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적 반로환동-183화 (183/250)
  • [제59장] 건곤일척 2

    백자안과 방일화가 낙양에 도착한 것은 영웅대회가 열리기 사흘 전이었다.

    거리를 생각하면 조금 늦게 도착했는데, 그동안 두 사람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천축무맹과 서장무맹의 비호를 받은 흑도 세력이 양민을 수탈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 이를 단죄하였다.

    백자안의 손에 죽임을 당한 흑도 무사들만 수만에 달했다.

    그 바람에 흑도 세력은 최근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

    조금이라도 양민을 수탈하는 세력은 순식간에 멸문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이 그렇게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특수 이동대법 덕분이었다.

    구중천심공이 삼성에 달한 이후로 특수 이동대법은 매우 능숙해져 있었다.

    이제 신선계와 중간지대로 가는 것 빼고는 대부분의 거리를 순간 이동할 수 있었다.

    “사부님. 사부님의 특수 이동대법이 이렇게 놀라운 줄 알았으면 이곳 낙양에 곧바로 올 수도 있었지 않나요?”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야 나도 숙달할 수 있었고, 원래 대회 기간에 맞춰 오려고 했었지. 특수 이동대법을 무리하게 펼쳤다면 부작용이 생겼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천천히 오길 잘한 것 같구나.”

    백자안이 관도를 걸으며 미소를 지었다.

    한 달 전보다 왠지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방일화는 다시 남장을 풀고 평범한 소녀의 얼굴로 역용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한 달간 두 사람의 활약이 많아 자칫 얼굴이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었다.

    백자안 역시 다시 얼굴을 바꿔 다소 험상궂게 생긴 중년인으로 변해 있었다.

    두 사람의 변신은 얼굴만이 아니었다.

    의복 역시 흑의로 바꿨다.

    “사부님. 이제 우리 문파 이름이 흑상문(黑象門)이 된 건가요?”

    “그렇다. 나는 흑상문주고 너는 여전히 나의 제자로 행세하면 될 것이다.”

    “네. 사부님 별호 역시 흑상서생(黑象書生)으로 바뀌었다고 하셨지요?”

    “그렇다. 너 역시 적당한 별호를 지어야겠구나.”

    “저는 흑선자(黑仙者)로 할게요. 부르기 쉽게.”

    “흑선자라. 그것도 좋군. 대외적으로 흑도 인물로 행세할 것이니 같은 방에 투숙해도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 한데 나와 함께 한 방을 사용해 불편하지 않았느냐?”

    “네. 사부님은 목석과도 같은 분이니 아무 걱정도 없었어요. 오히려 저를 계속 지켜주셨지요.”

    방일화가 다소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백자안이 자신을 너무 어린애처럼 생각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달 전 천축무맹의 금의존자에게 당할 뻔한 이후로 그녀가 적극적으로 백자안과 함께 있기를 원했다.

    낮에는 흑도 세력 소탕 등 할 일이 많았기에 밤에 자기 전에 백자안에게 무공을 지도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백자안 역시 강력한 보조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지도를 아끼지 않았다.

    내공 역시 격체전공을 통해 많은 양을 넣어주었다. 그 결과 방일화의 무공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져 있었다.

    서장무맹주나 천축무맹주와 같은 절대고수급만 만나지 않으면 누구와도 한번 해볼 만한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저기 객잔이 보이네요. 식사부터 하고 풍운장원으로 가도록 해요.”

    “그러자.”

    * * *

    객잔 안은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백자안과 방일화는 대기석에서 조금 기다렸다가 겨우 합석할 수 있었다.

    손님들은 예상대로 대부분 흑도 무림인들이었다.

    천축무맹과 서장무맹 무사들은 영웅대회 준비 때문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그들은 마치 군대처럼 함께 무리를 지어 움직이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객잔에 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 영웅대회가 끝나고 최종 대리자가 정해지면 그때는 아마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었다.

    이미 서장무맹과 천축무맹 양 맹 모두 공공연히 중원무림을 직접 다스리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등급을 나눈다고 했다.

    물론 최고 등급은 바로 양 맹의 무사들이었다.

