답답하게 하는 것은 반야마신이었다.

백자안에게 제거된 두 마신, 즉 서불마신과 황궁마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는 그는 지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의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지금 어디선가 보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단 불사대불, 우주존자, 황제 이 세 사람을 제거한다. 그러면 그 역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완벽히 준비된 몸이 아니라 조금 불안하지만 나 역시 그동안 무서운 발전을 보이지 않았던가.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 지금이 놈들을 섬멸할 절호의 기회다. 더는 늦춰서는 안 된다. 내 모든 힘을 다 소모하더라도 끝을 낸다.’

백자안이 결심을 다질 동안.

황제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허허허. 예는 그만해도 좋소. 짐이 이 자리에 온 것은 앞으로 신선맹이 발전하여 무림에도 영원한 평화가 오기를 바랐기 때문이오. 따라서 오늘 이후로 신선맹에서 배신자가 나오면 그자는 역적으로 간주해 구족을 멸할 것이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소. 무림과 황궁의 불간섭 전통은 원칙적으로 지킬 테니까. 신선맹에서 이탈하지 않는 한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은 원칙적으로 간섭하지 않을 것이오. 하지만 황궁의 무림에 대한 지원은 이전보다 더 강해질 것이오. 그런 의미에서 잠시 후 선출된 신선맹주를 정식으로 무림왕으로 봉해 무림을 다스리도록 하겠소. 아, 물론 무림왕이 신선계 반선과 마신들의 최종대리자가 되어 더 높은 목표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오. 좀 더 구체적인 것은 신선맹주가 결정된 이후 그와 의논하도록 하겠소. 이상이오.”

“만세! 만세! 만만세!”

“황제 폐하 만세!”

군웅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황제에게 예를 표했다.

무림 역사상 이렇게 무림대회에 직접 황제가 참석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은 흑도맹 무사들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백자안 본인이었다.

과연 그가 공언한 대로 신선맹주 선발전에 직접 참여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군웅들이 다시 몸을 일으킨 후 천축노인이 말했다.

“자, 그럼 이제 모두가 고대하던 신선맹주 선발대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

짝짝짝.

엄청난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대부분 이 대결을 보기 위해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백자안이 잠시 군웅들을 둘러봤다.

아직 어떤 특이한 조짐은 없었다.

그가 내심 기대하고 있는 것은 이번 대회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의 등장이었다.

예감에 불과하지만, 그 저항세력에 자신이 아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세력 규합이 덜 되었는지 어떤 조짐도 없었다.

‘하기야 지금 나타난다고 그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나 혼자가 편하다.’

백자안이 담담히 미소 지으며 이번에는 단상 쪽을 봤다.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 뒤에 서 있는 방일화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 외 흑도맹 지휘부 고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은 아직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전에 자신을 충심으로 따르던 삼의맹과 영웅맹 무사들이 생각났다.

그들 대부분은 전멸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밝혀낸 사실은 전사자의 시신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 점은 한 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강력하게 의미하고 있었다.

바로 중간지대 망부곡에 있는 수백만 개의 석상들.

그 석상들이 바로 실종된 삼의맹과 영웅맹 무사들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천운이 따라 무림을 평정한다고 해도 망부곡으로 가서 다시 한번 조사를 해봐야 할 듯하구나. 하기야 조만간 문이 열릴 신선계에 있는 정심회 반선들과 마신들까지 완전히 정리해야 모든 불안 요소가 사라질 것이다. 갈 길이 너무 먼 것 같구나.’

백자안이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미리 절망하지 않았다.

‘일단 닥친 일부터 해결한다.’

백자안이 표정을 담담하게 했다.

천축노인의 말이 이어졌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통합맹주 선발전에 오른 분은 지금 제 옆에 서 있는 세분입니다.”

천축노인이 손을 뻗어 불사대불, 우주존자, 백자안을 가리켰다.

군웅들의 함성과 박수가 다시 쏟아졌다.

“먼저 절차에 따라 마지막으로 출전 의사를 확인하겠습니다.”

천축노인이 불사대불과 우주존자에게 출전 의사를 물었다.

두 사람은 예상대로 고개를 끄덕여 출전 의지를 밝혔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은 백자안이었다.

“녹림왕께 묻겠습니다. 출전하시겠습니까?”

“물론이오.”

백자안의 대답이 있자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사실 이전 녹림왕이 형식적인 참가를 한 후 대결 전에 기권한다는 것은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지휘부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사흘 전 백자안이 새 녹림왕이 되면서 소문이 달라졌다.

새로운 녹림왕이 뛰어난 무공으로 통합맹주 자리까지 노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한데 실제 소문대로 백자안이 직접 출전 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백자안을 상대해야 하는 불사대불과 우주존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백자안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자신들의 상대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보였다.

특히 두 사람을 짜증 나게 하는 것은 둘 중 한 명이 백자안을 먼저 상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객관적인 무공에 있어 확연한 차이가 없다고 알려진 불사대불과 우주존자로서는 부담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리 대비해둔 것일까.

은근히 여유를 보이는 그들이었다.

백자안 또한 그 점을 감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대비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게 무얼까?’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천축노인이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녹림왕께서도 출전 의사를 피력하셨군요. 하지만 대회 규정에 따라 녹림왕께서는 먼저 일반 도전자의 비무에 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원래는 새 녹림왕이 되신 후 풍운장원에서 도전을 받으셔야 했는데, 조사해보니 단 한 번의 도전도 받지 않으셨더군요. 따라서 지금 이 자리에서 일반 도전자를 받아 그들을 모두 물리쳐야 최종 삼인이 겨루는 선발전에 진출하실 수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오?”

“자동으로 기권 처리되게 됩니다. 덧붙여 말한다면 신선맹주 자리는 아무나 도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동안 무림에 군림했던 정파 위선자들을 축출한 공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하지만 그 공이 가장 큰 분은 바로 불사대불과 우주존자 두 분입니다. 녹림왕께서는 이번에 새로 녹림왕이 되셔서 이렇다 할 공이 없는 상황이지요. 하지만 전대 녹림왕의 지위를 계승했기에 어느 정도의 특권을 드리는 겁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렇소. 이해했고 도전을 받아들이겠소. 하지만 그 한계선이 있어야 할 것 같소. 최대 몇 명의 도전자를 받아야 하는 것이오?”

“열 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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