    흑도들은 그다음 단계였다. 지난 일 년 간 그들은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하수인이 되어 정파 무림인 소탕에 힘썼다.

    정파 무림이 멸망해 외부적인 활동은 거의 없었으나 음지로 스며든 정파인들은 여전히 많았다.

    그들 중 수상한 자를 색출해 처리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게다가 최근에는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이 통합을 앞두고 자신들의 점령지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있었다.

    총단만 구분하고 있었다.

    서장무맹 총단은 사천성 성도에 있었고, 천축무맹 총단은 이곳 낙양에 있었다.

    하지만 총단 역시 이번 영웅대회가 끝난 후 이곳 낙양 총단으로 통일될 예정이었다.

    다시 말해 최종 대리자를 배출하는 쪽이 완전히 주도권을 쥐게 되는 셈이었다.

    물론 대외적으로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양 맹이 통합하기로 되어 있었다.

    양 맹의 맹주가 대결을 벌여 그 승자가 최종 대리자가 되는 동시에 통합맹주가 되는 셈이었다.

    이후 절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아마도 통합맹주의 의사에 따라 처리될 가능성이 컸다.

    “하하하! 이것도 인연이니 통성명이나 하는 게 어떻겠소?”

    우람한 체구의 사내 둘이 백자안과 방일화를 향해 말했다.

    두 사람은 기존 탁자에서 술을 마시던 자들이었다.

    백자안과 방일화가 합석하자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사내들의 눈은 연신 방일화의 몸매에 가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역용으로 평범해졌으나 그 몸매만큼은 그대로였다.

    방일화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놈들이! 죽으려고!’

    지난 한 달간 백자안을 따라다니며 실전 경험 역시 풍부해진 그였다.

    양민들의 처참한 피해 상황을 목도한 그녀는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 죽임을 당한 흑도인들의 수만 천 명에 가까울 정도였다.

    백자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흑상문의 문주 흑상서생이라 하오. 여기 이 아이는 내 제자로 흑선자라 하오.”

    “흑상문?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은둔 문파라 그렇소. 하지만 알고 보면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흑도문파라오.”

    “하하하! 말을 그럴 듯 하는구려. 우리는 대녹림(大綠林) 소속 무인들이오.”

    “대녹림이라면 녹림칠십이채가 한데 모여 만든 단체가 아니오? 대녹림의 수장 역시 녹림왕이 맡고 있소?”

    “그렇소. 우리 총채주께서 바로 녹림왕이시오.”

    “존성대명이나 별호를 알 수 있겠소?”

    “물론이오. 우리는 각각 왕일(王一), 왕이(王二)라고 하오. 그대들도 이번 영웅대회에 참가하러 왔소?”

    “그렇소이다. 대회 참가라기보다 한번 구경을 하러 왔소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번에 새롭게 통합될 맹에서 인재를 구한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물론이오. 하지만 자리를 원한다면 서장무맹이나 천축무맹 지휘부보다는 녹림왕의 눈에 드는 게 더 효과가 클 것이오. 이번에 통합맹주가 탄생하면 맹의 실무적인 일은 우리 녹림왕께서 모두 맡기로 했으니 말이오.”

    왕일의 말에 백자안이 눈을 빛냈다.

    ‘이전에 사천사자들과 교류가 있었던 녹림왕이 흑도들의 수장 자격으로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최고 앞잡이가 되었다고 하더니 그게 사실인 모양이구나. 숨어 있는 정파 무림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시급히 제거해야 할 자다.’

    백자안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다 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온 것은 아니었다.

    워낙 상황이 가변적이라 임기응변할 생각이었다.

    ‘녹림왕이라. 아직 대회가 시작되려면 사흘이 남았으니 놈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녹림왕 정도 되어야 서장무맹과 천축무맹의 지휘부에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

    백자안이 담담히 말했다.

    “녹림왕께서는 지금 어디 계십니까?”

    “왜 그러시오?”

    “형장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하루빨리 녹림왕을 뵙고 싶어서 그러하오. 지금 낙양에 계시오?”

    “하하하. 아직 정보가 어둡구려. 녹림왕께서는 지금 낙양에 계시오. 그것도 백자안 그자가 살던 풍운장원에 기거하고 계시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우리 대녹림의 칠십이채주 또한 모두 그곳에 있기도 하오.”

    “풍운장원에?”

    백자안이 흠칫했다.

    풍운장원은 자신과 가족들이 살던 곳이었다.

    그래서 식사 후 곧바로 가볼 생각이었다.

    물론 가족들이 계속 그곳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조심스레 가족들의 생사를 알아볼 생각이었다.

    “하하하. 그렇소. 백자안 그놈이 아직 잡히지 않아 우리 녹림왕께서 직접 놈을 체포하기 위해 풍운장원을 접수한 것이오.”

    “녹림왕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백자안 그자를 상대할 수 있겠소? 백자안 그자는 혼자서 수십만을 죽일 수 있는 절대고수라고 하던데······.”

    “하하하. 이전에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죽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폐인이 되었다고 하오. 설사 놈이 정상이라 해도 우리 녹림왕님의 적수는 되지 못하오.”

    “녹림왕의 무공이 그렇게 높소?”

    “물론이오. 녹림왕께서 이번 영웅대회의 출전권을 획득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겠소?”

    “출전권? 통합맹주를 뽑는 시합 말이오?”

    “그렇소.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데, 이번 영웅대회의 참가 자격에는 제한이 없소. 새롭게 창설된 무림맹은 서장과 천축뿐만 아니라 중원 무림 또한 포함하기 때문이오. 하지만 너무 많은 고수의 출전을 막기 위해 우리 녹림왕께서 나선 것이오.”

    “무슨 말인지 모르겠소이다. 통합맹주를 뽑는 시합은 불사대불과 우주존자 두 맹주의 대결로 정해지지 않았소?”

    “그건 맞소. 하지만 관례에 따라 일반도전자의 도전도 받기로 했소.”

    “어떤 식으로 말이오? 따로 예선전은 없다고 들었소만······.”

    “하하하. 역시 정보에 어둡구려. 누구든 대회 당일까지 녹림왕을 이기게 되면 그가 도전자 자격을 취하게 되오. 그 때문에 녹림왕께서 풍운장원에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으시오.”

    “그랬구려.”

    “흥미가 있소? 오늘 밤부터 정식으로 도전자를 받을 예정인데,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오. 생각이 있다면 우리가 두 분을 풍운장원으로 안내하겠소.”

    “그렇게 해주겠소? 초면에 이렇게 신세를 져도 괜찮을지 모르겠소.”

    “무슨 소리! 우리는 같은 흑도인이 아니오? 식사는 풍운장원에서도 가능하니, 우리를 따라오시오.”

    왕일과 왕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자안이 그들을 보니 아까부터 두 사람의 눈빛이 방일화에게 가 있었다.

    ‘이놈들이 일화에게 음심을 품었구나. 그렇다면······.’

    백자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일화가 급히 그에게 전음을 날렸다.

    「사부님. 이놈들 말을 믿으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다. 하지만 어차피 풍운장원으로 가려 했지 않으냐? 가는 도중 놈들이 우리를 해치려 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때는 우리가 놈들을 제거하고 대녹림 무사로 역용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대녹림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풍운장원에 들어가서 탄로 나지 않을까요?」

    「놈들의 기억을 알 수 있는 섭혼술을 알고 있으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게다가 녹림왕이 대회 출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이 기회를 놈을 죽이고 내가 대신 출전권을 가질까 한다. 어떤 방식으로 빼앗을지는 일단 장원으로 가서 결정할 생각이다.」

    「아, 역시 사부님이세요. 나중에 그 섭혼술이란 것도 꼭 가르쳐주셔야 해요.」

    「알겠다. 이놈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 어서 가자.」

    「네.」

    방일화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왕일과 왕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 어서 갑시다. 중간에 볼일이 조금 있긴 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은 아니니 우리만 따라오면 될 것이오.”

    “알겠소. 천천히 가도 되니 우리는 신경 쓰지 말고 들러야 할 곳은 들르시오.”

    “이해를 해줘서 고맙소.”

    왕일과 왕이, 백자안, 방일화 네 사람이 객잔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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